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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장기요양보험 점검해보니…

예상된 문제점 수두룩, 갈길 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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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24호 박성훈⁄ 2009.06.30 17:16:12

노인 장기요양보험을 시행한 지 만 1년이다. 노인요양보험은 65살 이상 노인과 65살 미만의 노인성 질환자(치매·중풍 등)를 국가가 보험급여를 통해 돌봐주는 사회보험제도로, 가족에게 맡겼던 노인부양을 온 사회가 함께 뒷받침하자는 취지에서 시행됐다. 일단, 대상자가 건강보험공단에 신청하면 신체·인지기능 등 5개 영역 52개 항목을 조사하고 등급판정을 받게 된다. 1~3등급이면 요양시설 입소, 요양보호사의 가사·목욕 등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제도 시행 이후 노인 수급자들의 건강상태가 호전됐다는 반가운 소식들도 들린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5월 7일 현재 갱신 신청으로 등급판정을 마친 2만9542명 중 지난해보다 상태가 좋아져 등급이 하향된 사람이 7053명(23.9%)이었다고 한다. 반면, 상태가 나빠져 등급이 상향된 사람은 2863명(9.7%), 등급유지자는 1만9626명(66.4%)으로 나타났다. 공단은 수급자 상당수가 건강이 개선된 것은 그간 적절한 요양 서비스를 받지 못하던 노인들이 장기요양보험 시행과 더불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음에 따라 신체 및 인지 기능이 크게 호전된 결과로 분석했다. 이처럼, 이 제도는 우리나라 사회보장의 상당한 진전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7월 1일 첫 시행 이후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말도 함께 불거지고 있다. 민간 요양기관 도덕적 해이, 불법 행위 기승 5월 말까지 전국의 요양기관은 시설이 2016곳, 재가 서비스 기관은 1만3815곳이다. 대부분 영리법인이나 개인이 운영하고 있다. 이 중 76곳만이 지방자치단체와 사회복지법인에서 위탁경영하는 공공시설이다. 재가 서비스 기관은 당초 정부 예상보다 수배 이상 많아 거의 ‘난립’ 수준이다. 요양기관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기면서 요양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는 문제점들도 함께 발생하고 있다. 갖가지 불법행위가 벌어지고 도시와 시골 사이의 서비스 불균형이 커지고 있다. 요양보호사의 낮은 처우도 시급한 개선 대상으로 꼽힌다. 수익을 노리고 대상자가 아닌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민간 요양시설의 도덕적 해이도 문제다. 현행 제도는 독거노인·치매노인 등이 직접 장기요양 서비스를 신청할 수 없는 사정을 감안해 대리신청을 가능케 하고 있다. 일부 민간 요양시설에서는 건강한 노인을 치매노인인 것처럼 속이는 등의 방법으로 부당하게 요양시설 급여를 타내기도 한다. 공단 관계자에 따르면, 한 민간 요양시설장은 서비스를 받을 필요가 없는 사람까지 포함해 400명을 대리신청한 경우도 있다. 기관들이 많다 보니 서비스 이용자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다. 복지시설과 종교기관이 이용자들을 많이 확보하고 있다. 건강보험공단은 지난해 8월부터 올해 5월까지 124개 기관에서 부당 집행금을 16억4800만 원 적발하는 등 부당사례를 발견했다. 본인부담금을 받지 않겠다면서 환자를 빼 오지만, 수익을 내기 위해 부당 청구를 하거나 인건비를 줄이는 상황이 벌어진다. 자원봉사자나 요양보호사 실습생 등 무자격자에게 일을 맡기거나, 서비스를 제공한 것처럼 속이거나, 서비스 제공 시간을 실제보다 늘리는 사례가 많았다. 이 같은 불법사례가 발견되는 이유는 요양보험 재정을 건강보험과 정부 예산으로 뒷받침하면서도 서비스 제공 등은 시장에 내맡겨 민간 시설들이 ‘돈벌이’에 치중하도록 한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많다. 최경숙 보건복지자원연구원 상임이사는 “요양기관들이 대상자 유치를 위해 본인부담금 면제, 상품제공 등 편법을 동원하고 그 손실분을 요양보호사 임금 삭감으로 해결하고 있다”면서 “요양시설의 요건을 강화하고 정부 차원의 진입통제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요양보호사 열악한 처우 입소시설의 질 확보를 위해서는 요양보호사의 노동권 확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현재 요양보호사는 법적 기준으로 노인 2.5명당 1명이 배치되도록 하고, 직접고용형태로 고용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간접고용’이나 ‘12시간 이상 근무’ 등 열악한 노동환경이 제공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지난 4월 말까지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은 45만6633명이지만, 실제 업무종사자는 11만4367명(25%)뿐이었다. 상당수 요양보호사들이 자격증만 받고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실정이다. 요양보호사 교육기관은 정부의 수요 조사도 없이 1090곳까지 만들어졌다. 일정한 교육시간만 이수하면 자격증을 딸 수 있어, 너도나도 자격증에 뛰어드는 현상도 벌어졌다. 13살 학생도, 89살 노인도 자격증을 딸 정도이다. 일자리를 찾은 요양보호사들도 처우가 열악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보호사로 일할 사람은 많은데, 요양시설들은 더 많은 수익을 내려고 인건비를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요양보호사협회가 지난해 11월 시설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 30명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11명만이 정규직이었다. 주당 노동시간은 3교대 시설은 40시간, 2교대는 66시간, 격일제는 84시간 등으로 격무에 시달리고 있었다.

임금은 직접 고용된 정규직과 계약직은 120만~130만 원이었고, 파견은 95만 원 가량을 받았다. 재가 서비스 요양보호사는 시간제가 60%를 넘었다. 한 요양보호사는 재가 서비스를 하지만 교통비 부담을 져야 하는 상황에서 월 평균 85만 원을 받고 있다고 한다. 노동조건도 심각하지만, 민간 시설들이 수익을 올리려 요양보호사에게 서비스 이용자를 모집하는 영업까지 시키고, 서비스 업무 범위가 명확하지 않은 일도 잦다. 정금자 전국요양보호사협회장은 “이용자들이 집 청소에 김장까지 시키는 등 ‘국가 공인 파출부’로 여기곤 한다”며 “여성 보호사가 성희롱을 겪는 일도 빈번하다”고 말했다. 곽정숙 민주노동당 의원은 “영리를 추구하는 요양기관들로선 이용자들이 곧 돈벌이에 연결되다 보니, 이런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며 “이처럼 요양보호사들이 불안정해지면 서비스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현정희 전국공공서비스노동조합 의료연대분과장은 “요양보호사는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양질의 요양서비스가 나오기는 어려운 일이므로 지자체에서 직접 운영하는 등 공공적 관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도시에 수급자 편중, 지방은 ‘텅텅’ 또 다른 장기요양시설의 문제점은 지역 간 불균형이다. 처음 제도가 시행됐을 때에는 대도시 외곽의 요양시설이 인기를 끌 것으로 예상됐지만, 현재로서는 대상자가 대도시에 편중돼 있다. 요양보험 대상자 노인들이 자녀들이 사는 대도시에 있는 시설을 선호하는데다 바로 응급 처치를 받을 수 있는 큰 병원에 가깝게 있기를 원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6개 광역시의 요양시설은 정원의 10%가 입소 대기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은 144개 요양시설(정원 5700명)의 대기자가 3300명에 이른다. 서울의 요양시설 부족 비율은 45%, 대구 23%, 부산 21%로 대도시에 시설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충북과 전북 등 농어촌 지역에는 시설 이용자가 적어 과잉 공급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강원·충남·전북·경북 등은 1000 개의 병상이 남아도는 실정이다. 대도시의 땅값이 비싸 부지 확보가 어렵고 ‘님비현상’마저도 빚어지고 있다. 임 준 가천의과대학 예방의학과 교수는 최근 국회에서 열린 요양보험평가 토론회에서 “정부가 재원조달만 신경 쓰고 공급을 시장에 맡겨버린 결과 비용이 적게 드는 도시 외곽에 주로 설치 운영되고 있다”며 “정부 및 공공의 역할을 재원조달에 국한하지 않고 공급까지 확대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정 조건 까다로워 수급자 저조, 본인부담금도 ‘부담’ 요양보험의 조건도 까다로워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이 전체 노인의 4∼5%에 머물고 있는 형편이다. 지난해 말까지 서비스 대상자는 21만4480명으로 65세 이상 노인 510만9644명의 4.19% 정도였다. 전반부에 소개한 것을 부연하자면, 장기요양을 신청하면 의사 소견서와 신체기능 등의 조사를 거쳐 심사에 통과한 사람만이 1∼3등급을 받고 대상자로 선정된다. 지원을 계속 받으려면 1년마다 재심사를 받아야 한다. 까다로운 선정 조건으로 혜택을 받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지난해에는 37만6030명이 서비스를 신청했으나, 57%인 21만4480명만이 대상자가 됐다. 일부 저소득층 환자들은 등급 요건을 갖추고 있어도 본인이 부담해야 할 금액을 낼 수 없어 요양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상황도 벌어진다. 1~2등급을 받으면 요양시설에 들어갈 수 있지만, 시설 이용료의 20%를 환자가 내야 한다. 여기에 1~2인실 등 좋은 환경의 병상을 이용하면 보험급여가 적용되지 않고 식사 재료비, 이·미용비 등도 환자가 내야 한다. 환자 본인부담금이 월 40만 원에서 60만 원에 이른다. 재가 서비스는 환자가 이용료의 15%를 내야 한다. 기초생활수급자들은 이용료를 따로 내지 않아도 되고, 식사 재료비 등도 지방자치단체가 주는 생계비로 해결할 수 있다. 문제는 차상위계층과 빈곤층임에도 제도의 혜택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이다. 전국요양보호사협회가 지난해 11월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44.4%의 이용자 및 보호자들이 요양보험에서 가장 큰 불만은 ‘본인부담금’이라고 답했다. 문설희 협회 사무차장은 “혼자 사는 할머니가 2등급을 받았는데, 거의 남처럼 지내는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 자격을 얻지 못했다”며 “요양시설에 가고 싶어도 내야 할 돈이 적지 않아 이용하지 못하는 사례가 꽤 있다”고 말했다. 특히 차상위계층이나 저소득층 노인들이 지방자치단체 등의 지원으로 무료로 돌봄 서비스를 받아 왔는데, 요양보험 제도가 시작되면서 오히려 본인부담금을 내야 하는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1~3등급 판정을 받고도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노인들이 6만6000명이다. 보험등급 확대, 기관설립 ‘지정제’ 전환 등 추진 예정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부가 법 개정을 통해 요양시설 종사자의 대리신청을 제한하고 노인 장기요양보험 등급을 현행 3등급에서 4등급으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6월 21일 보험등급 기준을 4등급으로 늘리고 현재 2등급까지로 제한된 시설 이용 대상을 3등급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65세 이상 노인인구의 7%가 요양보험 혜택을 필요로 하고 있지만 현재는 5%만 혜택을 받는 등 등급외 판정자의 상당수가 장기요양 서비스를 필요로 하고 있는데 따른 조치이다. 공단은 내년에 4등급으로 확대할 경우 요양보험 대상자가 올해보다 8만 명 늘어난 37만 명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형근 건보공단 이사장은 “부족한 재원 마련을 위해 정부가 약속한 보험 수입액 20% 수준의 국고지원이 이행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보건복지가족부에서는 교육기관 설립을 시·도지사 신고제에서 시·도지사 지정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단순히 지정제일 경우 지정요건을 갖추면 시도지사가 지정하지 않을 수 없어 사실상 신고제와 다를 바가 없다. 이에 따라 시·도지사가 지정시 해당지역 교육기관의 분포 및 요양보호사 수급상황을 고려해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재량권 부여가 뒤따라야 한다는 필요성도 제기된다. 또, 올 하반기부터 직장 가입자의 하위 7%, 도시 지역가입자의 10%, 농촌 지역가입자의 15%를 대상으로 본인부담금 50%를 낮출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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