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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환자가 기다리던 이를 만나지 못하고 눈을 감을 때

별세한 이건주 한국폐암환우회장 부인의 눈물 “현수막 들고 전공의 복귀 촉구한 날, 남편 상태 급속 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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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예은⁄ 2024.05.22 14:40:54

한덕수 총리, 별세한 이건주 폐암환우회장 빈소 조문. 사진=한덕수 국무총리 페이스북

의과대학 증원에 대한 반발로 의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아픈 몸을 이끌고 환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던 이건주 한국폐암환우회장이 19일 향년 78세로 별세했다.

 

국민일보는 22일 이 회장의 아내 신화월(77)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가 쓰러지기 직전까지 전공의들의 복귀 촉구를 위한 활동에 전념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2016년 폐암 4기 판정을 받고, 124번의 항암 치료를 받은 고인은 지난해 11월 시한부 3개월 선고와 함께 모든 항암치료를 중단하고 완화의료(연명치료를 중단하고 통증 완화와 심리적 안정 등을 목적으로 하는 치료)를 진행 중인 상황이었다.


통증을 호소하는 가운데도 그는 올해 2월 폐암 환우회 유튜브 채널에 등장해 의사들을 향해 "최고의 지성과 명예를 갖춘 집단으로서 부족한 사회에 대한 관용도 보여달라"며 "관계 당국과 의협은 즉각 협상을 재개하고 상호 이해와 협력의 기조로 서로 양보해 합의하고 생명을 다루는 의료 현장을 절대로 방기해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신씨는 이 회장이 의료계와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의료계 인사들과 대화 자리에도 참석했다면서, 마지막까지 그를 버티게 한 건 ‘의사들은 환자들 곁에 돌아와야 한다’는 신념이었다고 밝혔다.

 

이 회장의 마지막 외부 활동은 지난 3월 13일, 전공의들의 복귀를 촉구하기 위해 현수막을 들고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 앞에 선 날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정부 당국과 의료진들을 향해 서로 조금씩 양보해 타협안을 도출해, 고통을 받고 있는 환우들과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달라고 호소했다.


신씨는 “남편이 의협 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던 날 바람이 매섭게 불었고, 남편의 몸이 급격히 차가워졌다”며 “급기야는 굳어서 움직이기 힘든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이틀 후 이 회장은 결국 경기도 고양에 있는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했다. 이 회장은 삶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이 곳에서 다른 환우들의 안위를 걱정하며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의료계 파업의 조속한 종료를 촉구했다. 그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어떤 경우에도 의사들이 환자들을 떠나서는 안된다"며 "환자 목숨을 담보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려는 의료계 행위는 중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를 향해서도 "2000명 증원을 고집하지 말고 유연한 태도로 의료계와 원만한 합의를 도출해 지금 가장 고통받고 있는 환우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줘야 한다"며 "암은 며칠 만에 병세가 급격히 악화될 수 있어, 의료 파행 상황에서 수많은 암환자가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호스피스 병동에서 마지막까지 페이스북을 통해 환자의 권리 선언을 외치며, 의사의 복귀를 기다리는 환자의 심경과 돌아오지 않는 의료진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했다.

 

신씨는 “남편은 의사들이 높은 지위에 오르고 많은 수익을 얻었다면 지금의 어려운 상황에서 본인들이 가진 것을 환자한테도 나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환자를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이 병원을 떠난 의사들에게 필요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이어 “환자단체를 이끌던 남편이 의료계 집단행동으로 인해 삶의 마지막까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다”고 전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의사들이 악성 댓글을 다는 힘든 상황에서도 이 회장은 목숨을 걸고 소신 발언을 이어갔다”며 “이 회장의 마지막 당부가 의료계에도 닿아 환자들의 고통을 하루빨리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21일 이 회장의 빈소를 찾아 조의를 표했다. 조문 이후에 한 총리는 페이스북 글을 통해 "고인은 2020년 한국폐암환우회를 만들어 항암제 급여화 확대를 비롯한 환자 권익 신장 운동에 힘쓰셨다"며, "자신의 병마를 고치는 데만 골몰하지 않고, 같은 병을 앓는 환자 모두를 위해 애쓰신 분"이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고인이 생전 마지막 인터뷰에서 의사들을 향해 '내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라는 제네바 선언을 지켜 달라고 당부했다"면서, "의사 선생님들이 오해를 풀고 환자 곁으로 돌아와주기를, 의료개혁이 성공하고 의료가 정상화되기를 바라셨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더 깊이 고민하고 더 유연하게 대화하면서 의료개혁을 완수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 회장의 게시글은 4월 18일이 마지막이었다. 그가 게시글에 남긴 말은 "시간이 참 빠르게 흘러간다(Time flies so fast)" 였다.

 

환자의 시간은 그 누구보다 급박하며, 빠르게 흐른다. 한덕수 국무총리의 글처럼 "환자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문화경제 김예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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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주  한국폐암환우회 회장  의대파업  의과대학 증원  한덕수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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