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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기획] 와인 라벨에 조선백자가 들어갔다, 가슴이 웅장해진다

롯데칠성음료·간송미술문화재단의 빛나는 협업… 조선백자와 정선·김홍도 그림, ‘마주앙’ 라벨에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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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응구⁄ 2024.11.26 10:16:54

전형필이 평생 모은 우리 문화유산은 셀 수 없다. 이는 모두 그의 보물창고 ‘보화각’에 보관했다. 이후 그가 세상을 떠난 뒤 ‘간송미술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사진=김응구 기자
 

1906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난 전형필(全鎣弼·~1962)은 어려서부터 그림을 그리거나 책 사 모으는 걸 즐겼다. 휘문보고(지금의 휘문고등학교) 4학년 땐 야구부 주장도 맡았다. 그의 집안은 소문난 부자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엔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早稻田)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일제 치하에서 억울한 민족이 없도록 법을 공부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 때문이었다. 일찍이 할아버지, 작은아버지, 형을 떠나보냈던 그는 대학 졸업을 앞두곤 아버지마저 잃었다. 그러면서 종로 일대 상권과 전국 각지의 대토지 등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았다.

전형필은 독립운동가이자 서예가로 이름을 날린 오세창(吳世昌·1864~1953)을 만나면서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에 눈 떴다. 오세창은 문화유산을 보는 눈이 남달랐다. 골동품 속에서도 보물을 가려낼 줄 알았고, 이 능력은 전형필에게 그대로 이어졌다. 일제가 앗아갈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는 일, 전형필은 이를 그만의 독립운동으로 생각했다.

전형필은 서울 인사동의 고서점 ‘한남서림’을 인수한 후 옛날 책과 그림, 도자기 등을 사들였다. 값도 후하게 쳐주었다. 그래야 소문이 번져 더 많은 문화유산이 들어올 걸 알았기 때문이다.

고려시대 상감청자 ‘청자상감운학문매병(靑磁象嵌雲鶴文梅甁)’. 말 그대로 푸른 사기그릇에 구름과 학 무늬를 상감기법으로 박아넣은 매병(梅甁)이다. 도자기 수집가이자 이 매병의 소유주였던 일본인 마에다 사이치로(前田佐一郎)는 이 매병을 2만 원에 팔고 싶었다. 당시 그 돈이면 기와집 스무 채를 살 수 있었다. 전형필은 별다른 고민 없이 그 매병을 사들였다. 이후 이 매병의 가치를 알아본 또 다른 일본인이 구매가의 두 배를 쳐줄 테니 자신에게 팔라고 하자 “이보다 더 좋은 청자를 내게 가져다주면 산 가격에 드리겠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이 매병은 국보 제68호로 지정돼 있다.

1936년 서울에선 조선백자인 ‘청화철채동채초충문(靑畵鐵彩銅彩草蟲文)’을 두고 경매가 벌어졌다. 시작가는 1000원도 안 됐지만, 순식간에 1만4000원을 넘겼다. 한 일본인과 전형필이 끝까지 남았다. 낙찰가는 1만4580원. 지금으로 치면 45억 원을 훌쩍 넘는 금액이다. 마지막에 이 백자를 손에 쥔 건 전형필이었다. 그리곤 ‘내 것이 됐다’는 뿌듯함보다 ‘우리 문화유산을 지켰다’는 사실에 더 큰 기쁨을 느꼈다.

그해에는 조선시대 신윤복이 그린 ‘미인도’가 일본에 있음을 알고 한걸음에 달려가 3만 원을 주고 사 오기도 했다. 1937년에는 일본에 있던 영국인 변호사로부터 고려청자 20점을 기와집 400여 채 값인 40만 원에 사들였다.

백미는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1943년 여름, 경북 안동에서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곤 서둘러 구매에 나섰다. 조선총독부가 알면 빼앗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우리 말과 글을 쓰지도 못하게 하는데 이를 가만두고 볼 그들이 아니었다. 소유주는 1000원을 불렀지만, 전형필은 이를 1만 원에 사들였다. 그리곤 이 사실을 비밀로 했다. 꼭꼭 숨겨두었다가 광복 이후 세상에 내놓았다.

전형필은 1962년 1월 26일, 자신이 태어난 종로4가 112번지 본가에서 급성신우염으로 급서했다. 그때 나이 57세. 생전 골동품 수집에 가산을 모두 탕진한다는 험한 소리도 종종 들었다. 그렇게 모은 회화, 도자, 금속공예, 불교조각 등에는 국보급 문화재가 수두룩하고, 지금까지 우리 미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전형필이 평생 모은 우리 문화유산은 그가 손수 지은 보물창고 ‘보화각(葆華閣)’에 보관했다. 이후 그가 세상을 떠난 뒤 ‘간송미술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 미술관이다. 현재 성북구 성북로에 자리하고 있다.

전형필의 호는 ‘간송(澗松)’이다. 계곡 시내 ‘간(澗)’, 소나무 ‘송(松)’이다. 한겨울에도 얼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지키고 서 있는 소나무라는 뜻이다. 오세창이 지어준 것이다.

‘간송미술재단×롯데칠성음료’ 빛을 발하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 문화재를 수집·보존해 문화적 전통을 계승하고자 했던 간송 전형필의 유지에 따라 2013년 세웠다. 이곳에선 우리나라 고미술 연구와 이의 체계적인 보존이 이뤄지고 있다.

재작년, 롯데칠성음료는 간송미술문화재단과 업무협약을 맺었다. 한국 미술 산업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뭉쳤다. 이에 여러 협업을 진행하고, 롯데칠성음료는 해마다 후원금도 지원한다.

둘의 협업은 주로 롯데칠성음료가 생산하는 와인 ‘마주앙’ 라벨에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유의 문화유산을 담는 형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는 곧 한국 미술품에 대한 접근성과 관심도를 높이는 성과로 이어진다. 참고로 1977년 5월 출시된 마주앙은 가장 오래된 국산 와인이다. 당시에는 동양맥주(지금의 오비맥주)가 만들었다. 브랜드명은 ‘마주 앉아 즐긴다’라는 의미로 붙였다.

 

롯데칠성음료와 간송미술문화재단은 2022년 한글날을 앞두고 ‘마주앙 샴페인’과 ‘마주앙 뉘 생 조르쥬 2019’를 내놓았다. 라벨은 조선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으로 디자인했다. 사진=롯데칠성음료
 

먼저, 2022년 한글날을 앞두고 ‘마주앙 샴페인’과 ‘마주앙 뉘 생 조르쥬(Nuits Saint Georges) 2019’를 내놓았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소장 중인 ‘청화철채동채초충문’(국보 제294호)을 제품 라벨로 디자인해 높은 관심을 모았다. 앞서 밝힌 대로 간송 전형필이 1936년에 사들인 그 조선백자가 맞다. 당시 와인 수집가들의 환호 속 출시 10여 일 만에 생산 수량 2400병(각 1200병)이 완판됐다.

그해 10월 26일 롯데칠성음료는 국내산 쌀 100%로 만든 청주(淸酒) ‘백화 월하정인’도 선보였다. 알코올도수 14도. 브랜드명에서 짐작하듯 조선 후기 3대 풍속화가 중 한 명인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 〈월하정인(月下情人)〉을 모티브로 한 제품이다. 달빛 아래 연인의 밀회를 그려낸 이 작품은 국보 제135호인 《혜원풍속도화첩》 30점 중 하나다. 신윤복이 활동했던 조선시대는 우리 전통주 문화가 꽃피웠던 시기로, 실제 신윤복의 여러 작품에서 술 마시며 풍류를 즐기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겸재 정선 《경교명승첩》 속 그림 3점도 담아

지난해 10월에는 두 번째 협업으로 겸재 정선의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에 수록된 〈목멱조돈(木覓朝暾)〉, 〈압구정(狎鷗亭)〉, 〈송파진(松坡津)〉을 각각 ‘마주앙 라랑드 포므롤(Lalande de Pomerol) 2019’, ‘마주앙 뉘 생 조르쥬 2021’, ‘마주앙 뫼르소(Meursault) 2020’의 라벨에 담아 출시했다.

 

겸재 정선의 《경교명승첩》에 수록된 〈목멱조돈〉, 〈압구정〉, 〈송파진〉은 각각 ‘마주앙 라랑드 포므롤 2019’(위), ‘마주앙 뉘 생 조르쥬 2021’(아래 왼쪽), ‘마주앙 뫼르소 2020’(아래 오른쪽)의 라벨에 담겼다. 사진=롯데칠성음료
 

《경교명승첩》은 조선 최고 화가 정선이 완숙의 경지에 이른 후 서울 근교나 한강변의 명승명소를 그린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와 인물화로 구성한 화첩이다.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7년 보물 제1950호로 지정됐다. 〈목멱조돈〉은 남산의 일출 장관을 그렸으며 〈송파진〉은 송파나루의 여름 풍경을 담아냈다.

롯데칠성음료 관계자는 “《경교명승첩》은 겸재 정선과 그의 오랜 벗인 사천 이병연의 깊고 오랜 우정 이야기를 담은 시화첩”이라며 “두 대가가 우정을 나누는 순간처럼 인생의 즐거움을 마주하는 모든 순간에 마주앙이 함께하길 염원하는 뜻에서 이번 와인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마주앙 라랑드 포므롤’ 1병 그리고 ‘마주앙 뉘 생 조르쥬’와 ‘마주앙 뫼르소’ 2병 세트로 구성해 각각 600병과 300세트로 한정판매했다.

매화음 즐겼던 김홍도의 ‘백매’는 협업의 백미

올해 들어 11월 21일에는 ‘매화의 아름다움과 와인의 깊은 풍미가 만나 완성되는 선비의 풍류’라는 콘셉트로 기획한 마주앙 2종을 출시했다. 이 와인은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소장 중인 단원 김홍도의 ‘백매(白梅)’, 우봉 조희룡의 ‘홍매(紅梅)’를 레이블에 활용했다. 각각 300병 한정이며, 28일부터 주요 백화점이나 ‘오비노미오’를 비롯한 와인 전문 숍에서 판매한다.

김홍도는 매화를 감상하며 술을 마시는 매화음(梅花飮)을 즐겼다고 전해진다. 그의 ‘백매’와 컬래버한 ‘마주앙 뫼르소 레 그랑 샤롱(Meursault Les Grands Charrons)’은 프랑스산 샤르도네 품종 100%로 만든 화이트와인이다. 알코올도수 13.5도. 수령(樹齡) 46년 넘은 포도나무에서 손으로 수확한 포도만 사용했다.

조희룡은 추사 김정희의 제자로 ‘우봉(又峰)’이란 호와 함께 ‘매화두타(梅花頭陀)’라는 별호를 사용할 정도로 매화를 좋아했다. 매화두타는 ‘매화로 부처가 되려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조희룡은 매화나무에 핀 꽃들을 부처라 생각하고 꽃송이 하나하나를 공양하듯 그렸다.

 

와인 ‘마주앙’ 라벨에 김홍도의 ‘백매(白梅)’가 들어가 있다. 매화음을 즐겼다던 김홍도는 참 좋았겠다. 매화를 보고 맡고 마신 데다, 이를 그림에 담기까지 했으니. 사진=롯데칠성음료
 

‘홍매’와 컬래버한 ‘마주앙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Brunello Di Montalcino)’는 이탈리아산 산지오베제 품종 100%로 만든 레드와인이다. 알코올도수 15도. ‘테누타 디 콜로소르보(Tenuta Di Collosorbo)’ 와이너리가 생산하며, 와인을 주제로 한 일본 만화 ‘신의 물방울’에서 ‘어린 시절 오르간의 음색이 떠오르는 듯한 와인’으로 묘사했다.

롯데칠성음료 관계자는 “2022년 시작해 올해로 세 번째를 맞은 ‘마주앙×간송미술관’ 협업의 이번 와인은 사군자 중 하나인 매화를 곁에 두고 벗들과 함께 정담을 나눈 옛 선비들의 정취를 담으려 노력했다”며,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즈음, 주변 사람들과 즐거운 추억을 나누는 순간에 마주앙이 함께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롯데칠성음료는 11월 18일 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에서 간송미술문화재단에 후원금 1억 원을 전달했다. 이 자리에는 박윤기 롯데칠성음료 대표, 전인건 간송미술관 관장이 참석했다.

참고로 전인건 관장은 간송 전형필의 첫째 아들인 전성우 전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의 장남이다. 전성우 전 관장은 지난 2018년 4월 별세했으며, 이어 6월부터 간송 전형필의 둘째 아들인 전영우 씨가 관장을 맡고 있다.

롯데칠성음료에 따르면 올 연말에 새로운 ‘마주앙×간송미술관’ 에디션을 선보일 예정이다.

〈문화경제 김응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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