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두 손가락으로 화면을 확대하는 ‘핀치투줌’. 이 단순한 행위가 IT 업계를 뒤흔들었다. 애플이 2011년 삼성전자를 상대로 핀치투줌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하며 특허 전쟁이 시작됐고, 이것은 프랑스 작가 줄리앙 프레비유에게 “몸짓의 소유권은 누가 갖고 있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줄리앙 프레비유의 국내 첫 개인전 ‘핀치-투-줌’이 아트선재센터에서 내년 1월 20일까지 열린다. 인간의 신체 동작에 대한 연구를 기반으로 현대 사회의 기술적 모순을 드러내는 작업을 선보여 온 작가가 관심을 보인 동작은 전시명에서도 알 수 있듯 핀치투줌을 포함한다.
작가는 “핀치투줌은 행위적 측면에서 접근하면 결국은 인간의 아날로그적 몸짓이다. 그런데 이 몸짓이 과학기술이 현저히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는 특허 전쟁의 대상에 오르며 소유권 분쟁의 주인공이 됐다. 디지털 시대에서 아날로그적인 몸짓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고, 몸짓의 소유권이 정말로 인간에게 주어져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는 이런 작가의 관심을 위트 있게 표현한다. 화면에는 사람들이 핀치투줌을 할 때 쓰는 손가락 동작이 보이는데, 이 단순한 동작을 구현하기 위해 매우 어렵고 체계적인 절차가 필요한 것처럼 여러 장치들이 동원된 모습이다.
이 작품은 작가가 직접 수집한 특허 등록된 제스처를 바탕으로 만든 연작이다. 기계가 사용자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인식해 정보를 주고받는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전자 제품 회사의 주요 기술로서 인간의 신체 동작들을 특허로 기록하고 있다.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시퀀스 #1)’(2007-2011)는 특허 등록된 제스처를 애니메이션 필름으로 만들어 기술이 인간의 행동을 규정하고 사유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영상 작업이다.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시퀀스 #2)’(2014)는 새로운 기기 작동에 사용되는 특허 받은 제스처를 무용가 여섯 명이 추상적 안무로 표현한 퍼포먼스 영상을 담았다.
‘삶의 패턴’(2015)은 19세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신체의 움직임을 기록해 동작을 분석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 동작들을 산업과 기술에 활용하려고 했던 계보를 추적한 뒤 그 결과를 파리 오페라단 무용수들의 안무로 전환한 영상 작업이다. 이 작업은 이번 전시를 위해 서울 소재 미술대학 학생 여섯 명과 함께 시선 추적 장치의 기록 워크숍을 진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벽면에 제작한 드로잉 작업 ‘시선의 문집’(2015-2018) 그리고 작가 스스로가 자신이 일주일 동안 움직이는 과정에서 측정한 속도 변화를 데이터화해 이를 수공 석조각으로 구현한 ‘속도 - 자화상’(2015)과 연결된다.
작가는 ‘시선의 문집’ 작업 과정에 대해 “미술대학 학생들과 일하는 것을 즐긴다. 미술대학에서 가장 처음 해야 하고 배우는 것은 무언가를 보고, 자신의 시선을 인식하는 것이다. 평소에도 우리는 어떤 이미지를 바라볼 때 눈동자를 움직여 그 이미지를 인식한다. 크게 행해지는 손과 발의 움직임이 아닌 이 눈동자의 움직임도 내게는 흥미로운 요소였다”고 밝혔다.
이밖에 범죄가 일어나는 지리적 범위를 파악하기 위해 주로 활용하는 보로노이 다이어그램을 컴퓨터에 의존하는 대신 경찰관들이 직접 손으로 그려 만든 ‘드로잉 워크숍 – 파리 14구 경찰서’(2011, 2015)도 볼 수 있다.
“몸짓의 소유권은 누가 갖고 있는가?”
작가는 이 모든 작업들에 대해 “내 작업은 소유와 관련된 제스처를 모으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연작 또한 거창한 제스처가 아닌 간단하게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부터 시작됐다. 보기엔 단순해 보이는 이 제스처가 사회적인 맥락에서 어떻게 해석되는지, 그리고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가 주요 관심사”라고 주안점을 밝혔다.
움직임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초기 작업인 ‘구르기’(1998)에서부터 발견된다. 작가가 미술대학 재학 중 제작한 퍼포먼스 기록 영상이다. 내용은 단순하다. 집에서 출발해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담았다. 그런데 그 과정이 독특하다. 서서 걸어가는 게 아니라 바닥을 떼굴떼굴 굴러간다. 이따금 같이 굴러주는 친구들의 모습도 보여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김해주 아트선재센터 부관장은 “정치, 경제적 현상에 의문을 제기하는 작가의 작업은 직접 ‘몸으로 부딪히는’ 방식으로 구현되는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작가는 “몸짓에 관심이 많았다. 유치한 행동들, 몸 개그 등에도 눈길이 갔고 미술대학에 가서는 바디 아티스트의 영향도 받았다. 내게 몸짓은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까지 품은 상징적인 행위로도 느껴졌다”며 “그래서 처음엔 몸짓을 기록하고, 이를 모아 애니메이션으로도 보여주고, 경제 시스템상 벌어지는 일을 반영해서 보여주기도 하는 등 몸짓을 보여주는 범위를 넓혀 갔다”고 말했다.
김해주 부관장은 “프레비유의 작업은 가장 사적인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개인의 몸과 그 신체적 동작이 현대 사회의 기술 개발과 사유재산, 노동 문제와 연결돼 있는 모순적인 지점을 드러낸다”며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을 수공예적으로 구현하거나, 기술의 대척점에 있는 인간 신체의 아날로그적인 움직임을 작업의 재료로 삼는 방식을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기술 기반의 활동들에 대해 재고해볼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한편 아트선재센터 1층 ‘더 북스’에서는 작가가 약 7년 동안 진행해 왔던 프로젝트 ‘입사거부서’ 책도 열람할 수 있다. 작가는 1000여 곳의 채용 공고에 입사 지원서가 아닌, 입사 거부서를 보내고 회사로부터 받은 피드백을 함께 정리하는 입사 거부서 프로젝트로 채용 공고의 언어 속에 드러난 현실과의 부조리를 드러냈다. 작가는 “2000년 미술대학 졸업반 학생일 때 시작했던 프로젝트다. 당시 퍼포먼스 기반의 작업을 했는데 졸업을 앞뒀지만 취업은 못할 것 같았다. 노동 관련 책이 쏟아지던 상황에 취직이 어려우니 내가 먼저 거부해보자는 생각으로 입사 거부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회사들의 반응도 다양했다. 자동 응답 메일이 오거나, 작가의 채용 공고 내용 지적에 해명하기도 했고, 작가가 내용을 잘못 이해했다며 가르침을 주는 곳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인력개발부서에서 비판적 시선을 나눠달라고 강연 요청이 들어오기도 했다. 이처럼 이번 전시는 전체적으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고 시선에 전환점을 두려는 작가의 의도를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