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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 다니엘 보이드 개인전 ‘피네간의 경야’… “주류 서사의 허구적 신화, 호주 원주민의 문제 의식”

지금도 여전히 곳곳에 잔재해 있는 지배적 역사, 그 흔적에 가려진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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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안용호⁄ 2025.12.10 21:32:07

국제갤러리 K3 다니엘 보이드 개인전 《피네간의 경야》 설치전경.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국제갤러리는 12월 9일부터 2026년 2월 15일까지 K3와 한옥 공간에서 다니엘 보이드(Daniel Boyd)의 개인전 《피네간의 경야(Finnegans Wake)》를 개최한다.

호주 케언즈 원주민 혈통인 작가는 그간 서구 중심적인 시각으로 쓰인 역사 속에서 지워진 시선과 기억을 소환해왔다. 그의 작업 세계는 2011년 런던 자연사 박물관의 아티스트 레지던시에 머물 당시, 호주 최초의 수인(囚人) 선단(船團)과 관련한 유물 등 박물관의 소장품들을 연구하면서 본격적으로 확장되었다.

 

이후 작가는 식민주의와 지식 체계, 그리고 문화적 가치를 둘러싼 비판적 인식을 바탕으로 서구의 낭만주의적 시선에 내재한 권력 및 신화적 구조를 탐구해왔다. 보이드는 캔버스 화면 위의 ‘렌즈’라는 고유한 매개체를 통해 기존의 단일화된 서사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 언급 혹은 기록되지 않는 것에 대한 사유를 이어가고 있다.

국제갤러리 K3 다니엘 보이드 개인전 《피네간의 경야》 설치전경.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지난 2021년 이후 국제갤러리에서 세 번째로 열리는 이번 개인전은 작가가 그간 꾸준히 천착해온 서구 근대성의 시각 체계와 그 재현 방식에 대한 탐구를 2025년에 제작된 30여 점의 신작으로 소개한다. 본 전시 제목은 1939년 출간된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1882–1941)의 동명 소설 『피네간의 경야』에서 가져온 것으로, 꿈과 현실, 의식과 무의식 사이를 오가며 반복적으로 변주되는 소설의 서사적 구성이 다각화된 시선으로 역사 및 세상을 탐색하는 작가 자신의 작업 방식과 상응한다는 데 착안했다.

국제갤러리 K3 다니엘 보이드 개인전 《피네간의 경야》 설치전경.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국제갤러리 K3 다니엘 보이드 개인전 《피네간의 경야》 설치전경.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작가의 작품 표면은 수많은 점이 뒤덮고 있다. 일일이 풀로 찍어 만든 이 점들을 작가는 세상을 보는 렌즈라고 말한다. 이 점들은 역사를 대하는 다각화된 관점을 시사하기도 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1958년 호주 정부가 제작한 아동용 학습 만화인 『The Australian Children's Pictorial Social Studies』 시리즈 중 하나인 「The Inland Sea」를 기반으로 한다.

작가는 “제가 작업을 통해서 하려고 하는 것은 이제 원래는 사람들을 교육하려고 만들어졌던 이 이미지들이 암시하고 제안하는 바를 확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어떻게 오늘날 우리의 맥락에서 우리가 맺는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려고 하는 것입니다”라고 설명했다.

호주에 정착한 식민주의자들은 호주 대륙 내에 바다가 존재한다는 신화를 믿으며 내해(inland sea, 內海)를 찾아다녔는데, 이 서사에서도 피네간이라는 인물이 등장하여 유럽계 정착민을 구해낸다. 앞서 언급된 조이스의 소설 속 피네간과 이 신화 속 피네간은 동명이인이지만,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이 이름을 다양한 장치로 활용하면서 작품들을 이어낸다.

특히 보이드는 학습 만화 같은 소위 교육적, 문화적인 도구들을 식민주의에 기반한 세계관을 부지불식간에 내면화시키는 장치로 간주하고, 역사가 교육되는 방식과 신화가 형성되는 과정을 질문한다. 또한 작가는 호주 출신의 또 다른 현대미술가 고든 베넷(Gordon Bennett, 1955–2014)이 앞선 만화로부터 반복적으로 차용한 호주 내륙 바다 신화의 ‘익사하는 남자(drowning man)’ 도상을 K3 공간 곳곳으로 끌어와 오늘날의 정치적, 사회적 현실과 엮어낸다.

K3 전시장의 중심에는 문제의 학습 만화 속 실재하지도 않는 내해를 찾아 헤매는 유럽인 탐험가와 그를 안내하는 원주민의 관계를 당시 호주의 역사적 사실로 수용, 전습한 허구적 신화를 구체화한 대형 회화 작품 〈Untitled (LOTAWYCAS)〉가 자리한다. 그 맞은편에는 작가가 한국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설치작 〈Untitled (PCSAIMTRA)〉를 통해 자신의 작업에서 ‘점’으로 발현되어온 렌즈라는 모티브를 한 단계 더 심화, 발전시킨다. 이 작품은 총 다섯 개의 단방향 거울(one-way mirror), 즉 흔히 취조실에서 사용되는 재료로 구성되어 있는데, 한 면은 거울로, 반대쪽 면은 투명한 특수유리로 제작된다. 일방적 시선을 상징하는 이 거울은 관람객이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건을 ‘외부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순간으로 이끌며, 이로써 선택적 서사에 의해 역사가 해석 및 기록되는 방식과의 유사성을 시사한다. 작가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작품과 하나 되어 개인의 단편적인 시선과 지각의 범위를 넘어 경험의 층위, 즉 '복수성(plurality)'을 확장하도록 독려한다.

국제갤러리 K3 다니엘 보이드 개인전 《피네간의 경야》 설치전경.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작가는 “이 만화 혹은 학습 도서들에서는 이야기가 유럽 중심적입니다. 제가 속한 원주민들이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고 잘못 재현된 내용으로 쓰여졌습니다. 저로서는 그때 만들어졌던 것들을 이행하기도 해보고, 그리고 그 당시에 다루어지지 않았던 진실을 보여주는 기회로 삼고자 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국제갤러리 한옥 다니엘 보이드 개인전 《피네간의 경야》 설치전경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국제갤러리 한옥 다니엘 보이드 개인전 《피네간의 경야》 설치전경.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한편 한옥 공간에서는 고즈넉하지만 날카로운 선율을 담은 듯한 악보 형상의 작품들이 관객을 맞이한다. 'Aboriginal Nonsense Song'과 'A Corrobboree(원주민의 제의적 모임)'의 악보 형식을 가져온 두 회화 작품은 비(非)서구문화가 서구 중심적 렌즈, 즉 서구의 언어 및 사고방식을 통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왜곡되고 상실되는지를 은유한다. 한편 서로 화답하듯 놓인 호주의 원주민 어보리진(Aborigine) 소녀의 모습(〈Untitled (BCJCVET)〉)과 새의 형상(〈Untitled (BBCWM)〉)은 침략자들의 위협을 경고하며 식민적 관계에서 비롯된 긴장감을 드러낸다.

공간 안쪽에 위치한 아동용 학습 만화 콜라주의 형식 또한 이러한 서사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보이드는 만화처럼 분할된 장면 일부를 검은색 물감으로 덮어 지움으로써 기존 서사의 권위와 시선을 교란시키고, 이를 통해 진실과 가능성에 근접하고자 하는 자신의 지향점을 강조한다. 이런 방식에 근간한 또 다른 작품, 호주 내륙 바다 신화와 제임스 쿡(James Cook) 선장의 이야기를 두 점의 회화로 병치한 〈Untitled (MDKTMOU)〉는 개별적인 두 신화적 서사가 상호 응답하면서 확립된 역사를 증명한다.

국제갤러리 한옥 다니엘 보이드 개인전 《피네간의 경야》 설치전경.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이렇듯 이미지를 파편화하고 그 조각을 재구성하는 보이드의 작업 방식은 최근 지속해온 신화적 형상에서도 이어진다. 이면화인 〈Untitled (BBBPTM), Untitled (TDLRHTY)〉에는 이번 전시의 상징적 매개이기도 한 바다를 지배하는 신 포세이돈이 그려지며, 〈Untitled (STGLWOAGLM), Untitled (FWIGSKWIK)〉에는 서구 낭만주의가 구축한 미(美)의 전형인 아폴론의 모습이 담긴다. 이를 통해 작가는 백인 우월주의의 구조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시각화하고 신화화된 진실에 반문을 제기한다.

자신의 작품 세계에 대해야 이야기하는 다니엘 보이드.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다니엘 보이드는...
다니엘 보이드(1982)는 호주 케언즈 출생으로, 현재는 시드니에서 거주 및 작업 중이다. 베를린 그로피우스 바우 《Daniel Boyd: RAINBOW SERPENT (VERSION)》(2023), 시드니 뉴사우스웨일스 주립 미술관 《Daniel Boyd: Treasure Island》(2022), 국제갤러리 《보물섬(Treasure Island)》(2021), 시드니 캐리지웍스 《VIDEO WORKS》(2019) 등 개인전을 가졌으며, 제16회 샤르자 비엔날레(2025), 오카야마 아트 서밋(2022), 서울시립미술관 《UN/LEARNING AUSTRALIA》(2021), 브뤼셀 보고시안 파운데이션 《몬디알리테(Mondialité)》(2017), 제56회 베니스비엔날레 《모든 세계의 미래(All the World’s Futures)》(2015) 등 주요 단체전에 참여한 바 있다. 더불어 2014년에 불가리 미술상을 수상하였으며 2022년에는 호주의 대표적인 인물화 공모전인 아치볼드 상(Archibald Prize)의 최종 후보에 올랐다. 또한, 멜버른 건축사무소 에디션 오피스(Edition Office)와 공동으로 제작한 기념비적 조각 〈For Our Country〉(2019)은 ACT Architecture Awards 2020에서 4개 부문의 상을 수상하며 화제가 됐다. 그의 작품은 캔버라 호주 국립 미술관, 호바트 태즈메이니아 박물관 및 미술관, 멜버른 빅토리아 국립 미술관, 시드니 뉴사우스웨일스 주립 미술관 등 호주의 주요 기관을 비롯해 런던 자연사 박물관과 파리 카디스트 등 세계 유수의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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