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44호 김예은⁄ 2023.03.17 15:56:32
미적 작품을 형성시키는 인간의 창조 활동인 ‘예술’은 기술 변혁이 가져올 미래와 현재를 잇는 의사소통의 도구로도 기능한다. 또한 현재의 문제를 고찰해 미래에 대한 방향성을 사고하도록 유도한다. 현대자동차가 기업 철학이 불러올 미래와 변화를 현재의 소비자와 소통하기 위한 도구로 ‘예술’을 주목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현대자동차는 2019년 ‘휴머니티를 향한 진보(Progress for Humanity)’라는 새로운 브랜드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기존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둔 새로운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 도구로 예술을 택했다.
현대자동차는 예술이 인간을 움직이고, 도전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예술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탐구하고 한계를 넘어설 수 있도록 해주는 하나의 의사소통 수단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에 따르면 예술 작품은 그 어떤 매체보다도 심오한 질문을 던지도록 유도한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어떤 미래가 우리를 기다릴지, 로봇과 인간은 과연 어떤 관계를 맺게 될 것인지에 대해 고심해 볼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의 연장선상에서 현대자동차는 ‘예술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도구로 기능할 수 있는가’에 대한 프로젝트성 실험에 돌입하며 2인의 작가, 그리고 로봇개 스팟(Spot)으로 구성된 팀을 결성했다.
단편영화 ‘엘 핀 델 문도(El Fin del Mundo)’
기후변화 등 우리 사회의 주요 사안 고찰
미디어 아티스트 문경원과 전준호 작가는 2009년부터 현재까지 함께 작품 활동을 하며 예술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탐구하고, 나아가 현대자동차가 그리는 인류를 위한 진보의 메시지의 중요성을 예술 작품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예술은 지속가능성이라는 주제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는 역할을 한다. 특히 기후변화로 인한 영향은 일상에서 쉽게 체감하기가 어려운 만큼 이들은 작품을 통해 미래를 앞서 그려냈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진행한 첫 협업은 단편영화 ‘엘 핀 델 문도(El Fin del Mundo)’를 통해 모든 사회적 가치와 질서가 사라진 미래를 예술 작품으로 앞서 제시한 것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기후변화 등 우리 사회의 주요 사안에 대한 고찰을 가능케 한다.
엘 핀 델 문도는 ‘세상의 저편’이라는 뜻으로 남자와 여자가 맞게 되는 미래의 모습을 각 20분 분량으로 만든 영상 프로젝트다. 이정재, 임수정이 주연한 이 영화를 위해 작가들은 세계적인 건축가, 디자인 그룹, 패션 디자이너, 과학자들과 협업하며 온난화를 맞이한 미래의 지구를 구체화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건축 그룹 MVRDV은 온난화로 대부분의 대지가 수면 아래로 잠긴 시대의 주거 시스템을, 디자인 그룹 타크람은 수분 섭취를 최소화하기 위해 신체 장기로 변신한 미래의 물병을, 패션 디자이너 코스케 츠무라와 구호는 미래의 유니폼을 만들었다.
2012년 독일 카셀에서 열린 예술제 ‘도큐멘타(DOCUMENTA)’에서 첫선을 보인 이 작품은 이후 국립현대미술관(MMCA)에서 열린 2012 올해의 작가상 전,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Art Institute of Chicago)의 설리번 갤러리(2013년), 취리히의 미그로스 현대 미술관(Migros Museum für Gegenwartskunst, 2015년), 테이트 리버풀(Tate Liverpool, 2018년)에서도 전시됐다.
현대자동차가 2019년 ‘인간 중심’의 미래 기술 개발 철학을 담아 ‘인류를 위한 진보’라는 차세대 브랜드 비전을 발표한 이후 두 작가는 현대자동차와 손잡고 예술이라는 도구를 통해 기존의 사고방식을 깨는 ‘지속가능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로보틱스와 같은 현대자동차의 혁신 기술을 예술계에도 접목하여 새로운 기회와 작품을 개발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두 작가는 전에 없던 새로운 방식으로 탄소 농도를 시각화하기로 했다.
로봇 스팟과 탄소 농도를 시각화 하는 작업
이를 위해 두 사람은 현대자동차가 2021년 인수한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 로봇 스팟(Spot)과 함께 대기 중 탄소 농도를 파악 및 시각화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인간의 활동이 지구에 미치고 있는 영향을 직접 눈으로 보고, 이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목적이다.
이들은 “탄소는 우리 주변 어디에나 존재하며, 대기 중 탄소 농도가 높아질수록 기온 상승으로 인한 문제가 더 많이 발생하게 된다. 해수면도 매년 더 높아지게 된다”라며 “예술과 첨단 기술의 조화를 통해 탄소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대기에 존재하는 탄소에 관한 논의를 보다 발전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예술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밝혔다.
두 작가는 스팟에 부착한 특별한 탄소 측정기의 도움을 받아 서울 곳곳의 탄소 농도를 측정하고, 수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예술 작품을 완성했다.
스팟이 공기 중의 탄소 농도를 측정한 방법으로는 현대자동차그룹 로보틱스 랩(Robotics LAB)에서 특별 제작한 탄소 데이터 수집 장치가 사용됐다.
이 과정에는 정수종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와 현대자동차그룹 로보틱스 랩, 산업 디자인 전문 스튜디오 BKID가 함께 제작한 ‘스마트 탄소 측정 처리 장치(Smart Carbon Monitoring Processing Unit)’가 활용됐다. 이 장치는 스팟이 도심을 걸어 다니는 동안 탄소 농도를 측정하고 기록했다. 그리고 이렇게 수집한 데이터를 시각화하기 위해, 디자인 스튜디오 작업실에서 탄소 농도 기록표를 만들고 데이터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하는 과정을 거쳤다.
예술 프로젝트에 스팟이 합류하게 된 이유에 대해 문경원과 전준호 작가는 이번 프로젝트의 주된 목적이 비인간의 시각, 특히 로봇 스팟의 관점에서 기후변화라는 주제를 재조명하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스팟이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인간을 비롯한 다른 존재들과 교류하고, 궁극적으로 예술 작품의 일부가 되는 방식을 탐구하고자 했다”라며, “로봇이 점점 우리 일상의 일부가 되어가고, 예술계가 이러한 혁신을 받아들여 가고 있는 모습을 관찰하는 것이 무척 흥미로웠다. 이번 프로젝트에 스팟을 활용한 덕분에 로봇 공학, 예술, 기후변화를 모두 아우르는 담론을 나눌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로봇이 인간 생활의 일부가 되고 있다는 이들의 발언은 현대자동차가 로보틱스 기술을 기반으로 그리고 있는 미래 혁신 사업의 일환이기도 하다. 두 작가는 이들의 시선에서 현대자동차가 제시하는 현재와 미래의 기술 변화와 이질적 괴리를 예술이란 고리로 잇는 역할을 수행한다.
문경원, 전준호 작가는 예술과 인공지능의 협업으로 탄생한 ‘서울 웨더 스테이션(Seoul Weather Station)’이라는 제목의 전시회를 지난 해 11월까지 아트선재센터에서 개최해 스팟과의 협업으로 탄생한 작품을 선보였다. 예술적 상상력과 서로 다른 분야를 아우르는 협력을 바탕으로 완성된 이 전시는 세계적인 기상 이변, 자연재해 등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급격한 환경 변화에 대해 고찰하며 현대자동차가 제시하는 인류를 향한 미래 비전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토마스 쉬미에라 현대자동차 부사장 겸 글로벌 최고마케팅책임자는 “예술은 인류의 미래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높일 수 있다고 믿는다”라며, “전 세계 예술 커뮤니티와의 협력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논의를 시작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 일환으로 진행하고 있는 또 다른 장기 예술 프로젝트가 MMCA 현대차 시리즈다. MMCA 현대차 시리즈는 2014년부터 매년 1팀의 한국 중진 예술가를 선정해 전시를 개최할 수 있도록 후원하는 10년 장기 프로젝트다.
현대자동차는 한국 국립현대미술관(MMCA)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문화예술기관들과 맺은 오랜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예술과 함께 현시대 담론을 논의하고 탐구하는 장을 마련하고자 다양한 예술 프로젝트들을 지속적으로 후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기반으로 현대자동차는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위기와 모순 사이에서, 현대자동차의 비전인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해서 예술이라는 도구의 역할을 기반으로 화두를 제시하며 관람객과 함께 고민해볼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현대자동차의 비전인 '인류를 위한 진보'를 향한 사고의 장을 모든 관객과 소통하고 관람객의 상상력을 넓히도록 유도할 수 있는 작가를 선정하고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MMCA현대차 시리즈 최우람 작가
인간 욕망을 기계 생명체로 표현
올해 2월 26일까지 진행된 MMCA 현대차 시리즈 2022: 최우람 – ‘작은 방주’ 전시에도 지속가능성과 관련해 다양한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유도하는 혁신적이고 틀을 깨부수는 작품이 담겼다.
1970년생인 예술가 최우람 작가는 “기계 생명체(anima-machine)”라 불리는 작품들을 선보이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기계 생명체란 움직이는 조각품으로, 인간의 욕망이 기술에 투사되는 방식을 보여주는 스토리를 담고 있다.
최우람 작가는 ‘작은 방주’ 전시를 기반으로 전례 없는 위기로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성찰하며 오랜 시간 당연시해왔던 것들을 재조명하고 탐구하고자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재구성하는 하나의 퍼포먼스로서 설계된 전시를 선보였다.
사회정치적, 경제적 위기 그리고 기후변화로 인해 불안과 대립이 고조되고 있는 지금, 이 혼란의 시대에 대한 고찰을 ‘방주’라는 매개체에 담아 표현했다. 사회의 온갖 모순되는 열망과 그에 둘러싸인 방주를 병치한 것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작품인 ‘작은 방주’는 육중한 철제와 폐종이박스에 첨단 기술을 더해 만든 작품으로서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인간의 가장 깊은 욕망을 탐구하게 하고, 현재를 성찰하게 하며, 모순되는 인간의 욕망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자아낸다.
또한 작가는 ‘작은 방주'와 ‘검은 새’ 작품에 폐종이상자를 활용하는 등 지난 전시에 재사용한 소재와 지속가능한 소재를 적극 활용해 우리가 삶의 순환에 따라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상징했다.
최우람은 이번 전시를 통해 인간 존재의 의미, 로봇과 같은 생명체와 유사한 기계와의 공존에 관한 다양한 질문에 대해 탐구하고, 인류가 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 살펴보고자 했다고 밝혔다. 또, 우리가 어떤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관객이 직접 질문하고 숙고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었다.
토마스 부사장은 “MMCA 현대차 시리즈 2022는 인류의 지속가능한 미래라는 관점에서 자연, 인간, 기계 사이의 관계를 탐구해 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평했다.
<문화경제 김예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