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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현장] 일상서 포착한 비일상의 풍경이 주는 아름다움과 불편함

이만나 작가, 선화랑서 ‘더 이상 거기에 없는 풍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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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38호 김금영⁄ 2022.12.06 13:31:00

이만나, '더 이상 거기에 없는 풍경(The Landscape that is no more There)'. 캔버스에 오일, 194x259cm. 2020. 사진=선화랑

영화 ‘아메리칸 뷰티’ 말미 비닐봉지가 바람에 나뒹구는 장면. 누군가에겐 쓰레기로 보일 수도 있는 비닐봉지의 움직임을 극 중 인물은 “이 세상엔 너무나 아름다운 것들이 존재한다”며 자유로운 하나의 춤으로 바라봤다.

산업사회의 폐기물이 부유하는 듯한 불쾌감과 하늘을 비상하는 듯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비닐봉지의 역설적인 장면은 이만나 작가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가 이번 전시 ‘더 이상 거기에 없는 풍경’에서 ‘코리안 뷰티’를 꺼내놓은 연유다.

 

전시명부터 역설적인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전시장 안엔 다양한 풍경을 담은 작품이 가득한데 더 이상 거기에 없다니. 또 명확하게 쨍한 느낌이 아니라 비가 내리고, 살짝 안개가 낀 듯 뿌연 화면은 쓸쓸해 보이기도, 따뜻해 보이기도 하는 양가적인 감정을 동시에 불러 일으켰다.

이만나 작가. 사진=김금영 기자

이 풍경들은 일상생활 속 작가의 마음을 울린 곳들이다. 영화 ‘아메리칸 뷰티’는 미국 사회의 아름답고도 불편한, 즉 역설적인 현실을 보여줬는데, 한국에서도 그런 풍경들이 포착됐다는 것이 작가의 설명이다.

한 예로 작가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로와 산 이야기를 꺼냈다. 작가는 “우리나라를 차타고 돌아다니다 보면 도로가 잘 뚫려 있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이곳들을 잘 살펴보면 드넓은 산자락의 한군데가 도로를 만들기 위해 움푹 패여 있곤 하다. 뜬금없는 부조화가 분명 존재하는데, 사람들은 매일 보는 이 풍경에 이내 익숙해진다”고 말했다.

선화랑 1층 전시장에 이만나 작가의 작품이 설치됐다. 사진=선화랑

실제로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더 이상 거기에 없는 풍경’ 작품은 작가가 금호터널을 다니며 기억한 풍경을 그린 것이다. 이 그림엔 터널 뒤 수많은 집들이 가득하지만, 그 옆에 위치한 작품에서는 천막과 펜스로 가려진 새로운 공사 현장이 집들을 마치 원래 없었던 것처럼 소멸시켰다. 분명 같은 곳이지만 오묘하게 다른 느낌이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작품 ‘작은 숲’과 ‘동산’에서는 울창한 숲 가운데 난데없이 건물이 우뚝 들어섰다. 거대해 보였던 산은 신축 아파트와 건물이 그 위로 솟아오르며 상대적으로 작아진 느낌이다. 이처럼 평범하고 다를 것 없던 일상에 무언가 부조화스러운 풍경이 문득 끼어들면서 일어나는 역설적이고도 묘한 긴장감. 이것이 작가가 주목하는 풍경들이다.

이만나, '가변 풍경(A Transitional Landscape)'. 캔버스에 오일, 112x145.5cm. 2022. 사진=선화랑

작가는 어렸을 때부터 이런 풍경들에 끌렸다고 한다. 그는 “초등학교 때 해운대 근처에 살았는데 늘 장산을 보고 자랐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장산 꼭대기 쪽에 구조물 하나가 눈에 띄더라. 푸른 숲 한 가운데에 던져진 듯한 저 구조물은 도대체 어떤 존재일지, 내겐 미스터리한 존재였다”며 “그리고 ‘이런 부조화가 어떤 사람에겐 무서울 수 있지만, 또 다른 사람에겐 아름다워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도 일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데페이즈망 이야기를 꺼냈다. 일상생활에서 원래 사물이 있어야 할 곳에 두지 않고, 전혀 다른 곳에 춰서 잠재의식을 건드리는 초현실주의 미술 기법이다. 평범한 일상과 부조화적인 비일상의 경계에서 그 풍경을 관찰하고, 이를 작품에 담아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무엇을 느끼는지 묻는 작가의 작업과도 연계됐다.

상충된 감정과 이질성이 묘한 조화 이루는 ‘코리안 뷰티’

이만나, '동산'. 캔버스에 아크릴릭, 27x35cm. 2022. 사진=선화랑

특히 한국에서는 이런 풍경을 더 흔히 접할 수 있었다고. 푸른 숲과 도로가 가득한 1층의 풍경을 지나 2층엔 주로 벽이 보이는데, 독일 유학 시절의 기억과 한국에 돌아와서 접한 벽의 풍경 모두를 볼 수 있었다.

작가는 “해외에는 기본적으로 100년이 넘은 건물들이 많다. 집주인의 성격과 집이 위치한 기후, 집을 어떻게 보수해서 썼는지에 따라 벽은 다 다른 성격을 지녔다”며 “그런데 한국에서는 발전이 굉장히 빠르게 이뤄지면서 건물이 금방 세워지고 사라지는 풍경이 많았다”고 말했다.

선화랑 2층 전시장엔 벽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주로 설치됐다. 사진=김금영 기자

국립현대미술관 뒤편에 있던 낡은 담벼락을 소재로 한 작품 ‘벽 17-1’도 그 풍경들 중 하나다. 어느 날부터 문득 담 뒤편으로 가림막이 쳐지고 공사가 진행되더니, 2013년 미술관 개관 전 벽이 완전히 철거돼 이제는 볼 수 없게 됐다. 작가는 “애써 손에 잡았다 생각했던 아름다움이 채 다가가기도 전 이미 거기에 없는, 더 이상 거기에 없는 풍경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애정을 가졌던 풍경이 빠르게 사라지는 현실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긴 하지만, 비판적인 시각 하나로만 대상을 바라보는 건 아니다. 누군가에겐 이 풍경들이 익숙한 일상일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색다른 아름다움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주민이 보기엔 흉물이었을 풍경들이 이상하게 작가를 이끌었던 것처럼 말이다. 작가는 “상충된 감정과 이질성의 묘한 조화가 바로 우리의 현재를 반영한다고 생각한다”며 “이런 과도적 풍경이 내가 생각하는 코리안 뷰티”라고 말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긴 벽의 균열의 흔적들이 작품에 고스란이 담겨 있다. 사진=김금영 기자

실제로 사람들은 같은 풍경을 바라보면서 다른 생각들을 토해내고 있다. ‘더 이상 거기에 없는 풍경’ 작품의 배경은 분명 서울인데 부산에서 온 관람객이 “부산에 있는, 내가 아는 곳 같다”고 했다. 서울 전혀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도 “내가 사는 동네 같다”고 풍경을 익숙한 듯 바라봤다.

벽에서 우주를 보는 사람도 있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벽에 균열이 간 흔적을 담은 작품을 본 어떤 사람은 이 흔적을 별이 이동한 길로 바라봤고, 벽에 굳게 닫힌 문을 본 어떤 이는 벽 너머에 펼쳐질 우주와도 같이 넓은 다른 어떤 세상을 상상하기도 했다.

이처럼 사람들은 각자가 바라보고 살아온 방식에 따라 눈앞의 풍경을 바라보는데, 그 감정은 하나로 정의내릴 수 없이 천차만별이다. 여기엔 익숙함과 낯섦, 기시감과 긴장감 등 상반되는 듯한 감정들 모두가 소용돌이친다.

국립현대미술관 뒤편에 있던 낡은 담벼락을 소재로 한 작품 '벽 17-1' 작품 앞에서 이만나 작가가 포즈를 취했다. 사진=김금영 기자

선화랑 원혜경 대표는 “2012년 작가의 작업을 처음 봤는데 매우 강렬했다. 분명 숲을 그린 것인데 구상작업이 아닌, 추상작업으로 느껴졌다”며 “작가는 매우 긴 시간 동안 어떤 풍경을 관찰하고 바라보며 이를 화폭에 옮겨오고 있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에서는 풍경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또 아름다움과 쓸쓸함이 공존하는 매력이 있다. ‘가변 풍경’ 작품에서 터널 위 천막이 삭막하게 느껴졌는데, 작가는 이를 터널을 감싸는 바다로도 볼 수 있다 했다. 그 말을 듣고 작품을 다시 보니 잔잔한 파도가 풍경을 감싼 것 같은 따뜻함과 아름다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최근 작가는 새로운 도전을 고민하고 있다. 그는 “모네 작품 앞에 서면 바로 몇 백 년 전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평면회화가 공간을 장악하는 힘이 분명히 있다. 다만 무대 세트 등의 연극적인 연출도, 풍경을 보여주는 방식도 내겐 새로운 도전이 될 것 같다”며 “일상에서 느낀 비일상의 풍경을 통해 사람들이 예전처럼 주변의 풍경을 시큰둥하게 보지 않고, 훨씬 풍요롭게 느낄 수 있도록 나 또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와 변화들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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