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 수익 전부 혹은 일부를 재생 에너지와 기후변화 대응 등 친환경 사업에 쓰는 금융 상품인 ‘녹색채권(green bond)’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글로벌 금리 인상 기조 속에서 주춤했던 녹색채권 발행은 최근 다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글로벌 시장에서 투자자들의 선호로 자금조달이 상대적으로 쉽고 발행 회사 신뢰도 제고 효과도 있는 데다 최근 정부의 녹색채권 이자비용 지원 방침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공공부문, 녹색채권 발행에 앞장 서
1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7월 말까지 국내 채권시장에서 발행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채권은 총 45조5420억 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36조1200억 원)과 비교하면 26.1% 증가했다. 올해 상반기(1~6월) 회사채 발행 규모가 전년 대비 25조6900억 원(26.7%) 늘어난 121조8000억 원인 것과 비교하더라도 주목할만한 증가세다.
사회책임투자채권(SRI), 사회공헌채권이라고도 불리는 ESG 채권은 발행자금이 친환경 또는 사회적 이득을 창출하는 프로젝트에 사용되는 채권이다. 크게 △사회적채권 △녹색채권 △지속가능채권 △지속가능연계채권으로 나뉜다. 채권 수익 전부 또는 일부를 사회적채권은 사회가치 창출 사업에, 지속가능채권은 환경 친화적이면서 사회가치를 창출하는 사업에 쓴다. 지속가능연계채권은 ESG 목표 달성에 따라 재무적‧구조적 특성이 변경될 수 있는 채권이다.
특히 신재생에너지 등 친환경 프로젝트나 사회기반시설에 수익을 쓰는 녹색채권은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에 따라 탄소중립과 환경개선에 기여하는 ‘친환경 경제활동’을 추진하는 기업들이 발행하는 채권이다. 한국거래소에 상장되는 녹색 채권은 환경부가 발표한 ‘한국형 녹색채권 가이드라인’ 기준을 충족해야 발행할 수 있다. 재생에너지 생산과 무공해 차량 제조,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등 74개 경제활동이 포함된다.
이러한 녹색채권 발행 규모도 커지고 있다. 올해 1~7월 발행된 녹색채권 발행 규모는 총 5조2170억 원으로 작년 1~7월(4조3510억 원)보다 19.9% 늘어났다.
녹색채권 발행을 선도하는 곳은 바로 공공기관과 공기업이다. 올해 1~7월 공공 부문에서 발행한 녹색 채권 규모는 모두 2조700억 원에 달한다.
지난 1월17일 한국서부발전이 1000억 원 규모의 올해 첫 녹색 채권을 발행한 데 이어 200억 원(4월20일)과 400억 원(7월19일) 등 3차례에 걸쳐 모두 1600억 원 규모를 발행했다. 이어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지난 5월 두 차례에 걸쳐 모두 3900억 원을, 한국남부발전도 4월과 6월 각각 500억 원씩 1000억 원을 발행했다.
이 밖에 △부산교통공사 700억 원(4월25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4100억 원(5월19일) △산업은행 3000억 원(6월15일) △국가철도공단 300억 원(6월23일) △한국전력공사(한전) 2800억 원(6월23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1000억 원(6월27일) △한국동서발전 1700억 원(6월27일) △한국남동발전 300억 원(6월29일) △한국중부발전 300억 원(7월6일) 등도 발행에 나섰다.
금융‧친환경 기업도 녹색 채권 발행
이에 뒤질세라 금융권도 녹색 채권 발행에 팔을 걷어붙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금융권 최초로 지난 3월28일 현대캐피탈이 6000억 원의 녹색채권을 발행한 데 이어 △BNK캐피탈 300억 원(4월18일) △현대카드 2500억 원(6월9일) △롯데카드 400억 원(7월24일) △우리금융캐피탈 800억 원(7월31일) 등 캐피탈사와 카드사에서만 1조 원 규모의 녹색 채권을 잇달아 발행했다.
비(非) 금융권도 녹색 채권 발행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친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배터리 분야 업체들의 이름이 눈에 띈다. 포스코퓨처엠(옛 포스코케미칼)은 지난 2월 4000억 원, 4월 3000억 원 등 모두 7000억 원 규모의 녹색 채권을 발행했다. LG에너지솔루션도 지난 6월29일 1조 원 규모 회사채 전액을 녹색 채권으로 발행했다. 이 밖에 △한화 1900억 원(4월13일) △동원시스템즈 400억 원(4월27일) △GS에너지 1500억 원(6월8일) △한양 600억 원 (6월15일) 등도 녹색 채권 발행 대열에 동참했다.
이미 발행된 금융권의 녹색 채권 규모도 상당한 수준으로 특히 금융그룹을 중심으로 활발히 발행됐다.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그룹은 지난해에만 3조1000억 원 규모의 ESG 채권을 발행하는 등 지난해 말까지 모두 13조8000억 원을 발행해 국내 금융그룹 가운데 누적 기준 가장 큰 규모의 ESG 채권을 발행했다.
KB금융은 2020년 10월 국내 금융지주사 최초로 5000억 원 규모의 원화 ESG 채권을 발행한 데 이어 2021년 5월에 1100억 원 규모를 추가로 발행했다. 이 밖에 KB국민은행은 지난해 7억 달러와 5억 유로 규모의 외화 ESG 채권을 발행했고 △KB손해보험 2860억 원(지속가능채권) △KB캐피탈 2900억 원(지속가능채권) 등이다. 이 가운데 지금까지 KB금융그룹이 발행한 녹색채권은 모두 1조1000억 원에 달하는데 KB캐피탈은 올해 친환경 자동차 금융지원을 위해 3000억 원 규모를 추가 발행할 예정이다.
신한금융그룹의 경우 지난해까지 9조7700억 원 규모의 ESG 채권을 발행했다. 이 가운데 녹색채권은 신한은행에서 2021년 5‧11월 두 차례에 걸쳐 6600억 원과 2022년 7140억 원 등 1조3740억 원 규모를, 같은 기간 신한카드도 2900억 원 규모를 발행했다.
신한금융그룹의 녹색 채권 발행 사례로는 지난해 8월 전라남도 신안군 임자도 일대 염전 부지에 99.94MW 용량의 육상 태양광 발전 시설을 설치하는 신안군 태양광 발전PF 채권(136억 원)과 전라남도 광양시에 바이오매스(우드팰릿) 연료를 사용하는 220MW 규모 바이오매스 발전소를 건설하는 광양시 바이오매스 발전PF 채권(864억 원) 등이 대표적이다.
하나금융그룹은 지난해에만 약 1조1000억 원을 발행하는 등 지난해까지 모두 4조2820억 원 규모의 ESG 채권을 발행했다. 오는 2030년까지 25조 원 규모의 발행을 계획하고 있다. 하나금융그룹은 녹색채권을 포함한 ESG 채권에 대한 자문 서비스 제공에도 매진하고 있는데, 하나증권은 각종 녹색채권 발행에 대표주관사로 선정되거나 인수단으로 참여했다.
우리금융그룹은 △2020년 1조2346억 원 △2021년 2조1211억 원 △2022년 2조9355억 원의 ESG 채권을 발행했다. 이 중 녹색채권은 2021년과 2022년 각각 200억 원씩 발행됐다. 우리금융캐피탈은 2023년 하반기 1000억 원 규모의 한국형 녹색채권을 발행할 예정으로 이를 통해 친환경 전기차 금융 상품, 친환경 기업 및 프로젝트 투자 등을 확대할 계획이다.
현대캐피탈은 △2019년 4월 3000억 원 △2019년 12월 700억 원 △2020년 10월 2000억 원 △2021년 4월 1800억 원 등 올해 발행액을 포함해 총 1조3500억 원을 발행했다. 현대카드도 △2019년 8월 1200억 원 △2020년 9월 3400억 원 △2021년 3월 2500억 원에 올해 발행액까지 모두 9600억 원 규모의 녹색채권을 발행했다.
이 밖에 NH농협금융지주 산하 NH농협은행이 2021년 8월 1500억 원, NH농협캐피탈이 2022년 7월 300억 원 등을, 한국금융지주 핵심 자회사인 한국투자증권은 2021년 6월 1500억 원을, 삼성증권은 2021년 2월 1000억 원을, IBK기업은행은 지난해 11월 600억 원의 녹색채권을 발행했다.
정부, 녹색채권 발행 뒷받침
공공부문과 기업부문을 막론하고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녹색채권 발행에는 정부의 뒷받침도 한몫하고 있다. 앞서 환경부와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지난 5월 한전‧한수원 등 11개 공기업 및 한화‧한화솔루션 등 12개 민간기업과 ‘한국형 녹색채권 활성화 업무협약’을 맺고, 3조9000억 원 규모의 녹색 채권 발행에 약 51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번 업무협약은 ‘한국형 녹색채권 발행 이자 보전 지원사업’에 따른 것이다. 정부는 기업이 납부해야 할 이자액의 일부(발행금액의 0.2~0.4%)를 최고 3억 원 한도 안에서 지원한다. 이를 위해 올해 약 77억 원의 예산이 책정됐고, 이번 51억 원 지원에 이어 나머지 예산에 대해 추가 신청을 받았다.
특히 지난 2021년 말 발표된 가이드라인에서 빠졌던 ‘녹색분류체계에 포함된 경제활동을 대상으로 한 대출, 투자, 구매, 리스(대여), 할부 등 금융서비스’가 올해 1월 정부 최종 가이드라인에는 포함됐다. 금융권에서 친환경차(무공해차) 구매나 리스 지원을 위한 자금조달을 위한 채권을 발행할 때 녹색채권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자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개정한 것이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은 “전세계적으로 기후변화와 온실가스 감축 등 환경에 대한 문제가 크게 대두되면서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다소 주춤했던 녹색채권에 대한 인기가 다시 살아나는 것으로 보인다”며 “녹색채권의 경우 주로 탄소배출을 감축하기 위한 설비 투자와 친환경 발전단지 조성 등을 위해 자금을 조달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나라의 경우 전기차, 2차 전지, 발전소 등의 업체 위주로 관련 채권을 발행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오 소장은 이어 “ESG 경영의 80%는 환경이 차지하는 데 탄소절감 장치 등 막대한 자금이 요구되는 사안이라 쉽지 않다”면서 “기업의 근본적인 목표인 이윤추구와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문화경제 한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