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문제가 나날이 심각해지면서 관련 용어와 트렌드도 변한다. 이젠 ‘친환경’보다도 ‘필환경 시대’라고 한다.
사실 몰랐다. 기업 관계자에게 ‘필환경’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대화 중간 스쳐 지나간 이 단어는 머릿속에 강한 물음표를 남겼고 ‘필이라면 내가 아는 필(feel. 느끼다)인가, 그렇다면 소중한 환경을 느껴보라는 건가’ 따위의 추측 끝에 관계자에게 도움을 청했다. 알고 보니 그 필(feel)이 아니라 한자 필(必)이란다. 지키면 좋은 환경을 넘어, 생존을 위해 환경을 반드시 보존해야 한다는 의미다.
다소 환경 트렌드에 뒤처졌던 기자가 ‘정말 필환경 시대가 도래했구나’ 느낀 건, 최근 연이어 진행된 기업들의 환경 행사 두 곳에 다녀오면서다. 롯데주류는 지난달 말 진행된 서울 숲 재즈페스티벌에서 ‘반려나무 입양’ 캠페인을 펼쳤고, 아모레퍼시픽의 이니스프리는 올해로 6회째를 맞은 ‘플레이 그린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지난달 29일과 지난 5일, 한 주를 간격으로 해당 행사들이 진행된 서울 숲을 찾았다.
반려나무는 반려동물처럼 나무도 입양한다는 개념이다. 롯데주류가 이 캠페인에 나서게 된 데는 강원 지역과의 인연에서 기인한다. 소주 ‘처음처럼’ 공장이 강릉에 위치해 지역사회와 연관이 깊은 만큼, 강원도 산불피해지 복구를 위해 처음처럼 숲을 조성해왔고, 이번 캠페인 역시 그 일환이다. 이니스프리는 ‘제로 웨이스트’ 운동을 주제로 플레이 그린 페스티벌을 개최해왔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페스티벌 하루만이라도 일회용품 쓰레기 없는 생활을 해 보자는 취지다.
변화하는 기업들 “따뜻한 기업은 환경 이슈 품는다”
두 회사의 행사 내용은 다르지만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서울 숲이라는 동일한 공간에서 진행했다는 점과 더불어 수익창출이 최대 목표인 기업들이 환경 문제 개선에 나섰다는 점이다.
해당 기업들은 숲이라는 공간의 의미와 혜택에 주목한다. 반려나무 입양 캠페인에서 만난 한 관계자는 “서울 숲은 정말 도심 한가운데 있는 숲이다. 그만큼 이 공간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은 시민들의 참여를 높일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라며 “환경 캠페인은 기업들이 투자만 한다고 잘 되는 게 아니라, 결국 시민들의 참여가 있어야 (단발성) 이벤트가 아닌 무브먼트(사회적 운동)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의 말을 빌리자면 기업들이 환경 이슈를 주목하는 까닭은 ‘인간미 있고 따뜻한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 원리’와 같다. 이 관계자는 “기업들 입장에서 사회공헌은 중요한 요소다. 특히 최근 민감도가 높은 환경 문제에 뛰어드는 것은 ‘따뜻한 브랜드’ 이미지를 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인간관계로 따져 보아도, 따뜻한 사람과 함께하고 싶지 않나. 이와 같다. 인간미 있는 기업에 호감을 느끼고, 그들이 좋은 제품을 만들고 유능하다면 소비자들은 그 기업과 제품을 사랑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아무래도 이 기업들의 환경 문제 품기 전략은 효과가 있는 듯하다. 행사 몇 번 다녀왔다고, 환경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다. 주저하던 끝에 ‘입양’한 반려나무는 어느새 ‘내 새끼’가 됐고, 쑥쑥 자라는 모습이 내심 흐뭇하다. 또 일회용품 없는 일상이 생각보다 ‘아주 덜 불편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플레이 그린 페스티벌에서 받은 장바구니, 도시락 등의 키트는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장바구니는 이미 비닐봉투를 대신하고 있으며, 대나무 소재 도시락은 가끔 가방 속에서 출근길을 함께 한다. 환경은 나 하나 참여한다고 달라진다. 대신 참여하는 개인이 많아져야 한다.
환경 캠페인 취재 중 가장 기억에 남은 말은 “우리의 환경 통장은 적자”라는 거다. 전적으로 공감 가는 말이다. 우리는 지구로부터 자연을 빌려 쓰고 있다. 비록 현재는 너무 많이 끌어다 써서 ‘마이너스’를 면치 못하고 있지만, 이제라도 그 적자를 메우고 원금만큼은 회복해서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한다. 실질적 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기업들의 환경 관련 투자와 더불어 일반 시민의 참여가 활성화돼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