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경제 = 최영태 편집국장) ‘코로나19 대란’을 일으킨 신천지에 그래도 한 가지 다행한 사항도 있다. 신천지의 본부라 할 만한 곳이 경기도 과천과 경북 청도에 각각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신천지 본부가 과천에만 있었다면? 대구-경북을 강타한 코로나19가 과천을 중심으로 수도권 한복판을 관통했을 것이다.
수도권 인구(2019년 말 기준 2592만 5799명)는 대구(243만 2883)의 6.7배. 단순 곱하기만 해도 신천지 본부가 과천에만 있었다면 수도권 확진자는 4만 3천 명을 이미 넘었을 것 같다. 게다가 인구밀도는 서울이 대구의 5.8배다 되니 4만 3천에 또 6을 곱해야 하나?
수도권의 이 많은 인구는 매일 아침저녁 지하철 칸을 그득그득 채우고 대규모 이동을 반복한다. 대구 지하철에는 이런 과밀이 없다. 2018년 대구시가 밝힌 바에 따르면 대구 지하철이 가장 혼잡한 시간대가 토요일 밤 11~12시 사이, 즉 서문시장 야시장이 열리는 시간대였단다. 수도권 지하철에선 이런 풍경, 즉 평일에는 한산하다가 주말 야시장 시간이나 돼야 혼잡해지는 풍경을 상상이나 할 수 있는가?
신천지가 ‘과천 일극집중’이었다면 신천지 신도들이 지하철 4호선을 타고 수도권 전역으로 이동하면서 코로나19가 대폭발을 일으켰을 게다. 더구나 대한민국의 모든 교통수단은 서울에서 거미줄처럼 뻗어나가기에 불과 하루 이틀 사이에, 손 볼 틈도 없이 전국 모든 도시에서 추가 감염이 일어났을 듯하다.
대구광역시도 큰 도시라지만, 사상 처음으로 작년말 인구 50% 이상이 사는 곳이 됐다는 수도권에 비하면 국토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100대 기업의 78%, 연구·개발 투자의 65%, 신용카드 사용액의 80%, 신규 고용의 65%, 고용보험 신규 취득자의 61%를 차지하는 수도권이고, 서울과 경기도-인천을 오가는 이동량 또한 엄청나다. 이래서 ‘대한민국 = 수도권’이라는 등식도 가능하다. 신천지발 대감염이 과천에서 시작됐다면 대한민국이란 존재 자체가 거덜 났을 게 분명하다.
이번 호 문화경제는 ‘코로나 너머’란 제목으로. 한국 기업들의 코로나 극복 노력들을 특집으로 담았다(22~49쪽). ‘너머’라는 미래지향형 제목을 그나마 달 수 있었던 데는, 대구-경북에서 일어난 폭발을 국가 총력으로 안정시켰기 때문이다. 만약 그 폭발의 진원지가 과천이었다면 그 순간 대한민국의 총력 자체가 붕괴됐을 것이기 때문에, 아직도 죽음의 구렁텅이를 헤매고 있을 확률이 100% 아닐까.
‘코로나 총선’이라면서 인구의 거리두기 정책은 제로?
사정이 이런데도 ‘코로나19를 주제로 한 총선’이라는 오는 4월 13일 21대 총선을 앞두고 각 당의 공약 중 과밀해소 또는 지방분권-균형발전을 위한 공약을 찾아볼 수가 없다. 지방분권세종회의가 주요 정당의 10대 핵심 공약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방분권 및 국가균형발전 의제’가 실종 상태란다. 지방분권에 대한 한국 정치사를 돌이켜보면 고 김대중 대통령이 단식 투쟁을 통해 지방 의회를 부활시킨 뒤, 고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균형발전선언을 했고, 그 두 전직 대통령을 계승한다는 문재인 현 대통령이 국가균형발전위원회 등을 통해 그 뜻을 잇겠다고는 했다. 그러나 집권 중반을 지나면서 수도권 집값 폭등에 따라 수도권에 신도시를 계속 만들고 GTX 등의 광역 교통망을 확충한다는 사업에 집중하면서 지방은 이미 잊힌 존재가 된 지 오래다. 역사적으로 보면 균형발전의 뜻을 본격적으로 꺾은 것은 헌법재판소의 2004년 ‘대한민국 수도는 서울이라는 관습헌법 때문에 행정수도의 충청도 이전은 안 된다’는 해괴망측한 판결이었다.
이 판결 뒤 ‘모여 있어야 경제 발전에 좋다. 흩어지면 돈 벌겠냐?’는 수도권 옹호 경제논리가 득세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모여 살아서 돈 잘 번다는 수도권을 이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탐욕스럽게 쳐다보고 있는 듯하다. 경제에 좋다는 밀집은 감염병에도 좋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말을 한다면 이럴 것 같다. “너희 코리안들, 거리두기 한다고?ㅋㅋ 그래 수도권에 몰려 살면서 얼마나 하는지 두고 볼께ㅎㅎ. 나는 너희들 곁을 떠나지 않아. 치료약 또는 백신이 나오기 전까지는 함께 놀자구. 서울-인천-경기는 딱 내 스타일이야. 글고 알지? 내가 기회를 턱 잡으면 어떻게 될지. 어떤 상상을 하건 그 이상일 걸?ㅎㅎㅎㅎ”
서울 구로구 콜센터에서 확진자가 대거 발생한 뒤인 3월 12일 현장을 찾은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구상에서 서울·경기·인천 수도권처럼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이 없어 감염병이 제일 좋아하는 환경”이라며 말했다. 이보다 나흘 앞서 3월 8일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최악의 시나리오는 서울-경기 인구 밀집 지역에서 집단 감염이 일어나는 것”이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이렇게 다가오는 위험을 알면서도 국가의 향방을 가를, 20여 일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서는 ‘인구 전체의 거리두기’에 대해서는 단 하나의 논의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위험에 대한 격언으로 “보이는 위험은 위험하지 않다”는 말이 있다. 눈에 보이는 위험에 대해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간에 대처를 하기 때문에 총체적 파국만은 최소한 면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인들의 코로나19에 대한 공포는 바이러스에만 집중하지 복작대며 살고 있는 공간은 거의 쳐다보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이래 가지고서야 ‘뻔히 보면서도 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도 남의 일이 아니다. 코로나19와 함께 살아야 한다면, 이제 개개인 사이뿐 아니라 나라 전체의 인구도 거리를 두는 궁리를 좀 해야 할 때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