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쇄
  • 전송
  • 보관
  • 기사목록

[기자수첩] 현대차 아이오닉, 대중의 ‘판타지’를 찾아라

테슬라가 선점·독점한 ‘미래차 이슈’ 능가할 가치 발견하고 내세워야

  •  

cnbnews 윤지원⁄ 2020.08.27 13:42:16

테슬라 모델S가 홍콩 시내를 주행하고 있다. (사진 = unsplash, Dynamic Wang)

테슬라의 기세가 대단하다. 말 그대로 쉽게 ‘체감’ 될 정도다.

기자가 매장이나 전시장이 아닌 곳에서 테슬라 모델S를 처음 본 것은 2년 전 봄이었다. 서울 마포구 집 근처를 걷다가, 길가에 주차된 흰색 모델S를 보고 발걸음을 멈춘 채 한참을 구경했다. 그 전에도 전기차 관련 기사를 여러 번 썼지만, 어쩐지 테슬라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未來)'에 있는 차라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슬리퍼 차림으로 동네를 돌아다니는 나와 공존하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테슬라를, 그해 가을 방문했던 홍콩에서는 5분마다 한 대씩 마주쳤다. 촘촘하고 높은 고층빌딩과 100년도 더 된 트램, 돛단배 등이 뒤섞인 풍경에 틈틈이 나타나는 테슬라를 보면서, 수많은 사이버펑크 작가들이 왜 홍콩의 경관과 미래를 동일시했는지 이해할 것 같았다.

동시에, 홍콩 사람들의 앞서가는 트렌드와 경제력에 대해서도 사뭇 감탄했더랬다. 서울 강북에서 이 정도 빈도로 테슬라를 흔히 보게 되는 날이 과연 언제일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2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5분에 한 대꼴은 아니지만, 이제 서울에서 테슬라는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볼 정도로 드문 브랜드가 아니다. 단, 이렇게 자주 보이는 모델은 테슬라의 보급형 전기차인 모델3다. 여전히 모델S는 흔하지 않고, 모델X나 모델Y는 눈에 띄는 순간 지각을 무릅쓰게 만든다.

테슬라 모델3는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국내에서 6888대 팔렸다. 현대자동차의 코나EV, 기아자동차의 니로EV보다 많이 팔리며 상반기 전체 전기차 판매량 1위를 기록했을 뿐 아니라 전기차 시장 점유율 43.3%를 차지했다. 작년 상반기보다 16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테슬라의 상승세는 세계적인 추세다. 유럽 시장에서는 저렴한 소형 해치백 르노 조에(ZOE)에 밀렸다지만, 글로벌 순수전기차 시장에서는 상반기 점유율 28%를 기록하며 1위에 올랐다. 심지어  테슬라의 상반기 판매 대수인 17만 9050대는 2위부터 4위까지의 판매량을 합산한 것보다도 많았다.
 

현대차는 아이오닉 브랜드 출범을 맞아 코로나19로 인해 수개월간 멈춰있던 런던 아이의 ‘O’형상을 IONIQ의 ‘Q’로 시각화 하고, 다시 작동하는 이벤트를 통해 “멈춰진 세상을 아이오닉이 다시 움직이게 한다”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사진 = 현대자동차)


현대차 비장의 무기, '아이오닉'

이처럼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선두 업체 앞에 현대자동차그룹은 ‘아이오닉’(IONIQ) 브랜드를 출범시키면서 반격 카드를 내밀었다.

현대차그룹은 2025년까지 전기차 56만 대를 판매하여 전기차 선도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그때까지 친환경 자동차 44종을 내놓을 것이며 그중 절반이 넘는 23종이 순수전기차 모델이 될 것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 신호탄이 ‘아이오닉’이고, 첫 주자인 준중형 CUV 아이오닉5는 내년에 출시될 예정이다.

과연 아이오닉 브랜드는 테슬라를 넘어 글로벌 전기차 시장을 선도할 수 있을까?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판매량 기준으로 미국의 GM, 포드와 함께 세계 4~5위권을 다투는 초대형 완성차 업체다. 반세기 이상 자동차 산업에 종사해 왔고, 완성차 사업에 필요한 대부분의 회사가 그룹 내에 계열화되어 있고, 세계 곳곳에 생산공장이 있다.

반면 테슬라는 첫 자동차인 로드스터를 출시한 지 12년밖에 되지 않았고, 지금까지 출시된 모델이 5종에 불과한, 작고 어린 회사다.

그런 테슬라가 최근 자동차 업계 시가총액 1위에 등극했다. 기존 1위였던 토요타는 생산, 판매량 등에서 테슬라의 25배나 되니, 골리앗을 이긴 다윗이 된 것이다. 엘론 머스크 왈 "파티는 시작됐다"고 하던데, 앞으로도 기세를 이어가겠다는 선언이겠지.
 

한 테슬라 운전자가 테슬라 차량의 오토파일럿 기능을 켠 채 핸들에 손을 대지 않고 주행하고 있다. (사진 = unsplash, Roberto Nickson)


테슬라, 그냥 '전기차'가 아니다

테슬라가 지금 이처럼 ‘잘 나가는’ 이유는 처음부터 다른 완성차 업체들과 달랐기 때문이다.

테슬라가 전기차에 본격적으로 투자하던 시기, 글로벌 완성차 업계에서는 ‘순수 전기차’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았다. 이미 전 지구적으로 ‘지속가능’한 환경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었음에도, 일부 업체가 하이브리드 모델을 내놓았을 뿐, 다들 내연기관에 더 많은 투자를 예정하고 있을 때였다.

이때 테슬라는 오로지 순수 전기차에만 집중하고, 그 결과 세계적인 완성차 업체들의 내연기관 수퍼카들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성능에서 압도하는 자동차를 연이어 내놓았다. 전기차를 잘 만들기만 하는 게 아니라, 아예 ‘자동차의 세대교체’를 선언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테슬라는 자동차만 내놓은 것이 아니라, 테슬라 전용 초고속 전기충전소인 수퍼차저 네트워크, 그 어떤 상용차의 자율주행기능을 능가하는 ‘오토파일럿’,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한 자동차 구매 시스템 등등 ‘미래형 전기자동차’라는 패러다임을 토탈 패키지로 세상에 내놓았다.

한 테슬라 자동차 오너는 “테슬라의 전기차는 단순히 전기로 가는 자동차가 아니라 미래 그 자체”라고 말했다. 테슬라 자동차는 스마트폰과 같은 스마트카로 언급되곤 한다. 테슬라는 다른 자동차회사와 비교되는 것보다 애플, 구글 같은 IT 회사들과 비교될 때가 많다.

사실, 테슬라는 전기차를 발명한 회사가 아니다. 순수 전기차로는 닛산의 리프가 이미 시장을 선점하고 있었다. 오토파일럿 기술 정도를 제외한다면 테슬라의 전기차에 들어간 기술들이 테슬라 고유의 혁신 기술인지도 모르겠다.

기존에 나와 있던 배터리 기술과 모터 기술 등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만들고, 가성비를 극대화 시켰다고 봐야 한다. 기존의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물론이고, 다른 업체 누구나 시도해볼 수 있었다.
 

테슬라의 차기작 '사이버트럭'은 미래형 방탄 장갑차를 타고 인적 없는 자연을 모험하는 판타지를 충족시켜 줄 것 같다. (사진 = 테슬라 홈페이지)


‘테슬라 대항마’라는 별칭으로 통하던 ‘루시드 모터스’같은 스타트업이 테슬라 이후 여럿 등장한 것, 내연기관 자동차 산업에서는 뒤쳐져있던 중국이 전기차 산업에서는 선두권을 형성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봐야 한다.

그런데 테슬라가 이처럼 승승장구하고, 'FAANG'에 비견되는 대표적인 ‘혁신 기업’으로 여겨지는 것은 바로 ‘미래 친환경 자동차’라는 판타지에 가까운 이슈를 선점하고, 독점했으며, 그것을 대중에게 실현시켜주었기 때문이다.

부가티 베이론 같은 자동차는 그 가격에 그 성능과 그 희소성을 갖추는 게 왠지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테슬라는 그것을 압도하는 성능을 갖춘 전기차를 내놓고, 그것을 1억 원 정도의 가격으로 대중에게 팔기 위해 대규모 공장을 지었다.

덕분에 나도 월급을 조금만 아껴 쓰면 고성능차를, 그리고 미래를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둘 다 지금까지 판타지 속 유니콘처럼 여겨졌던 존재지만, 이젠 손을 조금만 뻗으면 잡을 수 있는 것이 되었다.
 

현대자동차 본사 로비에 설치된 역동적 미래도시 구현을 위한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UAM, PBV, Hub의 축소 모형물. (사진 = 현대자동차)


현대차의 목표는 '고객 판타지 충족' 되어야
'시장 선도'는 그 결과일 것


다시 전기차 시장 선도라는 현대차그룹의 목표로 돌아와 보자.

목표 달성을 위해 테슬라는 반드시 넘어서야 할 벽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급속도로 성장해가는 전기차 시장에서 현대차그룹이 경쟁해야 할 상대는 테슬라만이 아니다.

각국 정부가 전기차 장려 정책, 아니 궁극적으로 내연기관차 퇴출 정책을 펼치고 있으니, 글로벌 완성차 업체는 모두 살아남기 위해 전기차에 투자하고 있는 실정이다. 내연기관 시장에서 현대차그룹이 수십년 간 넘지 못했던 다른 모든 완성차 업체들이 현대차그룹처럼 하고 있는 것이다.

당장 기세가 꺾이기 시작한 모델3의 자리를 대신할 전기차로 주목받고 있는 차는 폭스바겐의 ID.3, 르노 조에 등이고, 9월 부분 변경 모델 출시가 예고된 현대차의 코나는 잘 거론되지 않는 상황이다. 그런데 내년에 아이오닉 5가 나올 때쯤엔 과연 극적인 역전 스코어를 올릴 수 있을까?

현대차그룹에게 필요한 것은 좀 더 뛰어난 성능을 실현시키는 기술과 생산력, 마케팅 능력이 아니다. 바로 10년 전의 테슬라처럼 대중의 판타지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이슈’ 메이킹이 반드시 더해져야만 한다.

저력은 충분하다. 현대차그룹은 이미 대중의 판타지를 멋지게 충족시켜준 적이 있다. 바로 한국전쟁으로 끔찍하게 황폐화 됐던 가난한 나라에서, 직접 개발한 자동차를 만들고, 수출까지 한데다, 한국인 누구나 자가용을 끌고 다닐 수 있다는 꿈까지 이루게 해 줬다. 그리고 세계 각국에서 우리나라 차가 좋은 차로 인정받는 세상을 만들어, 자부심을 자극하기도 한다.

하지만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는 ‘패스트 팔로워’라는 이미지, 저렴한 자동차를 파는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새로운 판타지를 발견하고, 현대차그룹만이 할 수 있는 이슈를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앞으로 이슈가 되고, 시장에서 잘 먹힐 글로벌 소비자의 판타지가 과연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그걸 찾아내는 게 현대차그룹이 할 일이다.

나의 판타지라면 있다. 품질 보증 기간을 겨우 3년만 제공하는데도 “그래도 아이오닉이니까”라며 사고 싶어지는 전기차가 나왔다는 외신 기사를 인용해보는 것이다.

관련태그
CNB  씨앤비  시앤비  CNB뉴스  씨앤비뉴스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많이 읽은 기사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