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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전시] 대런 아몬드, 인간→대지→자연의 시간을 품다

PKM갤러리서 ‘시간의 흐름과 지속’ 주제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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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16-617합본호 김금영⁄ 2018.11.28 16:54:40

대런 아몬드 작가.(사진=PKM갤러리)

(CNB저널 = 김금영 기자) 1998년부터 약 20년 동안 보름달의 주기를 쫓아 온 작가가 있다. 어두운 밤 만월(滿月)의 반사광 아래 드러나는 자연의 모습을 15분 동안의 장노출로 포착한 사진 연작 ‘풀문(Fullmoon)’ 시리즈로 대표되는 영국 출신 현대미술가 대런 아몬드. 그가 PKM갤러리를 찾았다.

왜 그는 보름달을 쫓아 왔을까? 작가는 대자연의 힘에 주목했다. 그는 19세기 풍경화에 등장하는 장소 또는 문화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곳,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오지를 탐험하며 연작을 진행해 왔다.

 

대런 아몬드 작가의 전시가 열리는 전시장 전경.(사진=김금영 기자)

작가는 “처음 ‘풀문’ 시리즈를 작업할 때는 일부러 낭만주의 회화에 등장한 장소들만 촬영했다. 항상 도시 너머 사람들 발길 닿지 않는 광활한 자연에 관심이 많았다.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자연이 있었기에 18~19세기 낭만주의 장르가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작가가 이번 전시에 출품한 ‘풀문’ 시리즈 중 하나인 ‘어보브 더 씨 오브 포그(Above the Sea of Fog)’는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1774~1840)의 유명 회화와 동명이다. 작가는 “카스파르의 회화에서 직접적으로 모티브를 가져온 작품”이라며 “태평양에서 사진을 찍긴 했지만 영감을 받은 건 카스파르의 회화였다. 이처럼 회화에 직접 나오는 장소 또는 그 회화로부터 받은 영감을 표현할 수 있는 장소를 선택해 촬영해 왔다”고 말했다.

 

대런 아몬드, ‘풀문 어보브 더 씨 오브 포그(Fullmoon above the Sea of Fog)’. C-프린트, 121.2 x 121.2cm. 2011. 에디션 2 of 5.(사진=PKM갤러리)

대자연을 촬영하며 시간을 보낸 작가는 ‘시간’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다. 과거엔 플래시가 터지기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요즘은 순간 ‘찰칵’ 하면 사진이 찍히는 시대다. 하지만 작가는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고 아날로그 카메라를 고집한다. 또 사진을 찍을 때 상당한 시간을 들인다. ‘풀문’ 시리즈를 찍는 데도 평균 15분에서 길게는 50분까지 장기 노출 방식으로 작업했다. 이 과정에서 여러 해프닝도 생겼다고.

작가는 “바람을 정면으로 맞고, 땅을 파서 그 안에 들어가 대기하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간은 고통보다는 새로움이 가득했다. 장기 노출 시간 동안 바다에 파도가 치기도 하고, 바람이 불기도 하고, 구름이 움직이기도 하는 등 여러 풍경을 찬찬히 만들어냈다”며 “장기 노출은 오랜 시간 기다리며 자연이 보다 자신의 모습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사진은 순간을 포착하는 기능도 있지만, 장기 노출 작업에도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대런 아몬드, ‘풀문@발틱 허라이즌(Fullmoon@Baltic Horizon)’. C-프린트, 121.2 x 121.2cm. 2015. 에디션 1 of 5.(사진=PKM갤러리)

시간에 관한 관심은 다른 작업에서도 드러난다. 이번 전시에서 ‘풀문’ 연작과 더불어 작가의 신작들을 볼 수 있다. 거울 회화 시리즈 ‘리플렉션 위딘(Reflection Within)’과 이 시리즈의 구상 과정을 담은 드로잉들은 기차역의 디지털 플립 시계를 모티브로 한 작업이다.

하지만 작가는 시계 판의 숫자가 정확한 시간을 가리키는 것과 달리, 이 숫자들을 반전시키거나 따로 분리시켜 기하학적인 형태로 탈바꿈시켰다. 마치 퍼즐 맞추기가 삐뚤빼뚤 섞여 있는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숫자의 모양에 익숙한 사람들은 변형된 이 모양들을 보고 자연스레 숫자를 연상하게 된다.

비가시적 그리고 가시적인 시간

 

대런 아몬드 작가의 드로잉 작업이 설치된 모습.(사진=김금영 기자)

이 작업의 시작은 4년 전 크로스레일 아트 프로그램부터였다. 작가들이 배정받은 역을 예술적으로 꾸미는 프로그램이었다. 대런 아몬드가 기차역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시간이었다고 한다. 어떤 장소에 가서, 어떤 시간에 기차를 타는지 알아야 목적지로 이동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기차역에 설치된 시계로 향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기차역에서 시간을 표시해주는 플립 시계도 작가에겐 인상적이었다. 위아래로 나눠진 판이 연이어 돌아가며 숫자가 바뀌는 형태로 작동되는 플립 시계. 작가에겐 이 광경이 마치 시간이 접히고 펴지는 것처럼 보였다.

 

대런 아몬드, ‘드로잉(Drawing) I’. 실크 스크린 인쇄에 피그먼트 잉크, 연필, 95.3 x 75 cm. 2018.(사진=PKM갤러리)

그는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매우 특별하다. 예를 들어 지구에는 궤도에 따라 시간을 나타내는 수많은 기준이 존재한다. 그리고 비가시적인 시간은 숫자로 대변되며 가시적인 측면을 드러내기도 한다”며 “아라비아 숫자가 전 세계에 통용되며 시간을 알려주는 수단으로 쓰인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 숫자를 통해 시간의 시공간성의 영역에 관람객을 데려가는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여기저기 분절된 숫자들이 가득한 거울에는 관람객의 부분 부분이 실시간으로 비춰진다. 격자 형식의 거울 패널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시간과 그 메커니즘을 다시 생각하고, 주관적으로 시간을 재구성하도록 이끈다.

 

대런 아몬드, ‘썸타임즈(Sometimes)’. 브론즈, 26 x 113 x 1.5cm. 2017. 에디션 3 of 3.(사진=PKM갤러리)

PKM갤러리 측은 “시간의 흐름과 그 지속은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다. 시간을 고정 불변한 것이라 생각하기보다는 초월, 왜곡 가능한 것으로 여기는 작가의 태도는 동양 철학의 사유 방식과도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카메라를 들고 대자연을 찍던 작가는 한 인간으로서의 시간뿐 아니라 대지의 시간, 자연의 시간의 너비를 품으며 작업 세계를 넓혀가고 있다. 전시는 PKM갤러리에서 12월 30일까지.

한편 대런 아몬드는 1997년 YMAs의 그룹전 ‘센세이션(Sensation)’에 최연소 작가로 참가하며 국제 미술계에 등단했다. 이후 조모(祖母)의 기억을 공감각적 시선으로 조명한 비디오 설치작업 ‘이프 아이 해드 유(If I Had You)’로 2005년 터너상 최종 후보로 선정되면서 스타 작가 반열에 올랐다.

그는 베를린 비엔날레(2001), 베니스 비엔날레(2003), 부산 비엔날레(2004), 테이트 트리엔날레(2009) 등 유수의 미술행사에 참여했으며, 무담 룩셈부르크(2017), 도쿄 스카이더배스하우스(2016), 런던 및 홍콩 화이트 큐브, 뒤셀도르프 K21(2005), 암스테르담 드 아펠(2001) 등 주요 미술기관에서 70여 회의 개인전을 가진 바 있다. 현재 영국 수도원 대심도철도 크로스레일의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야요이 쿠사마, 더글라스 고든 등과 함께 참여 중에 있다.

 

대런 아몬드, ‘리플렉트 위딘(Reflect Within) Ⅲ’. 거울에 아크릴릭, 83 x 258 x 3cm(패널: 5 x 5). 2018.(사진=PKM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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