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시즌이 밝았다. 주요 방송사들은 경기 생중계에 바쁘다. 스포츠의 생명은 현장 직관 또는 생중계이다. 경기의 마지막 1초에 역전골이 터지기도 하기 때문에 끝까지 눈길을 뗄 수 없는 데 축구 같은 스포츠 경기를 보는 맛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월드컵 경기가 생중계 없이 ‘비공개 뒤 사후 공개’라는 식으로 진행된다면 아무리 멋진 골이, 아무리 환상적인 킥을 통해 만들어졌다 해도 그 인기는 하루아침에 지하로 꺼질 듯하다.
손흥민 경기가 끝난 뒤 유튜브로 하이라이트 장면을 보기도 하지만 그건 생중계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그렇게 하는 것이지, 국가대표 경기를 “생중계는 반드시 건너뛰고 사후에 하이라이트로만 보겠다”를 원칙으로 삼는 사람은 있기 힘들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20세기 활자 시대에는 정치인의 말과 행동이 오로지 신문기자의 펜 끝을 통해서만 유권자에게 전달됐기에 정치인들은 기자를 상전 모시듯 했다. 오죽하면 “선거 끝나면 정치부 기자에겐 집 한 채씩이 생긴다”는 말이 정치부 기자 입에서 나왔겠는가.
그래서 ‘유튜브 이전’ 시대에는 활자 기자의 펜 끝이 정치인의 당락을 갈랐지만, TV 시대 특히 유튜브 이후 시대가 되면서 동영상 앞에 숨김없이 생생히 드러나는 정치인의 실태가 당락을 가르는 변수가 됐다. 가히 정치 역시 축구처럼 생중계의 시대가 된 셈이다.
그런데, 카타르 월드컵 생중계가 시작된 21일 월요일 아침부터, 장경태 민주당 의원이 거론했다는 ‘김건희 여사의 캄보디아 현지에서의 조명-반사판 사용’이 언론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20일 서면 브리핑을 통해 “김건희 여사의 캄보디아 환아 방문 시 조명을 사용했으며 이는 국제적 금기사항을 깬 것이라는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김 여사 방문 당시 조명을 사용한 사실 자체가 없다”며 “거짓 주장을 반복하며 국격과 국익을 훼손한 데 대해 장경태 최고위원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음을 분명하게 밝힌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장 최고위원은 “외신과 사진 전문가들은 김 여사의 사진이 자연스러운 봉사과정에서 찍힌 사진이 아니라, 최소 2~3개 조명까지 설치해서 사실상 현장 스튜디오를 차려놓고 찍은 콘셉트 사진으로 분석한다”며 “최소 2개의 별도 조명을 활용해 찍었을, 전형적인 목적이 분명한 ‘오프-카메라 플래쉬(Off-camera flash) 사진’이라는 외신과 사진 전문가의 분석을 인용했을 뿐”이라고 맞섰다.
그는 “허위사실 유포? 이제는 인용도 문제인가? 언론과 야당에 재갈을 물리고, 걸핏하면 압수수색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참 잔인한 정권”이라며 “야당 정치인으로서 진실을 밝히고, 권력에 맞서는 데 주저함이 없도록 노력하겠다”고 나섰다.
이와 관련해 사진-동영상 분석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유튜브 고양이뉴스 채널의 운영자 원재윤 PD는 논란 속 사진의 김 여사 눈동자에 비친 네 사람의 실루엣 사진을 제시하면서 “김 여사님, 여기 반사판 들고 있는 네 사람에게 물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라며 ‘충성’ 구호를 외쳤다.
마치 여배우 촬영하듯 반사판이 동원돼 촬영된 사진이라는 사실을 김 여사 눈동자에 비친 영상으로 증명했다는 소리다.
한편 미국의 인터넷 커뮤니티 레딧(reddit.com)에도 김 여사의 사진에 대해 ‘3개의 조명을 김 여사의 앞-뒤와 왼쪽 옆에 사용한 연출 사진’이라는 영문 글이 올라와 주목을 끌기도 했다.
이 레딧 글에서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은 연출 사진(staged photo)이라는 문구다. 보도 사진(photojournalism)은 연출 사진과 다르다. 연출 사진이란 특정한 장면을 작가가 기획해 만들어내는 것으로, 예술적인 가치는 있을지언정 보도 사진으로 분류해선 안 된다. 보도 사진을 연출 사진으로 대체할 수 있다면 종군기자는 필요없다. 가짜 총칼을 '연출'하면 되는데 진짜 총칼 앞에 목숨을 노출시키는 것은 바보 짓이기 때문이다.
사진을 분석할 줄 아는 이들 중 일부는 ‘김 여사 사진엔 분명히 조명 사용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대통령실은 절대로 아니라며 책임을 묻겠다고 나서고 있다. 김 여사의 사진이 예술 사진이 아니라 보도 사진의 자격을 갖겠다면 이는 반드시 규명돼야 할 문제다.
보도 사진 영역에서도 조명이 사용될 때가 있긴 하다. 그러나 그건 현장의 생생함을 조명 사용으로 더 명확하게 알리기 위함이지, 즉 플래시 사용 등으로 현장을 선명하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지, 어떤 상황을 마치 무대에 올리듯 연출(staging)하기 위한 용도는 아니다.
따라서 김 여사의 캄보디아 사진에서도 논점은, 조명을 사용했느냐 아니냐 여부가 아니라 연출된 사진이냐 아니냐에 맞춰져야 한다.
그간 김 여사의 많은 봉사 활동 등이 ‘일단 비공개 뒤 사후 공개’ 식으로 이뤄져 대통령실 출입기자단, 특히 영상기자단의 원성을 샀는데, 과연 이런 식의 ‘비공개도 아니고, 공개도 아닌’ 형태의 김 여사 노출이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분명한 정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생중계 시대에 ‘無중계’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