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경제 = 최영태 이사) 지난번 칼럼에서 ‘한국의 투표는 너무 어림짐작으로 이뤄지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습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 교수가 분류한 생각의 시스템 1(본능적 어림짐작)과 시스템 2(이성적 판단) 중 후자에 기댄 투표가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에서였습니다.
이런 ‘시스템 2’적 투표를 하려면 보조수단이 필요합니다. 투자의 세계에서 인간의 감정을 배제하고 이성에 기반하기 위해 숫자 기반 프로그램을 마련해 놓듯, 선거판에도 그런 게 필요합니다. 아무리 호감이 가더라도 어림짐작으로 투표한 뒤 나중에 후회하기보다는,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투표로 후회 않을, 즉 이익을 거두도록 3가지 정도의 준비가 필요하지 않나 해서 제안해봅니다.
① 정권교체 지수 좀 만들어주세요
미국 클린턴 대통령이 당선될 때(1993년) 핵심 캠페인 문구는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였습니다. 낙태처럼 민생에 아무 상관 없고 흥분하기 딱 좋은 화제를 선거판에 올리길 좋아하는 보수 공화당에 맞서 클린턴은 “경제를 보고 투표해야지 도대체 낙태 논쟁 따위에 휘둘려서야 되겠냐”고 나선 것이지요.
투자의 세계에는 많은 지수(index)들이 있습니다. 냉철한 숫자로 어림짐작을 물리치고 이익을 남기도록 하기 위한 수단들입니다.
이런 지수, 숫자를 선거에 적용할 수는 없나요? 예컨대 현 정권에 대한 지지율, 경제 성장률, 국민들의 살림살이 개선 정도와 여론 등을 수치화해 지수가 100 밑으로 내려가면 “정권을 교체하는 게 정답”이고, 지수가 100 위로 올라가면 “그래, 좀 불만은 있지만 그래도 유지가 수지맞는 거야”라고 시스템 2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게 말입니다.
② ‘진보 싱크탱크’ 좀 만드세요
정책 실험실을 표방하는 ‘LAB2050’ 이원재 대표의 책 ‘이상한 나라의 정치학’의 문구입니다.
노무현이 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 받았다고 비판받지만 아마도 그런 조사연구를 시킬만한 마땅한 곳이 달리 없었으리란 생각이 든다. (중략) 2003년 진보 진영의 헤리티지재단을 표방하며 설립된 진보적 싱크탱크 미국진보센터(Center for American Progress) (중략) 보수주의가 먼저 있고 그 가치를 담는 그릇으로서의 독립적 싱크탱크가 있었으며 그리고 나서 레이건이 있었다. 오바마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들은 외로워 보이지 않는다.(231쪽)
고 노무현 대통령이 삼성의 보고서를 읽었다고 비판하기 전에 과연 그가 참고할 만한 진보 진영의 다른 보고서가 있었는지부터 반성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미국에선 보수의 싱크탱크(두뇌집단)를 표방한 헤리티지재단이 1973년부터 존재했고, 미국 진보주의자들은 2003년 진보 싱크탱크인 미국진보센터를 발족해 그 덕을 오바마가 톡톡히 봤다는 지적이지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정치판은 돈 있는 사람들의 무대였고, 이런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집니다. 돈으로 학자들을 동원해 보수에 유리한 이론-보고서를 양산하는 것이지요. 반면 개혁-진보 진영은 구성원 개개인은 똑똑하지만 재단 등을 통한 공동의 목소리, 의견 집결은 약했는데, 미국에선 2003년 미국진보센터 수립으로 그걸 이뤄냈다는 것입니다. 한국판 진보 싱크탱크가 출현해 보수 싱크탱크와 함께 장기 국가전략 대결을 펼치는 모습, 멋있지 않을까요?
③ 언론은 가면 좀 벗으면 안 되나요?
미국의 주요 언론은 선거 때 ‘우리는 이 후보를 지지한다’고 공개 선언(endorse)합니다. 반면 한국 언론은 지지하는 후보-정당이 분명 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불편부당만 내세웁니다. 눈 가리고 아웅이지요. 왜 지지 후보-정당을 당당히 밝히지 못하고 거짓 공정의 뒤에 숨습니까?
한국의 이른바 보수 언론들은 유권자를 흥분시키는 데 능숙하며, 그 수단은 말초적인 말싸움 보도에 있습니다. 정책 방향이나 장기 국가전략 같은 데엔 별 관심이 없어요. 앞에서 제시한 1-2번 요구사항이 완성되면, 그래서 숫자 기반의 정권교체 지수가 발표되고, 싱크탱크들이 장기 정책 대결을 펼치는 세상이 되면, 언론들이 이런 말싸움 중계하며 장난치기, 지엽말단 물고 늘어지기로 전체 판 헷갈리게 만들기 작전이 어려워질 것으로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