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9호 유재기⁄ 2022.02.28 09:58:14
1인 가구 증가는 초고령사회 진입과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가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커다란 변화이고, 모든 변화가 그렇듯 명과 암의 양면성을 띈다. 1인 가구 증가는 다양한 산업에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내는 한편 사회안전망에서 소외되는 구성원들이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이런 변화 앞에서 우린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시와 나 하나 되는 시간, 지하철 2·3호선에 맡긴 몸 홍대와 신촌, 압구정, 인사동 그 어디라도 낡은 가방 나의 손 ma soul만 있다면 괜찮아 혼자라도."
지난 2004년, 그룹 에픽하이가 발매한 2집 수록곡 '혼자라도'의 가사 일부분이다. 당시 정서 상 홀로 카페, 식당, 영화관을 방문하는 시간은 사색을 위한 '선택'에 가까웠다. 2020년 12월 기준, 1인 가구가 900만 명(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을 돌파했다. 어느덧 1인 가구는 ‘신 문화’로 치부될 만큼 사회에 큰 영향력을 지닌 문화 장르가 됐다.
1인 가구의 증가 원인은 간단하다. 과거에 비해 결혼이 늦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서울시가 발표한 인구동향 보고서 중 결혼에 대한 분석 자료에 따르면 남성의 경우 '2000년: 29.65세→2010년: 32.16세→2020년: 33.61세', 같은 기간 여성은 '27.5세→29.82세→31.60세'로 초혼 연령이 남성은 39.6세, 여성은 4.35세 높아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초혼이 늦어지는 이유는 무얼까? 행사 및 파티 전문업체 ‘세모파이’ 이명길 대표(국내 1호 연애코치)는 “결혼은 고사하고 코로나19의 장기화로 남녀가 얼굴을 마주하고 연애할 기회조차 없는 것이 맞다”라며 현 상황을 꼬집었다.
이 대표는 “미혼남녀가 증가하는 이유는 사회적 현상이다. 보통 남성은 경제적 입지를 구축하고 결혼을 결심하지만 요즘 같은 시기에 내 집 마련은 ‘하늘에 별 따기’ 수준이 됐다. 여성의 경우 결혼 후 ‘그동안 쌓은 커리어가 무너지지 않을까?’라는 걱정 탓에 초혼이 늦어지는 사례가 많다. 여기에 코로나19로 만남조차 더 힘들어진 상황이라 초혼 연령 증가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위 통계에서 파생된 설문 중 하나인 ‘1인 가구(서울 기준) 자취 평균 기간은 얼마인가?’에서는 총 10.6년이란 평균치가 나왔다. 1인 가구로 생활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놀랍게도 응답자 중 40%가 '혼자 사는 생활이 자유롭고 편해서"라고 답했다. 이어 '학교나 직장 등 외부환경(35.8%)' 때문이라고 밝혔다. 서울시 1인 가구 상황이 전국에 분포된 1인 가구를 대변할 순 없지만 참고할 만한 수치다.
자취생활 9년 차 공무원 A씨는 "몇 년째 코로나19로 인해 퇴근 후 게임을 즐기거나 OTT서비스로 영화를 감상하는 일상에 익숙해졌다. 딱히 외롭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자취 생활에 만족감을 표했다. A씨는 “갈수록 한국 사회가 주변과 관계를 맺지 않는 개인 문화로 변화한다. (1인 기준) 편의점 아르바이트만 하고 살아도 굶는 일은 없지 않은가? 또한 부모님 세대와 달리 이혼도 흔해져 연애만 하면서 혼자 사는 인생이 좋은 것”같다고 1인 가구 예찬론을 이어갔다.
1인 가구 증가의 폭발력을 확인할 수 있는 지표 중 하나는 '주류 소비'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공사가 발표한 '2020 주류시장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 술을 즐기는 장소가 변했다는 응답이 65.7%였다. 마시는 장소로는 87.3%가 '집'이라고 밝혔고 해당 답변 응답자 중 45.2%가 '혼자서 마신다'라고 답했다. 주류 소비량 증가가 기업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겠지만 1인 가구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서울에서 7년째 자취 중인 30대 직장인 K씨는 "인스턴트 메뉴가 주식이고 음주 절제도 어려워 건강이 안 좋아지는 걸 느낀다"면서 “최근엔 활동량과 말수도 줄어들면서 우울해지는 것 같아 비슷한 취미와 직업을 가진 이들과 교류하는 커뮤니티에 관심이 간다”라고 말했다.
1인 가구가 쏘아 올린 산업의 변화, 취향 반영한 새로운 생태계의 탄생
서울 및 수도권 각지에서 1인 가구가 모여 사는 쉐어하우스가 늘고 있다. 당장 인터넷 검색창을 켜고 ‘쉐어하우스’를 검색하면 다양한 입주 관련 사이트를 찾을 수 있다. 몇 년 전부터 공중파를 타기 시작한 쉐어하우스 열풍은 1인 가구 증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 서울시는 노후된 고시원을 개조, 개인 공간을 제외한 거실과 주방 등을 공용으로 사용하도록 해 1인 가구 문제로 야기되는 우울증 및 고독사를 방지하는 대책을 선보인 바 있다.
관련 산업도 증가했다. 임대 관리 플랫폼 ‘동거동락’은 2016년부터 1인 가구(쉐어하우스)를 위한 주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자취생을 위한 주거를 위해 중소형 주택 소유자를 모집, 이를 통해 수익을 얻고 있다.
1인 가구 입장에서 이 플랫폼의 강점은 명확하다. 남녀공용 혹은 여성만 입주 가능한 쉐어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곳에 관심을 지닌 입주자를 위해 매일 자사 홈페이지에 공석이 발생한 쉐어하우스를 보여준다. 강남에 자리한 고가의 아파트와 같은 프리미엄급 쉐어하우스도 운영 중인 ‘쉐어하우스 우주’도 전국에 약 220개의 지점을 보유할 정도로 성장하고 있다.
주거가 해결되면 사람의 관심은 문화로 이동한다. SK디앤디의 ‘에피소드’는 주거 공간을 넘어 입주자가 회사에서 제공하는 이벤트(공연, 요가 등)와 개인 공간 외에 작업 공간과 탁 트인 휴식 공간을 제공한다. 1인 가구의 단점을 문화로 덧칠해 삶의 활력을 투여한 셈이다.
서초·강남·신촌·수유지점을 운영하는 에피소드는 지난 2019년 서울시 성수동에 첫 오픈해 현재까지 총 1800세대가 생활하고 있다. 이곳의 매력은 개인의 취향에 맞춘 콘텐츠다.
SK디앤디 관계자는 “각 구의 특성과 직업군에 맞춰 1인 가구도 다채로운 콘텐츠를 영위하도록 에피소드를 운영하고 있다”면서 “개인의 취향에 초점을 맞춘 것이 특징이다. 서초 에피소드393은 ‘반려동물’을 위한 애완동물 전용 주방과 반려동물 전용 샵 입점을 통해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1인 가구를 위한 차별화된 서비스를 선보인다. 코로나19 시대에 산책이 걱정된다면 옥상의 루프탑과 전용 놀이시설을 통해 여유를 즐길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직장인이 많은 강남에 자리한 에피소드262는 ‘리브 앤 워크’라는 콘셉트로, 업무가 집으로 이어지는 현대인을 위한 시설이 가득하다. “집에서도 업무가 가능한 1인 집중석, 화상회의 공간과 개인 라이브 방송을 위한 미디어 공간까지 마련돼 오피스 밀집 지역의 거주지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1인 가구가 늘자 지자체도 움직이고 있다. 서울시 강동구는 2월 14일부터 혼족들을 위한 공유주방, 북카페 등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1인 가구의 건강식습관을 위한 ‘혼밥만들기 프로젝트’ 등 유명 셰프를 초빙해 다양한 요리를 배워보는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경기도 성남시는 오는 4월부터 만 19세 이상의 1인 가구로 이뤄진 동아리에 매월 활동비를 지원하며 1인 가구 커뮤니티를 조성할 계획이다. 부산시는 원룸이 밀집한 대학가에 여성 친화형 1인 가구 안전 복합타운을 장전동과 대연동에 각각 원룸 형태로 설립(총 80가구), 1인 청년 가구에 임대할 예정이다. 지자체가 직접 나서 대세가 된 1인 가구를 유치하겠다는 얘기다.
초혼 연령이 높아지는 사회 구조 속에서 1인 가구는 피할 수 없는 대세가 됐다. 여기에 발맞춘 다양한 산업이 성장하며 경제의 근간까지 바뀌고 있다. 1인 가구는 이제 ‘외롭다’는 감성적 수식어를 걷어내며 스스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창조하는 문화 인큐베이터로 자리잡고 있다.
(문화경제 유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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