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3호 김민주⁄ 2022.05.03 14:07:41
기업이 새로운 마케팅에 주목한다. 세계관 마케팅은 새로운 재미를 추구하는 MZ세대와의 소통을 강화해 브랜드에 대한 팬덤을 형성하는 수단으로 각광 받고 있다. 고객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가상 세계관에 빠져 즐긴다. 브랜드는 숨고 캐릭터가 주인공이 된다. 다양한 업종에서 전쟁처럼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세계관 마케팅의 현장을 살펴본다.
카카오프렌즈가 인기를 얻으면서 국민 캐릭터로 자리 잡은 덕분인지 유통계, 금융계 할 것 없이 기업들이 자체 캐릭터를 제작해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홍보 전략으로 기업 로고나 이미지를 노출시키는 방식이 아닌 캐릭터를 내세우면 소비자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뿐 아니라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캐릭터에는 다양한 모티브가 있는데, 특히 동물이 단골 손님이다. 캐릭터화하기 쉽고 친숙하다는 게 장점이라 볼 수 있다. 롯데홈쇼핑, 광동제약, 신한은행 역시 동물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를 만들었다.
단순히 만들기만 했다면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이들 기업은 탄생 비화, 콘셉트, 캐릭터 성격 등 캐릭터 관련 세계관을 구축했다. 또 캐릭터를 이용한 콜라보를 진행하는 건 물론, 오프라인과의 연계 및 SNS와 유튜브 채널에서 콘텐츠 생산에도 힘쓰고 있다.
캐릭터 경쟁력도 갖췄으며, OSMU(One Sourece Multi-Use)로 다양한 채널에 등장하고 있는 캐릭터들을 살펴보면 특별한 탄생 스토리를 갖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풍선껌 곰돌이 ‘벨리곰’
롯데홈쇼핑 ‘벨리곰’은 엄밀히 말하면 사람을 좋아하는 풍선껌이자 곰이다. 벨리곰은 놀이공원 속 유령의 집을 방문한 어린이가 흘린 분홍색 풍선껌에서 탄생했다. 동글동글하고 말랑한 생김새를 자랑한다. 부드러운 인상에 포동포동한 몸, 귀여운 핑크색이 어우러져 매력적이며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유령의 집과 어울리지 않는 외모와 식탐 때문에 벨리곰은 유령의 집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그 후 밖으로 나오게 된 벨리곰은 사람들을 놀래주고 행복을 주면서 즐거움을 찾는다. 덕분에 벨리곰 주변에서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벨리곰은 오히려 유령의 집에 있을 때보다 좋은 반응을 얻게 됐다. 그래서 벨리곰은 무엇을 하거나 어딘가에 갈 때 자꾸 끼려는 습성이 있다. 사람들은 이런 벨리곰을 귀여워하고, 벨리곰은 자신의 큰 몸을 좋아한다. MBTI는 ENFP. 꿈은 없으며 좌우명은 "Don't worry, be Belly", 싫어하는 것은 뾰족한 물체와 무관심. 손가락이 두꺼워 오타를 잘 내는 게 특징이다. 벨리곰은 가수 데뷔 이력도 있다. 실제 포털 사이트에 ‘Belly Gom’을 검색하면 가수 관련 정보가 뜬다.
지난 2018년, 롯데홈쇼핑은 기존 홈쇼핑 사업에서 벗어난 신사업 발굴을 위해 장기적 관점에서 경쟁력을 획득할 수 있는 방안과 MZ세대 유입 방법을 고민했다. 그러던 중 MZ세대 직원을 대상으로 사내 벤처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그때 ‘벨리곰’이 탄생했다.
많은 사람들이 익숙하게 여기면서도 좋아하는 ‘곰’을 콘셉트로 캐릭터 초안을 만들었고, 숱한 회의 끝에 지금의 벨리곰이 나오게 됐다. 벨리곰은 ‘일상 속에 웃음을 주는 곰’이라는 세계관을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힐링을 선물하는 캐릭터다.
특히 벨리곰은 어떤 상황에서도 말을 하지 않는 ‘논버벌(Nonverbal)’ 콘셉트로, 벨리곰의 행동은 편견 없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캐릭터 자체로 소통해 오히려 친근감을 느낄 수 있다.
광동제약 ‘하얀 거북이’
이 거북이는 시기를 짐작할 수 없는 오랜 옛날, 용왕의 병을 고치기 위해 토끼의 간을 구해 오라는 미션을 받고 육지에 올라왔다. 거북이는 육지에서 토끼를 만나긴 했지만 간 대신 광동제약의 제품을 소개받아 용왕을 무사히 치료했다. 거북이는 이후 건강에 관한 공부를 더 하고자 육지에 남았다.
거북이는 초록색 후드티를 입고 탈부착이 가능한 등껍질을 메거나 타고 빠르게 이동하며 고객과 소통한다는 설정이다. 특히 등껍질에는 ‘미래를 보는 눈’ 형상의 광동제약 CI를 새겨 캐릭터가 가진 혜안을 표현했다. 귀에 장착한 헤드폰은 주변의 작은 이야기까지 흡수해 저장하는 기능이다.
이 거북이는 장수와 건강에 관심이 많고 듣고 싶은 것도, 보고 싶은 것도 많은 ‘오지라퍼’다. 지식이 많으며, 사람들이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 한다. 나이가 많지만 광동제약의 제품들로 젊은 외모와 마인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광동제약은 지난해 10월, 창립 58주년을 기념해 회사의 상징 동물인 거북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캐릭터로 만들었다. 기존 제약 사업의 고루한 이미지와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한 의도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흔히 볼 수 없는 흰 거북이를 통해 희귀성과 고귀함을 표현했다.
캐릭터 이름은 아직 미정인 상태다. 지난해 광동제약은 캐릭터를 공개하면서 “캐릭터 이름은 고객과 함께 결정하겠다”며 ‘이름 공모전’을 내걸고, 당첨자도 선정했지만 아직 이름은 정해진 바가 없다. 광동제약 측은 “이 흰 거북이는 기업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하고 기업 대표로서 내·외부와 소통을 이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신한은행 ‘쏠 탐험대’
쏠 탐험대(쏠 익스플로러스)는 원래 북극성(작은 곰자리에서 가장 밝은 별)에 살던 생명체들이다. ‘쏠’은 북극곰이며 호기심 많은 마을 대장이다. 쏠 탐험대 친구들은 공룡 리노, 두더지 몰리, 북극여우 슈, 펭귄 도레미, 물개 루루 등이 있는데, 무대엔 쏠과 몰리가 주로 나선다.
쏠은 새로운 금융을 탐구하고 싶어 직접 탐사단을 꾸리고 지구에 발을 디뎠다. 그렇게 지구를 찾은 쏠은 탐험대 리더로 활약한다. 친화력이 좋아 어떤 환경에서도 잘 적응하고,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데에도 빠른 편이다. 눈처럼 하얀 색상과 순진한 얼굴이 특징.
쏠 탐험대는 탐험대 친구들이 시대를 앞장서 항해한다는 콘셉트다. 항해자들에게 길잡이 역할을 해 주던 별자리인 작은 곰자리를 모티브로 탄생했다.
신한은행은 MZ세대와의 커뮤니케이션 강화 방안을 검토하던 중 Z세대를 중심으로 캐릭터에 대한 관심과 반응이 높은 현상을 감지했다. 이에 2018년 4월 MZ세대를 겨냥한 쏠 탐험대 캐릭터를 공개하게 됐다.
브랜드는 숨고 캐릭터가 인플루언서로…
벨리곰은 롯데홈쇼핑 캐릭터 사업팀 작품이다. 하지만 벨리곰 관련 콘텐츠에는 롯데홈쇼핑 기업명이나 로고는 찾아볼 수 없다. ‘벨리곰’의 자체 경쟁력을 확보하고자 벨리곰이 롯데홈쇼핑 개발작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유튜브 등 소셜 미디어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롯데홈쇼핑은 유튜브 채널 ‘벨리곰TV’에 벨리곰이 인형인 척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움직여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깜짝 카메라 콘셉트의 영상을 꾸준히 업로드했다. 벨리곰이 인플루언서로서 스스로 성장하게 만드려는 의도다. 영상 속에서도 벨리곰은 절대 말을 하지 않아 논버벌 캐릭터라는 세계관을 지켰다.
그렇게 2년이 지나 영상이 300개가 넘어가자 벨리곰은 110만 명의 SNS 팬덤을 보유한 대세 캐릭터로 거듭났다. 그리고 벨리곰을 내세워 인스타그램, 틱톡 등 소셜 미디어 채널로 콘텐츠를 확대해 총 900개 콘텐츠를 선보였다.
캐릭터 뒤에 숨었더니 오히려 결과는 ‘대박’이었다. 롯데홈쇼핑은 봄 시즌을 맞아 벚꽃 성지로 꼽히는 석촌 호수를 배경으로 ‘어메이징 벨리곰’ 공공 전시를 진행했다. 이는 롯데월드타워 메인 광장(야외 잔디 광장)에 아파트 4층 높이의 15m 초대형 벨리곰과 2m 크기의 벨리곰 조형물 6개를 특수 제작, 설치한 전시다.
4월 1일 오픈 후, 광장에는 2주 만에 200만 명이 방문해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압도적인 방문객 수에 롯데홈쇼핑은 4월 17일까지였던 전시 일정을 25일까지로 연장해 최종 방문객 325만 명 이상을 끌어모았다. 전시 공간 근처에 마련된 벨리곰 굿즈샵엔 연일 품절 사태가 이어졌다. 벨리곰에겐 300만 명을 매료시킨 마성의 매력이 있다는 증거다. 롯데홈쇼핑 관계자는 “기존 캐릭터들과 차별을 두고자 온라인에서만 존재하는 캐릭터가 아닌 오프라인에서 직접 소통하는 캐릭터를 만들고자 노력했다”고 밝혔다.
롯데홈쇼핑은 벨리곰 전용 온라인 몰도 운영 중이며, 다양한 기업들과 콜라보도 진행하고 있다. 핸드폰 케이스, 액세서리 등을 판매하는 ‘어프어프’와 협업해 폰 케이스를 제작했다. 또한 ‘벨리곰 안에는 누가 있는지 궁금하다’는 소비자들의 의견에 귀 기울여 NFT 전문 플랫폼 ‘닉플레이스’와 콜라보를 통해 벨리곰의 몸속을 살펴보는 NFT 벨리곰을 선보였다.
신한은행 ‘쏠 탐험대’는 유튜브 숏폼 콘텐츠와 다양한 굿즈 및 콜라보가 돋보인다. 신한은행 공식 인스타그램 콘텐츠 중, 약 2년 동안 캐릭터를 중심 콘텐츠가 기타 콘텐츠에 비해 관심도가 높았다. 신한은행은 캐릭터를 중심으로 친근하고 트렌디한 은행의 이미지를 확립하기 위해 디지털 상의 캐릭터 커뮤니케이션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신한은행 유튜브 채널에는 쏠 탐험대 캐릭터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짧은 영상들이 올라와 있다. ‘터보 - 트위스터 킹’, ‘브라운아이드걸스 - 아브라카다브라’ 등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MZ세대들이 90년대~2000년대 초반 문화를 즐기는 유행이 번졌고, X세대라고 불렸던 40대를 ‘낀 세대’로 칭하는 기사들이 많이 보도돼 두 세대를 모두 아우르고 친근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90년대~2000년대 초반 인기 댄스곡에 맞춰 춤추는 숏폼 댄스 영상을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최근엔 Mnet 인기 프로그램 ‘스트릿 걸스 파이터’에 출연한 ‘미스몰리’ 팀과 콜라보한 영상이 화제가 됐다. 신한 몰리가 미스몰리 팀에게 댄스를 배우고, 댄스 배틀을 치르는 콘텐츠다.
신한은행은 쏠 캐릭터를 활용해 유명 유튜버 소워니놀이터와 협업해 어린이를 위한 ‘(종이) 스퀴시(종이, 테이프, 솜등을 이용해서 만드는 장난감) 만들기’ 놀이형 캠페인도 전개하고 있다. 스퀴시 도안을 무료로 제공하고, 만드는 방법에 대해 영상을 제작하는 식이다. 카카오톡에 쏠 탐험대 이모티콘을 내기도 했으며 공식 SNS에 쏠 캐릭터를 내세운 경품 이벤트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MZ세대 겨냥, NFT 등 다양한 플랫폼으로 확장 중인 캐릭터
이처럼 기업은 주요 타겟층인 MZ세대를 사로잡기 위해 캐릭터 사업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롯데홈쇼핑은 벨리곰 서브 캐릭터인 ‘꼬냥이’의 비중도 늘릴 예정이다. 한편 지난달 NFT 플랫폼 닉플레이스와 협업을 통해 벨리곰 3D NFT 피규어를 한정판으로 선보인 결과, 10분 만에 매진된 바 있다. 향후 피규어 제작을 비롯해 NFT 기술을 벨리곰과 관련한 사업으로 적용하고, 더불어 중국, 인도네시아 등 글로벌 콘텐츠 플랫폼을 통한 세계 진출도 계획 중이다.
광동제약은 지난해 하얀 거북이에 대해 “우선 광동제약의 SNS 채널 등에서 광동제약과 고객간의 소통에 활용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아직 하얀 거북이는 본격적인 콘텐츠화 전인 것으로 보인다. 광동제약 관계자에게 몇 차례 하얀 거북이의 이름과 향후 계획에 대해 물었으나 “검토 중인 사안”이라고 말했다.
신한은행은 배달앱 ‘땡겨요’의 영향력을 디지털 그라운드에 확산하겠다는 목표로, 3D캐릭터를 활용해 ‘땡겨요’ 브랜딩 애니메이션을 제작 중인 단계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영상은 5월 말부터 7월까지 시리즈로 발행 예정이며 감성적인 싱어송라이터와 콜라보해 제작한 애니메이션 OST도 뮤직비디오 형태로 미리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세 캐릭터들이 앞으로는 어떤 ‘신박한’ 활동을 펼칠지 주목해 볼 만하다.
<문화경제 김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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