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붓대 들고 씩 웃으며 가야지.” 한묵(1914~2016) 작가가 생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자, 그의 긴 작업 인생을 표현하는 상징적인 한 마디다.
서울에서 태어나 만주와 일본에서 서양화를 배웠으며, 미술대 교수직을 그만두고, 1961년 이후 프랑스 파리에서 실험정신으로 작업 활동해 매진했던 작가. 그의 작업을 돌아보는 첫 유고전 ‘한묵: 또 하나의 시(詩) 질서를 위하여’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1층에서 내년 3월 24일까지 열린다.
전시를 기획한 신성란 큐레이터는 “서울시립미술관은 김구림, 윤석남, 안상수 작가까지 대가들의 작업에 주목하는 전시를 선보여 왔다. 이번엔 한묵 작가가 그 맥락을 이어간다”며 “한국 근현대사를 가로질러 추상 작업을 일관되게 해 온 한묵 작가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주로 활동해 그의 작업 세계가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점이 있었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대표작과 더불어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던 작가의 미발표작까지 총 13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전시는 시대별로 5가지 섹션으로 분류됐다. 신 큐레이터는 “10년마다 한국에서 전시를 연 작가의 작업에서 변모 과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시대 및 작품 양식적인 부분을 고려해 5가지 섹션으로 분류했다”며 “이를 위해 작가가 직접 작업 변모 과정을 남긴 노트의 내용과 남아 있는 작품들을 같이 대조해보면서 전시를 꾸렸다”고 설명했다.
1부 ‘서울시대: 구상에서 추상으로’는 1950년대 작가의 작업을 살펴본다. 작가는 만주, 일본 유학시절, 금강산 시절에 많은 작품들을 제작했으나, 한국전쟁으로 작업이 모두 유실됐다고 한다. 전시는 그래서 작품이 남아 있는 1950년대부터 작가의 작업 세계를 살펴본다. 신 큐레이터는 “1950년대는 작가의 작업세계가 구상에서 추상으로 변화하는 시기다. 전반기엔 전쟁의 참상, 가난에 대한 경험들이 작품에 주요한 소재로 등장하며 구상과 추상이 함께 나타났고, 후반부터는 대상을 제거하며 추상의 시기로 변모해 갔다”고 밝혔다.
작가가 홍익대 미대 교수가 된 후 사실주의 화풍이 지배하는 국전에 반대해 1957년 모던아트협회를 유영국, 박고석, 이규상, 황염수와 결성한 시기도 이때다. 대상을 해체하고, 재구성, 종합하는 입체파 경향이 강하게 두드러지기 시작하는 작품들을 이 섹션에서 살필 수 있다. 주제적으로는 사회적 부조리와 사회상에 대한 개인의 감성들이 두드러진다.
2부부터는 ‘파리시대’가 시작된다. ‘파리시대Ⅰ: 색채에서 기하로’는 작가가 프랑스로 건너간 1961년부터 1969년까지 시기를 다룬다. 작가는 이 시기 대상의 형태를 버린 순수추상으로 화풍을 바꾼다. 초기엔 색채구성과 형태의 분할에 몰두했고 1960년대 후반엔 수직, 대각 등 엄격히 절제된 기하구성 작업으로 변모하는 모습을 보인다.
고국을 가슴에 품고 산 이방인 작가
3부 ‘파리시대Ⅱ: 시간을 담은 동적 공간’은 작가의 작업 세계 변화에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났던 1970년대를 다룬다. 작가는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사건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전시 현장을 찾은 작가의 부인 이충석 씨는 “생전 선생님이 인간이 달에 한걸음 딛는 모습을 보고 앞으로 새로운 세계가 오고 인류에게 새로운 질서가 탄생할 것이라고 70년대에 이미 예감했다”고 회상했다.
작가는 관련해 1976년 “미지에 대한 끝없는 꿈! 저기 보이는 것, 그 실체가 무엇인지를 알아야겠다는 인간적인 어찌할 수 없는 욕망, 길 없는 곳에 길을 가는 용기와 정열, 치밀한 계산(과학), 막대한 투자 등등. 이런 것들에 의해 지구와 달 사이에 명확한 선 하나는 그어진 것이 아니겠는가? 다시 말해서 우리의 생활권 내에 또 하나의 질서가 플러스 된 것이다”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시간과 공간을 결합한 4차원 공간을 실험하는 게 특징이다. 작가는 평면에 움직이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1972년부터 스탠리 윌리엄 헤이터가 운영하는 판화공방 아틀리에17에서 동판화 작업에 매진했고, 화면에 구심과 원심력을 도입하기 위해 컴퍼스와 자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판화작업으로 체득한 방식을 작가는 캔버스에 도입해 강렬한 색채와 기하학 선들이 이뤄지는 회화 세계를 구축했다.
4부 ‘파리시대Ⅲ: ’미래적 공간‘의 완성을 위해’와 5부 ‘파리시대Ⅳ: 생명의 근원을 추구하는 구도자’는 1980년대 이후의 작업 세계에 주목한다. 작가는 현실의 삶을 우주의 열려 있는, 유기적인 공간의 개념으로 확장하고 이를 ‘미래적 공간’이라 명명했다. 미래적 공간에 대한 탐구는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지속됐다. 그리고 우주에서 인간 그리고 탄생의 비밀로 관심을 심화시키며 동양적 색채와 동양사상에 근간을 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5부는 1980년대 이후의 작업 중 특히 먹과 종이 콜라주에 주목한다. 작가는 먹을 갈아 글씨는 쓰고, 노자 등의 동양사상을 사유하며 우주 공간 외 인간의 문제에도 관심을 보였다. 신 큐레이터는 “이 섹션에 전시되는 ‘외치는 사람’ ‘태양을 잉태한 새’는 작가의 자화상과도 같은 작업으로, 기존에 소개된 적 없었던 작품”이라고 밝혔다.
전시의 마지막 부분은 ‘드로잉 작업: 1970년대~1990년대까지’와 ‘에필로그: “붓대 들고 씩 웃으며 가야지”’가 장식한다. 연필, 수성펜, 과슈 등으로 제작된 드로잉 37점 그리고 작가의 인생을 담은 사진 및 생전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상, 작가의 서예와 전시관련 자료 등을 볼 수 있다.
신 큐레이터는 “작가의 서예 작품 중 ‘요망금강(遙望金剛)’은 멀리서 금강산을 바라본다는 뜻이다. 전시는 작가의 파리에서의 활발한 활동을 다루지만, 그 중심에는 고국을 가슴에 품고 산 작가의 이야기가 있다. 평소 ‘금강산의 색채를 그림에 담고 싶다’고 했다는 작가는 작업실에 이 글씨를 붙이고 고국을 그리워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충선 씨 또한 “선생님이 1944년 전후 금강산에 배낭을 메고 가서 사계절의 자연을 봤다. 한국적인 것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해 왔던 것은 아니지만, 이 경험이 선생님의 화면에 자연스럽게 다채로운 색이 흘러나오도록 영향을 끼쳤다”고 덧붙였다.
전시를 둘러보던 이충석 씨는 “선생님은 작업을 할 때 스스로에게 굉장히 엄격했다. 작가는 작품으로 이야기해야 한다며, 작업을 할 때 누구 하나 손대지 못하게 하고 스스로 직접 다 했다. 그런 선생님의 작품을 볼 때면 늘 숭고미가 느껴진다. 작품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그는 이어 “선생님은 정말 학생처럼 살았다. 작품을 파는 것에도 냉정했다. 살롱전에도 작품을 내지 않고 그림에만 몰두했다. 똑같은 작품이 정말 하나도 없다”며 “선생님은 한평생 이방인이었다. 한국인으로서 외국에서 작업하고 버티려니 늘 이방인이었다. 화실이 없어서 다락방에서 판화 작업을 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가 보다 많기를 바랐는데 이렇게 전시가 열려 감회가 깊다”고 말했다.
한편 전시 연계 학술심포지엄이 내년 3월 9일 서울시립미술관 세마홀에서 열린다. ▲이지호 대전 이응로미술관 관장이 ‘화가 한묵을 기억하며’ ▲김학량 동덕여대 교수가 ‘식민지세대 화가에게 추상이란 무엇인가: 이응노·한묵·김한기·유영국의 경우’ ▲강은아 홍익대 교수가 ‘1950년대 한묵의 모더니즘 인식과 조형실험’ ▲김이순 홍익대 교수가 ‘1950년대 한묵의 전위인식과 모던아트협회’ ▲신정훈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한묵의 우주: 생명, 원자, 애니메이션’ ▲전유신 고려대 교수가 ‘냉전시대 한불관계 속의 재불 작가들’을 주제로 발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