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46호 김응구⁄ 2023.04.18 17:49:38
맥주 마니아인 공태식 씨는 적어도 2주에 한 번 아내와 함께 집 근처 대형마트를 찾는다. 공 씨의 재미는 맥주 세트를 살 때 덤으로 주는 잔이다. 브랜드마다 모양이나 크기가 달라 모으는 재미가 쏠쏠하다.
공 씨는 “최근 들어 맥주회사의 마케팅이 덤으로 잔을 주는 것에서 굿즈를 선보이는 방식으로 옮겨간 모양새지만 그래도 열심히 모으고 있다”며 웃었다. 그는 예쁜 맥주잔에 커피콩을 가득 채워 거실을 커피향으로 채운다든지 작은 화분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추천했다.
국내 주류업계에서 ‘웩 더 독(wag the dog)’은 덤 마케팅이다. 경품 마케팅이기도 하다. 상품이나 서비스만 다를 뿐 꽤 오래된 방법이다. 제품 간 차별화가 뚜렷하지 않을 때 덤 하나 얹어주면 효과를 본다. 소비자에겐 긍정적이다. 기업들의 노림수는 이것이다.
덤이라고 사은품 정도로만 생각하면 곤란하다. 기업들은 이 덤에도 많은 공을 들인다. “큰맘 썼다, 덤 하나 줄게”가 아니다. “이것 하나 얹어줄 테니 우리와 친해지자”이다. 덤 하나가 우리 제품의 또 다른 구매를 촉진한다는 마인드로 접근한다.
꼼수 덤 마케팅으로 문제되기도
덤 마케팅이 꼭 순기능만 있는 건 아니다. 한때는 골칫거리였다. 6~7년 전만 해도 국내 위스키 업계는 덤 마케팅이 한창이었다.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극심한 침체기였다. 당연하게도 위스키업체 간 경쟁은 심화했고, 생존을 위해 덤 마케팅을 앞다퉈 선보였다.
대부분 업체는 자사 위스키를 판매하면서 거래처인 유흥주점에 한두 병씩 얹어 판매하는 ‘스페셜 프로모션’을 펼쳤다. 예를 들어 6병을 한 묶음으로 팔 때 1병을 덤으로 주면서도 6병 값만 받는 식이다. 보통은 ‘6+1’ 형태가 많았는데 그 당시 한 업체가 1병을 더 얹어줬다. ‘6+2’인 셈이다. 당연히 문제가 됐다.
이유도 갖가지다. “한시적으로 제한된 물량에 한해 진행하는 프로모션이어서 물량이 다 소진되면 중단할 것”이라거나 “수입맥주 4캔을 1만 원에 묶어 파는 행사와 같은 개념” 등의 해명이 잇따랐다. 어느 곳은 “누적 판매량 400만 병 돌파 기념”이라는 그럴싸한 이유도 가져왔다.
당장에 “협약 위반 아니냐”는 불만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위스키 업계는 지난 2011년 국세청의 지도 아래 투명한 주류거래질서를 확립하자며 ‘과당경쟁을 자제하자’는 내용의 자율협약 합의문을 작성했다. 이때 대표적으로 지적된 사례가 ‘5+1’이나 ‘10+1’ 같은 주류를 경품 형태로 끼워파는 행위였다. 위스키 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들자 위기감을 느낀 업체들이 매출 목표를 채우기 위해 출혈경쟁을 벌이는 걸 방지하자는 취지였다. 이후 업체들은 무리한 끼워팔기 등을 자제했지만 위스키 시장이 침체 일로를 겪으며 또다시 프로모션에 나선 것이다.
시간은 많이 지났고 시대도 달라졌다. MZ세대가 주류시장의 큰 손이 됐고 기업들은 젊은 소비자를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자연스럽게 덤 마케팅, 혹은 웩 더 독 마케팅은 성격과 방법이 달라졌다. 아니, 진화했다.
굿즈 아닌 게임 아이템으로도 유혹
‘칭따오’ 수입·유통업체 비어케이는 게임 아이템으로 웩 더 독 마케팅을 활용했다. 지난해 11월 게임업체 넥슨과 손잡고 ‘칭따오 던파 에디션’을 출시했다. 던파는 넥슨의 인기 온라인 액션게임 ‘던전앤파이터’를 말한다.
비어케이는 이 아이템을 기획할 때 일반 맥주 소비자뿐만 아니라 게임 이용자까지 고객 접점을 확장하자는 목적이었다. 특히, 이색적인 경험과 재미를 자발적으로 즐기고 공유하는 MZ세대의 펀슈머(fun+consumer) 트렌드를 반영했다.
넥슨 역시 던파의 모바일 버전까지 출시하며 게임 플랫폼 영역을 확장하는 중이었다. 두 회사의 이해가 잘 맞아떨어진 결과물이다.
이 아이템은 칭따오 라거 330㎖ 캔 6개로 구성한 번들 박스로 출시했다. 던전앤파이터의 캐릭터인 ‘단진’이 그려진 귀여운 디자인에 게임 아이템 쿠폰도 들어 있어 게임마니아들의 표적이 됐다. 쿠폰 번호를 던전앤파이터 공식 홈페이지에 입력하면 다양한 게임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팬층 확장엔 팝업스토어가 최고
국내 주류기업 가운데 웩 더 독 마케팅을 가장 잘 활용하는 기업은 하이트진로다. 하이트진로는 소주 ‘진로’의 오래된 캐릭터인 두꺼비를 홍보·마케팅의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생각 이상으로 반응이 좋다.
소비자 또는 팬들의 관심이 이어지자, 하이트진로는 2020년 캐릭터 두꺼비를 콘셉트로 한 팝업스토어 ‘두껍상회’를 열었다. 주류업계 최초의 일이다. 이후 부산, 인천, 강릉 등 10개 넘는 도시의 핫플레이스에 이 팝업스토어를 잇따라 선보였다.
‘어른이 문방구’ 혹은 ‘어른이 놀이터’를 표방한 두껍상회의 인기는 금세 번져나갔다. 특히, MZ세대 소비자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굿즈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고 두꺼비 캐릭터를 프레임에 넣은 즉석사진 체험 부스에는 날마다 줄을 섰다.
2021년 11월에는 서울 강남에 두껍상회를 오픈했다. 이어 올해 1월에는 1년 2개월 만에 같은 자리에 또다시 문을 열었다. 발길이 끊이지 않자 폐점 날짜를 연장하기까지 했다.
이곳에서 만난 최종천 씨는 현재 미니어처 술병 동호회 운영자로 활동 중이다. 최 씨는 “우리 같은 컬렉터들은 이런 팝업스토어가 열리는 날이면 경쟁이 무척 치열하다”고 했다. 온라인 공간에서 정보를 공유하지만, 누구보다 빠르고 부지런히 움직여야 원하는 상품을 하나라도 더 구매할 수 있다는 말이다.
또 다른 방문객인 대학생 박찬홍(22) 씨는 호기심에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박 씨는 “소주를 즐기진 않지만 캐릭터나 굿즈는 별개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굿즈를 하나둘 사서 모으고 이런 공간에서 재밌는 경험을 하면 아무래도 그 제품에 대한 인식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실제 오픈 날이면 팝업스토어 앞은 장사진을 친다. 말 그대로 ‘오픈런’이다. 원하는 굿즈를 하나라도 더 ‘쟁취’하려는 경쟁이 뜨겁다 못해 활활 타 오른다.
두꺼비와 협업하길 원하는 기업도 점점 늘고 있다. 최근까지 다른 기업과의 협업으로 선보인 상품은 대략 140종에 이른다. 대부분 MZ세대가 선호하는 브랜드인데, 예를 들어 캐주얼 패션 브랜드 ‘커버낫’과 협업한 후드 집업이나 반팔 티셔츠, 크로스백 등은 판매 1분 만에 완판됐다. 11번가에서 진행한 ‘요즘 쏘맥 굿즈전’에선 다섯 가지 상품 7000개 물량이 90초 만에 품절됐다. ‘진로 블루투스 스피커’는 44초 만에 모두 팔렸다.
소비자들의 관심은 광고 영상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하이트진로가 약 2개월 전에 공식 유튜브 채널에 공개한 15초 분량의 ‘진로이즈100년’ 편은 현재 조회 수가 496만 회를 넘었다.
공들인 만큼 실적으로 나타난다. 2019년 4월 첫선을 보인 ‘진로’는 출시 3년 8개월 만에 누적 판매 14억 병을 돌파했다. 단순히 계산하면 1초에 12병이 팔린 셈이다. 이렇듯 빠르게 시장에 안착한 데는 두꺼비 캐릭터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효과가 컸다. 오랜 고객에게는 향수를 가져다주고 MZ세대에겐 낯선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하이트진로는 지난 4일 출고한 맥주 신제품 ‘켈리(Kelly)’를 위한 팝업스토어 ‘켈리 라운지(lounge)’도 문을 열었다. 기존 두껍상회 건물에 들어섰는데, 켈리는 1층 두껍상회는 2층을 사용한다. 서울 강남 외에도 부산 서면과 대구 동성로에도 켈리 라운지를 마련했다.
‘MZ세대의 자유로운 브랜드 체험 문화공간’을 콘셉트로 켈리를 체험하고, 또 제품 속성을 반영한 콘텐츠를 힙(hip)하고 펀(fun)하게 즐길 기회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단순히 제품을 소개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특별한 경험과 재미를 제공하고 공간 체험을 극대화하면서 소비자에게 신제품을 알린다는 전략이다.
굿즈보다 진심 담은 마케팅
오비맥주 역시 굿즈, 경품, 덤과 관련한 마케팅은 둘째가라면 서럽다. 굿즈 전용 온라인 몰에는 신통방통한 아이템들로 가득하다.
눈에 띄는 것 중 ‘워터 스프레이팬’은 올여름을 기다리게 하는 아이템이다. 한여름 뜨거워진 얼굴에 미스트 스프레이를 뿌린 후 바람을 쐬면 한창 달아오른 열을 금세 식힐 수 있다.
최근에는 ‘한맥 크림 맥주 디스펜서’를 선보였다. 캔 위에 디스펜서를 달아놓으면 맥주를 잔에 따를 때 입자가 고운 거품이 만들어져 나오게 하는 제품이다. 디스펜서의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거품 없이 맥주를 즐길 수도 있다.
평소에는 액자로 쓰다가 간편하게 다과나 맥주를 즐길 때 테이블로 사용하는 ‘액자 테이블’이라든지 발포 EVA 소재로 만든 ‘쇼퍼스 백’은 실제 일상에서 활용도가 높은 제품들이다.
이처럼 오비맥주 온라인 몰에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아이템들로 넘쳐난다. 가짓수도 상당해 팬이나 소비자는 수시로 드나들며 사 모으기에 여념 없다.
하지만 오비맥주는 이 같은 굿즈에만 공을 들이진 않는다. 최근 들어 소비자의 마음을 건드리는 감성 마케팅에 한창이다. 굿즈나 경품과는 다른 차원이지만, 이 역시 제품을 직접 홍보하기보다 우회적으로 돌려 브랜드 이미지를 부각하는, 일종의 변형된 웩 더 독 마케팅인 셈이다.
오비맥주는 ‘카스 초대잔’이라는 이벤트를 지난 2월 선보였다. 소비자가 평소 마음을 표현하기 어려웠던 사람에게 응원이나 칭찬, 고백 등의 메시지를 맥주잔 일러스트와 함께 전하는 온라인 이벤트다. 여기에는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이규영 작가와 영이 작가가 그 뜻에 동참하며 참여했다.
참여 방법은 간단하다. 참여자가 카스 병과 캔에 삽입된 정보무늬(QR코드)로 이벤트 페이지에 들어가 본인의 메시지와 잘 어울리는 일러스트를 선택한 후 원하는 상대에게 메시지를 작성하면 된다. 이미지 저장과 공유하기 기능이 있어 상대방에게 즉시 보낼 수 있다.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 이달 5일부터 16일까지 서울 여의도 IFC몰에선 ‘맥주 한 잔에 진심을 전하세요’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카스 초대잔 미디어아트 체험존’도 열었다.
방법은 앞서 소개한 것과 비슷하다. 대신 현장의 키오스크를 이용한다는 점만 차이가 있다. 키오스크에서 원하는 일러스트를 선택한 후 누구에게든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작성하면 디지털 이미지의 카스 초대잔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완성된 이미지는 대형 LED 스크린 중앙에 40초가량 송출된다. 이후에는 ‘포토 모자이크(photo mosaic)’ 기법으로 수백 개의 카스 잔이 하나의 그림처럼 보이는 미디어아트가 연출된다. 참여자는 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오비맥주 카스 브랜드 매니저는 “소비자들이 맥주 한잔으로 진심을 전하는 경험을 만들어주기 위해 이번 팝업 존을 오픈했다”며 “앞으로도 소비자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따뜻한 진심을 전하는 매개체로서 활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웩 더 독은 곧 주객전도
주객전도(主客顚倒). 주인과 손님의 위치가 뒤바뀌었다는 뜻이다. 웨 더 독과 다를 바 없다. 예를 든다. 손님이 주인의 집을 찾았다. 안내받은 방이 깨나 지저분하다. 주인이 고마운 손님은 무엇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 참다못해 어지럽혀 있는 방을 청소했다. 둘 다 흐뭇한 결론이다.
주인과 손님은 주종(主從) 관계가 아니다. 서로 어깨동무할 수 있는 사이다. 주류기업과 소비자도 마찬가지다. 소비자는 좀 더 친해지고자 기업의 상품을 찾는다. 기업은 그런 소비자에게 좀 더 잘 보이고 싶어 곁가지 상품을 준비한다. 소비자는 기꺼이 구매한다. 둘의 관계는 더 이상 좋을 수 없다.
웩 더 독은 그래서 주객전도다. 어이없는 상황이 아닌 재밌는 상황이다. 진심을 담은 웩 더 독은 잘 될 수밖에 없다.
<문화경제 김응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