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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그림 길 (71) 하선암, 중선암, 상선암] 봄 물소리 들으며 걷는 ‘여섯 신선의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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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94호 이한성 옛길 답사가⁄ 2021.03.04 13:52:07

(문화경제 = 이한성 옛길 답사가) 단양팔경에서 그다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곳이 하선암(下仙岩), 중선암(中仙岩), 상선암(上仙岩)이다. 이 세 곳을 한 마디로 일러 삼선암(三仙岩)이라 부르고 선암계곡, 선암골, 삼선구곡(三仙九曲)이라 한다. 단양팔경의 다른 곳들은 우람하거나 기묘한데 비하여 골짜기와 그곳에 있는 너럭바위로 이루어진 곳이다 보니 다른 곳에 있는 여느 계곡과 차별화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옛사람들에게는 신선이 사는 동천(洞天)으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듯하다. 오늘은 다산(茶山) 선생의 단양산수기(丹陽山水記)를 읽고 이 길을 찾아가 보련다.


다산은 1790년(정조 14년) 3월에 한림피선(翰林被選) 과정 문제로 해미현(海美縣: 충남 서산군)으로 정배되었는데 다행히 결백함이 밝혀져 유배처에 이른 지 6일 만에 풀려나게 된다. 이해 가을 울산으로 부친을 뵈러 갔다가 단양을 들리게 된다. 이때의 내용을 짤막한 기록으로 남긴 것이 단양산수기이다. 이때 다산이 들린 곳이 사인암, 운암, 삼선암이었다.
 

지도 1. 단양 옛 지도의 삼선암. 
지형도에서의 삼선암 위치. 

경술년 여름에 나는 이미 한림(翰林)을 사직하고, 바로 그해 가을에 울산부(蔚山府)로 아버님을 뵈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은 죽령(竹嶺)을 넘어 서울로 오려고 하였다. 그때에 진사[上舍] 오염(吳琰)이 운암(雲巖)의 별장에 은거(隱居)하고 있어, 나는 마침내 단양(丹陽)에서 운암(雲巖: 지도 1 단양 옛 지도 참조)으로 질러갔다. 동구(洞口)에 깎아 세운 듯한 석벽(石壁)이 보였는데 그 반듯한 품은 대패로 다듬어 놓은 듯하였으며, 그 아래는 맑은 연못을 이루어서 깨끗하고 고결한 모습이 마치 고야(姑射)의 신선과 같았다. 바위의 이름을 물으니 사인암(舍人巖)이라고 했다. 아, 이것이 이른바 사인암인가. 사인암이라면 이것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옛날에 승지(承旨) 오대익(吳大益)이 이 바위 꼭대기에서 나무학(木鶴)을 타고 백우선(白羽扇: 흰 새의 깃으로 만든 부채)을 잡고 밧줄을 소나무에 붙들어 매고 노복 두 사람에게 서서히 놓으라고 하여 맑은 연못 위에 내려왔는데, 그것을 부르기를 ‘선인(仙人)이 학을 타는 놀이(仙人騎鶴之遊)’라고 하였으니, 역시 기이한 일이다. 시내를 따라 몇 리쯤 가면 산의 기운이 더욱 맑고 돌은 더욱 고왔는데, 물이 내려오다가 갑자기 흘러가니 쌓여 있는 모래가 동그란 사장을 이루었다. 푸른 물과 모래톱이 구불구불 돌아 흐르고, 언덕 위에는 소나무와 향나무 등 기이한 나무들이 많았다. 그 나무 그늘 사이로 정자가 보일 듯 말 듯 하여, 그 이름을 물어보니 운암(雲巖)이라고 하였다. 이곳에서 그 근원지 끝까지 올라가면 이른바 삼선암(三仙巖)이었다. 내가 한창 즐거운 생각에 젖어 있을 때, 마침 내각(內閣)으로부터 빨리 역마를 타고 올라오라는 성지(聖旨)를 보내왔기 때문에 귀담(龜潭)과 도담(島潭)은 말 위에서 바라만 보았을 뿐이다. 옛사람이 산을 바라보기만 하여 그 흥취의 반쯤은 남겨 놓은 것을 미인을 반쯤 본 것에 비유하여, ‘얼굴은 아름다웠으나 그 자태는 기억할 수가 없다’고 한 것은 매우 훌륭한 비유이다.


庚戌夏. 余旣辭翰林. 遂以是秋謁告. 省覲于蔚山之府. 取路竹嶺. 將歸京師. 時吳上舍琰隱居于雲巖別墅. 遂自丹陽徑趨雲巖. 洞口見有石壁削立. 其平中準. 下爲澄潭. 粹然高潔. 若姑射之仙人. 詢之曰舍人巖也. 嗟乎. 此所謂舍人巖乎. 若舍人巖. 旣聞之矣. 昔吳承旨大益. 于此頂. 乘木鶴. 執白羽扇. 以繩繫松. 令二僕徐放之. 下至澄潭之上. 號之曰仙人騎鶴之游. 其亦奇矣. 沿溪行數里. 山氣益淸. 石益妍. 水旣來而忽去. 聚爲圓沙. 縈靑繚白. 回抱匼匝. 岸上多松栝奇木. 樹陰有亭屋隱約. 詢之曰雲巖也. 自此而窮其源. 卽所謂三仙巖也. 余方欣然有意. 會自內閣馳諭聖旨. 趣令乘傳上來. 若龜潭島潭. 唯於馬上望而見之而已. 昔人以看山而遺其半. 譬之於美人之窺半面. 雖美不足以記其姿. 眞善喩也.(기존 번역 전재)

그즈음에 썼을 다산의 시도 한 수 읽고 가자.

삼선암(三仙巖)에서
신녀가 갈아 놓은 비단돌이 많은데 玄女磨礱錦石多
백옥루 날아온 신선 오고가며 놀았으리 玉褸投弄似飛梭
새벽녘에 영귀가 유하 기운 마실 적에 靈龜曉吸流霞氣
한 가닥 붉은빛이 푸른 물결 비춘다네 一道紅光照碧波
(기존 번역 전재)

 

겸재 작 ‘하선암’. 

이제 삼선구곡 길을 차를 이용하여 가 본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에는 단양터미널에서 단양고수대교까지 와서 모여티, 별천행 버스를 이용하여 삼선계곡 입구인 가산 1리에서 하차한다. 단양팔경에 포함된 계곡의 명소는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이지만 이 계곡에는 또 다른 명소가 있다. 입구에는 소선암(小仙岩), 계곡을 오르는 길목에는 은선암(隱仙岩)이 있는데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에는 가은암(可隱岩)이라 했다. 골짜기에 살짝 숨어 있는 모습을 그렇게 부른 것이리라. 또 하나 상선암 상류에는 특선암(特仙岩)도 있으니 적어도 이 골짜기에는 신선이 살 만한 곳이 여섯 군데는 된다는 말이다.

 

선암골 생태유람길 안내도. 사진 = 이한성 옛길 답사가

지자체에서는 이곳을 비롯하여 42km에 이르는 생태유람길을 열었는데 이곳 선암골 생태유람길은 물소리길이다. 계곡을 끼고 연결한 길로 가볍게 백패킹하고 봄날 나서면 더할 나위 없을 길이다. 물소리 들으며 흙길, 데크길, 물가길을 걷게 되는데 상, 중, 하선암에 새겨진 각자(刻字)를 찾아보며 걷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하선암. 사진 = 이한성 옛길 답사가

겸재 그림으로는 하선암만 남겨져

이제 하선암으로 출발이다. 이곳을 그린 겸재의 그림에는 하선암(下仙岩)이 전해진다. 2003년에 나타난 겸재의 13번째 화첩 구학첩(邱壑帖)에 실려 있다 한다. 연구자들에 의하면 구학첩은 겸재의 하양현감 시절(1721~1726) 당대 대표 서화 수장가였던 김광수(金光遂)를 위해 영남과 사군(단양, 영춘, 제천, 청풍)을 그린 화첩으로 추정하고 있다. 상선암과 중선암은 일실되었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그리지 않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 전해지는 그림은 하선암뿐이다.

 

단양군수 이름을 새긴 각자. 사진 = 이한성 옛길 답사가

그림 하선암의 모습은 지금의 모습과 다름이 없다. 커다란 바위가 웅크린 모습으로 자리 잡고 아래로는 단(壇)과 같은 바위, 다시 아래로는 평탄한 너럭바위가 펼쳐진다. 옆으로 흐르는 계곡수는 여울과 낙차를 두어 흐르니 시원한 계곡수의 소리는 절로 속세와 거리를 두게 한다. 속리(俗離)란 말이 자연스러워지는 순간이다. 본래 웅크린 바위의 모습이 미륵 같다 해서 불암(佛岩)이었다는데 성종 때 단양군수 임재광이 선암(仙岩)으로 고쳤다 한다. 이 이야기는 명종 때 단양군수로 부임한 퇴계 선생의 단양산수가유자속기(丹陽山水可遊者續記 - 줄여서 단양산수기)에 잘 남아 있다.

남천(南川) 위에 부처바위(佛巖)란 것이 있으니, 가장 기이하나 역시 임후(林侯- 임 군수)의 기문(紀文)에 나타나 있다. 내가 일찍이 찾아가 보았는데 빈 골짝으로 들어가 맑은 물을 건너서 높은 산에 올라 끊어진 산기슭에 다다라 보니, 사람으로 하여금 아득하게 속세를 버릴 생각이 나게 하였다. 산을 내려와 구름과 나무 아래의 맑은 내와 흰 돌 사이 걷기를 또 6, 7리 만에 부처바위에 이르렀다. 바위가 양산(兩山) 곁 붉은 벼랑 아래 있는데, 시내 위에 백여 보의 바위가 깔려 있는데 흰 눈이 덮이고 흰 담요가 첩첩으로 쌓인 것 같다. 그렇게 모두 세 층계인데, 물이 그 사이로 흘러 굽이돌며 요란하게 소리를 내면서 폭포가 아래층 아래로 떨어져, 합하며 하나의 깊고 넓은 웅덩이가 되니, 푸르고 맑기가 거울과 같다. 피라미 10여 마리가 뛰어놀고 그 위에는 석대(石臺)가 천연적으로 이루어져 평탄하고 윤택하여 앉아서 고기가 노는 것을 구경할 만하다. 그 동쪽에 여러 바위가 서로 기대 서 있는 것이 보기 좋게 담아 놓은 음식과 같고, 그 아래는 텅 비어 집 모양이 되었으니 비를 피할 만하다. 바위의 사면(四面)에는 봄이면 철쭉꽃(躑躅)이 타는 노을 같고 가을이면 단풍(丹楓)이 찬란한 비단 같으니, 바위는 진실로 기이한 경치 중에서 더욱 기이하다. 임후가 불(佛) 자를 고쳐 선(仙) 자로 대신한 것은 매우 좋으나, 다만 그 돌 형태를 형용한 것이 너무 실상에서 벗어났으니, 아마 임후는 일찍이 눈으로 보지는 못하고 남이 자랑하는 말만 듣고, 드디어 붓을 들어 쓴 까닭인가 한다. 아아, 내가 얻은 바가 이에 이르러 드디어 스스로 족한 마음이 생기는 까닭은 내가 넓지 못함이리라.

南川之上. 有曰佛巖. 最奇. 亦見於林侯之記. 余嘗往而尋焉. 入空谷涉淸流. 登高山臨絶壑. 令人窅然有出塵之想. 下山而行雲木之下淸溪白石之間又六七里. 乃至佛巖. 巖在兩山之夾丹崖之下. 盤礴于溪上百餘步. 若白雪平鋪. 素氈疊積者. 凡爲三層. 而水流其間. 縈廻汨. 而瀑落於下層之下. 匯爲一泓. 綠淨可鑑. 鯈魚十數尾. 潑剌而游. 當泓之上. 石臺天成. 平坦膩滑. 可坐而觀魚也. 其東有衆石相倚而立. 如飣餖然. 空其下爲广. 可避雨也. 巖之四際. 春則躑躅如蒸霞. 秋則丹楓如爛錦. 巖固異境之尤也. 林侯之改佛爲仙. 甚善. 第其狀石之態. 太過其實. 豈侯未嘗目覩. 而聞人詫異之說. 遂信筆書之之故耶. 噫. 余之所得. 至是而遽有自足之心者. 是余之未廣也.(기존 번역 전재)

 

이름을 새긴 각자. 사진 = 이한성 옛길 답사가

퇴계 선생은 임 군수가 가 보지도 않고 불암(佛岩)을 선암(仙岩)으로 고쳤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필자도 하선암을 보면 부처(佛)도 신선(仙)도 연상되지 않는다. 그저 커다란 바위가 웅크린 모습으로 보인다. 형태는 어찌 되었든 이제는 신선이 살만한 곳으로 여기는지 상, 중, 하 삼선(三仙)이 되었으니 많은 사람의 입이 대세(大勢)가 된 셈이다.

 

‘명월소조’ 각자. 사진 = 이한성 옛길 답사가

하선암에선 몇 개의 각자(刻字)가 눈에 띈다. 전서(篆書)로 쓴 붉은 주사(朱砂)빛 글씨 明月紹竈(명월소조)는 특이하다. 하선암 너럭바위를 동자(童子)가 신선을 위해 단약(丹藥)을 다리는 부뚜막으로 여긴 것일까? 밝은 달과 이은 부뚜막이라니. 을축년 여름(乙丑 夏) 몇몇 동행과 다녀간 단양 원님(丹陽 倅) 각자도 보이고, 잘 나가는 집안 풍양조씨 형제로 보이는 조구하(趙龜夏), 조봉하(趙鳳夏) 이름 자도 보인다. 이곳을 다녀가며 시 한 수 남긴 이들도 많았다. 추사의 시 한 편 읽는다.

하선암(下仙巖)
그늘진 긴 골짜기 뻗은 행랑 같고 陰陰脩壑似長廊
흐르는 물에는 해와 달빛 감도네 流水浮廻日月光
한 점 검은 티끌 붙지 못하는군 一點緇塵渾不着
흰 구름 핀 심처에 향불 사르고파 白雲深處欲焚香

 

중선암의 각자. 사진 = 이한성 옛길 답사가

다음은 중선암이다. 중선암이란 이름은 효종 때 문신이며 장동 김씨 육창(六昌)의 백부(伯父) 김수증이 명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에서 쌍용이 승천하였다 하여 쌍용폭이라고도 한다. 옥렴대(玉簾臺)라 부르는 바위에는 四郡江山 三仙水石(사군강산 삼선수석)이란 큰 글씨의 각자가 새겨져 있다. 단양 관찰사 윤헌주가 1717년(숙종 43년)에 조성한 것이라 한다. 사군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충청도의 명승 단양·영춘·제천·청풍을 일컫는 말이다. 설명은 줄이고 안내판 사진으로 대신하려 한다. 중선암에서도 추사의 시 한 편 읽고 가자.
 

중선암 각자에 대한 해설. 사진 = 이한성 옛길 답사가

중선암(中仙巖)
백궁석 첩첩 책상이 되고 百弓石作疊書床
선로와 표낭도 펼칠 수 있겠네 可置宣罏與縹囊
더욱이 성근 솔과 푸른 음영 어울어지니 更有疎松交翠影
한 묶음의 문자가 계곡에 써지네 一編文字寫溪光
(‘완당전집’에서)

청풍부사를 지낸 농암 김창협도 시 한 수 읊었다.

중선암(中仙巖)의 석양 경치 (中仙巖夕景)
깨끗한 절벽은 눈서리처럼 희고 鮮崖皎雪霜
옛 담(潭)은 금벽처럼 맑구나 古潭澄金碧
떠나려다 해도 맑은 빛 사랑하는데 欲去戀淸輝
굳굳히 먼 구름 낀 저녁 亭亭遠雲夕

 

상선암. 사진 = 이한성 옛길 답사가
상선암으로 가는 길 안내판. 사진 = 이한성 옛길 답사가

마지막 코스로 개울길을 따라 상선암(上仙岩)으로 간다. 표지판은 1km 남짓 거리임을 알리고 있다. 이곳에는 공영주차장과 야영장이 갖추어져 있다. 실비이지만 사용료도 받는다. 표지판을 따라 물가로 가면 바위들과 함께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과 만난다. 노서(魯西) 윤선거는 이 계곡을 호탄(虎灘)이라 불렀다.

 

상선암 계곡 물. 사진 = 이한성 옛길 답사가

이곳은 한수재(寒水齋) 권상하(權尙夏, 1641~1721)와 연관이 있는 곳이다. 한수재는 청풍에 살았는데 한 때는 이곳에 초가정자를 지었다고도 한다. 그런 인연으로 이곳을 상선암이라 이름 붙였나 보다.

한수재는 김원행을 소개할 때 살펴본 바 있는 호락논쟁(湖洛論爭)에서 충청도를 대표하는 학자였다 한다. 그러니 아마도 지조 굳고 고지식했을 것이다.

 

상선교. 사진 = 이한성 옛길 답사가

개울가 바위에는 여전히 여러 사람의 이름자도 보인다. 유독 풍양 조씨들이 많다. 삼선계곡과 무슨 인연이 있었던 것일까? 개울에는 아치 모양의 상선교가 있는데 운치 없는 시멘트 다리라서 신선이 살기에는 뭔가 어설프다.

상선암은 단양의 명산 도락산(道樂山, 964m) 산행 출발 지점이라서 봄 가을에는 등산객 발길이 잦은 곳이기도 하다. 삼선계곡과 도락산은 인간의 희노애락(喜怒哀樂)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인간의 얽히고설킨 이야기는 소개할 일이 없다.

 

상선암의 이름 각자. 사진 = 이한성 옛길 답사가

끝으로 상선암과 인연 맺고 살았다는 한수재 문집 속 시 한 수 읽으며 글을 마무리한다.

선암(仙巖)의 귀로(歸路)에서 (仙巖歸路. 口占寄丹丘遊伴)
백옥 바닥에 비단 병풍 둘렀다 白玉鋪陳錦繡屛
무지갯빛 눈색이 거울 속에 밝았네 虹光雪色鏡中明
돌아오니 요대의 꿈 깨어난 듯하고 歸來如罷瑤臺夢
여전히 선풍은 소매 가득 맑다네 尙有仙風滿袖淸

(다음 회에 계속)
 

<이야기 길에의 초대>: 2016년 CNB미디어에서 ‘이야기가 있는 길’ 시리즈 제1권(사진)을 펴낸 바 있는 이한성 교수의 이야기길 답사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매달 마지막 토요일에 3~4시간 이 교수가 그 동안 연재했던 이야기 길을 함께 걷습니다. 회비는 없으며 걷는 속도는 다소 느리게 진행합니다. 참여하실 분은 문자로 신청하시면 됩니다. 간사 연락처 010-2730-7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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