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81호 김예은⁄ 2024.10.11 10:50:52
2017년 5개 초대형 IB 지정 이후 7년째 소식 없는 ‘6호 초대형 IB(Investment Bank)’의 자리에 이름을 올릴 금융사는 어느 기업이 될 것인가.
하나증권은 지난해부터 초대형 투자은행(Investment Bank: IB) 진출을 목표로 전통적인 IB 사업 강화에 나서고 있다. 4조 원 이상의 자기자본 규모를 갖추고, IB 중심의 체력 강화가 실적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는 하나증권의 움직임을 짚어본다.
투자은행(IB)은 기업과 정부 및 관계기관 등의 자금 수요자들과 기관 및 개인투자자와 정부 등의 자금공급자를 연결해 주는 중개자(intermediary)로서 투자 형태로 자금을 제공하며 수익을 창출한다. 투자은행 업무의 4개 주요 시장은 주식 인수(equity capital markets: ECM), 채권 인수(debt capital markets:DCM), M&A자문 및 신디케이트론(syndicate loan) 등이다.
국내 증권사를 비롯한 주요 금융회사의 벤치마크로 여겨졌던 글로벌 투자은행은 금융위기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발전하고 있다.
최순영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현대적 개념의 투자은행은 미국에서 1933년 제정된 글래스-스티걸법(Glass-Steagall Act) 제정에서 탄생했다. 미국의 대공황 당시 다수 은행의 연쇄도산 사태가 나타났는데 그 배경으로 은행의 증권업 겸영으로 과도한 위험 추구와 이해 상충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런 사태는 은행을 여수신 업무를 취급하는 ‘상업은행(commercial bank)’과 유가증권의 인수(underwriting) 및 위탁매매(brokerage)를 하는 ‘투자은행(investment bank)’으로 이원화하는 법 제정의 배경이 됐다.
글로벌 금융사들의 IB 변천
글래스-스티걸법의 제정으로 투자은행의 시대의 막이 올랐다. 1935년 JP 모건(JP Morgan)에서 분리되어 투자은행으로 출현하게 된 모건 스탠리(Morgan Stanley)를 필두로 골드만 삭스(Goldman Sachs), 메릴 린치(Merrill Lynch) 등의 투자은행이 본격적으로 성장했다.
초기 투자은행의 사업모델은 '유가증권의 인수'와 '발행된 증권의 유통을 중개'하는 브로커리지 업무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당시 증권 인수는 단체로 하는 신디케이트(syndicate)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1980년대 들어 M&A 대 물결(Merger Wave)이 형성되면서 M&A 자문이 투자은행의 새로운 업무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주요 투자은행 중에서는 모건 스탠리가 1972년 최초로 M&A 자문 부서를 설립했고, 차입매수(leveraged buyout: LBO)와 적대적 유형의 M&A가 늘어나면서 투자은행이 M&A자문 시장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초기 투자은행의 주요 수익원은 고객 네트워크 및 신뢰 기반의 관계형 사업이 중심이 되었다.
이후, 2000년대에 들어서는 트레이딩(trading) 사업이 자리 잡기 시작했으며, 특히, 트레이딩 사업 내에서도 시장조성(market making)보다 자기자본을 활용해 투자수익을 얻는 자기매매(proprietary trading)와 자기자본투자(PI, principal investments)에서 고수익을 창출했다. 주요 투자은행은 사내 사모펀드(private equity, hedge fund) 사업을 담당하는 부서를 설립하고 더욱더 많은 자본을 해당 부서에 할당했다.
2000년대 초반 주요 투자은행은 트레이딩, 투자은행 및 자산관리ㆍ운용 사업간 일정 수준의 균형적인 수익구조를 갖추고 있었으나, 점차 트레이딩 사업 중심으로 수익구조가 편중되어 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투자은행 산업은 대대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됐다. 그간 우리가 익숙했던 ‘투자은행’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그 자리는 금융지주회사의 형태로 보다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는 여러 유형의 은행(bank)이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금융위기 이후 주요 자산관리ㆍ운용 수익이 트레이딩 수익을 대체하고 가장 큰 수익원으로 부상했다. 이와 같은 변화는 트레이딩 수익이 감소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금융위기 이후 주요 투자은행이 자산관리ㆍ운용 사업을 전략적으로 확대하여 수익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은행의 트레이딩 수익 감소는 금융위기 직후에만 국한되지 않고, 이후 10년 넘게 지속되는 추세다. 주요 투자은행의 자산관리ㆍ운용 수익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이유는 사업의 범위를 기존 고액자산가 및 기관투자자에서 리테일 고객 시장으로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리테일 시장의 빠른 성장세로 매력도가 높아지고, 로보어드바이저(robo-advisor) 등 핀테크 기술의 발전으로 리테일 자산관리ㆍ운용 시장의 진입장벽이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글로벌 투자은행의 변모를 이끄는 주요 테마는 ‘사업 균형’, ‘고객과의 관계’ 및 ‘IT 기술’이다. 특히 사업의 다각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트레이딩 사업의 고수익과 고변동성을 지양하고, 자산관리 및 자산운용 사업의 안정적인 현금흐름에 중점을 두고 있는 모습이다.
IB 개선으로 균형 성장 꾀하는 국내 금융업계
글로벌 금융 기업의 저변이 균형 성장을 추구하는 가운데 위탁매매와 같은 중개업 업무를 중심으로 성장해 온 국내 증권사는 기업금융 업무의 경쟁력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사업 균형을 꾀하고 있다.
2013년 5월 금융당국은 혁신 중소기업의 창업과 성장을 지원하고 기업의 해외 프로젝트 수행 시 종합적인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국내 대형 증권사를 투자은행으로 육성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금융위원회는 2013년 10월 3조 원 이상의 자기자본을 보유하고, 내부통제 기준 구비 조건을 갖춘 주요 대형 증권회사를 종합금융투자사업자(이하, 종투사)로 지정하고, 이들로 하여금 기업 신용공여와 헤지펀드 전담 중개 업무(Prime Brokerage Service: PBS)를 허용했다.
나아가 2016년 8월 금융당국은 혁신기업에 대한 모험자본 공급을 확대하고, 위탁매매 등 중개업 위주의 영업구조에서 벗어나 투자은행 중심의 종합 기업금융 서비스를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초대형 IB 육성방안을 발표했다.
초대형 IB 재무 요건은 자기자본 4조 원 이상이다. 불완전 판매, 내부 통제 부실, 선행매매(미공개 정보로 이득을 취하는 주식 거래) 혐의 등의 위험 요인이 최소화된 신뢰성도 함께 고려되는 요소다.
초대형 IB에게는 글로벌 IB들의 사업구조를 벤치마크하여 국내 증권업의 대형화를 유도하고 해외진출을 장려하기 위해 자기자본을 키울수록 유망한 투자은행 사업 기회를 제공하는 인센티브를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자기자본 4조 원 이상의 종투사에게 발행어음 업무를 허용하고 자기자본 8조 원 이상의 종투사에게 종합투자계좌(Investment Management Account: IMA) 업무를 허용했다. 당시 금융당국은 고객에게 수신한 자금을 기초로 기업에 대한 자금공급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 발행어음과 IMA로 조달한 자금은 레버리지 비율 규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다.
한아름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초대형 IB는 자기자본 증가에 따라 허용되는 신용공여, 발행어음 및 종합투자계좌 업무 등을 활용해 M&A를 중개와 자문을 연계하여 기업금융을 동시에 제공하여 상호 부문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2023년 6월 현재 총 9개 대형 증권회사가 금융당국으로부터 종투사로 지정받아 기업 신용공여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이 중 4개 종투사는 초대형 IB로 허가받아 발행어음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종투사 지정 현황을 살펴보면, 2013년 10월 KB증권, NH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5개 회사가 종투사로 지정받았으며 이후 미래에셋증권, 신한증권, 메리츠증권, 하나증권, 키움증권이 추가로 종투사로 지정받아 현재 9개 대형 증권회사가 종투사로서 기업 신용공여와 PBS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2017년 11월에는 KB증권, NH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 한국투자증권이 초대형 IB로 지정받았으며 이중 삼성증권을 제외한 4개 증권회사가 발행어음 인가를 순차적으로 받아 발행어음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들 5개 사는 지난 2017년 초대형 IB로 일괄 지정됐으나, 이후 여섯 번째 초대형 IB는 탄생하지 않았다.
전통 IB 강화 전략 통했다... 하나금융지주 '비은행 이익 기여' 1위
2019년 7월 국내 증권사 중 8번째로 종투사에 지정된 하나증권은 지난해부터 초대형 IB 문을 지속적으로 두드리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하나증권은 금융 당국에 초대형 IB 인가를 위한 신청 서류를 제출하고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올해 1분기 기준 하나증권의 자기자본 규모는 5조 원대로 초대형 IB 요건 중 하나인 자기자본 규모를 갖췄다. 다만, 랩·신탁 불건전 운용과 관련한 제재 가능성은 해결 과제로 꼽힌다.
지난해 하나UBS자산운용을 자회사로 흡수한 하나증권은 올해 주식발행시장(ECM), 부채자본시장(DCM) 등 전통IB 확대 전략을 기반으로 외형 성장을 꾀해왔다.
하나증권 IB그룹은 그동안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에 치우친 IB 비즈니스를 펼쳤고, 국내외 부동산 시장 침체로 타격을 입었다. 이 과정에서 하나증권은 3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며, 지난해 4분기 기준 2529억 원의 당기순손실과 340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바 있다.
지난해 취임한 강성묵 하나증권 대표는 올해 초 하나증권 내부 신년사를 통해 업의 경쟁력 강화를 언급하며 주식발행시장(ECM)·기업금융 확대 등 전통 IB 강화를 강조한 바 있다.
이와 함께 하나증권은 조직개편을 통해 기존 IB그룹을 IB1·2 부문으로 분리했다. 전통 IB를 담당하는 IB1 부문 밑으로는 ECM본부와 기업금융본부가 편제됐다. ECM본부는 기업공개(IPO)에 주력하고, 기업금융본부는 채권발행시장(DCM)과 유상증자 등에 집중하는 전략이다. 이 밖에도 자산관리(WM) 부문 강화와 디지털자산 시장 선점을 위해 균형 성장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 결과 하나증권은 올해 1분기 투자은행(IB) 부문 실적에 힘입어 899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하며 실적 반등을 이뤄냈다.
하나금융지주는 올해 1, 2분기 연속 '순이익 1조 원'을 넘기는 진기록을 세웠는데, 이 과정에서 비(非) 은행 계열사의 이익 기여도가 20%대로 개선된 것이 주요 배경으로 꼽힌다. 특히 올해 상반기 하나금융의 비은행 이익기여도 개선에 가장 크게 기여한 계열사는 하나증권이었다.
하나증권의 올해 상반기 실적을 살펴보면 영업수익(매출액) 6조6955억 원, 영업이익 1607억 원, 순이익 1320억 원으로 전년동기대비 영업수익은 소폭 감소했지만(-2.42%)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67.50%, 282.61% 증가했다. 이자수익, 수수료 수익이 골고루 증가하면서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는 평가다.
하나증권은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 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스팩은 기업의 인수합병(M&A)을 위해 설립하는 기업인수목적회사다. 증권사는 먼저 청약을 받고 증거금을 모아 스팩을 상장시키고, 비상장 기업과 합병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우회상장을 주관한다. 직상장 요건을 맞추기 어려운 기업들은 스팩을 이용한 우회상장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지난 2009년 스팩 제도가 도입된 이래 하나증권의 스팩 합병 성사는 18건으로 증권사들 중 1위에 올라있다.
하나증권은 연초 레이저 기반 미용 및 질환 치료 의료기기 전문 기업 레이저옵텍과 국내 반도체 설계(팹리스)업체 사피엔반도체의 합병 상장을 성사했고, 이달에는 머신 비전 기반 2차전지 검사시스템 전문기업 아이비젼웍스가 하나금융24호스팩과의 합병을 통해 증시에 입성했다.
추가로 현재 상장 절차를 밟고 있는 엠에프씨와 에스지헬스케어 등 두 곳이 연내 상장에 성공하게 되면 총 5건으로 하나증권은 2020년 4곳의 기업을 스팩 합병으로 상장시킨 이래 최고 기록을 세우게 된다.
이 밖에도 기업분석전문 버핏연구소의 올해 상반기 리그테이블 조사에서 하나증권은 IPO(기업공개) 주관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 뒤를 이어 2위 KB증권, 3위 삼성증권, 4위 신한투자증권, 5위 대신증권 순이었다.
<문화경제 김예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