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미술은 어렵다. 특히 최근엔 예술과 기술이 결합된 ‘융합 예술’이 부상하면서, 작품을 하나의 형태로 정의하기가 점점 더 모호해지고 있다. 단순한 설치나 회화가 아닌, 기술적 실험과 서사를 결합한 새로운 예술들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아트코리아랩 시연장D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PPP(POP-UP! PEARY): 어 체인 레터(A Chain Letter)’는 흥미로운 시도를 보여준다. 일명 ‘피어리 팝업’이라 불리는 이번 전시는 관객이 단일 작품을 감상하는 대신, 하나의 세계관 속으로 들어가 직접 경험하도록 구성됐다. 융합 예술 그룹 ‘팀펄’은 전시장 전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며 관객을 자신들의 세계로 이끈다.
전시의 주인공은 가상 생명체 ‘피어리(Peary)’다. 일본대사관 건물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이 생명체는, 팀펄의 세계관 안에서 태어난 존재다. 관객은 첫 번째 공간에서 AR(증강현실) 기술을 통해 피어리와 소통하거나 사진을 찍고, 두 번째 공간에서는 피어리를 탐구하는 게임을 즐길 수 있다.
팀펄은 이번 전시에서 피어리의 ‘대리인’으로서 관객을 맞이한다. 전시를 준비하며 60일 전부터 온라인을 통해 피어리에게 보내는 편지를 모집했고, 현장에서는 선정된 관객에게 직접 답장과 선물을 전달하는 과정을 포함했다.
팀펄 정혜주 기획자는 “피어리는 가상 생명체이기 때문에 현실의 관객이 만나기 위해선 매개체가 필요하다”며 “전시의 모든 구성 요소에 세계관을 반영했다”고 말했다. 성수진 아트디렉터는 “우리는 이런 과정을 ‘접속’이라 부른다. 전시 제목인 ‘PPP(POP-UP! PEARY)’는 바로 그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캐릭터 전시나 팝업스토어를 연상시키지만, 팀펄은 이를 현대 미술의 새로운 형태로 바라본다. 상업성과 예술성, 현실과 가상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피어리’라는 가상의 존재를 매개로 인간과 기술의 관계를 탐구하는 것이다.
한편 팀펄은 세파퓨처리즘(Sepafuturism) 세계관을 기반으로, 가상 생명체 피어리와 함께 기술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융합 예술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