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쇄
  • 전송
  • 보관
  • 기사목록

[고윤기 변호사의 재미있는 법률이야기]시신 없는 살인사건

영화가 아닌 실제, 대법원서도 유무죄 엇갈려

  •  

cnbnews 제324호 박현준⁄ 2013.04.29 14:38:56

하정우 주연의 영화 ‘의뢰인’에서 시신 없는 살인 사건을 두고 엇갈리는 변호사와 검사의 재판 과정이 흥미롭게 다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시신 없는 살인 사건은 단지 영화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도 벌어졌던 사건입니다. 시신 없는 살인 사건은 최근에 대법원 판결에서 유죄로 판단된 사례와 무죄로 판단된 사례가 모두 있습니다. 이 두 사건은 모두 살인 사건의 핵심 증거인 시체를 발견하지 못했지만, 피고인의 범죄라고 볼 수 있는 정황 증거가 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이 달라졌습니다. 유죄로 인정된 경우 대법원은 피고인이 자백하고 정황이 뒷받침 되는 경우 살인에 대한 유죄 판결을 하고 있습니다. 회사의 직원인 김모씨가 회사의 사장을 살해해 암매장한 사건에서, 재판부는 유죄로 판단하면서 “피고인이 수사기관이나 법정에서 범행을 자백한 경우 진술 내용이 객관적으로 합리성을 띠고 있는지, 그리고 자백 이외의 다른 증거 중 자백과 저촉되거나 모순되는 것은 없는지 등을 고려해 신빙성 유무를 판단해야 한다”며 “증거에 비추어 김씨 자백의 신빙성이 인정된다”고 판결했습니다. 법원은 빌려준 돈을 갚으라고 한 동업자를 땅에 묻어 살해한 사건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에서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는데도 징역 13년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사체가 발견되지 않았고 매장 장소가 밝혀지지 않은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핵심 증언의 신빙성이 강력한데다 가까운 사이인 피해자가 사라졌음에도 피고인이 찾으려 노력하지 않는 등의 당시 정황을 고려하면 일부 증인의 믿기 어려운 진술을 배제해도 유죄가 인정된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아내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사건에서는 피고인 부부가 살던 아파트에 설치된 CCTV에는 피고인의 아내가 실종 당일 집에 들어가는 모습이 찍혔고, 이틀 뒤 새벽에는 피고인이 자신의 집에서 쓰레기봉투 5개를 들고 나와 승용차에 싣고 어딘가로 가는 모습이 찍히는 등 정황증거를 근거로 법원이 유죄를 선고한 사례도 있습니다. 무죄로 판단된 경우 대법원은 피고인이 자신의 살인죄 혐의를 부인하고 정황증거가 없는 경우에 시신 없는 살인 사건에 대해 무죄판결을 선고했습니다. 동료를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기소된 외국인 노동자에게는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피고인은 2010년 5월 동료를 살해한 뒤 승용차 뒷좌석에 실어 내다버린 혐의로 기소됐지만 1,2심 모두 “피해자가 사망에 이를 정도로 피를 흘렸다는 점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고 피해자의 옷과 가방이 없어진 점 등을 고려할 때 누군가에게 납치됐을 가능성 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 외에 대법원은 동거생활을 반대하던 동거녀의 언니를 감금하고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 대해서도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 상황에서 범행 전체를 부인하는 피고인에 대해 살인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사망사실이 증명돼야 하고, 피해자의 사망이 살해의사를 가진 피고인의 행위로 인한 것임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돼야 한다”고 밝히면서 원심의 유죄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 취지’로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낸 사건도 있었습니다. 법원이 형사사건을 유죄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증거가 필요합니다. 위의 시신없는 살인 사건에서 무죄 판결이 나온 경우는 결국 살인 행위를 증명할 만한 증거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백 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법의 정신에 비추어 타당한 판결입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형사사건의 여러 가지 증거들 중 자백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자백이란 피고인 또는 피의자가 범죄사실의 전부나 일부를 인정하는 진술을 말합니다. 과거 자백은 ‘증거의 왕’으로 여겨졌습니다. 따라서 수사기관에서는 다른 증거를 찾기 보다는 자백을 받아내는데 혈안이 돼 있었고, 자연스럽게 고문을 하는 등 가혹한 수사가 행해졌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얻어낸 자백은 자신이 하지 않았음에도 고문 등이 무서워서 거짓으로 했을 수도 있고, 설사 자신이 했더라도 고문이나 폭행 등 인권을 침해해 얻어낸 것이므로 문제가 많습니다. 따라서 형사소송법 제309조에 피고인의 자백이 고문, 폭행 등에 의해 임의로 진술한 것이 아니라고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다면 이를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없도록 규정해, 인권침해나 허위자백을 방지하고 있습니다.

위의 만화는 실제로 있었던 사안인데, 피고인은 강도 혐의로 구속 수사를 받던 중 30시간 동안 잠을 재우지 않자 자백했습니다. 이때 피고인의 자백은 이른바 철야신문에 의한 자백으로서 피고인이 정상적인 판단능력을 잃을 정도로 피로에 지쳐서 한 자백으로 보이므로 이 또한 증거로 쓸 수 없습니다. 우리 대법원도 30시간 동안 잠을 재우지 않고 받아낸 자백은 증거로 할 수 없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95도1964).

피고인은 살인 혐의로 수사를 받았는데 피고인이 살인을 했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자신이 살인을 했다고 자백했습니다. 이렇게 자백 이외에 아무런 증거가 없는 경우에도 자백을 유죄의 증거로 할 수 없습니다. 우리 형사소송법 제310조는 피고인의 자백이 그 피고인에게 불이익한 유일한 증거인 때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를 ‘자백의 보강법칙’이라고 하는데요, 이는 자백의 진실성을 담보하여 잘못된 판단의 위험성을 배제하고, 인권침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인정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위의 사례에서 피고인이 실제로 살인을 했다고 하더라도 수사기관이 병의 자백을 뒷받침할만한 다른 증거를 발견해내지 못한다면, 피고인의 자백만을 근거로 유죄 판결을 할 수 없습니다. -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 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많이 읽은 기사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