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겐 집 안과 집 밖 중 어디가 더 중요한가? 집 안에 주로 머무는 사람이라면 집의 실내구조나 실내장식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반면 집 밖을 중시하는 사람이라면 야외 전망 또는 주변의 이용 가능한 시설이 더 중요할 것이다.
건축주 김선영(70세)-이승신(64세) 부부는 2021년 건축사사무소김남의 김진휴 대표(서울대 건축과, 예일대 석사, 스위스 건축협회/SIA 정회원), 남호진 소장(이화여대 건축과, 예일대 석사, 미국 건축사) 부부 건축가를 만나 딱 두 가지 핵심 사항을 전달했다. 하나는, 호수 전망을 극대화해 달라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집 안보다는 집 밖, 즉 마당에서의 활동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건축사사무소김남은 특이하게도 스위스 산골에서 2014년 출범했다. 풍경은 아름답지만 그만큼 산악 지형의 척박한 환경이기도 한 스위스에서 출발한 부부 건축가는 건축 재료의 물성을 오래 고민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쌓아왔다.
4가지 창안 어떻게 나왔나
핵심 요구 사항 이외에 대해서는 자유를 얻은 김-남 건축가 부부는 많은 관찰과 궁리 끝에 세계 최초라 할 두 가지 새 창조물, 그리고 그간 한국 건축물에서는 시도된 바가 거의 없는 두 가지 신박하면서도 쓸모있는 요소를 들고 나왔다.
두 가지 창조물은 집 전체를 감싼 철제 프레임, 그리고 그 프레임 위에 얹힌 ‘2중 홈통’이다.
△철제 프레임: 설계 과정에서 두 건축가는 ‘마당 생활’을 원한 건축주를 위해 ‘집과 마당 사이’ 공간에 집중했다. 그리고 인근 주택들을 폭넓게 둘러봤다. 거의 공통으로 발견되는 사항은, 집의 남쪽 처마에 덧댄 플라스틱(렉산 재질) 캐노피가 있다는 점이었다. 처마로 막지 못하는 햇볕 또는 빗물을 막기 위한 용도다.
짙은 색깔 플라스틱으로 햇볕을 완전히 차단하면 아래가 너무 어두워지고, 그렇다고 투명 플라스틱으로 하면 아래가 너무 뜨거워진다. 그래서 보통 햇볕을 부분 차단하는 초록색이나 갈색 렉산이 쓰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먼지와 때가 쌓이는 게 올려다보인다. 또한 렉산이 공기 흐름을 완전 차단하므로 답답하다는 단점도 있다.
김-남 두 건축가는 더 나은 캐노피를 창안했다. “어차피 덧댈 캐노피라면 처음부터 깔끔하고 견고하게 설치하면 더 좋다”는 아이디어였다. 결론은 지붕 끝에서부터 바깥으로 뻗어 나와 집 외곽을 한 바퀴 둘러싸는 철제 프레임이었다. 햇볕 차단을 위해 남쪽은 더 길게 뻗어 나오고, 북쪽은 덜 뻗어 나가도 된다.
이렇게 미리 설치된 프레임 위에는 무언가를 얹거나 걸 수 있어 다용도 활용이 가능하다.
현재 이 호숫가 집의 남쪽 프레임에는 아래 설명할 두 번째 세계 최초 고안인 ‘이중 홈통’이, 그리고 북쪽 프레임에는 처마 기능을 하는 스테인리스 판이 얹혀 있다. 서쪽 프레임으로부터는 또 다른 프레임이 마당으로 길게 뻗어 나가 주차장 지붕 역할을 한다. 차가 눈-비를 맞지 않고, 여름철에 뜨거워지지 않아 좋다.
집주인은 앞으로 동쪽 프레임에 천 재질의 어닝 등을 걸어볼 생각이다. 무언가를 걸칠 수 있는 프레임이 완전히 갖춰져 있으므로 다양한 활용 가능성이 열린다.
루버 거터로 공기소통-멋 모두 챙겨
△2중 루버 거터: 호수를 바라보는 남쪽 프레임 위에는 ‘루버 거터(louver gutter)’가 설치됐다. 루버는 ‘가느다란 널빤지’다. 널빤지를 연결해 햇빛을 차단하는 창문 블라인드를 생각하면 된다. 거터는 빗물을 내려보내는 홈통이다.
홈통은 빗물을 내려보내지만, 루버처럼 햇볕 차단 역할도 할 수 있다. 프레임에 깔끔한 철제 루버 거터를 단층으로 또는 위아래 2층으로 엇갈리게 배치하면 빗물-햇볕을 일부 또는 거의 차단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바람은 숭숭 통하니 답답하지 않다. 스테인리스 재질이니 아래서 땟국물이 보일 리 없고 항상 외모적 깔끔함이 유지된다.
완전히 막힌 것도, 안 막힌 것도 아닌 2중 루버 거터 밑에서 집주인은 햇볕-눈-비를 부분적으로 피하면서 사시사철 마당 생활을 즐길 수 있다.
돌 데크이지만 딱딱하지 않은 느낌
△추상화 같은 석재 데크: 지붕에서 뻗어 나온 철제 프레임 바로 아래에 폭넓은 석재 데크가 위치한다. 전통 한옥에도 ‘기단’이라 불리는 부분이 있고, 일반 단독주택에서도 집 벽체에 이어 붙여 데크를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 호숫가 집의 석재 데크는 ‘넓고 잘생겼다’는 두 가지가 다르다.
우선 넓은 폭은, 건축주의 ‘마당 생활’을 위해 채용됐다. 김 건축가는 “앞으로 건축주 부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집의 안과 밖을 드나드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밭을 가꾸는 것이 일과가 되는 삶이다. 그래서 우리는 실내를 이루는 볼륨을 만들고, 이 볼륨을 완충 공간으로 둘러싸기로 했다. 이 완충 공간은 흙 묻은 신발을 벗어 두고 물 한 잔 마실 수 있는 공간, 빨래를 널거나 과일 상자를 내놓을 수 있는 공간, 반짝이는 호수와 줄지어 심긴 모종들을 볼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많은 단독주택에서 데크의 재질은 나무, 석재, 콘크리트다. 하지만 나무는 썩기 때문에 수리 요구가 발생한다. 타일 또는 콘크리트 마감은 반듯하지만 너무 인공적이기도 하다. 건축가는 “시간이 흘러도 좋은 재질인 돌”에 인공적 직선이 아닌 자연스러운 비정형성을 추가했다.
석재 타일을 일부러 깨뜨린 뒤 타일과 타일 사이의 균열을 시멘트로 메꿔줬다. 부정형의 석판이 바닥을 구성하니 자연스럽고, 균열부로 시선을 보내는 재미도 있다. 건축가가 추구하는 “인공적이지 않고, 완전해 보이지도 않는 공간”이다.
루버-거터 시스템이 나무 벽을 보호
△나무-돌 투톤 외벽: 멀리서 이 집을 볼 때 별난 점은 집 외벽의 아래위 색깔이 다르다는 점이다. 벽 위쪽은 부드러운 나무(뉴질랜드산 레디에이터 소나무)이고, 아래쪽은 석재(호피석)다. 두 가지 색(two tone color) 마감이다.
남 건축가는 “대개 집 외벽을 석재면 석재, 목재면 목재로 통일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목조 주택이야’ 또는 ‘돌로 지었어’라는 집의 특징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런 것 같다”며 “나무 외벽은 느낌이 따뜻해서 좋지만 지면과 마주치는 쪽은 시간이 지나면 목재가 썩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 호숫가 집의 경우 미리 설치된 프레임과 2중 홈통 덕에 외벽 상부에 들이치는 햇볕 또는 빗물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기에 상단은 목재로, 하단은 돌로 마감하는 구성이 가능했다.
많은 건축주가 외벽의 나무 마감을 희망하지만 한국의 기후 특성상 힘든 점이 있는데, 이 호숫가 집이 미리 두른 프레임 + 루버 거터로 이 문제를 해결했으니 앞으로 투톤 외벽 채택 주택이 얼마나 늘어날지도 주목된다.
투톤 마감은 실내에도 적용됐다. 호수를 바라보는 쪽의 실내 벽은 따뜻한 미송 나무로, 주방 쪽은 깔끔한 흰색 일반 벽으로 마감됐다. 일부 주택의 경우 심지어 화장실까지 모든 벽과 천정을 목재로 마감해 ‘숨 막히는 목재감’을 과시하기도 하지만, 이 집에 그런 단조로움이 없다.
이런 ‘투톤 마감’에 건축주 역시 대만족이다. 이 집의 안주인은 “부분별로 다른 마감이 정말 맘에 든다”며 “디자인을 건축가에게 전적으로 맡기면서도 내심 ‘화장실 타일은 이거면 좋겠다’고 바라던 제품이 있었는데 딱 그 타일을 건축가가 고른 걸 보고 정말 감탄했다”고 말했다.
大주제는 완충-소통, 하지만 창호는 기밀을 완성
이 집의 큰 주제는 ‘완충’이다. 프레임, 2중 홈통, 석재 데크 등이 완충을 이뤄주는 부분들이다.
이러한 완충성은 집 안에서도 구현된다. 실내는 현관으로부터 취미실, 거실, 침실이 나뉘지만, 기둥이나 큰 벽이 없이 넓게 열린 공간이어서 시선과 소리가 통한다. 재봉질을 하면서 밭일하는 남편이 보이고, TV를 보다가도 아내의 기척을 느낄 수 있는 구조다.
하지만 이렇게 집 안팎이 소통한다고 해서 기밀성마저 느슨해지면 안 된다. 전원주택에선 창호 등을 통해 벌레 등의 침투가 일어나므로 실내외를 완벽하게 차단하는 기밀성이 완벽해야 한다.
이를 위해 건축가는 경쾌하면서도 단단한 창호를 동원했다. 요즘 아파트의 2중 창호는 기밀성은 좋지만 부피-무게가 육중하다는 단점이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동원된 방법은 필로브 사의 창호였다. 한 겹이라 가벼우면서도, 기밀성은 건축 법의 요구치보다 우수하다. 김 건축가는 “창호의 선택은 매우 중요하다. 이 주택은 전체적으로는 소통을 추구했지만 실내외 차단에는 완벽한 기밀성을 추구했다”고 말했다.
한국 단독주택의 새 트렌드 될까?
새로운 창안이 많이 적용됐지만, 집의 외모는 낮고 친근하다. 디자이너 하우스임을 과시하는 별난 형태 또는 울긋불긋 색채감은 없다. 건축주가 바란 “처음 지었지만 1년 된 듯한, 10년이 지났어도 1년 된 듯한” 외모의 완성이었다. 그래서인지 동네 주민들이 “집 예쁘게 지으셨다”며 불쑥불쑥 찾아들기도 한다. 배척하지 않는 외모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잘난척 하지 않으면서 주변 환경에 잘 스며들어가는 집, 그래서 동네 주민들도 친근감을 느끼지만, 집 안팎으로는 새로운 창안을 여럿 담은 이 집이 앞으로 한국 단독주택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자못 궁금하다.
<동영상 기사 시리즈>
[SPACE가 간다 ①] 미루나무 살리려 건물 물러서니 나무는 ‘최애 공간’으로 보답
[SPACE가 간다 ②] 중목구조는 어떻게 10대 굳은 마음 열었나 … “공간이 정말로 마음 바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