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보툴리눔 톡신 시장에 격변이 일어나고 있다. 그동안 메디톡스의 ‘메디톡신’, 휴젤의 ‘보툴렉스’가 1, 2위를 선점하고, 앨러간의 ‘보톡스’가 별도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던 시장에서 메디톡스의 ‘메디톡신’이 흔들리기 시작하면서다. 이 시장에서 현재 ‘태풍의 눈’으로 떠오르고 있는 회사는 종근당과 휴온스다.
보툴리눔 톡신은 주름개선 용도로 주로 사용되며, 미용성형 시장의 상징과도 같은 품목이다. 비급여(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분야)여서 정확한 시장 규모는 파악이 어렵지만 업계에서는 지난해 기준 1500억 원 대로 파악하고 있다. 이 중 휴젤 보툴렉스가 610억 원 대, 메디톡신이 540억 원 대를 판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격변이 일어나기 시작한 시점은 지난달 17일, 검찰이 무허가 원액으로 제품을 생산하고 약효를 조작한 혐의 등으로 정현호 메디톡스 대표를 불구속 기소하면서 부터다. 기소 직후인 당일, 식품의약품안전처도 메디톡신에 대해 제조·판매·사용을 중지토록 하고 품목허가 취소 등 행정처분에 착수했다. 메디톡신이 위기에 처한 시점에서 주목받는 것은 또 다른 국산 보툴리눔 제제들이다. 현재 시장에는 메디톡스와 보툴렉스 외에 대웅제약의 ‘나보타’, 휴온스의 ‘리즈톡스’(수출명 휴톡스)가 출시돼 있다. 그리고 최근 이 시장에서 최근 종근당의 ‘원더톡스’가 출시됐다.
보툴리눔 톡신을 둘러싼 제약사들, 앨러간부터 휴온스까지
보툴리눔 톡신 시장 변화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취급하는 회사들의 미묘한 관계를 알 필요가 있다. 우선 앨러간과 대웅제약의 ‘악연’이 있다. 1997년 미국 앨러간의 ‘보톡스’가 국내에 들어온 뒤 국내에서 시장 1위를 차지하는 데는 당시 판권을 갖고 있던 대웅제약의 역할이 컸다. 하지만 2008년 앨러간은 갑자기 판매계약 종료를 선언했고, 직접 진출을 선언했다. 2012년 판권 계약 종료 시점을 한참 앞둔 시점이었다.
당시 앨러간은 2012년까지의 이익을 보상해 준 것으로 알려졌지만 대웅제약 입장에서는 당시 시장에서 경쟁 제품이자 한올제약(현 한올바이오파마)이 판매하던 중국 란주연구소의 ‘BTX-A’와 소송전까지 치뤄가면서 보톡스를 시장 1위로 올려놓은 바 있어 억울함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미용성형 분야의 마케팅을 위한 팀에까지 피해가 갈 위기에 처했었다. 참고로 미용성형 마케팅 담당자들은 이후 상당수가 자회사인 디엔컴퍼니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앨러간의 보톡스는 이후 국내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는데, 2006년 출시된 국산 제품인 메디톡신의 선전이 복병이었다. 결국 2010년 메디톡신에게 시장 1위 자리를 넘겨주고 말았다. 당시 메디톡스는 태평양제약(현 에스트라)과 공동판매에 나서며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보톡스를 압박했었다.
그리고 2014년 대웅제약은 나보타를 출시했는데, 이 제품은 앨러간의 보톡스를 겨냥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실제로 대웅제약은 나보타의 미국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출시 당시부터 숨기지 않았으며, 미국 진출의 첨병으로 내세운 미국 에볼루스사는 앨러간의 점 임원들이 상당수 참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하지만 출시 직후 대웅제약은 메디톡스와 충돌이 시작됐다. 메디톡스 측에서 자사의 균주를 훔쳐 나보타를 제조하는데 사용했다며 법정 소송을 걸어 온 것이다. 이 소송은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다.
이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한편, 시장에서는 휴젤의 보툴렉스가 점차 세력을 넓혀가고 있었다. 이 제품은 휴젤과 종근당이 2013년 공동판매에 나서면서 메디톡스의 위치를 위협했고, 급기야 몇 년 전부터는 국내 시장 1위에 올랐다.
그런데 2019년 휴젤과 종근당의 계약이 종료됐다. 이후 히알루론산(HA)필러 ‘스타일에이지’와 미용성형용 실 ‘실크로드’, 가슴 보형물 ‘실크로드’, 비만치료용 위풍선 ‘엔드볼’ 등 다수의 미용성형 제품을 취급하고 있을 뿐 아니라 강력한 영업력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종근당과의 계약이 종료됨에 따라 보툴렉스가 계속 시장 1위를 점유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시장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여기에 다시 한 번 변수가 등장했다. 휴온스가 지난해 리즈톡스를 출시했기 때문이다. 다만 리즈톡스는 출시 당시만 해도 메디톡신과 보툴렉스가 강력한 시장을 형성하고 있어 국내 시장에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여론이 중론이었다. 다만 휴온스도 HA필러 ‘엘라비에’를 포함해 다수 미용성형 제품을 출시하고 있어 두고 봐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메디톡신 빈 자리를 노리는 종근당·휴온스과 대웅제약
이같은 상황에서 지난 4월 식약처가 메디톡신에 대한 행정처분을 발표하면서 시장에 격변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메디톡스가 집행정지 신청 및 명령 취소 소송을 내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어 아직 결론이 난 것은 아니지만 이미 시장은 추후 시장 재편에 대한 예측이 나오고 있다.
식약처 발표 직후에는 휴젤의 보툴렉스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종근당과의 계약은 끊어졌지만, 여전히 시장에서 영향력이 컸기 때문이다. 대웅제약의 나보타도 판매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됐지만, ‘프리미엄’을 내세우고 있어 저가 시장에 바로 뛰어들어 영향력을 행사하기에는 부담이 있는데다, 메디톡스와의 소송으로 인한 부담도 있어 보툴렉스만큼 시장 파급력을 바로 갖추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5월에 접어들며 다시 한 번 변수가 등장했다. 바로 종근당의 ‘원더톡스’ 출시다. 보툴렉스를 판매하며 미용성형 업계에서 영업망을 구축해 왔던 종근당의 시장 참여이기에 영향력이 적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휴온스도 영향력을 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종근당의 원더톡스가 바로 휴온스의 모회사인 휴온스글로벌의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휴젤과 종근당의 협업이 휴온스와 종근당의 협업으로 변경된 셈이다. 종근당의 네트워크가 제대로 동작한다면 보툴렉스의 위치를 원더톡스가 차지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해외시장에 미칠 영향도 ‘관심’
이처럼 제약사들이 보툴리눔 톡신 품목을 두고 경쟁을 벌이는 이유는, 만들기는 어렵지만 제조사가 적어 원가 대비 이익률이 매우 높은 편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 메디톡스는 메디톡신 외에 특별한 제품이 없던 시기에 무려 30~40%에 달하는 영업이익률을 낸 바 있다.
국내시장 뿐 아니라 해외 시장에서의 경쟁 구도도 업계에서는 관심있게 보고 있다. 다국적 제약사들은 보툴리눔 톡신 단가를 높게 잡고 있어 국산품의 가격경쟁력이 높은 편이어서 행정처분이 떨어진 틈을 타 휴젤 대웅제약, 휴온스 등이 수출 확대에 나설 가능성이 있어서다. 다만 메디톡신은 행정처분을 받더라도 수출이 금지된 것은 아니어서 향후 추이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경쟁자가 된 종근당과 대웅제약의 관계에도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대웅제약이 지금까지는 국내 시장에서 메디톡신, 보툴렉스에 비해 낮은 실적을 낸 것이 사실이지만, 메디톡스과의 대립이 어느 정도 정리된다면 적극적인 마케팅에 나설 가능성도 있어서다. 게다가 대웅제약도 HA필러 등 다수 미용성형 제품을 다루고 있어 경쟁력이 낮은 것도 아니다.
업계 관계자는 “메디톡스가 식약처 행정처분 발표 뒤 집행정지 신청 및 명령 취소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에 지켜볼 여지는 있지만, 타격은 불가피 할 것으로 본다”며 “이 상황에서 보툴렉스와 계약을 끝낸, 강력한 영업력을 지닌 종근당의 행보가 시장에 끼칠 영향이 커 보인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