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1호 옥송이⁄ 2021.05.26 11:15:43
“영수증은 버려주세요”. 자주 듣는 소리다. 습관적으로 종이영수증을 받기도 하지만 수치를 듣고 나서도 그럴 수 있을까? 환경부에 따르면 영수증 발급비용은 약 119억 원, 쓰레기 배출량은 1079톤에 달한다.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2641톤이며, 이는 20년산 소나무 94만 3119그루를 심어야 줄일 수 있다. 지나친 종이 사용 역시 환경에 위배된다는 정서가 커지면서, ESG를 강조하는 기업을 중심으로 ‘페이퍼리스’가 진행되고 있다. 2편은 업무 처리 과정에서 종이를 없애고 있는 유통업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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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8월. 국내 굴지의 유통사가 한데 모였다. 회동 목적은 ‘종이영수증 없애기’.
모임의 주최자는 정부다. 이날 환경부, 기획재정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3개 부처와 13개 유통 회사가 종이 영수증 감축 협약을 체결했다. 정보통신 발달에 맞춰 종이 사용을 줄여 환경을 보호하고, 업체 부담을 줄이는 것이 정부 측이 밝힌 취지다.
하지만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알 법한 대형 유통 회사들을 콕 집은 데는 이유가 있다. 이 업체들이 배출하는 종이 영수증이 국내 전체 발급량의 11%를 상회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의 생활과 밀접한 유통사부터 변화를 주면 소비자들도 동참하게 될 것이란 판단이다.
협약 이후 관계부처는 유통사들이 영수증을 줄일 수 있도록 제도적, 기술적으로 지원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부가가치세법 시행령’을 개정해 종이 영수증 발급 의무를 완화했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전자 영수증 시스템 간 상호호환성을 높이기 위해 표준 개발에 착수했다. 이에 따라 유통업체들도 관행적으로 종이 영수증을 발행하기보단 고객 선택에 맡기는 추세다.
신세계의 모바일 전환 ‘성공적’
정부가 나서면서 모바일 등의 전자영수증 발행이 늘어나고는 있으나, 대중적이진 않다. 아직 종이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신세계그룹은 해당 흐름에 앞서 2017년부터 ‘모바일 영수증’을 발행해 자사 고객의 종이 영수증 사용량을 점차 줄여왔다.
신세계그룹은 그해 1월 전국 이마트 및 스타벅스의 총 1236개 매장부터 ‘종이 영수증 없는 점포’를 실시했고, 이어 신세계백화점 13개와 이마트에브리데이 202개를 4월부터 합류시켜 총 1451개 매장부터 전자 영수증을 도입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종이영수증을 발급하는 동시에 버려지는 비율은 60%에 달했다. 자원낭비와 폐기물 처리 등의 환경 비용 문제도 자연스럽게 뒤따랐다. 신세계그룹이 일찍이 전자 영수증을 도입하게 된 배경 가운데 하나다.
고객 정보 보호와 유해성도 전자 영수증을 도입하게 된 배경이다. 종이 영수증에는 카드 번호가 표기돼 개인정보가 유출될 우려가 있다. 카드 번호나 유효 기간 일부가 별 표시로 가려지지만, 버려진 영수증 2~3장만 조합하면 카드 번호를 유추할 수 있어 범죄 악용 위험이 따른다.
또한, 영수증의 용지는 일반적으로 ‘비스페놀A(BPA)’가 발색 촉매제로 사용되는데, BPA는 체내에 위험한 환경호르몬이다. BPA는 동물이나 사람의 체내로 유입되면 내분비계의 기능을 방해하거나 호르몬 이상을 일으킨다. 유방암·비뇨체계이상·성조숙증·유산 등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신세계그룹은 자체 구축한 모바일 앱에서 ‘종이 영수증 미출력’을 선택한 고객에게 앱을 통해 모바일로 영수증을 전송하는 식으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그 결과 모바일 영수증 캠페인 1주년을 맞은 2018년에는 신세계백화점·이마트·스타벅스·이마트에브리데이·신세계푸드 등 5개 계열사의 고객 160만 명이 동참해 총 5000만 건의 종이 영수증이 줄어들었다.
캠페인 도입 4년을 맞은 현재는 성과가 더욱 큰 폭으로 드러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마트의 경우 올해 1월 기준, 전자 영수증만 받는 고객이 총 250만 명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 동기 약 86만 명 대비 190% 증가한 수치다. 해당 캠페인에 동참하는 소비자들이 매년 증가하면서, 현재 이마트에서 발급되는 영수증 가운데 약 20%가 모바일로 발급되고 있다.
이마트 관계자는 “장을 보는 소비자 5명 중 1명이 종이 대신 모바일 영수증을 발급받고 있는 수준이며, 작년 한 해에만 이마트는 5000만 건의 종이 영수증을 절감했다”며 “영수증 1장을 50㎝로 가정하고 5000만 장을 이어 붙이면 총 2.5만㎞다. 지구 반 바퀴를 돌고도 남는 거리다. 현재 모바일 영수증을 지향하고 있으며, 앱이나 매장 고지물로 고객들에게 캠페인을 알리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은 ‘간편 결재’ 실험 중
현대백화점은 사내 보고 문화 개선을 통해 페이퍼리스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기존 2만여 개에 달하던 결재판을 폐기하고 ‘간편 보고 시스템’을 도입해,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종이 낭비도 줄이겠다는 계산이다. 지난달 도입된 이 시스템의 특징은 비대면 모바일을 통해 단 5~6줄의 문장이면 결재 문서를 대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 측 관계자는 “간편 보고 시스템은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MZ 세대 직원들을 고려해 구축하게 됐다”며 “형식 위주의 대면 보고에서 벗어나 PC나 모바일 등으로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스템은 크게 ‘간편 결재’와 ‘보고톡’으로 구성됐는데, 간편 결재는 품의서나 내부 공문, 근태원 등의 양식 대신 간단한 문장으로 보고를 끝낼 수 있다. 또한, 일반 메신저의 쪽지 보내기처럼 결재받을 사람과 제목, 내용만 적을 수 있어 불필요한 내용을 넣을 필요가 없다. 보고톡은 대면 보고 축소를 위해 비대면으로 업무 내용을 보고하거나 공유하는 대화방이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간편 결재는 허례허식보다는 실용주의를 추구하는 MZ 세대의 특성을 반영했다. 이들이 보고서 양식을 채우는 데 소비하는 시간을 줄이고, 업무 본연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시도”라며 “이번 간편 보고 시스템 도입으로 460여 개의 기존 보고서 양식을 간편 결재로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