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호⁄ 2025.08.14 21:47:54
장영혜중공업과 홍진훤이 한국 미술계에서 회자할 만한 전시를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선보인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의 대표 연례전인 ‘타이틀 매치’의 12번째 전시다. 이번 전시는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8월 14일부터 11월 2일까지 열린다.
장영혜중공업은 장영혜와 마크 보쥬(Marc Voge)로 이루어진 아티스트 듀오로 1998년 결성했다. 리드미컬한 음악에 화면 가득 텍스트를 채우는 영상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세계 주요 미술관과 비엔날레에서 작업을 선보이며 국제적인 명성을 쌓았으며, 2018년 홍콩 M+ 미술관이 장영혜중공업의 전작을 비롯, 앞으로 생산될 모든 작업도 소장하기로 하면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이번 전시는 2017년 아트선재센터 개인전 이후 8년 만에 한국에서 선보이는 대규모 전시다.
홍진훤(1980)은 2009년까지 외신기자로 근무하다 미디어에서 노출되는 현장의 단편성에 회의를 느끼고 포토저널리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작가가 됐다.《멜팅 아이스크림》(2021, d/p)을 비롯해 6회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2024 부산비엔날레, 2021 제11회 서울미디어시티 비엔날레, 2016 대구사진비엔날레 등에 참여하였고, 2021년부터 다수의 영화제에 작품을 출품한 바 있다. 이번 전시는 홍진훤의 첫 번째 대규모 미술관 전시다.
이번 전시는 정치적 행동이 촉발되기 직전과 종료 이후 에너지의 혼돈 상태를 다루며 사태에 대한 다층적인 해석을 유도한다. 두 작가는 공동체 내부의 갈등과 균열, 그로 인해 발생하는 정치적인 불화의 순간에 주목하면서 예술이 어떻게 갈등에 개입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탐색한다. 또한 각자의 방식으로 공동체 내부의 긴장과 충돌을 시각화하면서 예술이 질문과 논쟁의 장이 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먼저 1층 전시실1에서는 장영혜중공업의 영상 전시를 3개의 미디어로 볼 수 있다. 안쪽 큰 화면의 LED는 ‘야, 쪼다, 너 사람을 잘못 건드렸어(내 생각에는)’, ‘침묵의 쿠데타’, ‘안녕하세요, 여러분, 우리는 특별해요!’가 상영된다. ‘야, 쪼다, 너 사람을 잘못 건드렸어(내 생각에는)’에서 작가는 연인 관계에서 발생하는 왜곡된 권력구조에 주목하고, ‘침묵의 쿠데타’는 허구와 진실에 관계 없이 대중을 자극하는 왜곡된 권력구조, 가짜 뉴스를 비판한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우리는 특별해요!’는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과 정치적 책임에 대한 기대와 요구에 응답한다.
안쪽 십자가 모양의 5대의 모니터는 ‘우아’라는 작품으로 감탄사들이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나온다. 우리가 어떤 사태나 의견을 들었을 때 무비판적으로 그냥 동조하는 사람인지를 질문하는 작업이다. 질문을 던지거나 어떤 다양한 관점들 보여줬을 때 그것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 것인지 보여준다. 십자가 모양이라 해서 종교에 대한 비판은 아니고, 어떤 것을 믿느냐 마느냐에 대한 문제를 은유하기 위해 십자가 모양을 채택했다.
전시실2에는 장영혜중공업의 신작 ‘그들은 내가 자는 동안 문을 부수고 쳐들어왔다/ 우리는 문을 부수는 일이 거의 없다’를 볼 수 있다. 두 화면의 인물 중 한 명은 탈북민일 수도 있고 북한의 스파이일 수도 있고 혹은 운동권 학생일 수도 있다. 옆 화면의 남성은 국정원 직원일 수도 있고 사기꾼일 수도 있고 어떤 권력의 하수인일 수도 있는 인물이다. 이 둘은 서로의 말을 거의 듣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있다. 한 사람은 상대방이 문을 부수고 무고한 나를 체포하기 위해 쳐들어왔다고 주장하고, 다른 남성은 우리도 그럴 만해서 문을 부수고 들어간다 라고 주장한다. 서로 다른 의견 속에서 과연 어떤 것을 믿을지는 관객의 선택에 달려 있다.
2층으로 올라가기 전 1층 벽면에는 홍진훤 작가의 작업이 꽉 차도록 배치됐다. 집단적 목소리가 형성되기 전, 장영혜중공업 그리고 그 이후 홍진훤 작가가 순환하는 듯한 느낌을 연출하고자 프롤로그 격으로 홍진훤 작가의 사진 작업을 배치했다.
2층 전시실3에는 홍진훤 작가의 랜덤 포레스트가 기다리고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환경 미화를 위해서 사람들을 동원해 꽃을 심는 장면,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촬영한 사진이 있다. 보기 싫은 것을 가리려고 일부러 간판을 세워놓은 것을 보면서 과연 30년 된 사진에서 과연 우리는 달라진 것이 있는가 질문을 던져본다.
‘액타크롬은 매주 금요일에 현상됩니다’ 라는 작업은 사진에서 물리적인 현상으로서의 지연과 사진이 사건화되기 이전에 어떤 잠재적인 상태를 다룬다. 북한과의 관계에 의해 개발되지 못한 파주라는 도시가 가지고 있는 유예된 욕망들을 함께 병렬해서 보여줌으로써 지연이라는 키워드로 사진과 여러 사태를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는 작업이다.
이 작업의 제목은 작가가 파주의 미군 휴양소 단지에 있던 사진관에 적혀 있던 문구인데, 엑타크롬이라는 필름의 특성상 특별한 현상 방법을 요청했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씩만 현상할 수가 있었다. 그것이 어떻게 보면 사진이 사건화되지 못하고 유예되는 상황과 비슷하지 않은가 해서 이 영상의 제목으로 삼았다고 한다.
‘합창’의 한편에는 베토벤의 합창교향곡에 얽힌, 이데올로기와 국가 역사에 따라 다르게 재생되었던 역사에 대한 내레이션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나치의 생일 전야제 때 지휘했던 푸르트뱅글러가 유대인 음악가들을 풀어 달라고 나치 선전장관 괴벨스에게 쓴 편지가 있다. 괴벨스는 예술가는 정치적 책무가 있다고 답신했다고 한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예술이 사회에 어떤 역할들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음악과 함께 나오는 경찰 고용직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 장면은 우리에게는 전혀 인지되지 못하고 있는 민중의 얼굴 혹은 민중들의 이미지를 개념화하려 했다고 보인다.
‘더블 슬릿’은 현대중공업에서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대립 역사를 두 사람의 인터뷰를 통해 회고한다. 어떻게 보면 성공하지 못한 투쟁의 역사를 회고하면서 과연 미래에는 이러한 혁명 혹은 어떤 노동자 투쟁의 성공이 가능할 것인가 가늠해 보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랜덤 포레스트 2025는 홍진훤 작가가 이때까지 찍어 왔던 사진들 그리고 민중 노동 아카이브 사진들, 사진사에서 중요한 사진들을 새롭게 조합해 봄으로써 새로운 해석과 미래의 실천적인 힘을 탐색하는 작업이다.
‘언다큐먼티드 모나리자’는 다큐멘터리 사진이 사건을 객관적으로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건을 만들어낸다는 역설적 전제에서 출발한다. 작업은 미국 대공황기 농업안전국의 사진 기록 프로젝트를 토대로 사진이 사태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되고 구성되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작업은 미국 대공항기 농업안정국의 사진 기록 프로젝트 아카이브, 풍동 재개발 반대 투쟁 기록, 고 윤금이 사진 게재 반대 운동 녹화물, 용산 참사 당시 불타는 남일당을 올려다보는 철거민들의 얼굴 사진 등으로 구성되었다.
“저는 관성적 이미지가 관성적인 세계를 만든다고 믿는 편이고 그것에 대항할 수 있는 이미지를 어떻게 만들고 조직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작가입니다. 다들 함께 겪었던 그 시간을 지나면서 내란과 계엄이라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고 큰 일이었지만 분명 그것만이 문제는 아니었던 것이었는데 지금은 왠지 내란 종식이라는 것이 민주주의의 최종 목적지가 된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처음 겪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분명히 이 사건이 종료된 이후에 발생할 문제들에 대해 불안이 생기기도 합니다.” 최근 정치적 상황에 대해 홍진훤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홍진훤 작가는 사진은 더 이상 촬영 사진의 힘이라는 것은 더 이상 촬영에서 나오지 않고 사후에 사진이 발견되고 사진을 보는 과정에서 힘이 발생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자신이 촬영한 사진과 발견한 아카이브 사진을 조합해, 앞으로 도래할 지옥을 먼저 강박해 본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 루소의 ‘사회계약론’에서 발췌한 문장이다. 일반의지에 대해 ‘중간 지대는 없다’라는 원 뜻을 재해석해, 전시는 사회 구성원이 모두 합의한 평화로운 상태나 양자택일, 흑백논리 같은 극단적 두 상태를 상정하기보다, 다수가 불화하는 역동적 상황에 주목한다. 두 작가는 각자의 방식으로 공동체 내부의 긴장과 충돌을 시각화해, 예술이 질문과 논쟁의 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은 “전시는 사회 이면에 존재하는 갈등과 균열을 적시하고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 사회의 복합적 현상을 다각도로 바라보아야 함을 시사한다”면서, “예리한 시선과 독창적인 형식으로 동시대 현실을 날카롭게 포착해 온 장영혜 중공업과 홍진훤의 작업이 던지는 질문에 저마다 응답해 보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문화경제 안용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