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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인터뷰]함수연 Sooyun, Ham

익숙함과 낯설음의 공존 속 아이러니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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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09호 김금영⁄ 2011.02.14 13:52:05

어렸을 때 종종 일기를 쓰곤 했다. 방학 숙제로 밀린 일기를 한꺼번에 쓰는 것은 정말 싫었지만 나중에 그 일기를 읽어보면 웃음도 나고, 일기를 쓸 당시의 추억이 아련하게 떠오르기도 했다. 특히 중고등학생일 때 일기를 많이 썼다. 사춘기 시절 첫사랑의 기억, 학업에의 고민 등 그 당시 느꼈던 모든 것들을 일기에 빼곡히 적곤 했다. 일기는 모든 사람이 과거를 회상하게 해주는 추억의 매개체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일기같이 자신이 일상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캔버스에 담는 작가가 있다. 함수연 작가의 그림을 처음 봤을 때 든 생각은 어디선가 본 듯한, 이 세상 어딘가에 꼭 존재하고 있을 것만 같지만 그와 동시에 동화에 나오는 비현실적이고도 아름다운 세계를 보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현실에 있을 것도, 없을 것도 같은 아이러니한 풍경. 함수연의 그림은 그런 묘한 매력을 풍기고 있었다. 함수연은 이 그림에 등장하는 풍경들은 모두 실제 존재하는 장소이기는 하지만 단순히 실제 그대로의 모습을 담은 것만은 아니라고 웃으며 말했다. “제가 살아오면서 봤던 풍경들을 캔버스에 담았어요. 하지만 풍경에 주목하기보다는 제가 그 풍경들을 바라보고 느꼈던 감정들에 중점을 두고 있어요. 제 그림을 보고 단순히 풍경을 그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제 추억을 그린 셈이지요. 그림 하나하나 볼 때마다 그림을 그릴 때 느꼈던 감정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답니다.”

문득 이런 풍경들을 그리기 위해 특별한 장소들을 직접 찾아다니는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함수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일부러 인위적으로 장소를 찾아다니지는 않아요. 오히려 평범한 일상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풍경들이 많아요. 학교를 간다거나 직장을 갈 때 늘 지나게 되는 익숙한 풍경들 있잖아요? 저도 그런 익숙한 풍경들을 그리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제 그림에 나오는 장소를 직접 가보지 않았더라도 마치 가본 것 같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녀의 그림 중 ‘225호’라는 그림은 2006~2007년 독일에 있을 당시 사는 방에서 내려다본 풍경을 그린 것이다. 보려고 의도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보게 되고 그러다보니 익숙해진 풍경들. 그 풍경들은 함수연의 감정들과 어우러져 새롭게 태어난다. 이밖에 ‘아는 사람의 집에서’, ‘F의 방에서’, ‘S의 방에서’ 등 작품 제목에서도 그녀가 익숙한 장소에서 그림을 그렸음을 느낄 수 있다. 진한 원색이 아닌 파스텔톤으로 은은하면서도 신비롭게 표현된 풍경들은 그림을 보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하지만 작품의 평화로운 분위기와는 달리 이런 색은 철두철미하게 체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그림을 그리기 전에 색을 직접 만들어서 작은 캔버스에 미리 칠해 봐요. 색이 그림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책임지기 때문에 그림의 느낌을 깨지 않도록 색을 만들 때 세심한 주의를 기울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색을 바탕으로 붓질 하나하나에 정성을 다해 그려가죠.”

자신의 그림에 대해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정말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렇게 그림을 좋아하게 된 것은 어렸을 때 본 화집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특히 스페인 출신의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저는 어렸을 때 서점에서 그림들이 가득한 화집을 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중 살바도르 달리 화집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어요.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의 소장처가 독일 뮌헨이라는 것을 알고 어른이 되면 꼭 직접 가서 작품을 보겠다고 일기도 쓰곤 했지요.” 그렇게 일기를 썼던 꼬마 아이가 어느덧 자라 직접 뮌헨에 가서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을 보게 됐을 때 느꼈던 감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때 또 그녀는 결심했다. 나중에는 학생이 아니라 작가로서 이 자리에 다시 와야겠다고. 그리고 그 결심은 2007년 그녀가 뮌헨에서 전시를 하면서 이뤄지게 된다. “제가 일기에 적었던 결심들을 하나하나 이루게 돼 정말 행복했어요. 특히 처음 뮌헨에서 그림을 보게 됐을 때는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그 결심에 대한 기억이 떠올라서인지 그림들이 더욱 익숙하게 다가왔습니다.” 자신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을 글로도 많이 적는 함수연은 앞으로도 자신의 감정들을 그림으로 다양하게 표현해나갈 생각이다. “시키지 않아도 하는 유일한 일이 제게는 ‘그림’입니다. 앞으로는 시야를 좀 더 넓혀서 익숙한 장소 뿐 아니라 새로운 장소에 갔을 때 느끼는 낯설음과 그 낯설음이 점점 익숙함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을 그려보고 싶습니다. 제가 어떤 그림을 그려나갈지 저도 궁금하고 기대되네요.” 그림을 보는 이들을 익숙하면서도 환상적인 세상으로 이끄는 함수연의 작품은 2월 22일까지 서울 청담동 123갤러리, 2월 11~14일 화랑미술제, 3월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현대미술제에서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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