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8호 안용호⁄ 2022.07.27 09:19:39
주한 스위스대사관은 2018년부터 매년 ‘한-스위스 혁신 주간(Swiss-Korean Innovation Week)’ 행사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의학 기술, 스마트 리빙, 순환 경제, 녹색 전환 등의 테마가 다루어졌고, 올해는 ‘다양성: 혁신을 이끄는 힘’을 테마로 행사가 진행됐습니다. 4개의 공용어와 25%에 육박하는 해외 출생 자국민 비율, 유연한 교육 시스템을 자랑하는 스위스에서 다양성은 혁신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행사에는 ‘혁신을 위한 다양성’, ‘여성 웰빙’, ‘생물다양성의 조화’ 등이 오픈 토크, 심포지엄 등을 통해 다뤄졌습니다. 이 중 행사 첫날 오픈 토크를 장식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산하 아르코미술관 임근혜 관장의 발제를 소개합니다.
2020년 초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문을 닫아야 했던 미술관의 대안은 디지털이었습니다. 오프라인 전시 대신 VR 갤러리가 등장했고, 미술관은 큐레이터, 작가들의 인터뷰를 포함한 다양한 전시를 유튜브에 비디오 클립 형태로 업로드했습니다.
이러한 디지털 전환을 거치며, 임근혜 관장은 온라인 콘텐츠를 많이 서비스할수록 미술관의 오디언스가 더 다양해진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줌으로 진행한 워크숍과 강연에 거제도와 같은 먼 지역에 사는 이들이 참석했습니다. 이 행사가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아르코의 현실 공간에서 열렸다면 아마도 거제도 주민은 참석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리던 지난해 아르코 미술관의 관람객은 75% 줄었지만,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오히려 500% 늘었습니다.
코로나19 시기의 경험을 통해 아르코미술관은 미술관과 관객의 관계를 재정의하게 됩니다. 단순한 공급자와 소비자의 관계가 아니라 ‘다이내믹하면서도 느슨하고 유동적인 일종의 커뮤니티’라고 말이죠. 또한 미술관의 목표를 연구, 창작, 전시, 교류 활동이 선순환하는 플랫폼으로 개편하고 포용, 협업, 공유의 정신을 녹인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천합니다. 과거 미술관의 물리적 공간성, 역할의 획일성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추구하려는 시도가 시작된 겁니다.
1년 전 아르코미술관이 선재아트센터, 백남준아트센터와 함께 론칭한 웹사이트 ‘다정한 이웃(Kind Neighbors)’은 미술관의 존재 가치 중 다양성이 왜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전염병의 확산과 소수자에 대한 차별, 혐오로 분열된 시대에 공존 방식을 모색한 다정한 이웃은 대담, 낭독, 토크쇼와 밴드 공연을 각각 촬영하고 마라톤처럼 이어 편집한 ’텔레톤(텔레비전+마라톤)‘을 온라인으로 방영하기도 했습니다. 그 속에는 이미 다양한 장르와 목소리가 스며 있었습니다. 세 미술관은 각 미술관의 아카이브를 함께 되돌아보며 연대와 공생의 의미를 찾기도 했습니다.
또한 지난 3월 25일, 아르코미술관은 ‘협동조합 무의’(‘장애를 무의미하게’라는 슬로건 하에 장애 접근성과 이동권 확대를 촉구하는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와 함께 휠체어 워크숍을 가졌습니다. 미술관 직원들과 협동조합 무의는 아르코 인근 혜화역에서부터 휠체어를 타고 아르코미술관으로 이동하며 이동 약자의 눈으로 미술관의 시설과 이동 방향을 체험했습니다. 휠체어 워크숍 후 아르코미술관은 휠체어 사용자들을 위해 미술관 입구의 경사로를 개선했습니다. 보다 접근하기 쉽고 다양성을 포용하는 공간으로 변화하기 위한 미술관의 의지에 많은 이들이 환호를 보냈습니다.
소수자, 이동성, 환경 이슈 등 최근 아르코미술관이 진행하고 있는 다양성에 관한 전시와 프로그램은 이번 호 ‘문화경제’ 임근혜 관장 인터뷰 기사를 통해 만날 수 있습니다.
문화적·사회적 다양성에 관한 미술계의 신선한 담론은 우리 사회에 큰 도전을 던져줍니다. 미술계에서 시작된 다양성과 포용의 파도가 사회 전반으로 휘몰아쳐, 정치인들의 갈라치기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우리 국민들을 치유해주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