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호⁄ 2025.04.30 09:23:02
인사미술공간은 미술계에서는 ‘임미공’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임미공은 지난 2000년에 인사동에서 오픈해 2006년에 이 원서동으로 이전한 후 지금까지 총 25년 동안 수많은 작가와 연구자들, 기획자들이 교류하면서 서로 창작 활동을 해온 굉장히 상징적인 공간이다. 신진 작가들을 양성하고 첫걸음을 뗄 수 있었던 공간이기도 했고 전시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미디어 연구, 아카이브 출판 그리고 네트워킹이 이루어지는 공간, 그래서 미술인들의 사랑방 같은 공간 역할을 해온 곳이다.
인미공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라는 공공기관에서 운영을 했지만 현장의 대안적인 목소리를 담은 가교이기도 했다. 1999년 외환위기 이후 창작 활동과 예술 지원이 전반적으로 위축되면서 당시 한국문화예술진흥원(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은 시각예술 작가들을 위한 지원 공간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렇게 작가들의 활발한 활동과 교류를 지원하고자 2000년 인미공이 개관한다. 이후 인미공은 수많은 작가의 개인전을 개최하며 신진 작가들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할 수 있는 주요 등용문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인미공이 예술가들에게 상징적인 미술 공간으로 지금까지 기억될 수 있던 건 전시뿐 아니라 아카이브, 연구, 워크숍 그리고 이를 통한 교류의 장을 조성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인미공이 2006년 지금의 원서동 건물로 이전해 독립적인 공간을 마련하면서 더 활발히 진행된다. 당시 인미공이 기획한 신진작가 워크숍, 저널 『볼』, IAS 미디어, 아카이브 등 주요 사업들은 2009년 인미공이 아르코미술관과 통합 운영된 후에도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중요한 유산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제도, 예술 환경, 기관, 그리고 공간의 역할이 변화함에 따라 인미공 또한 정체성에 대한 질문에 직면했다. 변화에 대응하여 신규 프로그램 개발을 비롯한 여러 시도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지역 개발에 따른 임대료 상승 등 인미공을 둘러싼 대내외적 여건은 결국 운영 종료라는 결정으로 이어졌다.
이번 전시에는 관람객에게 개방되지 않았던 3층 사무실을 포함해 인미공의 전 층을 전시장으로 사용해, 관객들이 공간에 남은 흔적과 그 의미를 새롭게 접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전시에 참여한 기획자 및 작가들은 인미공의 전시와 프로그램에 참여한 경험이 있거나 혹은 없는 다양한 세대로 구성되었다.
2025년 6월 말에 종료를 앞두고 인미공은 마지막 전시 ‘그런 공간’을 개최한다. 그런데 전시 제목이 왜 ‘그런 공간’일까. 김미정 큐레이터는 “인미공을 잘 아는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가장 많이 나왔던 말이 ‘인미공은 그런 공간이야’였다. 미술계에서 인미공이 정말 다양한 역할을 했다는 걸 반증하는 단어라고 생각해서 전시 제목에 사용하게 됐다. 지난 시간을 회고하는 방식보다는 인미공의 종료가 한국 미술계에서 가지는 의미를 고민하는 자리가 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전시는 인미공 1층에서 시작된다. ‘타임 패치워크’라는 이름의 작업은 ‘아트-토커’라는 팀이 기획했다. 일종의 타임라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인미공을 인사/미술/공간 세 파트로 분석하여 각자가 견지한 인미공의 지난 부분들을 드러낸다. 또한 인미공이 제도 및 사회와 어떤 방식으로 엮여 있는지를 파악해 본다. 타임 패치워크는 과거를 기리기 위해 작성된 연표가 아닌, 인미공의 파편을 작금의 미술계에 연결할 때 발생하는 동시대 기획자들의 질문이자 의문이다. 타임 패치워크는 전시가 끝날 때까지 수정되거나 덧붙여지는 끝없는 기록으로 작동한다. 연도표 아래에는 작은 노트들이 붙어 있다. 아트-토커의 김명진 씨는 “이 노트는 어떻게 보면 복잡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인미공 내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선택하고 그 프로그램을 선택할 때 어떤 생각을 거쳤는지 표시해 주기 위함이다”라고 전했다.
전시는 1층에서 지하 공간으로 내려간다. 사라지는 인미공 사진을 비디오로 만날 수 있다. 김익현 작가의 ‘바깥에서’라는 작품이다. 작가는 거울에 반영된 인미공의 밖을 보면서 안으로 들어와야 하는 건물의 구조와, 인미공에 남은 사진을 밖에서 바라보는 시선을 겹쳐본다. 이곳에서 있었던 사건과 사실들을 증명하는 그 사진들은 미래로 향하는 길목에 놓여 있고 그곳으로 가기 위한 경로로써 촬영되었을 것이다. 작가가 건네받은 사진 폴더 안에는 지금은 인미공에 없는 인미공의 가구가, 이제는 보이지 않는 인미공의 공간이, 그리고 지난 시간이 있다.
2층 전시실로 올라오면 액자들이 걸려있다. 액자에는 인미공의 로고를 제작한 후 만든 매뉴얼이 담겨있다. 다시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디자이너들은 인미공의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하며 로고를 추억한다.
엄지은 작가의 ‘낡은 것들의 신’은 인미공의 낡은 수도관을 내시경으로 탐사한 비디오에서 출발한다. 이 영상은 빠른 속도로 밀려난 존재들이 과거의 시간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자리를 인정하고 회복하는 여정을 그린다. 엄 작가는 “인미공의 하수도를 내시경으로 촬영하고 이 공간으로부터 시작해 밖의 원서동 하수도까지 펼쳐 나가는 서사를 가지고 있다. 처음에는 어떤 빠른 속도로 이 낡은 존재가 밀려나는 것처럼 느끼다가 점점 자신이 과거로 가고 그것이 나쁜 것이 아니며 내가 있어야 할 것이 과거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는 우화적 서사를 가진다”라고 덧붙였다.
‘잊힌(잊힐) 장소’를 다니는 다크-다크투어리스트는 인사미술공간의 공간적 주변부, 정서적 주변부의 '잊힌' 또는 '잊힐' 이야기를 수집하고, 미술계 외부의 시점으로 인미공의 궤적을 살핀다. 작가는 인미공이 존재하던 25년간 미술계 내외에서 사라진 것들을 추적한다. 그리고 이것은 8개의 음성과 앨범들, 액자에 담긴다.
2008년 ‘동두천: 기억을 위한 보행, 상상을 위한 보행’ 등 인미공의 주요 프로젝트들에 다수 참여했던 노재운 작가의 작품은 인미공의 SNS와 물리적 공간을 일시적으로 오가며 인미공 곳곳을 비추거나 목소리를 울린다. 그리고 스스로 쪼개지면서 온전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를 거부한다. 노 작가는 “혼자 작업하는 스타일이었는데, 인미공이라는 공간을 통해 사람들과의 관계도 많이 맺고 여러 전시회에도 참여하며 바쁘게 한 시절을 보냈다”라고 인미공과 함께한 시공간을 추억했다.
마지막으로 3층에서는 박보마 작가의 ‘프린트 숍_단어, 개념, 그리고 초상들’을 만난다. 인미공 3층은 주로 직원들이 근무하는 사무실 혹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장소인 동시에 건물에서 유일하게 빛이 한껏 들어오는 공간이기도 하다. 자주 공개되지 않았던 이 3층에서 작가는 관객과 직원들을 등장인물로 하는 일종의 극을 선보인다.
박 작가는 2000년부터 2025년까지의 인미공과 관련된 전시, 워크숍, 미디어, 보고서 등의 여러 자료에서 총 360여 개의 이름과 400여 개의 단어들을 수집했다. 이 단어들을 AI에 전달하여 큰 개념의 단어 20개와 그 하위 단어 30개를 추출해 각본을 만든다. 이 각본 속에는 실존 인물과 가상의 인물들이 고루 등장하고, 그 이름의 순서나 인물의 등장은 AI를 통해 무작위로 나열했다. 이제 무대가 된 인미공 3층은 25년 동안 수많은 자료가 출력되고, 버려지고, 혹은 잊히고 잘렸던 ‘프린트숍’이 된다. 관객 및 직원들, 즉 이 극의 등장인물들은 흐릿한 아카이브 자료들을 열람하면서 이곳을 거쳐 간 이들의 모습과 목소리 그리고 체취를 상상한다.
전시와 더불어 오프닝 퍼포먼스, 클로징 이벤트, 심포지엄을 비롯한 다양한 연계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될 예정이다. 이를 통해 현재 한국 미술계에서 미술 공간의 역할 및 현실을 고찰하고 재조명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임근혜 관장은 “아르코미술관은 인미공에서 생산된 다양한 자료를 아카이빙하여 열람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창작실험과 담론생성 기능을 이어받은 새로운 공간과 비평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화경제 안용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