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7호 옥송이⁄ 2021.03.24 15:46:52
‘유통과 부동산의 분리’. 지난해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달라진 유통산업을 요약하자면 이러하다. 대관절 유통이 부동산과 무슨 상관이냐 싶겠지만, 목 좋은 곳에 대형마트나 백화점, 로드숍 등이 즐비했던 것을 떠올리면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대신 상권은 디지털로 옮겨가고 있다. 이로 인해 유통 체계는 물론 인력, 매장 구성 등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이번 시리즈는 시장의 변화와 유통사들의 각기 다른 대응책을 살핀다. 1편은 뷰티 업계의 상황을 짚어본다.
달라진 소비 습관 … 오프라인 매장의 위기
새로운 BC·AD가 생겼다. 기존의 BC가 서력기원 전을, AD가 서력기원 후를 뜻했다면 지난해 언급된 BC·AD는 코로나19가 기준이다. 미국 뉴욕타임즈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BC를 ‘코로나 이전’, AD를 ‘코로나 이후(After Disease. 질병 이후)’로 구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단순히 우스갯소리로 치부하기엔 시대가 많이 변했다. 특히 급속도로 발전한 언택트 소비로 인해 오프라인 위주의 유통업계는 위기에 직면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창립 113년을 맞은 미국의 고급 백화점 ‘니만마커스’가 코로나 여파를 피하지 못한 채 파산 신청을 냈다. 같은 해 9월 뉴욕 기반의 할인매장 센추리21 역시 파산을 신청했다.
유통의 위기는 국내도 마찬가지다. 특히 촘촘한 오프라인 망을 통해 매출을 견인해온 뷰티 업계의 타격이 컸다. 전조증상은 코로나 발발 직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올해 2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20년도 가맹사업 현황’에 따르면, 2019년 말 기준 화장품업종의 개점률은 1.8%로 주요 도소매업종 중 가장 낮았다. 반면 폐점률은 28.8%로 가장 높았다.
해당 시기 총 화장품 가맹점 수인 2876개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개점 점포 수는 51.8개, 폐점 수는 828.3개다. 지점 하나를 열 때 16개의 점포가 문을 닫은 셈이다. 코로나 이후 점포 수는 더욱 줄어들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가게 감소는 인력과도 맞물린다. 문화경제가 금융감독원의 전자공시를 살펴본 결과, 뷰티 업계의 인력이 축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아모레퍼시픽의 지난해 12월 31일 기준 직원 수는 5830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같은 기간 6064명 대비 234명 줄어든 수치다. 애경산업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2월 31일 기준 직원 수는 857명으로, 전년 934명에 비해 77명 감소했다. 반면 LG생활건강의 인력은 지난해 말 4638명으로, 전년 동기 4567명보다 71명 늘어났다.
LG생활건강, 코로나 속에서도 이익 증가
LG생활건강의 2020년 말 직원 현황을 보면 마케팅·판매, 연구 개발·생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년보다 인력이 고루 늘어났다.
그 이유는 실적과 맞물린다. 코로나의 상황에서도 LG생활건강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지난해 이 회사는 매출 7조 8445억 원, 영업이익 1조 2209억 원, 당기순이익 8131억 원을 달성했다. 이는 각각 전년 대비 각각 2.1%, 3.8%, 3.2% 증가한 수치로,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하고 16년 연속 성장했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해 지속적인 고강도 봉쇄 조치와 그에 따른 극심한 경제활동 위축으로 전세계적으로 소비심리가 크게 악화됐다”며 “화장품 시장은 오프라인 매장 영업 중단, 관광객 수 급감의 영향으로 크게 역신장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나 LG생활건강은 뷰티, 생활용품, 음료 3개 사업 모두 국내 시장 업계 1위를 달성했다”며 “특히 전체 화장품 매출 5조 5524억 원, 영업이익은 9647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글로벌시장에서 선전하며 위기를 최소화한 결과”라고 말했다.
실제 LG생활건강의 뷰티 실적은 럭셔리 화장품의 호조에서 기인한다. 럭셔리 화장품은 주로 중국·미국 등 글로벌시장에서 약진했는데, 특히 중국에서는 일찍이 공들여온 디지털 채널의 성과에 힘입어 4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에 비해 41% 늘어났다. 연간 기준으로는 21% 상승했다. 광군제 실적을 통해서도 입증된다. 광군제는 온라인을 통해 상품이 판매되는 중국 최대 쇼핑 축제다.
지난해 11월 진행된 중국 광군제에서 이 회사의 6개 럭셔리 브랜드 매출이 15억 5000만RMB(약 2600억 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174% 신장했다. 브랜드 ‘후’의 경우 광군제 매출이 지난해 대비 181% 신장하며 럭셔리 화장품 브랜드 매출 순위에서 에스티로더, 랑콤에 이어 3위에 올라서며, 뷰티브랜드 10억RMB(약 1680억 원) 브랜드 클럽에 입성했다.
뷰티 사업 외에 생활용품 분야에서도 ‘닥터그루트’, ‘벨먼’ 등 프리미엄 브랜드에 집중하고, 디지털 채널을 강조했다. 이커머스 시장에서 직영몰을 확대하고, 온라인 마케팅 활동을 강화하고 라이브 방송 등을 적극 활용했다.
글로벌·디지털·고객 대응 강조
글로벌·디지털 두 가지 축으로 좋은 성과를 거둔 LG생활건강의 전략은 올해도 이어진다.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올해 3대 중점 추진사항으로 글로벌사업 확장, 기본기 강화, 고객과 시장 변화에 선제 대응을 꼽았다.
차 부회장은 “회사의 외형이 커질수록 기본기를 탄탄하게 다져야 한다”며 “국내외에서 일관된 품질을 구현할 수 있도록 RQM(안심품질 운영시스템)을 구축·확산해 품질을 향상시키고, 고객 대응 강화를 위해 유통업체의 고객 접점까지 관리 범위를 확장해 글로벌 차원의 관리 프로세스를 확대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진화하는 고객을 감지해 시장의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역량과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며 “MZ세대에게 익숙한 라이브커머스의 실행력을 강화해 디지털마케팅 역량을 키워나가는 동시에, 디지털화도 착실히 준비해 고객 가치 극대화와 업무 방식 고도화를 이루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2021 뷰티 키워드, 오프라인 힘 빼고 디지털 힘주기
한편, 회사 사정이 직원 사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코로나의 영향으로 영업이익이 반 토막 나자 희망퇴직 등을 통해 인력 구조조정을 감행했다. 애경산업 역시 영업이익이 절반 이상 줄어들자 인력 축소로 이어졌다.
다만 올해는 반등 출구를 찾는 모양새다. 뷰티 업계의 올해 성장 전략은 ‘오프라인 힘 빼기, 디지털 힘주기’로 요약된다. 김승환 아모레퍼시픽그룹 대표이사는 지난해 12월 전략 간담회에서 “오프라인 레거시(유산)를 내려놓겠다”고 했다. 오프라인 매출이 급감하면서 온라인·디지털로 마케팅 방향을 바꾼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니스프리 중국 매장 감축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지난해 이미 중국에서 이니스프리 매장 141개를 폐점했고, 올해는 170개를 줄인다.
애경산업도 디지털 채널에 집중한다. 애경산업 측은 “지난해 영업이익은 감소했지만, 디지털 채널 실적은 전년대비 27% 늘어났다. 올해는 포스트코로나 성장동력 마련을 위해 연구개발 및 마케팅 투자에 나선다”며 “특히 해외 전자상거래 업체와 손을 잡는다. ‘아마존’을 비롯해 동남아 최대 온라인 커머스 ‘쇼피’에 공식 진출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