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2호 옥송이⁄ 2021.01.13 14:21:15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은 일상을 잠식했다. 각 분야의 경제적 충격이 이어졌고, 은행업계 역시 먹구름을 피하지 못했다. 실적하락을 비롯해 급격한 경제·구조적 변화를 겪었다. 이번 시리즈는 전염병 시국을 겪으며 달라진 은행들을 살펴본다. 2편은 규모를 줄이는 대신, 디지털화를 진행하고 있는 점포 풍경을 다룬다.
[관련 기사]
[코로나 속 은행권①] ‘변화보다는 안정’ … 은행권, 수장 연임이 대세
‘카메라’로 눈 맞춤 … 대면 수준의 원격 상담
“어떤 업무를 도와드릴까요?”
“적금에 새로 가입하려는데요, 적합한 상품을 추천받고 싶습니다”
대화는 여느 은행 창구와 같다. 다만, 소통 창구가 다르다. 고객과 직원은 화면을 사이에 두고 만난다. 특별한 소통이 이뤄지는 이곳의 이름은 ‘디지택트(디지털+콘택트) 브랜치’. 신한은행 표 미래형 혁신 점포 모델이다. 일반 영업점과 마찬가지로 대면 상담창구와 ATM도 있지만, 차별화된 특징은 단연 화상상담이다.
해당 시스템은 따로 마련된 부스에서만 가능하다. 2평 남짓 작은 공간이지만, 문으로 분리돼 외부와 차단된다. 덕분에 비대면 상담에 집중할 수 있다. 이뿐 아니라 대형 스크린과 키패드, 손바닥 정맥 인식장치, 신분증 및 인감 스캐너 등의 디지털 기기가 마련돼 각종 상담 자료들을 보면서 실명확인부터 업무 완결까지 은행 직원과 직접 대면하는 수준의 업무 처리가 가능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각각 다른 공간에 있는 직원과 고객이 원활한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는 이유는 카메라가 직원의 눈 역할을 잘 수행해서다. 부스 내에 설치된 여러 대의 카메라가 각도 별로 고객을 비춰, 비대면 상담 중 고객이 겪는 어려움을 빠르게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디지택트 브랜치는 금융 접근성 향상 및 새로운 고객 경험 제공을 위해 기획됐다”며 “단 2평 정도의 공간만 있으면 어디에든 설치할 수 있다. 서소문 지점을 시작으로 소형점포 및 무인화점포 등 다양한 채널에서 디지택트 브랜치를 확대하고, 가능 업무의 범위도 현재 예·적금 신규, 대출 상담 등 점차 넓힐 계획”이라고 밝혔다.
KB국민은행도 디지털 요소를 강화한 ‘디지털셀프점 Plus’를 선보인 바 있다. 해당 지점은 디지털 특화 ATM, 고객 스스로 은행 업무 처리가 가능한 스마트텔러머신(STM), 대형 디지털 사이니지(Digital Signage) 등 다양한 기기가 배치됐다.
ATM의 경우 자동 개폐 바이오인증 모듈을 장착했고, 42인치 대형 모니터를 탑재해 디지털 체험 요소가 강화됐다. 또 사용자의 이용 패턴 분석, 심리적 측면을 반영해 쉽고 빠르게 ATM을 이용할 수 있도록 거래 화면 구성을 전면 개편했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각 은행 간 유사한 형태의 ATM을 사용하고 있는 환경에서 벗어나 이용자 측면의 차별화된 금융 서비스 제공을 위해 업그레이드 된 ATM를 도입했다”고 말했다.
몸집 줄이는 영업점
고객 편의 확대를 위한 은행업계의 디지털화는 다양해지고 있지만, 이는 양날의 검이다.
각 지점은 과거 고객 영업의 최전선이었으나, 디지털 기술이 일부 역할을 대체하면서 점포 축소 현상은 더욱 빨라지고 있다. 지난해에만 5대 시중은행의 점포 216개가 사라졌다. 지난 2018년 38개, 2019년 41개의 영업점이 줄어든 것과 비교하면 5배가 넘는 수준이다.
게다가 지난해를 휩쓴 코로나19 사태로 은행 방문자는 급감했으나, 스마트폰을 이용한 비대면 거래는 더욱 늘어났다. 한국은행의 ‘코로나19 확산 이후 국내 지급결제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1~9월 모바일 기기를 통한 비대면 결제는 전년 동기대비 17% 증가했다.
반면 오프라인 거래 비중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한국은행의 분석에 따르면 소비자의 은행 창구 이용은(자금이체 기준) 지난 2018년 6월 8.8%에서 이듬해 같은 기간 7.7%, 지난해 6월에는 7.4%로 줄어들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매년 금융 디지털·비대면화가 가속화되는 데다가 지난해에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영업점 이용 수가 급감했다”며 “은행 입장에서는 비용이 많이 드는 점포를 점차 축소하는 것이 수순”이라고 밝혔다.
안정적 직종 대명사 옛말 … ‘명퇴’도 급증
영업점 축소에 따라 고용의 질 역시 해마다 떨어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2019년 4분기 기준 5대 은행의 정규직 수는 7만 463명으로, 1년 전보다 1.2%(840명) 줄어든 반면 비정규직 수는 같은 기간 7.9%(515명) 늘었다.
명예퇴직도 증가했다. 하나은행의 경우 만 15년 이상 근무하고 만 40세 이상인 일반직 직원을 대상으로 ‘준정년 특별퇴직’ 신청을 받은 결과, 지난해 12월 31일 기준 총 285명의 퇴직을 확정했다. 앞서 농협은행은 11월 말 진행한 특별퇴직 신청에 503명이 몰렸고, 이 가운데 496명이 퇴직했다.
한편, 영업점·인력 축소에 따른 우려도 나온다. 임금피크제 대상이 아닌 40대의 명예퇴직도 늘어나면서 고용안정이 흔들리는 것은 물론, 고령층의 금융서비스 이용 불편함도 제기된다.
앞서 지난해 7월 코로나19로 인해 시중 은행들이 급격히 점포를 축소하자,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 점포 폐쇄 자제를 권고한 바 있다. 그러나 결국 영업점 감소를 막진 못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점포 축소는 기존 은행 영업 시스템의 변화와 맞물린다”며 “이에 따른 우려도 있지만, 그럼에도 은행업계가 디지털·비대면화를 늘리는 까닭은 소비자들의 금융 패러다임 자체가 변했기 때문이다. 거점·복합 점포를 통한 지점 축소, 디지털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와 미래에 대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