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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윤기 변호사의 만화 법률]상속포기에도 때가 있다

상속개시 후 3개월만 가능, 후순위 상속인들에게 빚 승계되지 않도록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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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68호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 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 2014.03.03 13:16:02

재판이 길어지다 보면 한 사건이 끝나기 전에 재판장의 인사이동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매년 2월이 법관 인사이동 시기입니다. 사건이 끝나기 전에 법관이 바뀐 경우 변호사는 그동안 익숙해졌던 변론 진행 스타일을 잊고 새로운 재판장의 재판진행에 따라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동안 유리하게 진행돼 왔던 사건이 원점에서 재검토 되거나, 제가 원하지 않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법관의 인사이동이 있은 후에는 변론시간 전에 미리 가서 재판장이 다른 재판의 변론 진행을 어떻게 하는지 살펴보곤 합니다.   

그날 제 앞의 재판은 상속의 승인과 관련된 사건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아이들이 어릴 때 부인과 이혼하고 따로 오래 살았습니다. 아버지와 아이들은 어린 시절에는 연락이 없다가, 아이들이 성인이 되고나서야 몇 번 만난 것이 인연의 전부였습니다. 아버지는 예전에 사업을 하다 실패를 했고, 그 이후로 수년을 일용직 노동자로 지내다가 객사했습니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장례를 치렀고, 아버지에 대한 일들은 완전히 잊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은 내용증명을 한 통 받게 됩니다. 그 내용증명에는 아버지의 채무가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이미 돌아가셨기 때문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별 생각 없이 그 서류를 방치했습니다. 그 이후에 채권자로부터 소장이 날라 왔고, 형제는 법정에 서게 됐습니다.


상속의 승인과 관련된 사건

보통 돌아가신 아버지의 빚이 너무 많다면, 상속 포기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상속포기는 상속개시 후(아버지 사망 후) 3개월 동안만 가능합니다. 더구나 상속포기를 할 경우 후순위 상속인들에게 빚이 승계되기 때문에 상속 관련인들을 전부 모아서 한 번에 상속포기를 해야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지 않습니다.

1순위 상속인인 나만 상속포기를 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잘못하면 후순위 상속인들이 내 아버지의 빚을 떠안게 되고, 원망을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상속한정승인이라는 제도를 이용합니다. 한정승인은 말 그대로 물려받은 만큼만 빚을 갚겠다는 것입니다. 채권 목록을 작성해서 신문에 공고하는 등 좀 번잡하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고 자신의 부모의 채무 상황을 후순위 상속인들에게 알릴 필요가 없기 때문에 많이 이용됩니다. 물론 이 한정승인도 상속개시 후 3개월 이내에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빚을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 상속포기나 한정승인을 못하고 3개월의 기간이 지나버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러한 경우 때문에 우리 민법은 ‘특별한정승인’이라는 것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상속인이 상속채무가 물려받은 재산을 넘어선다는 사실을 중대한 과실 없이 알지 못한 경우에 그 사실을 안 날부터 3개월 이내에 한정승인을 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특별한정승인’ 두는 이유

사실 위의 사건도 형제들이 내용증명을 받고 나서 특별한정승인을 했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을 사안입니다. 그런데 형제들은 이 특별한정승인 기간을 지나쳤고, 졸지에 아버지의 거액의 채무를 떠안게 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두 형제는 아직 변변한 수입이 없는 것으로 보였고, 뒤에서 보기에도 정말 딱한 상황이었습니다. 사실 판결로 간다면, 재판장은 두 형제에 대한 패소판결을 해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재판장이 원고에게 말했습니다. “두 청년의 처지가 좀 딱합니다. 제 생각에는 적절하게 조정을 했으면 합니다. 피고들이 돈이 없으니, 돈을 벌 때까지 3년 정도 채무를 유예해 주시고 그 이후에 월 100만원 씩 2년만 받는 것으로 채무를 줄여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원고가 머뭇거리자 재판장이 다시 말했습니다. “아들 뻘 되는 아이들 아닙니까? 원고도 승소해봤자 모든 돈을 받을 수 없다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그러자 원고가 “그럼 그 정도로 양보하겠습니다.”라고 말했고, 재판장은 그 내용으로 그 자리에서 조정을 완료했습니다.

생각보다 법원에서 온 통지나 내용증명을 소홀히 해서 법률적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사건도 피고들이 미리 조치를 취했다면, 간단히 해결됐을 문제입니다. 이 사례는 재판장이 조정을 권유해 적절히 끝났지만, 원고가 계속 조정을 거부한다면 피고 패소가 선고됐을 것입니다. 이처럼 법률분쟁에서 적시에 대응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 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 (정리 = 이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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