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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행근의 중국 부자 이야기 ②]돈에 집착, 성씨도 신(神)도 만든다

뇌물 3만관, 5만관은 거부하지만 10만관은 귀신의 뜻으로 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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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69호 송행근 중국문화학자⁄ 2014.03.10 13:25:27

중국에서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을 어떻게 부를까?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부자라고 한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부자라는 명칭 대신에 부호(富豪)·부옹(富翁)·부인(富人) 등을 사용한다. 이 가운데 가장 보편적인 호칭은 부호이다.

오늘의 중국부자를 살펴보기 전에 한 번쯤 언급하고 가야 할 점은, 고대 중국인들의 돈에 대한 인식이다. 그 이유는 돈과 부자에 대한 중국인의 관념을 이해해야만 오늘날 부자들의 속성을 가장 빨리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자가 되는 것은 세상에 태어난 절반의 이유와 살아가는 동안 최종의 목표였다. 물론 다른 절반의 이유는 높은 벼슬에 오르는 것이다. 두부를 칼로 자르는 것처럼 신분계급이 엄격했던 중국 봉건사회에서 부자가 되는 것은 높은 벼슬에 오르는 것 보다 더 중요했다.

한대(漢代) 이후 청대에 이르기까지 유가(儒家)는 통치이념이었다. 따라서 고위 관직에 오르는 것은 사대부의 숙원이었다. 그러나 대다수를 차지하는 인민들은 부자가 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중국인이 돈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는지에 대해 가장 솔직하게 말한 사람은 상앙(商鞅)이다. 진시황의 중국통일 초석을 마련한 법치주의인 그는 “백성들의 부귀에 대한 욕구는 관 뚜껑을 닫은 뒤에야 그친다”고 토로했다. 중국인의 속성을 이 보다 적나라하게 표현한 사람이 있을까.

돈에 대한 중국인들의 관념은 명확하다. 그 명확한 관념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 있다. 바로 돈은 ‘귀신도 부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진(晉)나라 때 노포(魯褒)가 지은 《전신론(錢神論)》에서 나온다. 여기에서 노포는 “돈은 귀가 없지만 귀신을 부릴 수 있다(錢無耳, 可使鬼)”라고 했다.

돈이 ‘귀신도 부린다’는 인식은 ‘귀신과 통할 수 있다’는 인식으로 발전했다. 당(唐)나라 때 장고(張固)가 지은 《유한고취(幽閒鼓吹)》를 보자.

『당나라 때 장연상(張廷賞)이라는 관리가 있었다. 그는 고위층이 연루된 큰 사건을 맡아 부하들에게 10일 안에 조사를 끝마치라는 엄명을 내렸다. 다음 날 누군가 그의 책상에 3만 관의 돈을 뇌물로 놓아두고 사건을 덮어달라고 부탁했다. 장연상은 크게 노하여 조사에 박차를 가하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그 다음 날에는 5만 관이, 다음 날에는 10만 관의 뇌물이 그의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장연상은 “10만 관이라는 돈은 귀신과도 통할 수 있는 액수이다. 이를 거절했다가는 내게 화가 미칠까 두려우니 그만두지 않을 수 없다(錢至十萬, 可通神矣. 無不可回之事, 吾懼及禍, 不得不止.).”라고 하고 사건을 흐지부지 종결시켰다.』

전가통신(錢可通神)의 고사성어가 후세에 주는 교훈은 참으로 실질적이다. 돈은 귀신과도 통할 수 있으며 때로 돈의 위력은 일의 결과까지도 결정지을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돈이 이승세계에서도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은 그 어느 민족보다도 현실세계를 중시한 중국인의 특성으로 볼 때 참으로 대단한 발상이다.

감히 공자의 나라라고도 해도 과언이 아닌 고대 중국에서 이 같은 발칙한 인식은 참으로 도발적이고 대담하다. 수천 년 동안 중국의 정신적 지주였던 공자는 제왕에서부터 일반 평민에 이르기까지 청빈과 근검절약을 주창했다. 그런 연유로 수천 명의 제자 가운데 유독 안회(顔回)를 보고 ‘한 소쿠리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簞食瓢飮)’로 살아가는 청빈한 삶과 그 삶 속에 찾는 자족(自足)을 침 마르게 칭찬했다.

그렇지만 돈을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중국인들의 본성에 대해서는 그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저서 《논어(論語·里仁)》에서 “부귀는 사람의 바라는 바(富與貴是人之所欲)”라며 부귀에 대한 인간의 현실적 욕망을 솔직히 인정했으니 말이다.

▲중국 북경의 자금성 전경. 사진 = 왕진오 기자


고대 중국에서 부자는 수없이 많지만 대표적인 10대 인물을 꼽는다면 유근(劉瑾), 화신(和珅), 송자문(宋子文), 오병감(伍秉鑒), 등통(鄧通), 양기(梁冀), 여불위(呂不韋), 석숭(石崇), 심만삼(沈萬三), 범려(范蠡) 등이다. 이 가운데 몸뚱이 하나로 전무후무할 정도로 엄청난 부자가 될 수 있는 전형이 있는데, 그게 바로 석숭이다.

석숭은 중국 서진(西晉) 시대의 문인(文人)이자 관리로 중국과 한국 등지에서 부자의 대명사로 인식됐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식이 태어나면 ‘더도 말고 석숭만큼 되어라’라고 주문을 걸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석숭은 얼마나 부자였을까? 당시 왕이었던 혜제(惠帝)의 인척이었던 왕개(王愷)가 엿물로 솥을 씻으면, 그는 밀랍으로 불을 지펴 밥을 지었다. 왕개가 적석지(赤石脂)로 바람벽을 바르면 후추로 바람벽을 발랐고, 왕개가 적면포(赤綿布)로 휘장을 40리를 두르면 비단으로 휘장을 50리를 둘렀다고 한다.


집집마다 재물신, 전(錢)씨 성도 있어

또 왕개가 외국에서 수입한 고급 면포인 화완포로 옷을 지어 입고 자랑하자 자신의 하인 50여명에게 화완포를 지어 입혔다고 한다. 또한 왕개가 길이가 2자나 되는 산호초를 자랑하자 그것을 깨부순 뒤 자신이 갖고 있는 4자 짜리 산호초 6개를 건넸다고 한다. 당시 석숭의 처첩이 100명에 달했고 집의 하인이 800명에 이르렀다고 하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돈에 대한 열망은 끝이 없다. 성씨(姓氏)와 신(神)까지도 낳았다. 중국의 수많은 성(姓)씨 가운데 전(錢)씨가 있다. 전씨의 시조는 삼황오제 가운데 한 명인 전욱(顓頊)의 손자 팽조(彭祖)이다. 팽조의 후예가 주(周)나라 때 조정의 전폐(錢幣)를 관리하는 전부상사(錢府上士)로 일했다. 그래서 돈을 다루던 관직에서 전씨가 유래했다.

중국인의 돈에 대한 욕망은 ‘재물신의 날’이라는 풍속까지 성행하게 만들었다. 음력 정월 5일은 재신(財神), 즉 재물신(財物神)이 태어난 날이다. 이 날이 되면 중국인들은 재신을 맞이하고, 궁신(窮神)을 보내는 행사를 치르며 저마다 자신의 집에 재물신을 모시기 위해 귀가 찢어질 정도의 폭죽을 터트리거나 영험하다고 소문난 절에 찾아간다.

부자에 대한 염원과 그것을 이루고자 한 욕망은 사회주의체제인 21세기 중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까닭에 광활한 중국 어디를 가나 상점이든 호텔이든 가정집이든 그 크기의 규모와 장소에 상관없이 365일내내 재물신(財物神)으로 추앙받는 관우상(關羽像)을 정성스럽게 모시고 아침저녁으로 정성스럽게 재물을 바치며 아침마다 공손히 절을 올리고 향을 태우면서 부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돈이 살아가는 가장 큰 이유인 것이다.

- 송행근 중국문화학자 (정리 = 박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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