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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 나홀로 세계여행 (184) 인도 ③] 히말라야와 맞장 뜨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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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13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8.11.12 09:50:05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14일차 (레 도착)


중국이 코 앞


새벽 4시반, 버스는 다시 시동을 건다. 이미 도로에는 인디안 오일(Indian Oil)의 유조 트럭 수십, 수백 대가 늘어서 있다. 레 인근 중국 국경 지대에 흩어져 있는 군사 시설의 월동에 필요한 유류를 운반 중이다. 도로가 잠깐 열린 짧은 여름 동안 밤낮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실어 날라야 한다. 1962년 동북부 지역에서 중국과 충돌이 있었던 인도는 히말라야 너머에 어떤 적이 있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참고로, 오늘 도착지 레는 중국 티베트 자치구 서쪽 혹은 신장 자치구 남서쪽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400km 떨어져 있다.


불영계곡의 추억


소싯적 대학 신입생 시절, 친구들과 우리나라의 오지 울진 불영계곡을 가겠다고 올랐던 봉화-울진 36번 국도가 꼭 이랬다. 대형 차량 두 대가 교행이 어려워 한 대가 미리 널찍한 곳에서 기다리다가 반대 방향 차를 보내 주었다. 그 중 한 대는 수백 길 벼랑 끄트머리에 바싹 비켜섰던 그때 여름이 생각난다. 바퀴 하나쯤은 이미 공중에 떠있는 것 같았다. 추락 방지용 방책 하나 제대로 설치되지 않았던 벼랑길이었다.

 

로탕 패스를 넘으면 사막에 가까운 풍경이 이어진다. 사진 = 김현주 교수

고소증으로 헤매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이라 꽤 춥다. 추위에 몹시 떨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난생 처음 보는 히말라야 풍경에 감탄한다. 어제 로탕 패스를 넘으면서 이미 들어선 반건조 지역, 사막에 가까운 풍경이 이어지지만 사막도 이렇게 형형색색 옷을 입고 있으니 꽤나 아름답다. 외계 행성 어디쯤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풍경이다. 


가장 높은 해발 5325m 탕랑 고개(Tanglang La)를 넘을 즈음, 걱정했던 고소증(high altitude sickness)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두통과 구역질로 오후 내내 시달리다가 버스가 해발 4000m 이하로 내려가자 언제 그랬냐는 듯 정상 컨디션으로 돌아온다. 

 

해발 4000~5000m를 넘는 고갯길이다 보니 히말라야 산맥의 위용이 이렇게 길을 따라 함께 달린다. 

레에 도착하니 저녁 7시반. 인도 잠무 카시미르(Jammu and Kashmir) 주, 라다크(Ladakh) 지역은 과거 히말라야 왕국의 수도였다. 인더스 계곡(Indus Valley) 해발 3524m 높이에 위치해 있다. 1962년 인도-중국 전쟁 이후 국경이 폐쇄되기 전까지는 중국 신장자치구 카슈가르(Kashgar, 카스, 喀什)와 티베트, 인도 카시미르를 연결하는 고대 교역로의 십자로였다. 라다크 지역은 1974년에 가서야 외래 방문자들에게 개방되었다.


오늘 15시간 버스를 탔다. 어제 첫 날 구간 7시간을 보태면 마날리-레 490km를 주파하는 데 순수 주행 시간 22시간이 걸렸다. 델리에서 마날리까지 버스 14시간을 합하면 델리에서 레까지 36시간, 2박 3일 버스 여행을 한 것이다. 지금 나에겐 휴식만이 살 길이다. 예약해 놓은 숙소, 나의 독방이 이렇게 좋을 수 없다.

 

 

15일차 (레)


스쿠터와 함께 하루 


체력도 고갈되고 있고 고산증이 또 찾아올까 염려되어 스쿠터를 대여해서(하루 800루피, 1만 3000원) 연료를 가득 채우니 300루피(5000원). 총 1100루피(1만 8000원)를 투자하여 레와 그 일대를 섭렵할 준비를 완료했다. 레와 스리나가르로 향하는 도로에는 차량이 적지 않지만 이곳 말고 스쿠터를 즐기기에 안전하고 한적한 도로는 레 주변에 얼마든지 있다. 먼저 가까운 산록 마을 사부(Sabu)로 스쿠터를 몬다. 어디를 가도 군부대, 학교를 만난다. 레 인구 2만 7천 명의 몇 배, 몇 십 배 되는 군 병력이 주둔하는 전략 요충임을 금세 확인한다. 

 

레 왕궁보다 더 높은 언덕에 세워진 남걀 수도원은 1430년 건축 당시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사진 = Sting / 위키피디아에서 인용

보배로운 레 왕궁


도시로 돌아와 보행자 거리 부근, 도시의 가장 높은 언덕 위에 우뚝 선 레 왕궁(Leh Palace)을 찾는다. 17세기에 건축한 레 왕궁은 내부는 어둡고 협소하지만 도시 어디에서도 보이는 외관은 압도적이다. 정교하지는 않지만 티베트 포탈라 궁과 거의 같은 모습이다. 왕궁 뒤 더 높은 언덕 위에 있는 남걀 수도원(Namgyal Tsemo Gompa)은 1430년 건축한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갖고 있다. 


레 왕궁과 함께 하얀 수도원은 삭막한 산중 도시 레의 풍광을 화려하게 만드는 보배로운 상징이다. 레에는 불교 사원, 수도원뿐만 아니라 오래된 이슬람 사원도 여럿 있다. 서쪽에서 밀려온 이슬람이 일찌감치 이곳 산중 마을에도 터를 잡았지만 도시에는 불교와 이슬람이 평화롭게 공존한다. 

 

세계에서 가장 험한 도로라는 마날리-레 하이웨이의 절벽 구간. 가드레일도 없어, 예전 차 2대 교행이 불가능했던 한국의 산악도로를 연상시킨다. 사진 = 김현주 교수

히말라야 첩첩 산중을 누비다


기왕 빌린 스쿠터를 이용하여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도로에 도전한다. 카둥 고개(Kadung La) 행 산악도로는 해발 4000m에서 시작하여 5400m까지 올라간다. 참으로 멋진 대자연을 나 혼자 소유하는 것 같은 해방감에 젖는다. 그러나 고도가 높아질수록 추워서 더는 갈 수 없다. 두꺼운 재킷이 필요하지만 나에게는 바람막이 얇은 재킷이 전부이니 애당초 무리한 도전이었다. 카둥 고개를 건너야 인더스(Indus) 강 발원지와 그 너머 누브라 계곡(Nubra Valley)에 닿을 수 있는데 말이다. 


이제부터는 국경 보안 지역이라서 통행 허가증이 필요하다는 말에 차라리 잘됐다 싶어 체크 포인트에서 회차한다. 히말라야 첩첩산중을 오롯이 혼자서 누빈 지난 두 시간을 가슴에 담고 도시로 돌아온다. 


시내를 관통하여 도시 남쪽 15km 지점 쉐이 궁전(Shey Palace)까지 내닫는다. 한때 라다크 왕국의 수도였던 곳이다. 크고 작은 스투파가 즐비한 수도원(Gompa)을 함께 품고 있다. 그중 어느 한 곳에 오르니 발 아래 보이는 오아시스 마을의 오후 한 때 풍경이 일품으로 다가온다. 


도시로 돌아와 마지막으로 서쪽 언덕 위 라다크 샨티 스투파(Ladakh Shanti Stupa)를 찾는다. 일본 불교 단체가 기증한 스투파는 그 자체로는 역사적 의미가 없지만 모든 방향으로 도시를, 그리고 멀리 눈 덮인 히말라야 준봉들의 파노라마를 조망하기에는 최고의 장소에 자리 잡고 있다는 이유로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 든다. 

 

사막에 가까운 반건조 지역의 풍경이지만 이렇게 형형색색 옷을 입고 있으니 꽤나 아름답다. 외계 행성 어디쯤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풍경이다. 사진 = 김현주 교수

삼엄한 국경


스투파 아래 도시 서부 지역은 거대한 군 주둔 지역이다. 사령부 정문과 그 부근에는 “나라가 먼저다”(Country is First) “내 자손들의 내일을 위하여 내가 오늘 여기 있다”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 등 각종 군사 기호가 즐비하다. 여기서 히말라야 너머는 중국 땅이다. 북동쪽으로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 남동쪽으로는 티베트 장족(藏族) 자치구가 불과 수백km 거리이다. 강력한 적을 산 너머에 두고 있는 삼엄한 국경 지역이다. 무사히 스쿠터를 반납하고 안도의 긴 한숨을 쉰다. 대단한 하루였다. 

 

 

16일차 (레)


레 여행 팁


오늘 하루 온전한 휴식 시간을 갖는다. 그래도 할 일은 있다. 먼저 버스 터미널로 나가 내일 오후 2시 출발하는 스리나가르(Srinagar) 행 버스표를 예매한다. 인도 히말라야 산악 지방의 교통 중심인 라다크(레) 버스 터미널에서는 인근 지역으로 버스가 다닌다. 그러나 어떤 노선은 많아야 하루 한 번, 또 어떤 노선은 일주일에 한번 다니기도 한다. 버스로 이틀 걸리는 마날리 행은 여름철에만 이틀에 한 번 다니고 스리나가르 행 버스는 매일 다닌다고는 하지만 결행이 잦다고 한다. 내일 무사히 버스가 떠날지는 내일이 되어 봐야 안다. 


델리로 나가는 항공기는 비교적 자주 있지만 갑자기 표를 구하기도 어렵거니와 설령 있어도 여름철에는 편도 20만~30만 원으로 매우 비싸다. 도시에서 150km 떨어진 산간벽지 누브라 계곡(Nubra Valley)과 인도-중국 국경 해발 4350m 산중에 놓인 판공 호수(Pangong)에 버스로 가려면 시간 맞추기가 대단히 어렵다. 이 도시에 며칠은 묵어가면서 날짜를 조절해야 방문이 가능하다. 합승 택시를 이용하면 그나마 시간에 덜 얽매이는 장점은 있다. 바깥세상과 단절된 아득히 먼 곳, 지구상 마지막 오지인 듯싶다. 

 

과거 히말라야 왕국의 수도였다는 라다크(Ladakh) 지역의 레 왕궁. 해발 3524m에 위치한 도시 중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사진 = Kondephy / 위키피디아에서 인용

안경 다리 수리에 480원?


또 하나 중요한 일거리가 남았다. 어제 침대 위에서 깔고 앉는 바람에 망가진 돋보기안경 다리를 고치는 것도 급한 용무이다. 만물상 거리, 시내 시장통에서 시계 수리점을 하나 찾았다. 세심한 정성으로 고치는 것을 보니 안경다리 수리가 보통 일은 아닌 것 같다. 고난도 작업이니 수리비 200~300루피(3000-5000원)는 될 것이라 예상했으나 단돈 30루피(480원)에 말끔히 끝낸다. 이것 또한 Incredible India(대단한 인도) 아닌가?


티베트 난민


레 올드타운에 티베트 난민 시장이 있어서 들어가 본다. 티베트인들이 공예품이나 수직물(手織物) 등을 팔아서 생활비에 보탤 수 있도록 인도 정부가 배려한 곳이지만 보잘 것 없다. 이곳뿐 아니라 인도 북부 산악 지역에는 티베트 난민 공동체가 넓게 형성되어 있지만 난민들의 삶은 한결같이 어렵다. 1959년 티베트 봉기 실패 이후 중국의 압박으로 14대 달라이 라마가 망명했고, 그를 따라 인도로 흘러 들어온 티베트 난민들은 현재 12만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한때 미국 CIA가 티베트 유민들의 모국 내 게릴라 활동을 지원하기도 했으나 1970년대 미중 수교로 중단되었다.  


전화 로밍 신호가 끊긴 지 오래


하릴없이 보행자 거리를 어슬렁거리다 숙소로 돌아와 여행 일지를 정리한다. 전화는 로밍 신호가 끊긴 지 오래지만 다행이 숙소 와이파이가 있어서 외부와 소식을 주고 받고 인터넷을 통한 정보 검색도 가능하다. 카톡으로 한국의 가족과 소식을 주고 받아 보니 오늘 서울의 최고 기온이 영상 36도였다고 한다. 중동 사막 지역을 빼고 오늘 우리나라가 지구상에서 가장 더운 곳 아닐까? 히말라야 산중에서 최고 기온 섭씨 21도의 고산 날씨를 혼자서 즐기려니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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