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최영태⁄ 2023.09.11 16:35:43
분단의 비극을 벗어나 세계적 관광 도시 중 하나가 된 독일의 베를린. 주요 관광 포인트 중 하나인 포츠담 광장(Potsdamer Platz)에서 멀지 않은 크라운 플라자 호텔 로비. 세계 3대 전자 전시회 중 하나인 ‘베를린 IFA’의 첫날(9월 1일) 전시를 마친 독일 중견 전자업체 보이러(Beurer)의 직원 열댓 명이 저녁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로비에서 희희낙락하고 있었다.
4대째 승계된 104년 역사의 가족경영 기업이라기에 기자는 ‘검정 드레스로 복장을 통일한 독일식 진중함’을 예상했었는데 실제는 딴판이었다.
다음 날 이 회사의 대표 마르코 뷜러를 만나 인터뷰 한 뒤(4대승계 100년 독일 기업인데, '솜털처럼 경쾌' 어떻게? … 하루에도 몇번씩 ‘홍콩 가는’ 보이러 직원들) 곧이어 이 업체의 ‘핵심 3인방’ 중 한 명인 세바스티안 케베(Sebastian Kebbe) 상무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케베와의 인터뷰에서 기자의 초점은, △대기업에서 일하던 당신이 왜 4대 승계 가족경영 기업으로 옮겼나? △독일 특유의 공동결정(Mitbestimmung: 노조 대표가 이사회에 참여해 경영진과 공동결정)도, 노조도 없는 회사인데도 직원들은 만족하나? 두 가지였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 당신의 경력을 보니 SAP(독일의 다국적 소프트웨어 업체) 같은 대기업을 포함해 여러 업체에서 세일즈 전문가로 일하다가 2010년에 보이러에 합류해 2019년 이사회 경영진에 합류했다. 대기업에서 왜 가족경영 중견기업으로 옮겼나?
“17년 전 SAP의 영업사원으로서 보이러를 고객사로 만들기 위해 마르코 뷜러를 만났다. 당시 다른 독일 기업보다 훨씬 빠르게 결정을 내려줘 놀랐다. ‘이 회사와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밝혔더니 역시 신속히 영입을 결정해줬다. 의사결정 구조가 간단한 가족기업의 장점이다.”
- 공동결정 제도를 운영하는 독일 기업과, 가족경영을 하는 보이러의 장단점을 비교한다면?
“앞에서 말했듯 보이러의 가족경영 구조에서는 고속 의사결정이 가능하다. 독일 기업의 일반적 속도에 비한다면 지나치게 빠르다고 할 정도다. 반면 공동결정 제도를 의무 적용해야 하는 일정 규모 이상의 독일 기업에선 공동결정 과정에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의사결정이 아주 늦어지기도 한다.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느린 게 모두 문제인데, 보이러에서 경영진의 빠른 결정에 문제가 없도록 하는 수단이 있다. 바로 직원들이 중심이 돼서 ‘사전에 미리 충분히, 모든 문제를 질문하도록’ 하는 것이다. 제품의 조사-개발(R&D) 과정에서 특히 그렇다. 소비자를 중심에 놓고 직원들이 터놓고 충분히 질문한다. 그래서 보이러의 방식을 실용적(프래그매틱)이라고 할 수 있다.”
- 터놓고 질문한다는 게 직장에서 쉽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 경직된 사내 분위기라면 그렇다. 비결이 있다면?
“터놓고 피드백(open feedback)을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 회사는 직원들의 그 어떠한 피드백이라도 환영한다. 터놓고 의사소통하는 과정에서 직원들이 마음의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회사는 직원들의 마음 관리에 면밀히 주의를 기울인다. 회사는 직원들을 최종 소비자(end customer)처럼 대하고, 직원들은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모든 문제를 상식에 근거해 결정하는 직장문화가 중요하다.”
- 보이러에는 공동결정 제도도, 노조도 없다. 노조 없이도 직원들의 불만 처리가 가능한가?
“노조는 경영층에 대한 압력 수단으로 존재한다. 보이러에는 기본적으로 다툼이 없기 때문에 노조가 없어도 문제가 안 된다. 독일 산별노조가 사측과 교섭해 임금인상률 등의 합의를 이끌어내면 그 내용을 보이러에 그대로 적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노조가 없다고 보이러 직원들이 금전적 또는 복지 측면에서 불이익을 당할 일이 없다.”
- 당신은 보이러의 세일즈 총책임자다. 올해 보이러 코리아가 설립되고, 보이러 인도네시아도 설립될 예정이라고 들었다. 한국 시장에 특히 주력 상품으로 내놓을 제품 군은?
“헬스매니저(HealthManager)라는 브랜드명의 건강 제품군이 중요하다. 예컨대 시계처럼 차기만 하면 24시간 혈압과 부정맥을 측정해 주는 기구가 있다. 측정 데이터는 앱과 연동돼 고혈압 또는 부정맥의 징조를 아주 이른 시기에 알려줄 수 있다. 대개의 고혈압 환자들은 다른 이유로 병원에 갔다가 우연히, 늦은 시기에 고혈압을 발견하게 된다. 큰 경제적 부담 없이, 그리고 일상 활동에 지장을 주지 않는 헬스매니저를 착용함으로써 고혈압 같은 ‘침묵의 살인자’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다.
독일 기술과 유럽풍 디자인이 접목된 제품이 보이러의 장점이다. 보이러의 전기 담요가 이미 한국에서는 인기 품목이지만, 10년 전 출범한 뷰티 용품들, 그리고 첨단 기술이 적용된 보이러의 실내 가습기도 한국에서 수요가 클 것으로 예상한다. 신설되는 한국 지사가 보이러의 500여 제품군 중 한국 시장에 맞는 제품을 때맞춰 공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