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44호 안용호⁄ 2023.03.24 16:08:00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인기 만화 ‘검정고무신’의 이우영 작가가 3월 11일 별세했습니다. 유족에 따르면 이 작가는 최근 저작권 소송 문제로 힘들어했으며, ‘검정고무신’ 애니메이션 제작업체 형설앤 측과 3년 넘게 법정 싸움을 벌여왔다고 합니다.
사업자인 형설앤 측은 검정고무신 저작물에 대한 만화 저작물 사업화 권리를 자신들이 모두 가지고 있으나, 이우영 작가가 사업자를 통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검정고무신’ 창작 활동과 개별적인 저작물 관련 활동을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형설앤 측은 이는 사업자와 작가 간 체결한 사업권 설정 계약서 내용을 위반한 행위라며 위약금 등 손해배상 소송을 2019년 제기했습니다.
이에 대해 이우영 작가 측은 지적재산권에 대한 사업권을 형설앤 측이 모두 가져갔다면 작가에게 그 대가를 지불했어야 하는데, 작가는 지급받은 게 없다는 주장입니다. 이 작가 측 법률 대리인 김성주 변호사에 따르면 지난 15년 동안 이우영 작가가 사업화 관련 지급 받은 금액은 1200만 원에 불과하며 77개에 달하는 사업 중 어떤 것을 수익 배분했고 어떤 것은 안 했는지, 비율 계산은 어떻게 했는지 등에 대해 작가가 구체적인 설명을 들은 바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유족에 따르면 이 작가는 세상을 뜨기 직전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상태였다고 합니다.
이에 형설앤 측은 “원작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는 이우영 작가의 말은 허위 주장”이라며 “원작자와의 사업권 계약에 따라 파생 저작물 및 그에 따른 모든 이차적 사업권에 대한 권리를 위임받아 사업을 진행 중”이라고 반박했습니다. 또한 애니메이션 '검정고무신' 사업 권리는 애니메이션 투자조합에 있으며, 제작 당시 이 작가는 원작 사용만 동의하고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구름빵’에 이어 ‘검정고무신’ 작가까지 2차 저작권 분쟁에 휘말리고 있는 가운데, 최근 기업이 작가와의 협업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인기 작가와의 협업은 기업 이미지를 더욱 친근하게 합니다. 특히 예술에 관심이 많은 MZ세대를 고객층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도 엿보입니다.
이번 호 문화경제는 아티스트와 다양한 협업을 하는 기업의 움직임을 특집 기사로 다룹니다. 롯데제과 디저트 초코과자 빈츠는 일러스트레이터 아리와 손잡고 새 포장 디자인을 내놨습니다. 주요 고객층인 20~30대 여성을 감성을 건드리는 마케팅 차원이라고 합니다. 이 회사는 발달장애인 예술가로 유명한 정은혜 작가와도 협업해 ‘실수해도 괜찮아’ 파스퇴르 위드맘 NFT를 발행하기도 했었죠.
현대자동차는 미디어 아티스트 문경원·전준호 작가의 시선을 빌어 회사의 비전인 ‘지속가능성’을 표현했습니다. 두 작가는 4족 보행 로봇 스팟(Spot)과 함께 대기 중 탄소 농도를 시각화하는 작업을 진행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예술과 첨단 기술의 만남을 통해 탄소 문제를 제기한 것이죠.
와인 업계에서 아티스트와의 협업은 이제 흔한 일이 되었습니다. 해마다 와인 라벨을 전 세계 유명 예술가의 그림으로 장식하는 프랑스 ‘샤토 무통 로쉴드’의 2013년 빈티지에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이우환 화백이 참여해 화제가 됐었습니다. 데브시스터즈 쿠키 IP와 방탄소년단의 만남은 게임과 아티스트와의 만남으로 게이머와 BTS 팬들에게 모두 큰 호응을 모았습니다. 글로벌 슈퍼스타 방탄소년단 멤버들의 비주얼과 매력을 담아낸 쿠키들이 하나하나 게임 속에 등장하자 팬들과 게임 이용자 모두 환호했습니다.
기업과 아티스트의 협업은 그야말로 ‘윈윈 모델’입니다. 기업은 자사의 제품 브랜드를 작가의 이미지를 통해 전할 수 있고, 작가는 작품을 더욱 대중적으로 알릴 수 있게 때문이죠. 하지만 한 번쯤 그 부작용을 작가 입장에서 고려해봐야 합니다. 특히 창작자 권리 보호와 2차 저작권 문제에 대한 확실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합니다. 3월 24일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신일숙 한국만화작가협회장을 만나 “제2의 검정고무신 사태가 없도록 하겠다”고 한 약속이 꼭 지켜지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고(故) 이우영 작가가 생전 재판부에 전달한 호소 글을 소개합니다. “저는 어리석을 ‘우(愚)’자를 쓰는 이우영이었습니다. 원작자가 원작의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재판에 휘말린 상황을 정리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저는 어리석을 ‘우(愚)’를 버리고 개명까지 했습니다. ‘검정고무신’은 제 피와 땀의 결실입니다. 30년을 키워온 자식과도 같은 작품입니다. 창작 이외에는 바보스러우리만치 어리석은 창작자들의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