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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기 기자의 WATCH〕 ‘쿼츠 VS 오토매틱’... 고민하는 이들을 위해

구동방식에 따라 달라지는 삶의 변화, 사치품이 아닌 인생을 함께하는 작은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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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20호 유재기⁄ 2022.03.14 12:08:07

약 6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인류의 발명품 시계는 스마트폰과 스마트워치에선 경험할 수 없는 사치품 그 이상의 심미적인 요소와 착용자의 삶을 바꾸는 매력이 무궁무진하게 담겨있다. 사진 = Pexels

'지름 소비' 리스트 중 시계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제품이다. 평소 시계에 대한 특별한 관심 없이,

처음 장만하려는 이들은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힌다. 바로 시계의 구동 방식, 즉 무브먼트다. 업무 중 혹은 틈틈이 시간을 내어 시계 커뮤니티와 온라인 쇼핑몰을 방문하며 ‘시계는 오토매틱 시계(이하 오토매틱)이지’, ‘쿼츠시계(이하 쿼츠)가 막 차기에도 편하고 좋다’ 등 쏟아지는 의견에 고민만 두터워진다.

시계의 구동방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힘들게 산 시계가 ‘계륵’이 될 가능성이 크다. 무브먼트는 착용자의 가치관과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므로 삶을 대하는 태도까지 달라지게 한다. 각 구동방식의 장단점을 알아야 다음 스텝, 브랜드에 대한 고민으로 넘어간다.

 

쿼츠가 바꾼 시계의 세계사


우선 쿼츠는 ‘배터리’가 탑재된 시계다.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시계(탁상시계, 벽시계, 스마트폰 시계 등)의 대부분은 쿼츠다. 최초의 쿼츠 시계는 1927년 미국 벨 연구소의 연구원인 워렌 메리슨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1948년 이름만 들어도 입이 쫙 벌어진 럭셔리 브랜드 ‘파텍필립’이 최초로 쿼츠 시계를 만들었다.

 

이후 ‘세이코’가 쿼츠의 대중화로 세계 시계 시장을 섭렵, 스위스의 자존심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1969년 12월 세이코는 ‘쿼츠 아스트론’이라는 상표명으로 쿼츠 시계 대량 생산화를 시작해 시장을 석권했다. 이를 시계 세계사에서는 '쿼츠파동'이라 일컫는다. 이로 인해 16세기부터 시작된 스위스 오토매틱 시계 산업은 뒷전으로 물러나게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복잡한 무브먼트 대신 건전지로 작동해 시계 값이 대폭 싸지고 관리도 편하기 때문이다. 1970년대에 이르러 스위스 시계 산업 종사자의 70%가 실직하는 사태까지 발생할 정도로 ‘쿼츠의 세’는 엄청났다.


쿼츠의 장점은 역설적으로 ‘단점’이 없다는 점. 오토매틱은 제품에 따라 다르지만, 하루 넘게 착용하지 않으면 멈추는 일이 발생해 갈수록 ‘일오차’가 늘어난다. 오토매틱 매니아에겐 일오차란 심오한 영역이다. 마치 유리상자 안에 온종일 가느다란 머리카락 한 올이 올려진 새하얀 도자기를 감상해야 하는 곤욕이랄까? 이에 반해 쿼츠는 일오차도 거의 없고 배터리에 따라 최대 5년 이상 멈추지 않는다. 방수 성능도 오토매틱과 비교해 월등히 높다.

주변의 모든 빛을 에너지 삼아 작동하는 '에코 드라이브' 기능은 그야말로 시계 산업 ESG의 표본이다. 사진 = 시티즌

근래에 이르러 쿼츠의 기술은 진일보했다. 바로 ‘에코 드라이브’ 기능이다. 시티즌에서 선보인 ‘에코 드라이브 무브먼트’는 빛으로 시계를 작동시키는 기술이다. 가정 내 조명 등의 빛도 이에 해당한다. 책상에 올려두기만 해도 배터리가 충전된다.

오토매틱은 쿼츠와 정반대다. 우선 기계식 무브먼트라는 큰 플랫폼에서 수동식 시계(용두를 감아 사용)에서 파생된 구동방식으로 메커니즘이 다소 복잡하다. 큰 톱니바퀴 모양의 ‘메인스프링 베럴’ 안의 태엽이 풀리면서 톱니 바퀴가 움직여 그 위의 ‘기어트레인’을 따라 동력이 전달되면 마차 휠처럼 생긴 ‘이스케이프 휠’에 연결된다. 이렇게 분배된 힘이 물 흐르듯 ‘시·분·초침’을 움직이는 ‘벨런스 휠’로 전달되어 정확한 시간을 일러준다. ‘태엽으로 움직이고 착용자의 손목 움직임이 곧 배터리’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작은 시계인 만큼 그 안에 채워지는 부품 개수도 많고 예민하다. 자성에도 취약해 컴퓨터(노트북PC)와 같은 전자제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일오차(일 평균 –10~+15초 내외의 일오차면 준수한 편)가 커진다. 또한 충격에도 민감해 책상 아래 제품을 떨군다면 밸런스 휠이 이탈하거나 꼬임현상이 발생한다. 어렵게 구입한 오토매틱 시계를 반려동물보다 애지중지 다뤄야 하는 셈이다.

The choice is yours

올해로 118년을 맞이한 스위스 대표 시계 브랜드 오리스는 실용성을 강조한 다양한 오토매틱 제품군을 선보이며 국내에서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제품은 '애커스 컬리버 400'. 사진 = 오리스

손목시계 진동수에 따라 일오차 범위는 크게 달라진다. 진동수가 높을수록 오차는 줄어든다. 쿼츠의 경우 초당 진동수가 약 30,000회가 넘지만, 오토매틱은 8~10회 정도다. 물론 진동수가 크면 구동 에너지가 크게 소모되어 일부 브랜드에선 진동수를 낮춰 파워리저브(예를 들어 80시간 파워리저브일 경우 시계를 착용하지 않고도 움직이는 시간이 80시간이라는 의미)와 균형을 잡는다.

지금까지 시계 메커니즘의 약 ‘10분의 1’에 해당되는 부분을 집약했다. 시계로서의 강점은 쿼츠가 두각을 드러낸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롤렉스 시계(오토매틱 구동방식)를 사기 위해 오픈런을 불사할까? 자산 증식이 이유일지 모른다.

 

오메가, 브라이틀링, 해밀튼, 세이코처럼 세계적인 브랜드는 왜 100년 넘게 오토매틱 시계를 생산하고 있을까? 세계적인 소비 수요도 있지만 자사의 기술력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세계적인 롤렉스 품귀 현상에 스틸 제품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인 시대지만 다이아몬드가 세공된 제품은 그나마 수월하게 구할 수 있다. 이는 티파니, 까르띠에도 마찬가지다.

오토매틱을 선호하는 계층의 대부분은 매일이 전쟁 같은 사회생활이 오히려 오토매틱의 자양분이 되는 아이러니함을 즐긴다. 착용자의 움직임이 곧 배터리이기 때문이다. 영화 <킹스맨>의 명대사로 유명한 ‘Manners Maketh Man’이란 말처럼 오토매틱은 착용자의 라이프스타일로 생명을 얻는다. 쿼츠엔 이식할 수 없는 감성이다.

 

실용성은 어떨까? 오토매틱 시계는 종종 만년필에 비유될 때가 많다. 가성비를 앞세운 볼펜은 쿼츠다. 저렴하고 편하지만 그만큼 관리에 소홀해진다. 쿼츠라고 영원한 시간을 약속하진 않는다. 때가 되면 배터리도 갈아줘야 한다.

오토매틱 역시 평균 5년에서 10년 사이를 주기로 ‘오버홀(시계 부품을 분해하여 점검 및 수리)’이 필요하며 만만치 않은 수리비(평균 시계값의 ‘10분 1’수준)가 요구된다. 동력에 중점을 두고 고민해보자. 앞서 언급한 쿼츠 제품(시티즌 에코 드라이브)이라면 충격으로 인한 수리비 외에 배터리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 오토매틱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120시간의 파워리저브를 자랑하는 오리스의 ‘애커스 칼리버400’은 착용하지 않고도 스스로 5일 가까이 작동한다. 이처럼 장점이 단점을 상쇄하고 단점이 강점이 되는 구동 방식의 세계는 철저하게 ‘취향’에 따라 나뉜다.

‘나는 너무 바쁘지만 패션을 놓치고 싶지 않다’면 쿼츠로 가는 것이 좋을 수 있고 ‘내 시계에 삶을 투영해 동반자로서 늙고 싶다“라는 주의라면 한 번쯤 오토매틱을 구매하는 게 후회 없는 선택지가 될 것이다.

지난 2005년, 기자는 영화 <콘스탄틴>의 주연 배우인 키아누 리브스가 차고 나온 오리스사의 시계를 보고 시계 세계에 눈을 떴다. 이후 그 시계가 오토매틱 무브먼트로 작동하는 제품임을 알았다.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라는 말처럼 얼마 뒤 인터넷을 통해 한 시계 브랜드 CEO가 언급한 말을 통해 귀찮은(?) 오토매틱의 매력에 빠졌다.

 

그는 “우리 브랜드의 (오토매틱)제품의 방수등급이 낮은 건 이 시계를 차는 고객들은 손에 물을 묻히고 사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받아들이는 이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겠지만 그의 말은  ‘보다 높은 곳을 바라보며 살라’는 감성적인 멘트로 다가왔다. 그렇게 구입한 첫 오토매틱이 ‘아뜰리에 문페이즈 컴플리케이션’이었다. 38시간의 적당한 파워리저브와 5기압의 기능이 다소 아쉬웠지만 날짜와 시간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어 만족감이 컸다.

처음엔 애지중지 날짜와 시간을 맞춰가며 지냈다. 스마트워치도 없던 시절이었지만 파워리저브를 고려해 착용하는 날엔 더욱 활동량을 높였다. 다만 며칠만 착용하지 않으면 시간은 물론 날짜 조정이 필요해 조작이 잦아졌고 고장이 발생했다. 그 뒤, 애플워치로 넘어가며 약 1년 넘게 시계를 착용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화살 속도만큼 빠르게 진화하는 세상에 불안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때 다시 손목에 오토매틱을 올렸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한 오토매틱의 존재 가치는 이 ‘하나’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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