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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원 기자의 와린이 칼럼] 너무 어린 ‘이탈리아 와인의 왕’ 바롤로와 ‘최근의 만찬’

와린이, 이탈리아 와인 등급과 숙성 잠재력에 대해서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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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26호 윤지원⁄ 2022.06.24 10:19:30

“만약 ‘최후의 만찬’에 바롤로가 있었다면, 유다는 예수를 배신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림 = 레오나르도 다 빈치 '최후의 만찬', 위키피디아)

■ 오늘의 와인
기솔피 바롤로 2017 Ghisolfi Barolo 2017

타입: 레드 / 포도품종: 네비올로 100% / 지역: 이탈리아>피에몬테>바롤로 / 와이너리(생산자): 아틸리오 기솔피 / 수입사: 하이트진로



“만약 ‘최후의 만찬’에 바롤로가 있었다면, 유다는 예수를 배신하지 않았을 것이다.”

알도 콘테르노라는 와인메이커가 한 말이다. 유다가 바롤로(Barolo)를 얼마나 좋아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바롤로를 아직 접해보지 못한 와린이에게는 엄청난 기대감을 안겨주는 말임에는 틀림없다.

바롤로란, 이탈리아 북동부 피에몬테(Piemonte) 지역의 북서지방 랑게(Langhe)에 있는 마을 이름이자, 이 마을에서 네비올로라는 품종의 포도로 만드는 DOCG 등급의 레드와인을 말한다.

DOCG는 'Denominazione di Origine Controllata e Garantita'(원산지 명칭 통제 보증)의 약어로, 제품의 원산지 명칭을 사용할 수 있는 자격 조건을 충족하는 품질 관리(통제) 기준에 따른 등급의 하나이며, DOC(원산지 명칭 통제) 등급보다 높은, 이탈리아 와인 중 최상위 등급이다.

즉, 이탈리아에서 바롤로 와인으로 인정받으려면 최소 38개월 이상 숙성한 후에 출시해야 한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오크 배럴에서 18개월 숙성한 뒤에 와인병에 병입(甁入)하고, 병에 담긴 상태로 20개월 이상 숙성한 뒤에 출시해야 한다.

더 나아가 DOCG 등급과 ‘바롤로 리제르바’(Barolo Reserva)라는 레이블을 붙일 자격을 얻으려면 오크 배럴에서 36개월, 병입 후 24개월 등 총 60개월 이상 숙성 기간을 거쳐야 한다. 포도를 수확하고, 양조한 뒤 5년 뒤에야 제품으로 나오는 와인이다.

 

기솔피 바롤로 2017. (사진 = 윤지원 기자)

 

이렇게 오래 걸리는 이유는 바롤로가 '숙성 잠재력'이 대단히 큰 와인이기 때문이다. 농축된 맛과 향, 탄닌, 산미, 알코올이 풍부한 ‘진한’ 와인이다. 바롤로는 탄닌(포도 줄기, 씨 등에서 비롯되는, 쓰거나 떫은 맛을 내는 성분)이 모두 발효되어 순화될 때까지 최소한 10년을 기다리는 것이 전통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바롤로 안에 진하게 녹아있는 당과 탄닌 등이 모두 숙성되고 나면, 수많은 종류의 꽃과 열매의 향이 피어오르며 복합성이 매우 뛰어난 와인이 된다.

 

그런데 최근에는 해외 와인 시장에서 더 대중적으로 잘 팔리게 하기 위해 침용 기간 및 발효 기간을 줄이거나 숙성을 위한 오크통도 전통적이지 않은 다른 종류를 쓰는 양조업자도 많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바롤로에 관해서는 유독 전통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많고, 진짜 바롤로의 힘을 믿는 사람들도 많은 편이어서 바롤로는 ‘세상에서 가장 타협을 모르는 와인’으로 통하기도 한다.

이처럼 바롤로에 대해 보수적인 양조업자들과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려는 현대적인 양조업자들 사이에 생긴 논쟁을 ‘바롤로 전쟁’이라고도 한다. 이 전쟁은 21세기 들어 포도 재배 기술의 발달로 상호 단점이 적절히 보완되면서 타협점을 찾아 나가는 것으로 정리됐다.

 

‘와인의 왕’이 어리다?

바롤로는 토스카나(Toscana) 지방의 끼안띠(Chianti)와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Brunello di Montalcino), 베네토(Veneto) 지역의 아마로네(Amarone)와 함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와인이며, 그 중에서도 농후하고 진한 특성때문에 '이탈리아 와인의 왕'이라고 불린다.

최근에는 이탈리아 전통 품종 대신 프랑스 품종으로 토스카나 지역에서 만들어 파는 ‘슈퍼 토스카나’라는 와인이 이탈리아 와인의 새로운 전성기를 이끌고 있는데, 바롤로를 위시한 전통적인 와인들도 품질관리 체계가 더 엄격해지면서 이탈리아를 프랑스에 이은 세계 두 번째 와인 강국으로 자리잡게 하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

 

한마디로 바롤로는 이탈리아 와인들 중에서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높은 등급의 와인이다. 그런데 그 특징이 아주 진하고 농후하여, 그 맛과 향의 잠재력을 모두 끌어내기 위해서는 최소 10년 이상 걸리는 와인이다.

 

이탈리아 바롤로 마을을 가리키는 이정표. (사진 = Pietro SchellinoUnsplash)
바롤로 와인의 주 원료인 네비올로 포도를 수확한 모습. (사진 = Andrea CaironeUnsplash)

 

이런 ‘숙성 잠재력’이 뛰어난 와인에는 뚜렷한 단점이 있다. 충분히 숙성되기 전에 병뚜껑을 열고 마시면, 그 잠재된 맛과 향을 다 느낄 수 없다는 점이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다양하게 변해가는 와인은 종종 사람의 인생에 비유되는데, 여기서 비롯된 와인 언어 중에 ‘어리다’라는 표현이 있다. 바로 바롤로처럼 무겁고 농후한, 숙성 잠재력이 뛰어난 특징을 가진 와인을 충분히 숙성되기 전에, 아직 마시기엔 너무 이른 시기에 따는 바람에 본연의 맛과 향을 내지 못할 때 “와인이 너무 어리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꼭 병 안에서의 숙성 시간만이 와인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끌어내주는 것은 아니다. 병에 갇혀 있던 와인은 공기 중의 산소를 만나면 반응하여 변하는데, 마치 숙성이 빠르게 지속된 것처럼 잠재되어 있던 맛과 향들을 내뿜고, 질감도 부드러워지면서 더 맛있어지게 된다. 이런 반응이 충분히 일어나는 데에는 대개 한두 시간에서 몇 시간 걸리기도 하고, 반나절이나 하루가 걸리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를 두고서는 ‘열리다’라는 표현을 쓴다. 아직 ‘어린’ 와인을 딸 경우엔 그 잠재된 맛과 향이 ‘갇혀’있거나, 혹은 ‘닫혀’ 있어서 바로 마시면 그 맛이 심심하지만, 병 뚜껑을 열어둔 채로, 혹은 잔에 따라 둔 채로 몇 시간 정도 산소와 반응하게 하면 그때는 와인이 비로소 ‘열려서’ 훨씬 맛있어진다.

 

기솔피 바롤로 부시아 와인. (사진 = 기솔피)

 

바롤로와 ‘최근의 만찬’

와인을 모르고, 이런 표현을 모르던 시절, 떫은 탄닌 맛이 와인 고유의 맛인 줄로 알고 “맛있다, 맛있다”를 연발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에 만난, 와인을 소재로 한 어떤 창작물에서 ‘아직 너무 어리다’, ‘열리지 않았다’는 표현들을 접하게 됐는데, 와인을 마시는 사람의 나이가 너무 어렸거나, 와인 병 코르크가 닫혀 있었다고 오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와린이가 된 뒤로도 어리석은 일이 많이 일어난다. 와린이 초창기에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았을 때의 일이다. 한우의 좋은 부위를 큰 덩어리로 구했으니, 오븐으로 정성껏 오랜 시간 스테이크로 조리해서 다 같이 '배 터지게 먹자'는, 감사한 초대였다.

와린이는 와인을 챙겼다. 특히 ‘이탈리아 와인의 왕’이라는, 농후하고 묵직한 특징 때문에 육류와 함께 먹으면 그 궁합이 아주아주 좋다는, 바롤로도 한 병 들고 갔다. 비록 수십만 원짜리 ‘슈퍼 투스칸’ 와인은 아니지만 DOCG 등급의 바롤로는 이탈리아 와인 최고 등급이었고, 2017년 빈티지(수확년도)이니, 그다지 ‘어린’ 와인도 아니므로 맛이 대단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막상 이날 마신 바롤로는 실망스러웠다. 딱히 맛이 나쁘진 않았지만, 이걸 도대체 왜 굳이 ‘와인의 왕’이라고 표현하는지는 알 수가 없었고, 농도는 진하지만 맛은 너무 심심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이상했다. 그리고 마시는 내내 향이나 맛이 기대에 못미쳐 실망했던, 그런 기억이 있다.

그런데 나중에 바롤로에 대해 여러 가지 정보를 더 알고 나서, 그날 맛이 별로일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최상급 한우로 요리한 스테이크와 이탈리아 와인의 왕 바롤로를 함께 즐기는 거창한 만찬. (사진 = 윤지원 기자)

 

앞서 설명한 것처럼, 바롤로는 최소 3년 숙성한 뒤에 시판된다. 게다가 DOCG는 5년 숙성을 거쳐야 한다. 즉 2022년에 구한 2017년 빈티지의 DOCG 바롤로 와인은, 시중에서 출시된 해당 등급 바롤로 중에서 ‘가장 어린’ 바롤로였던 것이다. 바롤로는 최소 10년은 숙성해야 제 잠재력을 다 발휘한다고 했으니, 이 녀석을 열고 마시려면 적어도 2027년까지는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숙성 기간이 오래되지 않았는데도 맛있게 먹고싶었다면, 미리 코르크를 따서 맛을 ‘열리게’라도 했어야 했다. 산소와 반응할 시간이라도 충분히 많았다면 그것보다는 맛있게 먹었을 수 있다. 저녁 식사를 먹기 최소 6시간 쯤 전에 병을 열어 뒀더라면, 약속장소에 가기 전에 집에서부터 미리 코르크를 열어 뒀더라면, 다들 더 맛있는 와인의 맛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날의 ‘바롤로’가 어렸던 것보다도, 와린이의 와인 경험이 아직 너무 어렸던 것이 아쉬웠던 저녁이었다. 어찌 됐건 그날의 소고기 스테이크 맛은 정말 끝내줬다.

< 문화경제 윤지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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