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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진석 위원장님, 일본의 2-3차 조선 침공 뒤 청일-러일 전쟁 이어졌는데 뭔 소리?

“조선은 일본군에 망한 거 아냐”라는 위원장께 ’한일 100년사‘ 딱 한 쪽 읽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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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최영태⁄ 2022.10.12 10:28:59

조선을 먼저 짓밟는 일본군을 그린 풍자화. 일본군의 뒤를 청군이 쫓고 있으며 멀리 러시아가 이를 바라보고 있다. 

집권여당 대표인 정진석 비대위원장의 한일 역사관에 대해, 한 가지만 부탁드리고 싶다. 책의 딱 한 페이지만 읽어달라는 주문이다.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으로서 국내에도 많은 팬이 있는 와다 하루키 전 도쿄대 교수의 책 ‘(이것만은 알아두어야 할) 한일 100년사’(2015년)의 203쪽이다. 한 페이지 읽는 데 5분도 안 걸릴 테니 일독을 권한다.

이 쪽에서 하루키 교수는 지난 100년간 한반도에서 벌어진 네 차례 큰 전쟁을 정리했다. △1차 한반도 전쟁: 임진왜란 △2차 한반도 전쟁: 1984년 청일전쟁 △3차 한반도 전쟁: 1904년 러일전쟁 △4차 한반도 전쟁: 6.25전쟁이다. 4차를 제외하고 1~3차는 모두 일본군이 한반도에 진출해 승리한 전투이니 참으로 모골이 송연하다.

청일-러일 전쟁에 대해 한국인이 잘 모르는 것들

하루키는 ‘2-3차 한반도 전쟁’에 대해 한국인 대부분이 모르는 점을 정리했다. 흔히 1894년 청일전쟁은 청과 일본이 싸운 것으로, 1905년 러일전쟁은 러시아와 일본이 싸운 것으로 알지만, 두 전쟁은 모두 ’한반도 안에서의 일본과 조선의 전쟁’이 출발점이었으며, 조선군이 일본군의 의해 제압한 이후에야 전선이 대륙으로 확대됐다는 것이다.

하라다 케이이치는 저서 ‘일청전쟁’(2008년)에서 청일전쟁의 제 1막이 조선 왕궁에 대한 일본군의 공격이라며 이를 ‘일조전쟁’으로 부를 것을 제안했다. 일조전쟁이 일어난 뒤 곧이어 일청전쟁이 일어났다는 정리다.

후쿠시마 현립도서관에 소장된 일본참모본부의 청일전쟁 공식 전사 초고 역시 1894년 일본 군대가 조선 왕궁에 침입해 조선 군대를 몰아내고 국왕을 장악했다는 사실을 맨앞에 기록하고 있지만, 묘하게도 이후 일본의 역사서들은 ‘청일전쟁은 일조전쟁 뒤 일어났다’는 사실을 게 눈 감추듯 생략해버렸다.

이는 아마도 “일본 대제국은 대국 청나라와 싸워서 조선을 해방시지, 미개국 조선을 먼저 일본이 점령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고 속이기 위한 의도라 볼 수밖에 없다. “위대한 일본 제국은 조선을 도왔을 뿐이지 조선과 싸운 적은 없어”라는 멋진 거짓말이고, 이런 거짓말의 성공은 정 위원장의 발언에서 확인된다.

아베 전 총리의 국장에 대한 한국 대표단으로 일본을 방문한 정진석 국회부의장(오른쪽)이 9월 28일 일본 도쿄 제국호텔에서 스가 전 일본 총리와 만나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때는 온통 조선 소식이 톱이었지만 그뒤 입을 싹 씻어

일본의 또 다른 양심적 지식인 나카츠카 아키라가 쓴 「시바 료타로의 역사관 - 그의 ‘조선관’과 ‘메이지 영광론’을 묻다」의 79쪽도 청일전쟁의 제 1막인 일조전쟁을 기록했다.

선전포고도 하지 않은 조선, 게다가 ‘독립을 지킨다’고 말하고 있는 그 당사자인 조선의 왕궁을 점령하고, 국왕을 포로로 하다니! 왜 그랬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이유는 독립을 지킨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히 청국과 싸울 명분이 서지 않는다, 청국을 조선에서 내쫓아 달라는 조선 국왕의 공식 문서를 입수하는 것 (중략) 국왕을 사실상 포로로 해서라도 청국군 공격의 공식 요청문을 입수한다 (중략) 동시에 일본군이 서울에서 남하하여 청국군과 싸우는 사이, 서울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서울 성내의 조선군 시설을 전부 점령하고, 성내에서 조선 병사를 일소한다. 또 조선 정부의 명령으로 조선인 인마의 징발을 하기 쉽게 한다는 목적

조선을 청나라로부터 독립시킨다는 명분(다테마에)을 내세우면서 조선군을 먼저 제압한다는 속 작전(혼네)을 구사했다는 기록이다.

와다 교수는 이렇게 썼다. “료타로는 한 번도 언급 않지만 당시 신문을 보면 톱뉴스는 매일 조선 이야기였다”(‘한일 100년사’ 27쪽)라고. 조선을 사랑한다면서도 조선을 미개국으로 본 소설가 시바 료타로는 조선의 대중이 원해 일본이 조선에 진출한 것처럼 썼지만 청일전쟁 당시의 일본 신문 톱뉴스는 거의 항상 조선 이야기였다는 소리다. 왜 조선 소식이 톱기사였을까? 그만큼 탐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 제국주의는 일단 조선을 차지한 뒤에는 과거의 ‘음흉한’ 기록들을 뇌리에서 싹 지웠고, 정 위원장 같은 왜곡된 식민사관을 만들어냈다.

일본이 러시아를 치려면 조선부터 때려야 하는 것은 상식 아닌가? 당시의 상황을 그린 풍자화. 

‘러일 전쟁에 이겨 조선 차지’가 아니라
‘조선을 차지한 뒤 러일전쟁 벌여’가 맞는 순서


“한반도 점령이 먼저” 작전은 러일전쟁에서도 구사했다. 하루키는 “(러일전쟁 당시) 일본이 한반도를 점령해 한국 황제를 굴복시키고 보호국으로 만들기 위해 의정서에 조인시켰고, 여기까지가 한반도 전쟁이고 그 뒤 만주에 들어가 러일전쟁이 됐다”고 했다.

팩트가 이런데도 정 위원장은 “조선은 왜 망했을까? 일본군의 침략으로 망한 걸까? 조선은 안에서 썩어 문드러졌고, 그래서 망했다.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 조선 왕조는 무능하고 무지했다. 백성의 고혈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다가 망했다. 일본은 국운을 걸고 청나라와 러시아를 무력으로 제압했고, 쓰러져가는 조선 왕조를 집어삼켰다. 조선은 자신을 지킬 힘이 없었다”고 썼다. 1919년 3.1운동 이후라면 조선총독부 소속 경찰도 하기 힘든 소리를 2022년 대한민국의 여당 대표가 하고 있으니 일본 극우가 놀랄 법하다.

역사적 사실을 제쳐놓고 보더라도 정 위원장의 말에는 논리적 모순까지 있다. 그의 주장대로 그저 조선이 무능해서 무너져 내렸을 뿐이라고 치자. 그런데 그 뒤 왜 조선 땅은 일본 차지가 됐나? 신기하지 않나? 주변에 청나라도, 러시아도 있고 멀리 미국도 있는데 왜 무너진 조선 땅에 다른 어떤 나라도 아닌 일본이 진입해 들어왔냐는 질문이다.

정 위원장 같은 역사관을 지닌 사람들은 “당시 조선 사람들이 개화국 일본의 조선 진입을 요청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듯 하다. 물론 그런 흐름도 있었다. 일진회의 1909년 한일합방 청원 등이 있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지 않은가. 1905년 을사늑약 후의 의병운동 등은 왜 없던 일로 치나?

현재의 시점에서 이렇게 물어보자. 만약 북한 김정은 정권이 혹은 남한의 정권이 스스로 붕괴해 무정부 상태가 된다면 북한 또는 남한 땅에는 어느 나라가 진입해 들어올까? 북한에 대해 보통의 한국인은 “김정은이 붕괴하면 북한 땅은 당연히 대한민국 차지지!”라고 대답하겠지만, 이런 생각에 대해 미국의 한 한반도 전문가는 필자의 귀에 내리꽂듯 말했다. “착각 마. 식민지 한반도를 일본제국주의로부터 해방시킨 주역은 태평양전쟁에서 피를 흘린 미국이야. 북한이 무주공산이 되면 남한보다 미국이 먼저 들어갈 권리를 갖고 있어”라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부인 리설주가 지난달 29일부터 보름간 진행된 전술핵운용부대 군사훈련을 참관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0일 보도했다. (사진=연합뉴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9월 29일 DMZ를 방문해 북한 지역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북한 땅에 대한 연고 주장을 일본은 하지 않을 것 같은가? 미개했던 한반도에 엄청난 예산을 투입해 철도를 깔고 첨단 공단을 건설하면서 근대 국가 형태를 빚어낸 것은 일본제국이므로 북한 땅이 무주공산이 되면 그간 북한에 별 기여를 해오지 않은 남한보다 일본에 더 큰 우선권이 있다는 주장을 일본 관리들은 안 할 것 같은가?

또 한국전쟁 때 원자폭탄을 지닌 ‘지구 최강’ 미군과 거의 맨발로 싸워 북한 지역을 지켜낸 중국은 북한 땅에 대한 자격을 말하지 않을 것 같은가? “북한 정권이 내려앉으면 그 땅은 우리 것”이라는 한국인의 상식이 얼마나 내 맘대로인지 알 수 있게 하는 대목들이다.

‘정권 내려앉으면 무혈입성’이라는 허튼 소리

이렇듯 어느 나라의 정권이 스스로 무너져 내려 앉는다고 해도 그 땅을 누가 차지할 것이냐는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의 선택 또는 주변국의 힘의 논리에 따라 결정되므로, 정 위원장처럼 ‘조선이 내려 앉아 일본이 전쟁 없이 들어왔다’는 사관은 참으로 허무맹랑하다.

나카츠카 아키라는 「‘일본의 양심’이 보는 현대 일본의 역사인식」에 이렇게 썼다. “현행 중학교 교과서와 똑같이 타이완의 항일 투쟁은 쓰더라도 청일전쟁 중의 조선 인민의 항일 투쟁을 언급하지 않는 것은 고등학교 일본사 교과서와도 똑같습니다.” 

왜 일본 교과서는 타이완(일본에 우호적)의 항일 투쟁은 쓰더라도 조선의 항일 투쟁은 쓰지 못하나? 정 위원장 같은 식민사관이 한국에 아직도 견고히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정치를 이끌어가는 사람이라면 최소한도의 필독서는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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