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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정 평론가의 더 갤러리 (23) 구본창 개인전] 말수 줄어들게 만드는 아련한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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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31호 이문정(미술평론가, 리포에틱 대표)⁄ 2019.03.18 09:38:53

(CNB저널 = 이문정(미술평론가, 리포에틱 대표)) 구본창의 사진을 마주하면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감정의 조각들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잔잔한 뭉클함, 옅은 슬픔과 같은 무언가가 피어난다.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이어졌던 개인전 ‘Koo Bohnchang’(국제갤러리 부산점, 2018년 12월 14일~2019년 2월 17일)에 전시된 작품들 역시 언어로 온전히 표현할 수 없는 많은 느낌과 감정들을 전하고 있었다. 은은한 향기처럼 피어나는 감정들은 상상력을 발동시키고, 이내 종착지에 다다를 수 없는 생각들이 이어진다. 그의 작품 앞에 서면 말수가 적어지고 생각이 많아진다. 현존하지만 언젠가는 사라질 나 자신, 나를 둘러싼 세상과 세상 속 존재들이 떠오른다.


구본창의 사진은 그 앞에 선 사람이 누구든 사색가로 만든다. 자신이 지나온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는 그의 사진 속 사물들은 세계 속 존재를 성찰하게 하는 매개체이자 생성과 소멸, 순간과 영원, 변화와 지속을 담아내는 상징물이다. 그것을 만든 장인의 손길뿐 아니라 시간의 흔적이 담긴 백자와 청화백자, 그리고 황금 유물은 시간을 초월한 가치를 경험시키는 동시에 영원을 갈구하지만 영원할 수 없는 유한한 인간 존재의 허망한 꿈을 상기시킨다. 아련한 아쉬움이다. 그러나 그런 아쉬움이 있어 존재의 삶이, 세계와 나누는 교감이 소중해진다.

 

국제갤러리 부산점 구본창 개인전 ‘Koo Bohnchang’ 설치 전경.(이미지 제공 = 국제갤러리)

구본창 작가와의 대화
“내게 뭉클한 사진 아니면 작업 의미 없다”

 

구본창 작가 ⓒ오석훈(이미지 제공 = 국제갤러리)

Q. 사람뿐 아니라 사물을 촬영한 선생님의 사진 모두가 초상 사진과 같다고 생각한다. 선생님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작가와 피사체 사이에 완벽한 교감이 일어났음을 느낄 수 있다. 과거 화원들은 초상화를 그릴 때 모델의 내면까지 담아내기 위해 모델의 표정 변화, 목소리, 행동들을 오랜 기간 관찰한 뒤 눈을 감아도 대상의 모습이 그려질 때 붓을 잡았다고 한다. 선생님의 작업에도 그런 과정이 있을 것 같다. 뮤지엄의 소장품을 촬영할 때에는 충분한 시간이 허락되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해결하시는지 궁금하다.

A. 사진을 찍기 전에 오랫동안 마주 보고 관찰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촬영을 허가받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촬영 일정이 잡히면 제공받은 자료 혹은 박물관에서 발간한 카탈로그나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이미지를 통해 친밀감을 높이고 매력을 느끼려 한다. 눈에 계속 스쳐야 하기 때문에 머리맡에든, 식탁에든 붙여놓고 계속 보며 생각한다. 또한 촬영이 예정된 날보다 하루에서 이틀 정도 먼저 박물관에 도착해 쇼케이스에 들어있는 유물을 들여다보며 그것의 매력을 찾고, 어떻게 찍어야 좋을지 등을 고민한다. 찍고 난 뒤의 과정도 중요하다. 이미지가 네거티브 필름에 담겼다고 작품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액자에 들어갈 때까지 정말 많은 작업 과정이 필요하다. 어떤 종이에 인화하느냐, 얼마나 밝고 어둡게 하느냐와 같은 조건들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온다. 네거티브 필름에 담긴 이미지를 구본창만의 스타일로 완성해가는 과정에서 교감이 심화된다.
 

구본창, ‘OM 17’(2014), Archival pigment print, 90 x 72cm, 청화백자 소장처 = 교토 이조 박물관,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이미지 제공 = 국제갤러리)

Q. 선생님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뭉클하고 울컥할 때가 있다. 찍힌 대상뿐 아니라 관객과도 감정적 교류가 일어나는 것 같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 듣고 싶다.

A. 앞서 말했던,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동안 그러한 감정적인 부분을 끌어내는 것 같다. 작가인 나에게도 약간의 떨림과 뭉클함 같은 것이 전달되어야 마음 편하게 액자에 넣을 수 있다. 떨림이 있다는 것은 무언가 감동을 했다는 것이다. 그 감동을 끌어내기 위해 인화 과정에서 끝없이 노력한다. 만약 그것이 사라진다면 내가 작업을 할 이유가 없어지는 거다.

Q.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작가로 이야기되고 있다. 전통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순수한 민족성(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시대이기도 하다. 혼종성은 동시대 미술의 주요한 이슈 중 하나이다. 한국미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을 듣고 싶다. 한국미를 언어로 표현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낄 때가 있는데 말로 다 담아낼 수 없는 것을 예술이 담아낸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A. 예술품이나 유물, 문화 등으로 한국미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한국적인 미는 다 다르기 때문에 확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어렵다. 나의 생각을 말하자면, 과거 선비 문화와 서민 문화가 함께 했듯 한두 가지만이 한국미를 대표하는 것처럼 여겨지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 선조들에게는 고상하고 여유를 즐길 줄 아는 문화가 있었다. 건축, 정원, 목가구를 보면 군더더기 없는 단순함이 멋스럽다. 품격과 고즈넉한 미가 있다. 백자도 그렇다. 그저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재여서 백자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백자가 가진 그윽한 느낌이 내 삶의 느낌과 맞았기 때문에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구본창, ‘OM 14’(2014), Archival pigment print, 90 x 72cm, 청화백자 소장처 = 교토 이조 박물관,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이미지 제공 = 국제갤러리)

Q. 지구상에는 수많은 유물과 오브제가 존재한다. 그중에 선생님이 선택하시는 것은 극히 일부다. 어떤 대상을 찍을지 선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나름의 선택 기준이 있다면 무엇인지 듣고 싶다.

A. 유물 자체가 갖고 있는 매력이 풍부하게 느껴져야 한다. 백자의 예를 들면 장인의 노고뿐 아니라 기물의 형태(실루엣), 흙과 유약의 상태, 가마에 들어가 일어나는 작용, 세월의 흐름(흔적) 등에 따라 발산되는 매력이 달라진다. 뽀얀 표면을 가진 백자는 참 아름답다. 청화백자 같은 경우 코발트 안료의 색감, 그림을 그린 화공의 필력에 따른 차이도 큰 영향을 끼친다. 나의 매우 주관적인 기준으로 선택하는 것이지만 실제로 고르고 나면 명품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작품들이다.

Q. 선생님의 작품 중 ‘인테리어(interiors)’(2002~) 시리즈도 인상적이었다. 사라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읽을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여백이 떠올랐다. 여백은 비움으로써 더 많은 것을 담아내는 공간이다. 채움과 비움, 현존과 부재처럼 상반되는 의미의 공존이 가능하며 비가시적인 세계까지도 담아내는 생략과 함축의 공간이다. 그와 같은 의미를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하셨는지 궁금하다.

A. 그렇다. ‘인테리어’에서 ‘Vessel-백자’(2004~)로 작업이 이어졌다. 빈 공간과 빈 상자를 찍고 플리마켓도 가고 하던 중에 예전에 봤던 루시 리(Lucie Rie)의 사진도 생각이 났다. 그리고 우연히 일본 잡지 ‘와라쿠(waraku, 和樂)’에 백자가 실린 것을 보게 되면서 불현듯 백자라는 모티브에 여백뿐 아니라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일본 잡지에서도 백자를 이렇게 다루는데 나는 여태까지 무엇을 했는가’와 같은 반성도 했다. 그렇게 동시다발적으로 내가 관심 있어 하는 많은 것들이 연결되었다. 비어있는 것을 찍는 와중에 연결되고 집중하게 된 것이다.

Q. 많은 오브제들을 수집하시는데 작업실이 늘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또 하나의 뮤지엄 같기도 하다. 선생님만의 정리 비법이 있다면 알려주시길 바란다. 그리고 각각의 수집품이 놓인 장소를 다 기억하고 계시는지도 궁금하다.

A. 그렇게 잘 정리된 것 같지 않다(웃음). 예전에는 다 알았는데 지금은 수집품이 더 많아져서 정확히 다 알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쉽게 찾을 수 있도록 구획을 정해놓았다.
 

구본창, ‘Gold (PE 026-1)’(2016), Archival pigment print, 35.5 x 30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이미지 제공 = 국제갤러리)

Q. ‘황금(Gold)’(2015~) 시리즈에서 황금 유물들을 찍으셨다. 이 작업에서 무엇보다 영원함에 대한 갈구를 떠올렸다. 종교 미술이나 무덤 부장품이 떠오르기도 했다. 인간은 자신의 유한함을 극복하려 노력한다. 한편 2018년 밀라노 시립 아쿠아리움에서 전시되었던 작품들 중 개인적으로 ‘오션(Ocean)’(1999~) 시리즈에 눈길이 갔는데, 이 작업은 끝도 시작도 없는 시간 그 자체에 대한 고찰 같다. 우리가 시간이라 부르는 것은 물리적으로든, 개념적으로든 붙잡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정말 물 같다. 또한 물이 생명을 상징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근원적인 죽음을 의미할 수도 있다. 물은 이중적 의미를 담은 대표적 상징물이다. ‘오션’ 시리즈에서 죽음을 연상하는 것은 무리인지 궁금하다. 그리고 선생님의 작품 상당수에서 죽음이나 소멸과 같은 단어가 떠오른다. 그래서인지 아련함의 감정이 함께 느껴지는 것 같다.

A. 내 모든 작품에는 그런 노스탤직(nostalgic)하고 멜랑콜리(melancholy)한 분위기, 죽음의 그림자가 살짝 깔려 있다. 인간이 금을 욕망했던 것도 영원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태양을 닮고 싶어했고 황금을 소유하려 했지만 결국 그것을 소유했던 사람은 사라지고 유물만 남았다. 유물도 오랜 시간 지나다 보니 변했다. 인간이 시간 혹은 무언가를 붙잡고 소유하려는 욕망은 끝이 없다. 그런 인간이 사라진 묘한 대비에 끌렸다. 금의 화려함이 좋아서 찍은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존재하는 인간의 욕망에 관심이 있었다. 인간의 유한성, 자신은 유한하지만 무한하고 싶어 금을 소유하려 했던 인간의 욕망에 초점을 맞춰 촬영하고 있다. 나의 ‘백자’ 시리즈를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에 실제 도자기를 갖지 못하니 사진으로라도 그것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구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유럽의 종교화나 일본의 병풍 그림 등에서 금박을 통해 공간을 변하게 만드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국제갤러리 부산점 구본창 개인전 ‘Koo Bohnchang’ 설치 전경.(이미지 제공 = 국제갤러리)

Q. 예전부터 여쭤보고 싶었던 것이 있다. 짧은 인터뷰에서 충분히 답해주시기 어렵겠지만 죽음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을 듣고 싶다.

A.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인데 어떻게 결론을 낼 수 있겠는가. 그것을 담담히 맞이하는 게 중요할 것 같다. 엊그제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 발이 반쯤 무덤에 들어간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인간 모두의 운명이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삶의 체크아웃을 언제 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호텔에 머물고 체크아웃을 하는 것은 개인의 의지를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인생은 언제, 어떻게 체크아웃 당할지 모른다. 전혀 알 수 없는 거다. 삶이 내게 주어져서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내가 현재 하고 있는 일들을 어떻게 마무리해 후배들 혹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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