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7호 옥송이⁄ 2021.03.30 09:22:27
‘유통과 부동산의 분리’. 지난해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달라진 유통산업을 요약하자면 이러하다. 대관절 유통이 부동산과 무슨 상관이냐 싶겠지만, 목 좋은 곳에 대형마트나 백화점, 로드숍 등이 즐비했던 것을 떠올리면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대신 상권은 디지털로 옮겨가고 있다. 이로 인해 유통 체계는 물론 인력, 매장 구성 등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이번 시리즈는 시장의 변화와 유통사들의 각기 다른 대응책을 살핀다. 2편은 기존 매장을 물류 센터화하며 배송 경쟁력 강화에 나선 롯데마트다.
[관련 기사]
[격변 유통가 ①] ‘K뷰티의 눈물’ 속 LG생활건강만 고용 늘린 이유는?
코로나로 부상하는 ‘다크 이코노미’
코로나가 잠식한 시대. ‘불 꺼진 슈퍼마켓’이 위기를 빗겨날 해결책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른바 다크스토어(dark store)다. 물론, 불을 껐다는 것이 운영종료를 뜻하는 건 아니다. 겉에서 보기엔 매장이나 홀의 불을 끈듯하지만 실은 내부를 창고화해 소규모 물류거점으로 활용하는 개념이다.
이를테면 서울 시내에 위치한 한 소매점이 코로나로 운영이 어려워지자, 매장에 손님은 받지 않되 전자상거래를 통해 배송 위주로 사업을 이어나가는 식이다. 즉 점포를 온라인 거래용 포장·배송 시설로 재활용하는 것이다. 이 경우 고객 응대 비용은 줄어들지만, 도심 한복판이라는 지리적 이점이나 설비 등 기존 인프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해외에서는 매장 없이 창고만 있는 소매점, 주방 등의 다크 이코노미(dark economy)가 새로운 사업으로 부상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월마트도 이 개념을 도입했다. 대규모 물류센터를 새로 구축하지 않고, 미국 전역 4800여 개 점포를 배송 기지로 사용했다. 그 결과 지난해 5240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며 온·오프라인 모두 잡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롯데는 물류 실험 중 … “고객 냉장고 될게요”
‘마트계의 교과서’로 불리는 월마트의 성공에 힘입어 국내에서도 다크스토어의 기류가 보인다. 특히 롯데마트는 지난해부터 매장 변화를 단행하며 다크스토어를 도입했다. 다만, 매장 전체를 완전히 창고화한 것은 아니다. 매장 일부만 창고화했다 해서 ‘세미(semi. 절반)다크 스토어’다.
롯데마트 잠실점과 구리점은 세미다크 스토어가 적용된 점포다. 고객들이 직접 물건을 고르고 계산할 수 있는 일반 매장은 그대로다. 그러나 매장 뒤쪽에는 고객이 출입할 수 없는 비밀 공간이 숨겨져 있다. 롯데마트의 다크스토어는 오직 패킹(포장)과 배송만을 위한 곳으로, 최첨단 자동화 설비도 갖췄다.
방식은 이와 같다. 잠실·구리점 근방에 사는 고객이 온라인으로 상품을 주문하면, 해당 지점의 피커(상품을 담는 직원)가 식료품·수산물 등의 코너를 돌며 대신 장을 본다. 이후 이 장바구니가 다크스토어 구간에 도착하면 풋월·AMR 등 기계화된 분류·패킹 절차를 거쳐 고객에게 배송된다.
풋월(Put wall)은 이미 아마존에서 효율성을 검증받은 자동패킹 시스템으로, 매장에서 1차 피킹한 상품을 집결하면 한 공간에서 상품 스캔을 통해 지역별·고객별 분류를 직관적으로 수행한다. AMR(Autonomous Mobile Robots)은 자율이동 로봇을 적용한 패킹 자동화 설비다. 이 같은 절차를 거쳐 고객이 상품을 받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최대 한 시간 30분에 불과하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세미다크 스토어는 매장을 매장 배송 거점화를 본격화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라며 “배송 전 단계인 패킹에 주안점을 뒀다. 이는 대형마트가 오프라인 판매뿐 아니라 온라인 주문처리 능력까지 넓힐 수 있는 형태로, 온라인 그로서리(식료품) 시장 성장에 대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해 세미다크 스토어를 처음 도입한 잠실점과 구리점에 이어, 올해는 총 29개까지 확대할 예정”이라며 “해당 점포가 확충되면 온라인 주문 처리량이 지난해 대비 5배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매장을 ‘배송거점’으로 … 온라인으로 사업 역점 옮긴다
이 회사가 매장의 뒤편을 개조까지 해가면서 다크스토어 개념을 도입한 이유가 뭘까. 현재 롯데는 ‘전략 수정 중’이라서 그렇다. 최근 ‘국내 유통 공룡 기업’이라는 입지가 흔들리면서, 과감하게 메스를 든 것이다. 오프라인 대신 온라인으로 사업 역점을 옮기는 것이 골자다.
롯데쇼핑은 코로나 사태 등의 영향으로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감소했다.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은 16조 762억 원으로, 전년 대비 8.8%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3461억 원으로 19.1% 줄어들었다. 그나마 롯데마트가 영업손실을 만회했으나, 이는 지점 감축의 영향으로 분석된다.
이 같은 악화일로의 상황에서 새로운 경쟁자까지 등장했다. 압도적인 풀필먼트 서비스를 통해 코로나특수를 누린 쿠팡 등의 이커머스 기업들이다. 이에 롯데마트는 기존 경쟁자인 마트 업계는 물론 이커머스까지 동시에 견제하기 위해 ‘매장의 배송 거점화’를 해법으로 택했다. 판매의 비중을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으로 늘리되, 따로 배송센터를 짓지 않고 기존 점포를 활용하는 것이다.
해당 전략이 ‘바로배송’이다. 목 좋은 곳에 위치한 롯데마트의 입지를 활용해 신속하게 배달하겠다는 계산이다. 세미다크스토어와 스마트스토어가 바로배송을 실현하기 위한 양 축이다. 세미다크스토어가 매장 일부를 물류 센터화했다면, 스마트스토어는 매장 전체에 천장 레일이나 수직 리프트 등의 설비를 갖춰 바로배송에 유리하게 만들었다. 단, 세미다크스토어의 투자비가 스마트스토어 대비 5분의 1 수준으로 저렴해, 매장 거점화를 위해 중점 활용될 예정이다.
바로배송의 특징은 접수하자마자 배송된다는 점인데 이를 위해 배송권역을 반경 5km로 설정했다. 주문 30분 이내 포장이 완료되며, 고객은 1시간~1시간 30분 만에 배송받을 수 있다. 장점은 명확하다. 마트 인근 지역 주민은 당일에 상품을 바로 받을 수 있어 새벽배송보다 간편하고, 무료 배송에 충족하는 최소 주문 금액(2만 원)도 기존 점포 배송인 4만 원보다 저렴하다.
아직 전국적으로 시행되진 않았으나, 바로 배송은 좋은 실적을 거두고 있다. 스마트스토어가 도입된 광교점의 경우, 지난해 5월부터 12월까지 온라인 바로배송 매출이 314.7% 신장했다. 중계점은 지난해 4월부터 5월까지 한 달간 일일 주문 건수가 전년보다 175.6% 상승했다. 특히 신선식품의 온라인 주문 상품 구성비가 기존 35%보다 10%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바로 배송은 ‘고객의 냉장고가 되겠다’는 취지다. 식료품은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구매하는 게 스마트한 소비”라며 “냉장고를 채워두지 않아도 필요 시 이 서비스를 활용하면 가장 신선한 상태의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현재 일부 점에서만 ‘바로배송’이 가능하지만, 점차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