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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도 단식농성을 하는 까닭은

두 딸을 둔 ‘엄마’가 보는 한미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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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9호 ⁄ 2007.07.03 11:49:45

이 글은 3월14일, 일산에 살고 있는 신혜진씨가 지난 11일부터 광화문 열린시민공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한미FTA저지 집단 단식농성에 참여한 뒤 쓴 글이다. <편집자 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올바른 역사를 알아야 하는 까닭은 그때 거기에서 있었던 일이 단지 종이 위에 기록된 글자가 아니라 지금 여기 숨 쉬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결정했거나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지금 내가 발 딛고 있는 여기에서 벌어지는 일이 앞으로 몇 십 년, 몇 백 년 후의 후손들의 삶을 규정지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난 주말에 제주 4·3역사기행을 다녀왔다. 1947년 3·1절 기념집회를 하던 군중이 경찰의 발포로 숨졌던 관덕정을 시작으로, 17만 인구 중에 최소 3만이 넘는 사람들이 제 나라 군인과 경찰에 의해 죽어야했던 4·3의 비극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함덕 바닷가, 북촌초등학교, 다랑쉬 오름, 이덕구 산전, 모슬포 바위굴, 백조일손지묘, 정방폭포 어디나 공포와 살육의 통곡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혈육의 한 많은 죽음이 억울하고 원통해서 제사상 앞에서 소리내어 우는 것조차 국가보안법 위반이 되었던 시절이 바로 우리가 자유민주주의공화국이라고 배웠던 대한민국의 현대사였다. 비록 반세기가 훨씬 지난 2003년에야 4·3특별법이 제정되었어도 아직 이정표 하나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는 역사의 현장을 가시덤불과 마른 억새풀을 헤치며 찾아다니는 걸음이 무겁고도 무거웠다. 한 마을 주민이 공포에 떨며 두 달을 숨어 살았다던 동광리 큰넓궤동굴, 한치 앞이 안 보이는 어둠 속에서 나는 결국 목이 메여 울고 말았다. 철모르는 어린 것들 손목을 움켜쥐고 그 동굴 속에서 숨죽여 지냈을 어미의 심정을 상상하니, 그 사실을 새까맣게 모르고 살았던 나의 얕은 지식과 안온함이 더할 수 없이 부끄럽고 죄스러워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우리가 몰라서 침묵하거나 알면서도 비겁하게 외면했던 역사가 어찌 제주 4·3뿐이겠는가. 4·19혁명, 사북항쟁, 부마항쟁, 광주항쟁 그 모두가 처음엔 폭도가 일으킨 사태였고 폭동이라고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아주 나중에야 그 일은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들의 올바른 항쟁이었고, 정작 그들을 학살하고 사실을 왜곡했던 사람들이 권력을 가진 자들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 또한 죽음과 맞바꾼 처절한 저항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지만, 진실은 아직도 다 밝혀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진실을 아는 것 자체가 어려운 사회에서는 누군가 그 진실을 알리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하며, 우리는 그런 사회를 폭정과 야만의 사회라고 부른다. ■ 2007년, 우리 사회는 야만을 벗었나 2007년 지금 우리 사회는 과연 야만을 벗어난 민주사회인가? 심화되어가는 양극화, 누적되어가는 청·장년 실업,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비정규직, 폭등하는 집값과 교육비. 허리띠 졸라매도 하루하루 살기가 팍팍하고 고단하다. 어떤 하나의 정책을 통해 경기가 활성화되고 우리 사회 전체가 잘 살 수 있다면야 그것을 누가 마다하겠는가? 하지만 한미 FTA는 아니다. 정부가 국민을 바보로 여기지 않는 다음에야 처음에는 아니라고 거짓말을 했다가, 거짓말이 밝혀지자 납득할 만한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무조건 한미 FTA를 해야 잘 살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사기에 직무유기다. 국정홍보처에서 내놓은 자료를 중학생 아이 둘과 꼼꼼히 따지며 살펴보았다. 그러나 믿으라고 말은 하는데 믿을 수 있는 구체적인 자료를 찾을 수 없었다. 왜 우리가 광우병이 걸렸을지도 모르는 쇠고기를 먹어야 하며, 어떤 농약을 살포하고 어떤 성분의 유전자조작이 이루어졌는지도 알 수 없는 농산물을 먹어야 하는가? 뼛조각은 뼈가 아니라는 말을 공부하는 아이에게 이해시킬 수 있는가? 지금 있는 건강보험으로도 불안해서 큰 병이나 걸린다면 어찌될까 전전긍긍 하는데, 미국 제약회사의 이익을 챙겨주기 위하여 몇 조원이 넘는 의료비를 왜 우리가 부담해야 하는가? 미국처럼 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가난한 사람이 맹장수술 한번 하려면 천만 원이 넘어야 하는, 사소한 상처가 곪아 마취도 못한 채 결국 제 손으로 자신의 손가락을 절단하는 처지에 놓여도 괜찮다는 말인가? 전기·수도·철도·교통의 공공시설이 민영화 되면 이윤을 내기 힘든 외진 곳은 수도 전기도 없는 암흑천지가 될 것이며, 투자자-정부 제소권 때문에 모든 행정기관은 법을 시행하는데 사사건건 미국기업의 눈치를 봐야할 뿐만 아니라, 그것은 되돌릴 수 없는 족쇄가 되는 초헌법의 위상을 지닌다. ■ 내 아이들이 경제적 식민지인으로 사는 것, 두고 볼 수 없다 우리는 미선이 효순이의 기막힌 죽음을 보면서도 미군을 재판할 권리조차 없어 억장 무너지는 가슴만 쳤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체결 당시 그런 법이 있는 줄도 몰랐던 한미주둔군지위협정 때문이었다. 백번을 양보해서 혼란한 정국에 체결된 법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고 쳐도, 최소한 제도적 민주주의가 완성되었다는 이 시대에 우리 아이들 삶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한미 FTA라는 어마어마한 체결을 자식을 키우는 부모로서 입 다물고 두 눈 뜬 바보가 되어 바라만 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민주국가의 국민들은 자신의 삶을 결정짓는 국가의 정책을 알 권리가 있고, 당연히 그 정책에 반대할 권리가 있다. 말을 하겠다는데 왜 집회를 막고, 사람들을 방패로 내리찍는가? 농민·노동자들이 시위를 하다 진압 때문에 죽어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 사유재산권이 보장된다는 국가에서 미군기지 확장을 위해 제 국민의 집을 때려 부수는 정부. 이것이 야만이 아니고 무엇인가? 네 식구 오손도손 그저 평온하게 살고 싶은 아줌마인 내가 따져보아도 이익은 없고 짊어져야할 부담과 손해만이 집채만 한 한미FTA. 아이 키우고 살림하는 평범한 주부일 뿐인 내 눈에도 보이는 이 모든 사항들을 설마 대통령이, 국회의원들이, 판사들이, 교수들이, 내로라하는 연구원들이 모를 수는 없을 것이다. 구한말 한일합방을 할 때도 그 자리에 있었던 고위급 대신들은 그 길만이 조선이 근대화가 되어 잘 살 수 있다고 말했을 것이다. 한일합방을 통해 식민지인이 된 3천만 국민들이 36년간 죽음과 생존의 고통에 짓눌려있을 때도 그 합의서에 도장을 찍거나 침묵했던 몇몇 사람들은 백작의 칭호를 받고 죽을 때까지 호의호식하며 ‘근대화’된 풍요를 누렸을 것이다. 설마 누군가 그 백작이 되고 싶은 모양이라고 믿고 싶지는 않다. 점령군의 비위를 맞추고 제주도민을 살육해야 정권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이 시대에도 있다고는 정말이지 생각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나는 내 아이들이 또 다른 경제적 식민지인이 되어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세상을 용납할 수는 없다. 그래서 힘없는 서민일 뿐이지만, 엄마이기 때문에 결혼기념일에 밥을 굶으며 바람 찬 거리에서 한미FTA 결사반대를 외친다. -오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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