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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규상의 법과 유학] 검사가 ‘칼잡이’로 만족하면, 정권의 도구에 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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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31호 문규상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 2019.03.18 09:38:53

(CNB저널 = 문규상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 조선시대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사헌부(司憲府)는 백관(百官)을 규찰하고 풍속을 바로잡으며 억울한 일을 풀어주고 협잡을 단속한다’라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사헌부의 최고 수장인 대사헌(大司憲)의 직급은 종2품으로 1품 재상만 5명이던 의정부(議政府)에 비하면 직급이 낮았고 사헌부의 관리인 대관(臺官) 중에서 실무를 맡은 이들의 직급은 주로 4-6품 정도였지만 사헌부의 관헌인 대관이 정색하고 조정에 서면 모든 관료가 떨고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사헌부-사간원 ‘대간’의 권능과 명예

사헌부 관리를 대관(臺官), 사간원의 관리를 간관(諫官)이라 불렀고 이 둘을 합하여 대간(臺諫)이라 했는데 이들은 임금과 대신들을 비판하고 견제하여 정치적 사회적 공공성을 추구하는 것을 임무로 하였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학문적 실력,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 공동체가 지향하는 이상에 대한 열정 및 개인적 처신에 흠이 없어야 했고, 또한 그에 걸맞는 막강한 권한도 부여되었습니다. 대간은 대체로 조선의 정예 엘리트 중에서 임명되었고, 대신의 자리에 오른 사람 중에 젊은 시절 대간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로 출세 코스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그 자부심이 대단하였을 뿐만 아니라 주변에서도 매우 명예롭게 생각하였습니다.

이처럼 사헌부는 조선 500년 동안 문관들이 차지하여 시정(時政)의 득실(得失)을 논하고, 군주와 모든 관리의 잘못을 비판 탄핵하며, 5품 이하 관리의 인사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등으로 조선을 지탱해 온 기둥 중의 하나로 인식되었으나, 갑오개혁 때 폐지되었고, 오늘날에는 검찰이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헌부 대관(臺官)의 후신으로 여겨지는 검사(檢事)가 어느 때부턴가 ‘칼잡이’로 불리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일본의 무사(武士)인 ‘사무라이’에도 비견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검사의 검(檢)’과 ‘칼의 검(劍)’이 비슷한 데서 유래되었다거나, 일본의 武士(사무라이)처럼 날카로운 칼로 범죄자를 처단하는 검찰의 업무 성격에서 유래되었다는 견해도 있다고 하면서 후배들로부터 존경받았던 전직 검찰총장께서 취임사에서 ‘무사는 얼어 죽을지언정 곁불을 쬐지 않는다’는 말을 인용한 이후 더욱 익숙한 표현이 되었는데 정작 검사들은 점잖치 않은 이 호칭을 싫어하지 않는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검사가 ‘칼잡이’, 심지어 ‘사무라이’라는 비유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조선 500년 동안의 통치 이념은 유학(儒學)이었고, 유학에서 추구하는 이념은 ‘인 사상(仁 思想)’입니다. 공자가 논어 전 편(全 篇)을 통해 강조하고 있는 ‘仁 思想’을 요약하면 ‘충서(忠恕)’로 나타낼 수 있고, ‘忠恕’는 자신의 참된 마음을 다하는 ‘忠’과 참된 마음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恕’입니다. ‘논어 자장(論語 子張) 편’에서 자하(子夏)가 仁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으로 ‘박학, 독지, 절문, 근사(博學, 篤志, 切問, 近思)’의 4가지를 들고 있고(子夏曰 博學而篤志 切問而近思 仁在其中矣 / 널리 배우고, 뜻을 독실하게 하고, 절실하게 묻고, 능히 할 수 있는 가까운 것부터 생각한다면 인은 저절로 그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이 구절은 주자의 저서인 근사록(近思錄)의 책명이 된 유명한 구절로서 학문을 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 방향과 방법을 일깨워 주고 있는 진리의 가르침으로서 회자되고 있습니다.

 

검사를 칼잡이로 표현한 TV 화면.

선비가 스스로를 갈고 닦은 방법들

자하의 위 4가지 방법 이외에 유학자들이 나침반으로 삼았던 학문의 방법으로는 ‘중용(中庸)’에서 전하는 5가지 방법이 더 있습니다. ‘박학, 심문, 신사, 명변, 독행(博學, 審問, 愼思, 明辯, 篤行)’이 그것으로, “모르는 것을 능숙하게 될 때까지 그만 두지 않고 널리 배우고(博學), 그 내부의 원리를 알게 될 때까지 그만 두지 않고 자세히 묻고(審問), 내적 원리 및 전체적인 체계와 그 완결성의 윤곽이 머릿속에 그려질 정도로 깨달아 터득할 때까지 그만두지 않고 신중하게 생각하고(愼思), 본질적으로 인식했다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그만두지 않고 명확히 분별하고(明辯), 이렇게 얻게 된 앎을 정성과 성실을 다하여 그만두지 않고 실천한다(篤行)”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논어의 4가지 방법과 중용(中庸)의 5가지 방법을 통해 배우고 익혀서 학문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지녀야 할 자세와 태도이자 중요한 덕목으로 ‘인내와 끈기’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즉 다른 사람이 한번 그렇게 할 때 자신은 백 번을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이 열 번 그렇게 할 때 자신은 천 번을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학문의 자세가 몸에 배었던 사헌부의 대관은 경국대전에 명시되어 있는 그 업무를 처리함에 있어 단순히 ‘칼잡이’로서의 역할만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평소 폭넓게 배우고 익힌 박학다식한 학문을 바탕으로 뜻을 두텁고 진실되게 하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간절한 마음으로 정성껏 물어보고, 깊게 잘 생각하여 그 본질까지 꿰뚫어 본 후 결론을 내리고 실천에 옮겼을 것입니다.

 

공자의 제자 자하는 “널리 배우고 절실하게 물어라”고 했는데, 한국의 ‘칼잡이’ 검사들은 이러고 있나?

마찬가지로 검사도 단순 ‘칼잡이’로서가 아니라 칼을 휘두르기 전에 평소 사회 현상에 대한 깊은 관심을 바탕으로 폭넓은 지식을 습득하고, 억울한 희생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범죄정보가 정확한지 여부를 꼼꼼히 검증하여 내사를 착실하게 하고, 부패에 대해 결연한 의지를 불태우고, 두 번 세 번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 거듭 확인하고, 수사 결과가 가져올 사회개혁의 성과와 영향 등이 정의에 부합한지 여부 등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정확하고 명쾌한 판단을 내리고 정성을 다하여 성실하게 수사에 임하여 범죄를 척결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태까지 검사가 이러한 깊은 고뇌 없이 휘두른 칼은, 때로는 몽둥이가 되기도, 사람을 겁박하기도, 심지어는 사람을 죽이는 살인도가 되기도 하는 등 정권의 쓰레기 청소부로서 역할과 온갖 용도의 도구가 되었다는 험한 비난을 받았습니다.

주군을 위해 할복하는 칼잡이로 남을 건가

물론 사무라이의 검법(劍法)에도 ‘혼(魂)’이 실려 있겠지만 이는 무사도 정신(武士道 精神), 주군에 대한 충성(忠誠)과 의리(義理)를 앞세워 자신의 배를 가르는 ‘할복(割腹)’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여지고, ‘武士의 곁불’ 이야기는 취임 당시 ‘검사의 전별금(餞別金)’이 문제되었던 시기라서 검사의 명예(名譽)와 도덕성(道德性)을 강조하기 위해서 언급한 말씀임에 비추어 검사를 ‘칼잡이’, 더 나아가 ‘사무라이’에 비유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비유라고 보입니다. 검사는 단순히 업무를 기계적으로 처리하는 ‘직장인(職場人)’이 아닌 ‘선비’로서의 품성과 자세를 갖추고, 업무에 대한 깊은 고뇌를 거쳐야만 ‘정권의 도구’, ‘정권의 시녀’가 되지 않고 검찰 본연의 독립성을 지켜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께서 국정원, 검찰, 경찰 등 권력기관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일제 강점기에 검사와 경찰은 강압적 식민통치를 뒷받침하는 기관이었다”고 지적하였고, 특히 국민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었던 공포의 대상으로 ‘칼 찬 순사’를 언급하였는데, 만약 “오늘날에는 ‘칼잡이 검사’가 그 자리를 대신 메워왔다”고 질책하였다면 무엇이라고 변명하였을지 유구무언(有口無言)의 입장일 따름입니다.

검사는 칼잡이가 아닌 선비임을 명심하고 한껏 자존감을 높여야만 개혁의 대상이 아닌 진정한 개혁의 주체가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칼잡이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검찰의 미래는 불문가지(不問可知)일 것입니다.



- 법무법인 대륙아주 문규상 변호사는 1978년 서울법대 졸업, 1987년 검사로 임용되어 ‘특수통’으로서, 변인호 주가 조작 및 대형 사기 사건, 고위 공직자 상대 절도범 김강용 사건, 부산 다대/만덕 사건, 강호순 연쇄 살인 사건 등을 맡아 성과를 냈고, 2003년의 대선 자금 수사에서도 역할을 했다. 2009-2014년 대우조선해양의 기업윤리경영실장(부사장)을 역임하며 민간 부패에 대한 경험도 쌓았다. 2013년 성균관 대학교 유학대학원, 2014년 이후 금곡서당에서 수학하며 유학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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