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46호 김금영⁄ 2023.04.17 16:46:07
왝더독(Wag the Dog). ‘꼬리가 개의 몸통을 흔든다’는 뜻으로, 소비자가 판매 상품보다 딸려오는 ‘덤’이나 ‘경품’ 등에 더 큰 매력을 느껴 구매로 이어지는 주객전도 현상을 말한다. 기업들이 이 왝더독 마케팅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상반기 ‘밸런타인·화이트데이’ 시즌에 편의점 업계 활짝 웃은 이유
편의점 업계는 상반기 대목 중 하나로 손꼽히는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시즌에 왝더독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봤다. 본래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는 초콜릿, 사탕을 전하며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기념일인데, 협업상품과 경품이 오히려 주목받으며 확실한 주객전도 현상이 일어났다.
GS25는 인기 캐릭터 ‘짱구’와 MZ세대에게 핫한 브랜드 ‘크로우캐년’과 손잡고 3자 컬래버 세트 상품으로 틴케이스, 에코백, 미니캐리어 등을 선보였다. 이중 특히 미니캐리어가 주목받았다. 미니캐리어 안에 초콜릿, 과자 등을 담은 이 제품은 한정 수량 5000개가 밸런타인데이 1주 전에 이미 품절됐다.
세븐일레븐은 ‘산리오캐릭터즈’와 손잡고 미니캐리어 3종과 중형캐리어 1종을 출시했는데, 해당 상품들 또한 출시 약 10일 만에 10만 여개가 조기 완판됐다. 중형 캐리어의 경우 5만 9000원이라는 다소 만만치 않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판매 직후 품귀현상을 보였다. 각종 후기글은 초콜릿, 사탕이 아닌 캐리어 이야기 일색이었다.
한 구매자는 “여자친구에게 줄 화이트데이 선물을 고민했는데 캐릭터 캐리어를 갖고 싶다 해서 구매했다. 정작 사탕에는 관심이 없더라. 하지만 무척 좋아해서 뿌듯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구매자는 “본래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와 상관없는 솔로인데 캐릭터 캐리어 디자인이 예쁘게 나와서 갖고 싶어 구매했다”고 전했다.
이마트24가 전개한 화이트데이 마케팅에선 주얼리, 골드바 등 프리미엄 경품이 눈길을 끌었다. 초콜릿·사탕·젤리를 구입하는 고객 중 추첨을 통해 380만 원 상당의 티파니앤코 ‘엘사 퍼레티 루비세트(목걸이&귀걸이)’, 순금 3.75g, 실버바 100g 등을 제공했다. 하리보 젤리 10종을 모두 구매한 선착순 1만 명에겐 모바일 금액권도 선물로 제공했다. 이마트24 측은 “이번 화이트데이 땐 젊은 고객층이 선호하는 아이템을 경품으로 내걸어 많은 관심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마트24는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시즌에 앞서 도시락 부문에서도 왝더독 마케팅을 전개해 성과를 거둔 사례가 있다. 대표적으로 하나금융투자와 협업해 2021년 선보인 ‘주식(株式) 도시락’이 있다.
주식 도시락엔 네이버,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등 10개 기업의 주식 중 1주를 받을 수 있는 쿠폰이 랜덤으로 동봉됐는데, 당시 초저금리로 주식 열풍이 뜨거울 때라 더욱 큰 호응을 얻었다. 주식 도시락 1차 판매(7월 14~16일) 기간에 5만 개가 판매됐고, 2차 판매가 진행된 기간(7월 28~29일)에는 이마트24 전체 도시락 매출이 전주 대비 56% 늘었다.
인기에 힘입어 이마트24는 이듬해엔 신한금융투자와 손잡고 미국 주식 도시락을 선보였다. ‘열어보니 미국주식’ 도시락엔 테슬라,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월트디즈니, 나이키, 코카콜라 등 12개 기업의 주식 중 1주를 받을 수 있는 쿠폰이 랜덤으로 동봉됐다.
올해 3월엔 KB국민은행과 5000원대의 ‘돈(豚)드리는 은행도시락’ 2종을 선보였다. 도시락에 2만 3000원의 현금성 금융쿠폰 바우처를 동봉했다. 도시락을 구매한 고객이 4월 2일까지 동봉된 쿠폰 뒷면의 인증번호를 KB스타뱅킹앱에 입력하면 청약이나 예·적금, 펀드 가입 시 사용할 수 있는 쿠폰과 외화 환전쿠폰을 모두 받을 수 있게 했다.
양사는 실제 도시락 금액의 4배 이상에 달하는 경품을 제공하는 왝더독 마케팅을 펼치고 60% 할인 쿠폰을 제공하는 것에 대해 “고객에게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기존 고객의 만족감을 높이고 신규 고객을 창출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커피업계에 매년 벌어지는 증정품 마케팅 대전
커피전문점 스타벅스엔 매년 여름과 연말 왝더독 마케팅이 돌아오고 있다. 증정품을 얻기 위해 음료를 마시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것. 2003년부터 시작된 ‘e-프리퀀시 행사’는 꾸준히 스타벅스를 방문하는 고객에게 감사의 의미를 전하고자 진행돼온 사은 행사로, 여름엔 캐리백, 파우치, 랜턴 등 실용적인 아이템을, 겨울엔 다이어리를 증정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미션 음료를 포함해 제조 음료를 구매하고 e-스티커 적립을 완성한 고객에게 증정품을 제공한다. 증정품을 얻기 위해선 상당량의 음료를 마셔야 하지만, 매년 조기 품절 사태를 빚을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아왔다.
스타벅스의 e-프리퀀시 행사가 인기를 끌자 커피빈코리아, 탐앤탐스, 이디야커피, 투썸플레이스 등도 이를 따라 다양한 상품을 내놓고 있는데, 특히 연말엔 다이어리 대전이 치열하다. 일정 음료를 마셔야 증정품을 받을 수 있는 형태는 대체로 동일하다. 다이어리라는 카테고리가 같기에 각양각색의 성격을 부여해 차별화를 두는 데 주안점을 뒀다.
지난해의 경우 탐앤탐스와 이디야커피는 다이어리와 예술의 만남으로 눈길을 끌었다. 탐앤탐스는 10년째 이어지고 있는 예술문화 프로젝트 ‘갤러리탐 신진작가 공모전’에 당선된 바 있는 김기연 작가와 협업해 다이어리를 만들었다. 이디야커피는 아트디렉터 차인철과 협업해 다이어리 세트를 출시했다.
커피빈코리아는 자사의 상징색을 살린 상품을 선보여 고객의 호응을 얻었다. 2020년 6월 보라색 콘셉트로 진행한 ‘퍼플 페스티벌’ 이벤트 기간에 보라색 장우산 2종을 처음으로 선보였는데, 출시 하루 만에 품절돼 6차 리오더까지 진행됐다.
식품업계, 팬심과 만난 왝더독 마케팅
식품업계에도 왝더독 마케팅이 활발하다. 특히 팬심과의 조화가 눈에 띈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SPC삼립의 ‘포켓몬빵’이 꼽힌다. 지난해 단종 16년 만에 재출시된 포켓몬빵은 출시 일주일 만에 150만 개, 40여 일만에 1000만 봉이 팔리며 각 편의점마다 품귀 현상을 보였다. 여러 편의점 출입문엔 포켓몬빵이 다 팔렸다는 공지문이 붙거나, 포켓몬빵 구매를 위해 몰려드는 고객으로 인한 아르바이트생의 고충 등을 적어 놓아 눈길을 끌기도 했다.
포켓몬빵의 흥행엔 캐릭터에 대한 팬심, 그리고 여기서 비롯된 소장욕구가 있다. ‘포켓몬스터 시리즈’는 일본 게임 원작으로, 1999년 국내에 애니메이션이 방영되자 인기를 끌었다. 애니메이션의 흥행에 같은 해 SPC삼립은 포켓몬빵을 출시했고, ‘띠부띠부씰(띠었다 붙였다할 수 있는 스티커)’이 특히 소비자의 수집 욕구를 자극했다. 빵을 구매하면 안에 딸려오는 캐릭터 스티커로, 다양한 포켓몬 캐릭터의 모습을 담았다.
지난해 일부 중고거래 마켓에서 포켓몬 띠부띠부씰이 포켓몬빵 가격(당시 1500원)보다 훨씬 비싼 값에 판매되기도 했다. 희귀한 포켓몬 캐릭터인 ‘뮤’와 ‘뮤츠’ 스티커는 5만 원을 호가했고, 포켓몬 캐릭터 159종 전종을 모은 띠부띠부씰 완성본은 가격 거래선이 80만 원에 형성되기도 했다.
인기 연예인의 팬덤도 왝더독 마케팅의 주요 고객이다. 지난해 이마트24는 아이돌 그룹 트레저의 사진이 담긴 이프레쏘 원두 커피컵을 선보였다. 즉석 원두커피인 핫 아메리카노를 알리기 위한 프로모션이었는데, 많은 팬들이 깨끗한 컵을 가져가고 싶어 커피를 구매한 뒤 정작 커피는 받지 않고 컵만 가져가는 현상이 발생했다.
팔도는 지난해 그룹 2PM 멤버 겸 배우 이준호를 모델로 발탁했을 당시 ‘팔도비빔면’ 제품 구매 고객에게 이준호 포토카드를 증정하는 마케팅을 전개했다. 제품에 동봉된 포토카드 중 ‘팔도’, ‘비빔면’ 글자가 적힌 카드를 모두 모아 인스타그램에 인증한 고객 중 70명을 이준호 팬 사인회에 초대하는 이벤트도 함께 전개해 팬들의 호응을 얻었다.
왝더독 마케팅의 명과 암
왝더독 마케팅은 매출면에서 좋은 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포켓몬빵 띠부띠부씰 흥행에 힘입은 SPC삼립의 지난해 연 매출은 처음으로 3조 원을 돌파했다.
2003년 연말 다이어리 마케팅을 시작한 후 점차 굿즈를 늘린 스타벅스는 2021년 기준 전체 매출 중 10%가 증정용 프로모션 상품을 제외한 머그·텀블러 등 굿즈에서 나왔다.
GS25가 밸런타인데이를 위해 선보인 컬래버 기획 세트 상품 50여 종 매출은 전년 대비 826% 늘었다. 특히 짱구 컬래버 기획세트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GS25를 방문하는 고객이 늘며 밸런타인데이 행사 초콜릿 매출까지 61% 늘어 GS25 측은 “이쯤 되면 짱구는 GS25의 명예 상무”라고 행복한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왝더독 마케팅의 성공 요인은 고객의 흥미를 끄는 기획력으로 소비자의 접점을 넓히는 데 있다. 본래 주력 사업이 아닐지라도 덤이나 굿즈 생산을 통해 영역을 확장시켜 소비자의 관심을 보다 끌어들이는 것이다.
SPC삼립의 경우 왝더독 마케팅에 추억을 활용한 기획력으로 인기를 끌었다. 어린 시절 포켓몬빵을 접했던 MZ세대가 현재 주요 소비층으로 성장했고, 이 띠부띠부씰을 모으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연 것.
좋은 상품의 질도 중요하다. 덤이라 해서 상품의 질을 허투루 하면 오히려 외면 받는다. 스타벅스 다이어리의 경우 스타벅스라는 브랜드 가치와 더불어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온 이탈리안 프리미엄 다이어리 브랜드 ‘몰스킨’ 재질이라는 점에서 소비자 사이 소장가치가 높다. 스타벅스의 상징색인 초록색을 중심에 둔 심플한 디자인과 좋은 품질이 호응을 얻어 몰스킨은 2014년부터 꾸준히 다이어리 제조 파트너로 협업해왔다.
한정판 상품이라는 희소성도 인기의 요인이다. 스타벅스 다이어리의 경우 매년 출시되긴 하지만, 매번 새로운 기획력과 디자인으로 그 해에만 만날 수 있는 다이어리라는 점이 소비자에게 강하게 인식돼 있다.
올해 흥행에 성공한 밸런타인·화이트데이 마케팅에서도 각종 컬래버 상품이 올해 한정된 기간에만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이 고객의 소장 욕구를 더욱 자극했다. 한정 이벤트도 마찬가지다. 팔도는 비빔면을 많이 구매한 고객을 대상으로 이준호 팬 사인회 티켓을 증정하는 행사를 진행했는데, 11번가 발표에 따르면 당시 1등은 230만 1000원, 2등은 190만 7800원을 결제했다.
각 업계는 기존 왝더독 마케팅의 흥행에 힘입어 마케팅을 이어가는 분위기다. SPC삼립은 포켓몬빵의 흥행을 잇기 위해 ‘산리오캐릭터즈 빵’을 4월 내놓았고, 5월 14일까지 자판기 미니팝업을 운영한다. 서울 일대에 설치된 산리오캐릭터즈 빵 자판기를 통해 산리오캐릭터즈 빵과 띠부띠부씰 북 등을 구매하고, 포토존으로 활용할 수 있다.
산리오캐릭터즈 빵은 출시 일주일 만에 판매량 100만 개를 돌파했다. SPC삼립 측은 “고품질의 제품과 캐릭터 마케팅으로 소비자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며 “반짝이 띠부띠부씰이 포함돼 꾸미기를 좋아하는 잘파세대(Z세대+알파세대)에게 큰 호응을 얻은 것도 인기 요인”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왝더독 마케팅을 잘 활용하면 득이 되지만, 정도가 지나칠 경우 문제가 되기도 한다. 포켓몬빵은 과거 첫 출시 당시에도 일부 소비자가 빵을 구매해 스티커를 얻은 뒤 빵은 먹지 않고 버려 음식물 쓰레기가 늘어나는 사태가 벌어진 바 있는데 이번에도 이런 모습이 일부 발견됐다.
스타벅스의 경우 2020년 여름 ‘서머 레디백’ 소형 캐리어를 얻기 위해 한 손님이 음료 300잔을 주문한 뒤 음료 299잔을 남겨두고 가는 기행이 벌어져 음료 제조에 소요되는 스타벅스 파트너들의 노동력, 음료를 만드는 데 쓰인 재료 낭비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후 스타벅스는 비슷한 사례가 발생하는 걸 막기 위해 이벤트 기간 동안 매장 오프라인 주문의 경우 1인 1회 주문 시 제조음료를 최대 20잔까지만 주문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다.
팔도는 비빔면 마케팅 진행 시 사인회에 신청하기 위해 모아야 하는 카드 중 ‘팔도’ 카드가 매우 희귀해 사행성 논란이 불거졌다. 한 소비자는 “비빔면을 600개 이상 구매했는데 ‘비빔면’ 카드만 나오고 ‘팔도’ 카드는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의도적으로 해당 카드만 적게 제작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준호 ‘팔도+비빔면’ 포토카드를 얻기 위해선 적어도 제품 구매에 1만 5000~7000원을 지출해야 했는데 배보다 배꼽이 커도 너무 크다는 지적도 있었다. 당시 팔도 측은 “이벤트가 시작된 5월 13부터 24일까지 전년 동기 대비 판매량은 비슷한 수준이다. 팔도비빔면 판매량을 늘리기 위한 목적이었다면 이벤트 기간을 더 길게 잡았을 것”이라며 “비빔면 매출을 올리기 위해 확률 또한 조작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아쉬운 마케팅이라는 비판은 피하지 못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최근 업체들이 신제품 개발보다는 덤이나 굿즈를 활용한 왝더독 마케팅에 몰두하는 경향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여러 부작용이 있을지언정 신제품 개발 대비 가격이 합리적이고 매출 효과가 좋고 마케팅 차원에서 더 화제가 되기 때문”이라며 “소비자의 눈길을 효과적으로 끌기 위한 웩더독 마케팅은 앞으로도 활발하게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