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문규상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 최근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둘러싸고 대윤(大尹), 소윤(小尹)에 대한 이야기가 人口(인구)에 膾炙(회자)되고 있습니다.
역사상 대윤과 소윤은 조선 중기 中宗(중종)의 친인척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중종의 두 번째 부인 장경왕후 윤씨는 인종을 낳은 후 얼마 안 되어 죽고, 중종의 세 번째 왕비가 된 것은 같은 파평 윤씨 출신의 문정왕후였습니다. 이로써 서열상 전임 왕비였던 장경왕후의 일족인 윤임, 윤여필 등을 대윤, 후임 왕비인 문정왕후의 일족인 윤지임, 윤원형 등을 소윤이라 칭하였습니다. 대윤의 영수인 윤임의 증조부인 윤사윤은 소윤의 영수 윤원형의 고조부 윤사흔의 형일 정도로 대윤과 소윤은 가까운 일가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1544년 11월에 중종이 승하하고 인종이 즉위하자 장경왕후의 친오빠이자 인종의 외삼촌인 윤임을 비롯한 대윤파가 득세하게 됩니다. 그러나 1545년 7월 인종이 재위 8개월 만에 승하하고 명종이 즉위하자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으로 전세는 역전되어 문정왕후의 친동생이자 명종의 외삼촌인 윤형원의 소윤이 득세를 하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권력을 둘러싸고 대윤과 소윤이 충돌한 끝에 소윤이 승리하여 대윤 일파가 모조리 숙청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乙巳士禍(을사사화)입니다. 이처럼 대윤과 소윤은 을사사화를 거치면서 가까운 일족에서 불구대천지 원수가 됩니다.
최근의 이른바 ‘대윤 윤석열’(현재 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재직하며 차기 검찰총장 후보자로 추천되어 인사청문회를 거친 상태임)과 ‘소윤 윤대진’(현재 차관급이자 검찰의 예산과 인사를 담당하는 핵심 보직인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재직)은 검찰의 2년 선후배 사이로서 거의 같은 시기에 같은 검찰청에서 같은 보직경로(특별수사 분야)를 거쳐 오면서 많은 큼직한 사건을 함께 처리해 왔고, 그 과정에서 형제애에 버금가는 깊은 우정을 쌓아왔는데 이에 주변에서 검찰 선배이자 체구가 큰 윤석열을 대윤, 후배이자 상대적으로 체구가 작은 윤대진을 소윤으로 빗대어 부르게 된 것입니다. 이들은 역사상의 대윤, 소윤과는 달리 서로 깊은 우정을 쌓아온 사이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나이로서의 뜨거운 우정으로 말미암아 대윤인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예기치 못한 거짓말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하얀 거짓말’은 용서되나 안 되나
내용인즉슨, 소윤 윤대진에게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국세청의 9급 공무원부터 시작하여 용산세무서장까지 지낸 친형이 한분 계신데 어린 윤대진을 키우고 공부시켜 오늘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희생하며 뒷바라지 해 오면서 동생을 끔찍이도 보살폈다고 합니다. 이러한 관계가 서로 얽혀 대윤은 소윤의 형님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대검찰청 검찰연구관 시절 함께 골프도 몇 번 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윤의 형님이 용산세무서장으로 근무할 당시 육류 수입업자 등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던 중인 2013년경 해외로 도피하여 몇 개 국을 전전하다가 체포되어 강제 송환되고 22개월 후 혐의없음 처분을 받은 사건이 있었는데 당시 중앙지방검찰청 특수1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던 대윤 윤석열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검사 출신 이남석 변호사를 소개시켜 주었고 그 후 압수수색 영장이 6번이나 기각되는 등 우여곡절 끝에 무혐의 처리되자 대윤이 뒤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의심을 받게 되어 이번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야당 측으로부터 집중적인 질문공세를 받게 된 것입니다.
청문회 과정에서 2012년 소윤의 친형 사건 수사와 관련하여 “대검 중앙수사부 후배인 이남석 변호사를 소윤의 친형에게 소개하지 않았느냐”는 의원들의 질문에 6번이나 모두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날 밤 늦게 뉴스타파에서 윤 후보자가 당시 “이 변호사에게 윤 서장을 한번 만나보라고 한 적이 있다”고 말하는 통화 녹음 파일을 보도하였고, 이어 자정이 지나 청문회장에서 녹음 파일이 공개되자 윤 후보자는 “오해가 있었다”면서 “죄송하게 생각한다”면서도 “선임에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해명하였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에서는 윤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촉구하면서 인사청문경과보고서의 채택이 난항을 겪었고, 더불어민주당과 윤 후보자 측은 “후보자가 부적절한 행위를 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당사자 격인 윤대진 국장은 청문회 다음날 즉각 인터뷰를 자청하여 “소개는 내가 한 것이고, 윤 후보자는 관여한 바가 없다. 그렇게 인터뷰를 했다면 나를 드러내지 않고 보호하기 위해 그런 것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하였고, 이남석 변호사 역시 “윤 국장 소개로 윤 전 서장을 만났다. 상담은 했지만 경찰 변론은 하지 않았다”고 언론에 해명하였고, 윤 후보자도 “윤 국장이 변호사를 소개한 것인데 (2012년 기자와 통화할 때) 형의 일로 윤 국장이 난처해질까봐 내가 변호사를 소개해줬다고 말한 것이다”라고 청문회장에서의 답변을 번복하였습니다.
윤 후보자를 공격한 논리들
하지만 이에 대해 더불어 민주당의 검사 출신 금태섭 의원은 “윤 후보자가 윤 서장 사건에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볼 근거가 없고 검찰총장으로서의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후배 검사를 감싸주려고 적극적 거짓말을 한 것이 미담이 될 수 없다”고 비판하면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적어도 거짓말이 드러나면 상대방과 그 말을 들은 사람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게 상식이고 이번 논란의 핵심이다”고 주장하였고, 일부 언론은 社說(사설)에서 “후배 검사를 감싸주기 위한 행동이었다면 그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지만 청문회는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 앞에서 사실 그대로를 말해야 하는 자리다. 조금이라도 거짓 증언이 있다면 그 공직에 적합한 인물인지를 판단하기 어렵게 된다. 어떤 이유가 있든 무슨 문제가 생기든 숨김이나 보탬이 없이 진실을 이야기하는 게 공직 후보자의 의무다”라고 하면서 “검찰총장은 2000명이 넘는 검사들을 이끌며 司正(사정)을 지휘하는 막중한 직위다. 검찰 조직이 정치적 사건 수사에서 흔들리지 않으려면 총장에게 두고두고 총장직 수행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적고 있으며, 청문회장에 녹음파일을 공개한 뉴스타파의 김용진 대표는 “윤 후보자가 윤 서장 관련 부분을 넘겨버린다면 앞으로 본인이나 검찰 조직에 두고두고 부담이 될 수 있고 국민과 임명권자에 대한 후보자의 도리가 아니라고 판단을 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오히려 윤 후보자가 의리의 총대를 맨 상남자라고 생각했다”는 반응과 “국민들이 조폭들이 조폭적 의리를 과시하는 영화 장면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라는 반응도 뒤섞여 나오고 있습니다.
2500년 前(전), 楚(초) 나라의 이름 높은 정치가인 葉公(섭공)과 孔子(공자) 사이에 ‘洋(양)을 훔친 아버지를 告發(고발)한 사람의 처신에 대한 평가’를 둘러싸고 이 논쟁과 유사한 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진 적이 있는데 이는 국가의 법질서와 가족 질서 사이에 충돌이 발생할 때 어느 것이 우선할까 하는 문제와 직결된 것으로 논어 子路(자로)편에 실려 있습니다.
葉公이 孔子에게 “우리 마을의 궁이라는 사람이 그 아비가 양을 훔친 것을 고발했는데 이는 행실이 정직한 때문(葉公語孔子曰 吾黨有直躬者 其父攘洋 而子證之)”이라고 말하자 공자는 “우리 마을의 행실이 정직한 자는 그와 다릅니다. 아비는 아들을 위해 숨기고, 자식은 아비를 위해 숨깁니다. 정직함은 그 속에 있습니다(孔子曰 吾黨之直者異於是 父爲子隱 子爲父隱 直在其中矣)”라고 반박했습니다.
葉公은 국가의 법질서를 우선시하여 자기 아비를 고발한 사람을 정직한 사람이라고 한 반면에 孔子는 국가의 질서라는 것도 실은 종족 내의 孝弟(효제)가 외연적으로 확장된 것이고, 효제는 세상 모든 질서의 근본이므로 비록 아비가 도둑질을 했다고 하더라도 자식이 그 아비를 숨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유가와 법가의 논리 대결
이 논쟁은 춘추전국시대에 諸子百家(제자백가) 사이에 가장 핵심적인 사항의 하나였는데 전자는 法家(법가)로, 후자는 儒家(유가)로 대표됩니다.
춘추전국시대는 전통적인 혈연공동체가 파괴되면서 중앙집권적 전제국가가 성립해 가는 시기였습니다. 중앙집권적 전제국가는 혈연공동체를 완전히 파괴하고 그 속에 속박되어 있던 각 개인을 직접 군주의 지배 체제 하에 끌어들였습니다. 전제군주의 의사 표현인 法(법)은 그 앞에 어떠한 예외도 인정하지 않았고, 군주의 권력이 무제한이듯이 법 또한 무제한이었습니다. 자신들의 특수성을 주장하며 국가 권력의 침투를 제한하려고 했던 공동체적 질서는 마땅히 해체되어야만 했습니다. 이것이 商鞅(상앙)과 韓非子(한비자), 李斯(이사) 등으로 대표되는 법가의 정치철학이었습니다.
그러나 유가의 입장은 달랐습니다. 국가는 혈연공동체의 연장이었고 혈연공동체의 질서는 사회질서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은 바로 이 혈연공동체의 질서가 무너지면서 발생한 것이므로 이 혼란을 수습하는 것은 바로 혈연공동체의 질서를 복원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국가법질서의 무제한성을 주장하는 것은 바로 이 혈연공동체적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며 세상을 더욱 혼란으로 몰아넣는 것이므로 아무리 국법이라 하더라도 공동체의 특수성 위에 군림할 수 없다는 것으로서 이것이 유가의 입장입니다.
이렇듯 유가와 법가는 공동체적 질서의 존폐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했습니다. 그러나 전제군주의 입장에서 볼 때 유가란 공동체의 특수성, 백성의 행복 운운하며 군주권의 확대를 가로막는 골치 아픈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군주의 입장에서는 군주권의 무제한적 강화를 추구하는 법가야말로 가장 환영할 만한 존재였습니다.
최후의 승리는 유가가 차지
BC 221년 상앙의 변법(變法)을 받아들여 중앙집권화에 성공한 秦始皇(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함으로써 孔子(공자) 이래 300년 가까이 지속되어온 제자백가의 논쟁은 법가의 승리로 끝나는 듯 했으나 통치자의 입장에서는 가장 효율적이었음에도 백성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가혹했던 법가의 약점에서 비롯된 진시황의 폭정으로 인해 秦(진)은 20년도 채 유지하지 못하고 BC 206년에 멸망하고 그 뒤를 유교를 국가의 공식이념으로 채택한 劉邦(유방)의 漢(한)이 들어섬으로써 최후의 승리는 유가가 차지하였습니다.
‘논의정의’라는 책에 의하면 이미 漢나라 때에 자식이 부모를 숨긴 경우에는 비록 사형에 해당하더라도 처벌하지 않았으며, 부모가 자식을 숨긴 경우에는 사형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위에 처벌을 청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번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의 위증 논쟁과 관련하여 유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윤 후보자는 평소 형제같이 지내던 후배 소윤의 어려운 처지를 감안하여 당시 기자의 취재에 가벼운 마음으로 거짓말을 하였던 것인데 그것이 인사청문회장까지 이어질 줄은 짐작조차 하지 못하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거짓말의 동기나 정도에 비추어 그것이 ‘후보자 사퇴 사유’에 해당될 만큼의 치명적인 하자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국가 사정기관의 총수로서 막중한 책임을 짊어지고 향후 어려운 수사 고비마다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 나가야 할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아무리 사소한 거짓말이라도 그 위치에 따른 검찰 조직의 신뢰 문제와 직결되는 것이므로 국민들께 당시 거짓말을 하게 된 자신의 입장을 잘 설명드리고 아울러 진지한 사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울러 향후 검찰총장 직에 오른다면 이번 사건을 유념하여 신뢰와 관련해서는 더욱 엄정한 처신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검찰조직 수장의 말이 신뢰를 잃게 되면 그 어떤 것도 바로 설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民無信不立).
법무법인 대륙아주 문규상 변호사는 1978년 서울법대 졸업, 1987년 검사로 임용되어 ‘특수통’으로서, 변인호 주가 조작 및 대형 사기 사건, 고위 공직자 상대 절도범 김강용 사건, 부산 다대/만덕 사건, 강호순 연쇄 살인 사건 등을 맡아 성과를 냈고, 2003년의 대선 자금 수사에서도 역할을 했다. 2009-2014년 대우조선해양의 기업윤리경영실장(부사장)을 역임하며 민간 부패에 대한 경험도 쌓았다. 2013년 성균관 대학교 유학대학원, 2014년 이후 금곡서당에서 수학하며 유학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