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 케미포비아 시대. 미세먼지를 필두로 한 환경문제의 대두, 각종 화학물질에 대한 우려 등으로 인해 제품의 원료 단계에서부터 ‘프리미엄·좋은 원료’가 중요해졌다. 이 때문에 주목받는 것이 ‘프리미엄 소금’이다. 오래전부터 소금은 살균 및 세정에 사용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청정지역에서 생산된 프리미엄 소금이 화학물질의 대체재로 각광받으면서 관련 제품 출시가 잇따르고 있다. 유통업계의 ‘짭짤한’ 한 판 승부를 살펴본다.
프리미엄 소금의 인기 … 케미포비아 우려·천일염에 대한 배신감 때문?
소금이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그동안 주로 음식 조미에 사용됐던 소금이 ‘천연 살균효과’를 내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식재료를 넘어 치약·세안 및 바디제품 등 다양한 생활용품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세계 각지의 청정한 지역에서 생산됐다고 알려진 프리미엄 소금이 대세다.
이처럼 ‘깨끗한’ 이미지의 프리미엄 소금이 각광받는 배경은 최근 크게 급증한 케미포비아 현상에서 찾을 수 있다. 케미포비아는 말 그대로 ‘화학’과 ‘포비아’를 합친 용어로, 화학물질이 들어간 제품에 대해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현상을 일컫는다.
이는 가습기살균제 피해 등 굵직한 화학물질 피해 사례가 생겨나면서, 최근 몇 년 사이 등장한 신조어다. 건강과 피부 등에 대한 걱정이 많은 소비자들은 화학물질을 극도로 꺼려 직접 생활용품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하지만, 이마저 여의치 않을 경우 천연성분 혹은 좋은 원료를 따지는 소비 형태로 이어지고 있는 것.
한편으로는 위생문제 등으로 불거진 천일염 논란과 수입 다변화로 인해 프리미엄 소금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트렌드에 따라 뷰티·생활 분야의 대표 기업인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애경산업 3사는 지난해부터 프리미엄 소금 제품 출시를 이어왔다. 프리미엄 소금 치약의 경우, 치약 하나의 가격이 1만 원에 호가할 정도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LG생건, ‘히말라야 솔트 열풍’의 주역 … 중국서도 인기몰이
지난해 3월 ‘히말라야 핑크솔트 담은 치약’을 출시한 LG생활건강은 유통가의 프리미엄 소금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LG생건이 내놓은 솔트 제품은 치약에서부터 가글, 바디워시, 샴푸, 크림 등 다양하다.
특히 LG생건이 주목한 소금은 ‘히말라야 핑크솔트’다. 히말라야 핑크솔트는 96.98%의 염화나트륨과 3.02%의 미네랄로 구성된 정제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소금으로 일명 ‘귀족소금’으로 불린다. 인체에 필요한 수십 개의 미네랄이 함유돼 인체의 pH(수소이온농도) 밸런스 유지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히말라야 핑크솔트 담은 치약은 식물 유래 항균 성분으로 잇몸 질환, 충치, 구취 등을 유발하는 원인균을 99.9% 제거할 수 있다. 경희대학교 치과대학이 임상 평가를 실시한 결과 일반 치약에 비해 치태(프라그)는 87%, 치은염 지수는 3.6배 개선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덕분에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LG생건 측에 따르면, 해당제품은 지난해 4월 중국 상하이에 첫 선을 보인 이후 지난해 6월 기준 H&B스토어 왓슨스 매장 약 2700곳에 입점했다. 이는 중국 내 왓슨스 전체 매장의 약 80%에 달하는 수치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중국 인플루언서와 매체들의 뜨거운 반응으로 판매 호조를 보이면서 왓슨스 매장에 입점이 가능했다”며 “제형 색상과 디자인에서 기존 치약 제품과 차별화가 됐다는 호평으로 일명 ‘颜值[Yan Zhi](얜즈, 멋있다는 의미) 치약’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고 말했다.
애경, ‘솔트 치약’ 부문에 몰두
애경산업은 프리미엄 소금을 활용한 제품 가운데서도, ‘솔트 치약’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해 기존 치약 브랜드인 2080에서 퓨어솔트를 출시한 데 이어, 올해 2월에는 솔트 덴탈케어 전문 브랜드인 ‘살라리움(SALARIUM)’을 출시했다.
살라리움은 소금(Salt)의 어원이자 봉급을 뜻하는 라틴어 샐러리(Salary)에서 유래했다. 애경 측은 소금이 고대 로마시대부터 화폐로 사용됐을 만큼 귀한 존재였다는 점에 착안해 브랜드 명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살라리움의 특징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리미엄 소금을 소비자가 직접 선택해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살라리움은 △프랑스 게랑드 해안지역에서 나는 ‘게랑드 솔트’ △잉글랜드 에식스 카운티 말돈 마을의 ‘말돈 솔트’ △소금 호수에서 채취한 ‘호수염’을 담은 3종으로 구성됐다.
식물이나 미네랄 등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성분을 기초로 한 원료를 97% 이상 사용했고 동물성 원료, 석유계 계면활성제, 타르색소 등의 성분을 배제했다. 또한 기존 소금 치약의 경우 짠 맛이 강해 거부감을 느끼는 소비자들이 있었다는 점을 파악하고, 살라리움 치약의 맛을 조절했다.
애경산업 관계자는 “프리미엄 소금에 대한 수요는 세계적인 트렌드”라며 “국내에서는 유명 셰프들을 통해 프리미엄 소금의 존재가 대중적으로 알려졌고, 몸에 좋은 소금을 활용한 제품에 대한 소비자 니즈가 높아졌다는 점을 감안해 출시했다”고 말했다. 이어 “살라리움은 개당 8900원으로 국내 치약 중 고가 상품이지만 시장 반응은 좋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잇따른 악재 뚫고 재기 모색하는 아모레
애경·LG생건 양 사가 프리미엄 소금을 활용한 제품을 적극 출시하고 있는 데 비해 아모레퍼시픽은 조용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특히 프리미엄 소금 활용도가 높은 치약 부문의 경우, 아모레퍼시픽은 치약 브랜드인 플레시아를 통해 로즈마리향 솔트, 허브 솔트, 유자향 솔트치약 등을 주력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는 앞서 제품의 ‘성분’과 관련해 몇 차례 악재를 겪었던 이력 때문으로 분석된다. 지난 2016년 9월 논란을 겪었던 ‘가습기살균제 성분 치약 사태’가 대표적이다. 메디안·송염 치약 13종에서 가습기살균제 화학물질 성분이 검출돼 아모레의 치약 사업은 큰 타격을 입었다.
이후 아모레는 대규모 리콜을 거쳤지만, 치약 시장 2위라는 기존 점유율을 회복하진 못했다. 이어 지난해 8월 자연주의 콘셉트의 치약 브랜드 ‘플레시아’ 출시를 통해 재기를 모색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지난 ‘가습기 살균제 성분 치약 사태’로 안정성 논란에 휩싸인 이후, 성분과 안정성에 조심하고 있다”며 “더 좋은 제품으로 다가가기 위해 신중을 거듭하고 있다. 조만간 플레시아나 메디안 쪽으로 새로운 제품을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