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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판’ 바뀌면 부(富) 순위도 바뀌는데 … 이번엔 전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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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89호 최영태 편집국장⁄ 2020.12.15 10:07:53

(문화경제 = 최영태 편집국장) 이번 호는 현대차가 마침내 공개한 전기차 플랫폼 E-GMP의 특성들을 점검해봤다(22~27쪽). 현대차의 이런 노력을 보면서, ‘판’이 바뀔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회상해본다.


경제의 ‘판’이 바뀌는 경험을 필자는 필름 카메라 → 디지털 카메라(DSLR)로의 대변화에서, 그리고 2010년대 중반 전화기 → 스마트폰으로의 대전환에서 해봤다.

팬케이크처럼 팔리면서 판을 바꾼 캐논 DSLR

먼저 카메라 시장. 1985년 신문사 입사 이후 거의 2000년까지 사진기자들(속도전을 위해 최고 성능의 사진 장비를 쓰는 주인공들)의 장비는 니콘 일색이었다. 다른 선택지는 거의 없었다. 그러다가 1980년대 말에 미놀타가 자동초점(auto focus) 기능을 탑재한 알파7700을 내놓으면서 세계적 화제가 됐다. 당시 도쿄 출장 길에 거금을 들여 최신형 알파7700을 구입해 사진을 찍는 필자를 보고 일본인들이 “와~ 저게 바로 7700이구나” 하면서 부러워하던 기억도 난다.

그러나 자동초점이라는 한 가지 기능만 갖고 카메라 시장의 판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사진 장비라는 게 워낙 다양하고, 깊이 들어갈수록 결국 모든 걸 갖춘 니콘을 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전통의 2등 캐논 카메라는 상황을 뒤집기 위해 지난 20세기 내내 엄청난 노력을 경주하지만 니콘의 아성을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1990년대 중반이 되자 극히 일부의 사진기자들이 회사의 니콘 장비 이외에 ‘개인 돈으로’ 캐논 카메라를 “캐논에만 있는 기능을 쓰기 위해” 사는 걸 봤을 뿐 대세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캐논이 트위터에 올린 사진. “2000년에 내놓은 D30은 CMOS 센서를 최초로 전면채용한 기종”이라는 소개가 뒤따른다.

1995년엔 회사 돈으로 당시 무려 3만 달러, 즉 3천만 원이 넘는 초고가 니콘 디지털 카메라를 구입해 써봤지만 화질이 너무 떨어져 몇 번 테스트만 해보고는 바로 창고로 보내버렸던 기억도 있다.

이러던 시장에 대지진이 일어난 것은 캐논이 그간의 절치부심 끝에 D30이라는 “3천 달러 이하의 첫 DSLR(렌즈 교환형 디지털 카메라)”를 내놓으면서였다. 사진 전문지들이 “팬케이크 찍어내듯 카메라를 판다”며 혀를 내둘렀을 정도였다.

즉 전통적인 필름 카메라 시장이라는 판에서는 2등 캐논과 3등 미놀타가 아무리 기술 개선을 한다 한들 등수 자체를 바꾸기는 힘들었지만, 즉 그 정도 기능 개선만으로는 기왕에 집에 필름 카메라가 있는데 고가의 다른 카메라 기종으로 갈아탈 필요를 보통 사람들은 거의 전혀 느끼지 못했지만, 판이 필름 카메라 → 디지털 카메라로 바뀌면서, 즉 “여태까지는 사진을 찍으려면 매번 필름 값과 현상-인화비를 내야 했지만 디지털 카메라는 한번 사면 추가 비용 없음” 시대로 접어들면서 일반인도 카메라 장비를 대거 바꿨고 캐논이 ‘무적의 절대강자’로 올라선 결과가 됐다.

노년층도 폰을 바꾸게 된 大변화

2010년대에 벌어진 폰 → 스마트폰으로의 대전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전에는 집 전화기 → 벽돌보다 큰 카폰(차량 장착식 전화기) → 셀폰으로의 변화는 있었지만 전화기는 통화를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그러나 들고다니는 컴퓨터인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 그 창시자인 애플은 세계 최대-최고의 업체가 됐고, 그 뒤를 바짝 쫓아간 삼성전자는 세계 1등 전자업체가 될 수 있었다.

 

“달리 생각하라”는 유명한 문구를 사용하며 애플이 1997년 시작한 광고의 한 장면. 

스마트폰 이전만 해도 소니를 필두로 하는 일본 전자업체들은 영원히 넘볼 수 없는 벽이었지만 스마트폰으로 판이 크게 바뀐 이후 이제 일본 10대 전자업체의 수익을 모두 합쳐도 삼성전자 하나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으로의 대변동이 일어났다.

진화론에서는 진화가 아주 조금씩 일정한 속도로 진행된다는 학설(그래프로 그리자면 일정한 기울기의 직선이 우상향으로 올라가는 모양새)과, “아니다, 진화는 평소에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 평형상태를 이루지만 어떤 계기로 갑자기 대(大)진화가 일어난다”(그래프로 그리자면 갑자기 툭툭 튀는 계단식 모양새)는 학설이 대립 중이지만, 적어도 경제계에서는 판이 바뀌는 현상은 짧게는 10년, 길게는 수십 년만에 한 번 일어나며, 그때마다 기업들의 순위가 크게 요동친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한국은 어떻게 코로나19를 다루고 있나’를 주제로 한 CGTN의 보도 장면. 

자동차 시장의 판이 크게 바뀔 조짐이다. 기존의 내연기관 세상에서도 크고 작은 기술 개선은 이뤄졌지만 일반 대중이 “바꿔야 해!”라고 절감할 필요는 없었다. 럭셔리 차든 허접한 차든 휘발유 또는 디젤을 태워 굴러가는 기본은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기차-자율주행차로 판이 완전히 바뀌면, 그래서 차량 운영비나 차를 운전하는 수고가 완전히 180도 바뀌면 너나 없이 “이건 사야 해!”를 외칠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대변화를 앞두고,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전기차 경쟁에서 너무 뒤쳐져 큰일이다” 소리를 듣던 현대차가 세계가 주목하는 E-GMP 플랫폼을 내놓으면서 3세대 전기차 경쟁에서 앞서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니 박수칠 일이다.

이래저래 코로나 대난리를 거치면서 한국의 경제적 위상이 크게 변할, 즉 세계 경제의 판이 크게 바뀔 전망이다. 그리고 그 주역은 코로나19 극복에서 가장 앞서나가고 있는 동아시아 나라들이다. 판이 바뀌기 전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부(富)의 순위가 거의 바뀌지 않지만, 판이 바뀔 때 순위 변동이 순식간에 일어나고, 그 순위 변동은 향후 최소한 10년은 이어지는 듯하다. 개인 경제 차원에서도 판 바뀜에 대비해야 할 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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