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키드로 자랐다. 학교 들어가서부터 쭉 아파트에서 살았다. 그런데 말이 아파트지, 다소 ‘자연 친화적’인 곳이었다. 묘사하자면 이렇다. ‘읍’에 있는 아파트로, 논밭 한가운데 단지가 덩그러니 들어선 모양새다. 장점은 자연을 오롯이 느낄 수 있어 정서발달에 좋다는 점인데, 문제는 성격이 나빠질 수 있다는 거다. 한 시간에 두 대꼴로 있는 버스가 늦거나 빨리 가버리면, 사람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욕했다.
없는 게 더 많은 동네라 책방도 ‘당연히’ 없었다. 그나마 학기 중엔 학교 도서관을 이용하면 되는데, 방학은 독서 갈증이 커지는 시기였다. 그때 한 줄기 빛이 된 게 ‘움직이는 도서관’이었다. 천안시 중앙도서관에서 운영하는 대형 버스로, 34인승 버스를 개조해 내부에 책장을 들였다. 책은 물론 사서까지 있는 나름 구색을 갖춘 도서관이었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무려 12년간 방학 때마다 애용했다. 비록 교육받기 좋은 환경은 아니었지만, 학교·시립 도서관 등 공적 범위 내에서 독서의 기회만큼은 충분히 누렸다고 자부하는 이유다.
최근 학생들이 학교 도서관을 이용할 기회가 줄어들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해 수업이 온라인으로 대체되면서, 잠시 학교가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책 많이 살 형편은 안되지만, 학교·행정 기관 등 공공 지원을 최대한 활용해 책을 읽어온 사람으로서 안타까웠다. 그나마 다행인 건, 도서관의 빈자리를 사기업들이 나서 함께 메우고 있다는 점이다. 롯데장학재단은 교육부·교보문고와 함께 초·중·고등학생을 위한 ‘북드림(Bookdream)’ 전자 도서관을 개관했다. KB국민은행은 문화 소외지역 청소년과 격오지 지역 주민들을 위해 조성해온 ‘KB작은도서관’을 온라인 서비스로 확장했다.
평등한 독서를 위한 기업들의 지원이 고무적이지만, 한편으론 더 욕심이 난다. 기왕 마음먹은 거, 온라인 도서관조차 이용하지 못하는 학생들에 대한 도움이 많아졌으면 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내놓은 ‘2019 인터넷 이용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컴퓨터가 있는 가구는 전체의 71.7%로 나타났다. 나머지 약 30% 가구의 학생들은 비대면 도서관은 고사하고, 무료 책을 읽을 기기가 없는 거다.
독서는 배우고, 또 간접적으로 체득하는 행위다. 학교 도서관이 소중한 이유는 평등하게 독서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학생이라면 자못 똑같이 무료로 책 읽을 기회가 주어진다. 공적 지원을 통한 학생들의 독서는 계속돼야 한다. 적어도 사는 곳, 소득수준에 따라 독서의 기회, 질이 달라져선 안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