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면 매력 없다? 자본 시장에서는 오답이다. 이젠, 착해야 돈이 따라온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이야기다. 과거에는 기업들의 ESG 경영 및 활동을 ‘사회공헌’, ESG 투자는 ‘착한 투자’ 정도로 인식했다. 당장의 이익과 무관해 보이는 ESG 투자는 수익과 반비례한다는 생각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란 듯 통념이 깨지고 있다.
펀드 평가사 모닝스타에 따르면 최근 세계적으로 ESG 투자 규모가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글로벌 ESG 펀드 시장 규모가 사상 처음 1조 달러(약 1099조 원)을 넘어섰고, 하반기에만 810억 달러가 유입됐다. 한국의 ESG 투자시장도 심상치 않다. 2020년 하반기 기준 ESG 펀드 순자산이 역대 최대규모인 7억 5700만 달러(약 8320억 원)에 도달했다.
ESG가 투자 대세로 떠오른 이유는 자본 시장이 개편되고 있기 때문이다. 방아쇠를 당긴 건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의 성명서다. 미국 내 주요 대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협의체 BRT는 지난 2019년 ‘기업의 목적에 대한 성명’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의 목적이 변화했음을 시사했다. 눈앞의 이윤 추구, 주주 이익 극대화를 뛰어넘어 고객·근로자·납품업체·지역 사회 등 모든 이해 당사자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이후 ESG가 유럽·미국을 필두로 세계 경제를 장악하면서, 지난해부터는 기업이 ESG를 무시하면 시장에서 축출되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행동력을 보이면서다. 미국의 대형 석유회사 ‘엑슨모빌’은 지난해 8월 다우존스 산업평균 지수에서 탈락했다. 이는 92년 만의 일이다. 채굴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오염을 줄이기 위해 주주들이 온실가스 감축을 촉구했으나, 사 측에서 반발하자 투자자들이 지분을 내다 판 결과다.
이뿐 아니라, ESG 리스크를 잘 관리하는 기업이 위기에서도 살아남는다는 사실이 여러 지표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이 2013~2017년 5년간 4128개 기업을 분석한 결과 ESG 성과가 우수한 기업은 영업 실적과 주가 하락 위험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도 마찬가지. 모닝스타가 ESG 펀드 745개를 포함한 유럽 펀드 4900개를 분석한 결과 10년 전에 있었던 ESG 펀드 중 72%가 생존했으나, 전통적인 펀드는 45.9%만 살아남았다.
‘착한 데다 매력적인’ ESG는 코로나19의 영향을 받아 더욱 날개를 펼칠 예정이다. 업계에 따르면 기후변화·환경보호 등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예상치 못한 위험에 대비해 ESG 투자시장으로 자금을 유입하는 속도가 가속화될 전망이다. 한국의 ESG 투자시장도 다양화되고 있다. 올해부터 국민연금은 본격적으로 국내 주식·채권 투자에 ESG 기준을 적용할 예정이며, 금융위원회는 지난 14일 코스피 상장사의 ESG(환경·책임·투명경영) 공시를 단계적으로 의무화하는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기업들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국민·신한금융은 탈석탄·적도원칙 등에 동참하고 있으며, 자산운용업계는 ESG펀드를 활발히 출시하고 있다. 기업들의 ESG 실천 정도는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상장기업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 및 등급’을 참조하면 된다. 지난해에는 금융사 가운데 KB금융그룹이 전부문 A+를 받은 바 있다. 해당 ESG평가는 KRX ESG Leaders 150, KRX Governance Leaders 100, KRX Eco Leaders 100, KRX ESG 사회책임경영지수(S), 코스피 200 ESG 지수 등 한국거래소의 ESG 테마지수 5종의 종목구성에 활용된다.
돈의 움직임은 바뀌었다. 어떻게 버는 지가 중요해졌다. 수익을 좇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윤리적이고, 착한 경영·투자를 하는지가 자본 시장에서 살아남는 키워드가 된 것이다. 기업, 그리고 소비자 모두 ESG에 입각하시라. 착한 경영, 착한 소비를 하면 복이 온다. 아니 이윤도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