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2호 윤지원⁄ 2021.06.12 09:59:52
SK그룹이 미래를 향해 빠르고, 폭넓게 진화 중이다. 문화경제는 최근 주목받는 몇몇 계열사를 중심으로 SK그룹 진화에서 강조되는 주요 키워드와 방향성, 그리고 SK그룹이 도달할 미래를 시리즈로 전망해본다.
■ 'SK의 진화' 시리즈
① ‘열일하는 지주사’ SK㈜와 최태원의 '파이낸셜 스토리' 오디세이
② SKIET : ‘전기차 화재 0건’ 명품 분리막 글로벌 1위 … IPO 흥행 신기록 일궈
③ 원스토어 : SKT 자회사 상장 1호…애플·구글 넘어설 토종 앱 마켓
④ SK하이닉스 : 10년 반전 일군 D램 강자, '파운드리 2배' 확대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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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9일부터 11일까지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 열리는 국내 최대 배터리 산업 전시회 ‘인터배터리’(Inter Battery)에 참가하는 SK이노베이션의 부스 입구에는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 모델들이 배치됐다. 모두 한국과 북미 시장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차세대 전기차 모델이다. 올해 SK이노베이션 부스의 크기는 지난해보다 1.6배 더 커졌으며, 그만큼의 존재감과 자신감이 부각되고 있다.
현대자동차 아이오닉5, 기아 EV6, 포드 F-150 등이 선택한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는 니켈 비중이 현존 최고 수준인 80%~90%로 가장 성능이 뛰어난 편이며,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납품한 2억 7000만 개 배터리 셀에서 단 한 건의 화재도 발생하지 않은 독보적 안전성을 자랑한다.
최근 LG에너지솔루션과의 소송 리스크를 떨쳐낸 SK이노베이션은 더 안전하고, 빠르고, 오래가는 전기차용 배터리를 앞세워 글로벌 시장 3위로 도약하고자 한다.
소송 마무리. 2조 원에 합의 “다행이다”
SK이노베이션의 묵은 체증이 가라앉았다. 2년 동안 미국 ITC(국제무역위원회)에서 진행되어 온 LG에너지솔루션과의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이 지난 4월 마무리된 것.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에 2조 원을 지불하는 조건으로 극적인 합의에 다다랐다.
2조 원의 합의금은 글로벌 영업비밀 침해 소송전 사상 최대 수준의 금액이다. 특허분쟁의 경우 퀄컴과 애플 간 스마트폰 모뎀 칩을 둘러싼 소송의 합의 금액이 45억 달러(약 5조 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합의는 LG에너지솔루션은 물론 SK이노베이션에게도 호재다. 2조 원의 지출이 생기긴 하지만 공들여 온 미국 시장에서 마음 놓고 사업을 이어갈 수 있게 됐고, 무엇보다 불확실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ITC의 수입 금지 결정 이후 합의 전날인 4월 9일까지 SK이노베이션의 주가는 무려 19.7%나 하락했다. 연중 하한가를 기록한 3월 23일 기준으로는 3분의 1가량 빠졌다. SK이노베이션뿐만 아니라 LG화학(15.41%↓)과 삼성SDI(15.32%↓) 등 국내 3대 배터리사 주가가 모두 하락했다.
하지만 합의 소식이 전해진 이후로는 지금까지도 SK이노베이션의 주가는 4월 9일 종가보다 떨어진 적이 없다.
특히, 미국 시장에 대한 불안이 해소됐다는 점에서 크나큰 호재라 할 수 있다.
'전미 1위' 포드 F150 전동화 전담
수주 잔고 1000GWh...글로벌 3위 도약
소송 리스크를 털어낸 SK이노베이션은 미국에 6조 원을 투자하며 적극적인 사업 행보를 재개했다.
지난 5월 20일(현지 시각) SK이노베이션은 미국의 완성차 2위 업체인 포드와 전기차 배터리 생산 합작법인 ‘블루오벌SK’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2025년 양산을 시작할 블루오벌SK는 연 60GWh(기가와트시) 이상 배터리 셀, 모듈 생산능력을 갖추게 될 예정이다. 이는 100KWh(킬로와트시) 배터리가 장착된 전기 픽업트럭 60만 대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이를 위해 블로오벌SK는 약 6조 원을 투자할 예정이며, 그중 SK이노베이션의 몫이 3조 원이다.
SK이노베이션은 또 미국 조지아에 건설하고 있는 포드 픽업트럭 F150 전기차 배터리 전용 라인에서 내년부터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간다. SK이노베이션은 2019년부터 조지아에 배터리 생산 라인을 건설해오고 있는데, 그 중 하나다. 다른 나머지 생산 라인도 2019년부터 조지아에 건설 중이다. SK이노베이션이 3조 원을 투자해 건설하는 두 공장의 연간 생산 능력은 총 22GWh 규모다.
SK이노베이션과 포드의 파트너십은 여기서 끝이 아닐 수 있다. 포드가 미국 시장에서 39년 연속 모델별 판매 순위 1위를 기록 중인 F150 픽업트럭과 승합차 트랜짓 등을 포함한 주요 모델을 순수 전기자동차로 전환하고 있는데, 이들 물량에 필요한 배터리 셀 용량은 2030년까지 240GWh 이상인 것으로 분석되기 떄문이다.
SK이노베이션의 누적 수주량도 크게 늘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5월 13일 1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수주 잔고가 600GWh 수준이며 매출로 환산할 경우 80조 원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후 포드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그 수치는 더 높아졌다. 지난 5월 22일 문재인 대통령이 방미 일정 중 조지아 공장을 방문했을 때 지동섭 SK이노베이션 배터리부문 사장은 “포드와의 합작을 감안하면 SK이노베이션의 현재 누적 수주량은 1000GWh, 금액으로는 130조 원이 넘는다”고 밝혔다. 이는 LG에너지솔루션(1500GWh 이상), CATL(1200GWh 이상)에 이은 글로벌 톱3에 해당하는 양이다.
수주 물량을 맞출 연산 능력 확충을 위해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2023년까지 85GWh, 2025년까지 125GWh 이상의 글로벌 배터리 연산 능력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미국 외에도 중국, 유럽에서도 현지 배터리 생산라인을 늘리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중국 BAIC(베이징자동차그룹), 베이징전공과 함께 장쑤(江蘇)성 창저우(常州)에 설립한 배터리 공장 ‘BEST’를 운영하고 있으며 중국 배터리업체 EVE와도 옌청(鹽城)과 후이저우(惠州)에 합작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유럽 헝가리에도 공장 3개에 투자하고 있다. 코마롬에 건설 중인 2개 공장 중 1공장은 지난해 양산에 돌입했다. SK이노베이션은 또 헝가리 올해 3분기 이반차 시에 연산 30GWh 규모의 제3공장을 착공한다.
실적 고공 비행 위한 이륙 준비 마쳐
지난해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창사 이래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던 악몽에서도 벗어났다. 1분기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4분기의 매출액보다 1조 5622억 원 증가한 9조 2398억 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영업이익도 직전분기보다 7459억 원 늘어난 5026억 원을 기록했다. 작년 1분기 영업이익과 비교하면 무려 2조 3179억 원이나 늘어났다.
석유 사업 영업이익은 전 분기 대비 6086억 원 증가한 4161억 원을 기록했고, 화학 사업은 1645억 원 증가한 1183억 원을 기록했다. 윤활유사업은 118억 원 증가한 1371억 원을, 석유개발사업은 97억 원 증가한 113억 원을 기록했다.
배터리 사업 영업이익은 678억 원 늘어난 1767억 원을 기록했고, 소재 사업은 64억 원 증가한 317억 원을 기록했다. 특히 배터리 사업은 2019년부터 매 분기 매출 신기록을 작성하며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중국 옌청 공장과 후이저우 공장이 1분기 양산을 시작한 만큼 본격적으로 판매가 늘어나며 실적 개선 폭은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 사장은 “팬데믹으로 인한 경영환경이 점차 개선되고 있어 석유화학 등 주력사업의 실적이 개선되는 동시에 신성장 사업인 배터리와 소재사업 성장이 지속되고 있다”며 “친환경을 중심으로 한 전면적, 근본적 혁신을 통해 친환경 에너지와 소재 중심 기업(Green Energy & Material Company)으로 도약하기 위한 본원적 경쟁력 강화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이투자증권은 SK이노베이션이 2021년 연간 매출액 42조 원을 넘길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보다 8조 원 넘게 늘어나는 것이다. 영업이익도 1조 9000억 원 선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국제 신용등급도 회복세
‘투자적격’ 등급의 최 하단에 위치했던 국제 신용등급도 회복세에 접어든 분위기다. SK이노베이션은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로부터 Baa3를, S&P는 BBB-를 부여받고 있다. 특히 무디스는 지난 1월 Baa2에서 한 단계 더 낮춘 등급이다. 국내 신용평가사가 매긴 등급은 AA여서 다소 평가 기준에 따른 차이가 있다.
그런데 지난 5월 3일 무디스는 SK이노베이션이 SK루브리컨츠 지분 매각에 따라 1조 원 규모의 유동성을 확보한 것을 두고, “신용등급에 긍정적”이라고 평가하는 보고서를 공개했다.
SK이노베이션은 앞서 지난 4월 28일 국내 사모펀드 운용사 IMM PE의 자회사인 IMM 크레딧솔루션에 SK루브리컨츠의 지분 40%를 1조 1000억 원에 매각한 바 있다.
또 다른 자회사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는 기업공개(IPO)로 2조 원이 넘는 현금을 확보하게 됐다. 4월 29일 완료된 일반투자자 대상 공모주 청약에서 역대 최대 기록인 80조 9017억 원의 청약 증거금이 몰리면서 흥행했다. 공모된 주식 매출을 계산하면 SK이노베이션이 보유한 주식 가치는 2조 2400억 원에 달한다.
신용평가업계에서는 자회사 IPO 수익과 지분 일부 매각으로도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쉽지 않다는 신중론이 나오는 한편, 지난해 신용등급 하락을 가져온 적자 실적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배터리 업황이 반등하고 있는 점, LG에너지솔루션과의 소송 리스크가 해소됐으며 그 결과 미국 시장에서의 불확실성에서도 벗어난 점 등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또한, SK이노베이션은 아슬아슬한 신용도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채권시장에서 여전히 준수한 성과를 이어 왔다. 배터리 사업을 앞세운 친환경 기조 덕분이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019년 국내 기업 최초로 그린론(Green Loan)을 통한 자금 8000억 원의 조달에 성공한 이후 매년 그린 파이낸싱으로 투자금을 확보해 왔다. 친환경 파이낸싱은 시장에서 사업의 친환경성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 실천을 인정받는 동시에 유리한 조건으로 자금 조달도 가능하다.
지난 1월 SK이노베이션이 보증한 미국 자회사 SK배터리아메리카의 3·5년물 그린본드(Green Bond)에는 10억 달러 모집에 90억 달러가 모였다. SK이노베이션은 또 헝가리 코마롬 제2공장 투자를 위해 한국수출입은행 그린론 5억 달러(약 5500억 원)를 차입하는 데에도 성공했다고 9일 밝혔다.
증권업계, 업종 톱픽으로 제시
증권업계도 SK이노베이션의 이 같은 배터리 사업 관련 가치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며 하반기 업종 최선호 주로 선정하고 있다.
삼성증권은 지난 6월 2일 “SK이노베이션은 타사 대비 빨라지는 증설 속도 및 수익성 등의 개선으로 투자자들의 배터리 사업가치 재평가가 본격화될 전망”이라는 보고서를 작성했고, 같은날 KB증권도 비슷한 근거로 SK이노베이션을 하반기 화학/정유업종 톱픽(Top Picks, 최선호 주)으로 제시했다. 또 NH투자증권은 6월 7일 “SK이노베이션은 미국 포드社와 60GWh 규모의 배터리 합작법인을 설립할 예정인 바, 올해 하반기 배터리 사업가치가 점진적으로 반영될 전망”이라고 작성했다.
특히 삼성증권은 “2020년 대비 2025년 배터리 생산능력 확장 속도에 있어 국내 업체 중 SK이노베이션이 가장 빠른 속도를 보일 전망”이라며, “이에 따라 올해 2분기에도 주식 포지셔닝은 기존 정유에서 정유+배터리 셀/소재로 변화를 지속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사업 부문의 영업이익률은 올해 하반기부터 매출 고성장 등에 따른 고정비 부담 완화로 손익분기점에 근접해갈 전망”이라며 “SK이노베이션의 주가에 배터리 사업가치가 반영되기에 적기로 판단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